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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교육]] 43요 5; 36-40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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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5; 36-40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다2_2f

  

 

  

2020. 12. 20. 주일오후. 온라인 설교.

  

 

  

*개요: 신앙비전

  

[]5: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5: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5:38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즘 같은 때에는 신앙생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혼자서 성경을 읽는 일은 시간은 많지만 더욱 더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책도 별로 안 읽는데 성경은 얼마나 더 읽기가 어렵겠습니까? 내용은 또 얼마나 생소하거나 어려우며 성경을 읽는데 들이는 시간은 얼마나 익숙하지 않습니까?

  

분명 우리는 성경을 읽는 일에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가사를 감당하면서 애들을 키우면서 이것을 하면서 저것을 하면서 그 와중에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매일 매일이 쳇바퀴처럼 동일하게 진행되는 삶 속에서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매일 대개 하는 패턴이 있습니다이 일을 하면 저 일을 해야 하고 저 일을 하면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동일한 생활 패턴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성경을 읽기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읽어야만 한다면 그것은 그 일에 분명한 신앙적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신앙적인 유익은 무엇일까요? 성경읽기를 통해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신앙의 열매는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구원에 대한 확신으로 연결됩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한 모든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응답의 확신, 인도의 확신, 승리의 확신 등등 모든 일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의 내용이 잘 짜여진 예수님에 대한 계획과 설명입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을 믿는 나 자신에 대한 계획과 설명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에 대해서 알게 되고 또한 예수님을 믿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5 39절은 바로 그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 자신이 성경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알려주시는 내용입니다.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을 상고할 때 발견하는 것은 예수님에 대한 증거입니다. 마치 보물찾기 하듯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우리는 성경의 구석 구석에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찾습니다. 예수님을 은유적으로 묘사를 하던 예수님을 우회적으로 설명하던 직접적으로 가리키던 성경 전체는 예수님에 관한 책입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이며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상고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발견하게 됩니다.

  

생선을 가까이 하면 생선냄새가 나고 꽃을 가까이 하면 꽃향기가 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그분에 대한 증거를 열심히 상고하다 보면 바로 예수 냄새가 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인격과 예수님의 마음과 예수님의 가치와 예수님의 중요성이 우리들에게 배이게 됩니다. 그러니 그 속에서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될 것은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이 남이 아니게 되고 예수님이 나와 상관없는 분이 아니게 되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신 바로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에 관한 소설을 읽거나 거기에 관한 위인전을 보더라도 책을 읽다 보면 그 사람과 동일시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본받아야지 생각하게 되고 그 책의 주인공을 마음속에 오랫동안 기억하게 됩니다. 하물며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사랑의 편지를 써주신 우리 예수님에게라면 얼마나 더욱 감사함과 기쁨이 생겨나겠습니까? 성경은 우리를 위해 주신 예수님의 사랑의 편지인 것입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생각대로 욕심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은 그냥 입에 발린 말 같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라는 답답함도 갖게 됩니다. 그렇게 악감정이 자꾸 커지다 보면 나중에는 확신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정말 사랑하시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예수님이 정말 나를 위해 죽으신 것 같지는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 그렇게 하신 것 같아, 이런 저런 별별 생각이 다 생기면서 점차 구원의 확신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성경을 펴보십시오. 약해지지 않도록 흔들리지 않도록 잊어버리지 않도록 성경말씀을 다시 펼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자세히 묵상해보십시오. 그 약속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생각하십시오. 그 약속은 결코 우리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욱 훌륭하고 놀랍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집니다. 그 계획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좋습니다. 우리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욱 좋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대로 이루신 일 중에 가장 놀라우신 일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일입니다. 그 일만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진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이사야 7장에서는 남유다나라가 아람왕과 북이스라엘에 의해서 공격을 받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유다를 도와서 그들이 승리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왕이었던 아하스는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징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고 그 징조를 받음으로 굳은 확신을 갖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징조를 구하게 되면 정말 믿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받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확신이 없어서 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친히 징조를 주셨습니다. 그 징조는 아하스가 구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욱 훌륭하고 완전한 징조였습니다. 그래서 저 유명한 이사야 7 14절 말씀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친히 주신 징조였습니다. 그 징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반드시 구원을 받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오래전 약속해 주신 것을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렀을 때에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그것을 본다면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것을, 우리를 주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을, 우리를 높이 세워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들로 만드실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현재의 예수님의 역사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미래는 어떨까요? 과거도 그렇게 현재도 그랬는데 미래라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겠습니까? 역시 미래에도 예수님은 조금도 변함없으실 것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확신을 우리는 성경에서 발견합니다. 약속대로 우리를 위해 오셨다는 것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세상의 오심이 일 점 일 획도 변함이 없으신 주님의 계획과 섭리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그 계획과 섭리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오셨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 피조물을 위해서 죽으신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 일은 이 지구상에서 이 세계에서 이 우주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일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온전한 계획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결코 즉흥적으로 감상적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닌 것입니다. 약속대로 기약대로 예수님께서는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 위대한 일이 이루어졌는데 그보다 작은 일은 얼마나 확실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일을 온전하게 이루셨는데 그보다 작은 일은 얼마나 확실하게 이루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서의 예수님에 대한 계획을 발견할 때에 우리 자신의 삶과 인생과 구원에 대한 가장 확실한 근거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또 어떤 사람들은 의문을 품을지 모릅니다. 성경 속에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이 있고 미리 계획이 되어 있다고 한다면 과연 성경은 믿을 만한가, 과연 성경은 우리의 영혼을 걸만큼 신뢰할 만한가 라는 의문을 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성경 자체를 믿을 수 없다고 단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믿지 않고 성경의 증거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실 창조론이나 진화론은 모두 믿음에 바탕한 신념체계입니다. 창조론이 증거가 없는 것 처럼 진화론도 증거가 없습니다. 증거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증거가 없습니다. 이 둘 다 믿음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믿음의 문제가 나옵니다. 믿음의 문제에 있는 한, 모든 인간은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창조론을 믿는 것은 창조론을 믿고 싶기 때문이고 불신자들이 진화론을 믿는 것은 진화론을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관한 결정적인 증거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하나님을 믿고 싶어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싶어하지 않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 증거를 감추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에 모든 비밀은 밝혀질 것입니다. 그 전까지 밝혀지지 않은 모든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증거가 아니라 선호에 따라서 하나님을 믿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고 싶다면 하나님의 증거를 믿을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을 믿고 싶지 않다면 하나님의 증거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이유때문에 자신에 대한 증거를 아무에게서나 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을 증거하지 않고 숨기려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에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오직 그 증거만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36, 37절을 보십시오.

