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심층] 3레 10; 1-6 레위기의 나머지 내용의 의미는 무엇인가Loading the player...
3레 10; 1-6 레위기의 나머지 내용의 의미는 무엇인가_1
2020. 9. 27. 주. 주일오전.
*개요: 레위기에 나타난 아들의 소원, 6통찰적해석, 26심층, 1오경
[레]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레]10: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레]10:3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겠고 온 백성 앞에서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셨느니라 아론이 잠잠하니 [레]10:4 모세가 아론의 삼촌 웃시엘의 아들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나아와 너희 형제들을 성소 앞에서 진영 밖으로 메고 나가라 하매 [레]10:5 그들이 나와 모세가 말한 대로 그들을 옷 입은 채 진영 밖으로 메어 내니 [레]10:6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
9월 한달 동안 우리는 레위기의 내용을 통해서 오늘날의 예배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럴 때 레위기의 제사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신약의 예배는 신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의 생활과 삶 속에서 특별한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기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깨닫고 예배를 드리고자 할 때에 그 기회를 통해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됩니다. 이렇게 레위기를 살펴볼 때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하나의 의문이 있는데 그것은 그렇다면 레위기의 나머지 내용은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전체 27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각은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1-7장: 5가지 제사 8-10장: 제사장 위임식 11-15장: 각종 정결법 16장: 속죄일 규례 17-20장: 도덕법 21-27장: 절기와 종교법 그렇다면 왜 제사에 관한 것만 설명하고 레위기가 끝나지 않고 다른 제사장 위이심이나 정결법이나 속죄일이나 도덕법이나 종교법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을까요? 그것은 제사가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모습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사장이나 제물을 가져오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재앙과 심판을 불러 일으키는 계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제사법과 함께 생활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의 준비가 정말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계기가 바로 오늘 말씀에 나오는 상황입니다. 올바른 제사를 드리지 않았을 때에 심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1, 2절을 보십시오. “[레]10: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레]10: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아론에게는 네 명의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 엘르아살, 그리고 이다말입니다. 그중 첫째, 둘째인 나답과 아비후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불로 여호와 앞에 분향했어야 했는데 각기 향로를 가지고 다른 불을 담아서 하나님께 분향하였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불이 나아서 그들을 삼켰고 그들은 생명을 잃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명령하신 불을 담지 않고 다른 불을 담아서 분향하였는가 하면 그 전에 그들은 술취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건 후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레]10:9 너와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 죽음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영한 규례라 [레]10:10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그들이 포도주와 독주를 먹었기 때문에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들은 다른 불을 드렸고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생명을 잃었습니다. 레위기의 말씀을 보면서 온전한 예배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러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럴 때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에는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말씀이 나와 있습니다. “[히]3: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히]3: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길을 알게 되는데 어리석은 자들이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다가옴을 거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형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단순히 형식의 절차를 지키지 않은 실수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마음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모세와 아론과 다른 이스라엘의 장로 칠십인과 함께 하나님께 나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출]24: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출]24: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출]24: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세울 때에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만났고 그 발 아래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은혜를 받았던 나답과 아비후였지만 제단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아닌 술취함과 다른 불을 사용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자가 되고 말았고 그로 인해서 심판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도 이러한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삶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를 준비할 때 비로소 온전한 예배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악한 삶을 살아도 예배만 잘 드리면 된다가 아니라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해서 온전한 삶을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신앙의 삶을 준비할 때 예배를 온전하게 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히]3: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히]3: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삶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고자 하고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노력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받아주시는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가 죽고 나서 모세는 그들의 죽음이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는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레]10:6 모세가 아론과 그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이르되 너희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지 말라 그리하여 너희가 죽음을 면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온 회중에게 미침을 면하게 하라 오직 너희 형제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께서 치신 불로 말미암아 슬퍼할 것이니라”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으로 그들의 잘못과 어리석음을 슬퍼하는 자가 되어야지 그 죽음을 통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미움과 분노를 갖는다면 온 회중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진노가 있을 수 있음을 경고하였고 그 말씀을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제사장의 잘못을 깨닫고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보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삶이 있었을 때에 그들은 다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그러한 예배를 통해서 온전한 모습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위기의 나머지 부분은 단순히 제사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삶에 대한 안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 시간만의 의미만 생각하지 말고 그 예배를 통해서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예배를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어리석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꾸려고 하고 올바르게 나아가고자 할 때 우리는 날마다 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길이요,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그렇게 달려가는 삶 속에서 비로소 변화의 모습이 생기게 됩니다. 운동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온몸에 고통이 따릅니다. 숨이 차고 팔과 다리가 당기고 근육이 아프고 피곤함이 넘칩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다시 운동을 하고 또 운동을 계속 하다보면 더 이상 숨이 차지 않고 팔과 다리가 아프지 않고 점차 상태가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운동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예배도 그렇습니다. 예배를 못견뎌서 오락으로 빠지고 게으름으로 빠지고 불성실함으로 빠진다면 예배를 통해서 얻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기쁨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삶에서 더욱 하나님을 따르고자 애쓸 때에 비로소 예배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시간이 되고 더욱 은혜로 채워지게 됩니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예배를 드리면서 함께 나아왔습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예배를 계속 드리면서 나아갈 것입니다. 그 모든 시간을 통해서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고 예배를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면서 거룩한 삶을 살게 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레위기의 나머지 내용의 의미는 제사드리는 자의 온전한 삶에 관한 것이다. 2. 나답과 아비후는 부정적인 삶이 있었을 때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없었다. 3. 그러한 삶이 준비되지 않으면 악한 예배와 가증한 예배가 드려지게 된다. 4. 삶으로 연결되는 온전한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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