  

“[]5:36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5:37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친히 하신 일들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이 예수님을 증거했다고 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히 하신 일을 통해 예수님을 믿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예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구약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계시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 예수님의 증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또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진실됨과 여러분에 대한 구원의 증거를 예수님 자신과 하나님의 증거로만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귀신들이 증거하려고 했을 때에는 아무 말도 못하게 했습니다. 성경을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입니다. 성경을 믿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니까 성경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렇게 세상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고 세상이 원하지 않는 대로 하셨기 때문에 세상은 예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님의 증거와 예수님의 증거로 제한되었습니다. 이렇게 증거가 제한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하나님과 예수님의 증거만으로 국한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기준에 합하는가, 합하지 않는가의 여부만을 따지려고 했기 때문에 구원과 영생에 대해서 말하시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증거에 대해서는 거부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34절에서 예수님은 그들에 대해서 안타깝게 생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34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언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증거 여부만을 따지면서 정작 예수님께로는 오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나아오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중요한 선택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예수님께로 나아가길 거부할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설명하실 수 있다고 믿으면서 주님께 나아오겠습니까?

  

 

  

이제 성경을 읽으면서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성경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성경을 읽고 그 속에서 우리의 구원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성경 속에 설명 되어 있는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혹시 가지고 있는 의문이 있다면 예수님 안에서 해결하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자들이 성경을 읽지 않는 일도 역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과연 무엇이 진실한 마음입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가까이 할 때에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를 변화시켜 주시고 우리 속에 든든한 확신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진리를 깨닫고 더욱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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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롬8; 27-28 보이지 않는 소망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1-08 6 1573
84 [4구원론]
44행6; 8-15 스데반의 얼굴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1-18 6 1993
83 [4구원론]
45롬10 주를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8-31 8 1866
82 [4구원론]
45롬12; 9-13 거짓이 없는 사랑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1-09 7 1666
81 [4구원론]
9삼상 3 하나님이 사무엘을 찾으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9-09 8 1709
80 [4구원론]
43요20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0-01 9 2420
79 [4구원론]
40행1; 1-5 데오빌로에게 보내는 편지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2-24 6 1681
78 [4구원론]
58히11 예배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시간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0-05 8 1786
77 [4구원론]
45롬 6; 3 세례의 효과는 무엇인가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1-23 4 2406
76 [4구원론]
45행6; 1-7 하나님의 말씀과 공궤하는 것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3-12 6 1891
75 [4구원론]
40마10;5-13 제자들을 이스라엘로 보내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5-24 7 1926
74 [4구원론]
43요14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1-12 7 1673
73 [4구원론]
44행 1; 4-9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4-15 7 2076
72 [4구원론]
5신31;6 하나님은 너를 떠나지 않으신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6-28 5 2220
71 [4구원론]
59약 1;5-8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께 간구하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7-12 7 2189
70 [4구원론]
43요4; 29-26 아버지께 예배드리는 사람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5-17 7 2767
69 [4구원론]
42요19;28-30 우리를 위해 죄사하심을 이루신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7-22 6 2177
68 [4구원론]
46고전15; 12-22 죽은 자의 부활은 우리의 본질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6-16 6 1541
67 [4구원론]
58히11; 6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다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6-04 6 2158
66 [4구원론]
46고전 3;16-17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6 9 2156
65 [4구원론]
42눅12;29-30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3-16 5 1842
64 [4구원론]
41막 1;9-11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14 10 2357
63 [4구원론]
46고전 10;13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3-23 6 2223
62 [4구원론]
44행 2;37-41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7-17 6 1564
61 [4구원론]
58히11;6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0-09 5 1963
60 [4구원론]
43요17; 14-19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주신다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7-27 7 1431
59 [4구원론]
43요14; 13-15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7-27 8 2159
58 [4구원론]
45롬 1; 1-6 부르심을 입은 자들2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4-13 8 2456
57 [4구원론]
42눅15;11-19 탕자의 깨달음과 결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1-24 8 2123
56 [4구원론]
44행2; 44-47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0-27 6 2175
55 [4구원론]
7삿13;2-5 머리에 칼을 대서는 안되는 사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2-07 7 2313
54 [4구원론]
42눅 4;1-4 사탄의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1-21 7 2177
53 [4구원론]
43요 3; 3-12 거듭난다는 것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8-31 7 1677
52 [3기독론]
43눅23 예수님을 희롱하는 사람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4-10 6 1997
51 [3기독론]
40마2; 1-2 동방박사들의 여행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2-24 5 1571
50 [3기독론]
43요13; 2-11 베드로의 발을 씻기심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2-09 8 1799
49 [3기독론]
42눅21 적은 예물을 드렸으나 많은 것을 드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0-22 8 1552
48 [3기독론]
42눅 2; 48-52 하나님의 집에서 자라나신 예수님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12-29 6 2055
47 [3기독론]
40마28; 1-10 누우셨던 곳을 보라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3-31 6 2091
46 [3기독론]
23사53 그는 우리의 슬픔을 지고 계신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5-29 10 1549
45 [3기독론]
40마27 예수님은 죽으시고 사람들은 일어나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5-29 8 1525
44 [3기독론]
43눅23; 33-38 예수님을 희롱하는 사람들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3-30 10 2091
43 [3기독론]
40마 6; 9-13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9-09 12 2134
42 [3기독론]
43요 1 영접하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것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03 7 1799
41 [3기독론]
40마10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20 9 1747
40 [2신론]
1창 1; 28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신 것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12 7 2327
39 [2신론]
3레11;44 하나님의 다섯가지 도덕적 품성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2-02 8 2429
38 [2신론]
19시136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7-08 7 2050
37 [2신론]
45롬10 종일 손을 벌리시는 하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9-06 7 1646
36 [2신론]
43요17; 1-5 영생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3-18 6 2016
35 [2신론]
1창3;1-7 하나님은 우리가 죄짓지 않기를 원하신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6-09 7 2263
34 [2신론]
43요3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하신 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1-25 5 1816
33 [2신론]
42눅 2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12-10 7 1748
32 [2신론]
42눅11;1-2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3-02 8 2212
31 [2신론]
44행16;35-40 하나님과 함께라면 어떤 곳도 두렵지 않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1 6 2149
30 [2신론]
40마 12;28-29 나라가 임하게 하시기를 기도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3-10 5 2024
29 [2신론]
24렘33; 1-3 기도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7-14 8 2344
28 [2신론]
40마25;14-21 하나님을 믿고 달란트를 남기는 자들이 되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0-23 11 2049
27 [2신론]
47고후6; 14-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의 불일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8-07 8 2103
26 [2신론]
47고후5;20-21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어야 한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1-15 10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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