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교제] 44행 2; 42-47 성도들이 교제하는 방법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44행 2; 42-47 성도들이 교제하는 방법_1
2019. 6. 23. 주. 주일오전.
*개요: 성도의 교제의 의미, 85교제,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우리가 성도의 교제의 중요성과 의미를 알게 되었다면 그 다음에 생각해야 할 것은 ‘어떻게 교제할 것인가’입니다. 성도의 교제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인지를 알지 못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 버릴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교제일까요? 오늘 성경말씀은 그 방법에 대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42절을 함께 봅니다.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서 서로 교제했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 나누어 먹으면서 오직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은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변화를 받고 구원을 사모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모습이 이렇게 나타나게 된 이유는 그 전에 이미 그들이 진정한 성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연이 앞 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그들은 오순절 마가다락방에서 성령충만을 받고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놀라운 제자들의 변화된 모습들에 대해서 충격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베드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신데 그 예수님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자가에 못박게 한 것이 커다란 죄인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말에 마음이 찔려서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회개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행]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행]2: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베드로가 말해준 것은 커다란 죄를 지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또한 그렇게 죄 사함을 받을 때 패역한 세대 가운데에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에 대해서 말해주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죄인에서 의인으로 변화 받을 수 있는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세례를 받고 성도가 된 사람들이 삼천명이나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은 그렇게 성도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도의 교제는 성도가 나누는 것이지 성도가 아닌 사람들이 나누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성도의 교제를 나누고자 할 때 본질적으로 우리가 성도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성도가 아니라면 성도의 교제를 할 수가 없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한 죄사함의 증거가 또한 세례였고 세례를 받고 난 다음에 교회의 신도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성도의 교제를 말할 때에 우리는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은 자들이 함께 모이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럴 때 그 다음에 모여서 무엇을 하느냐가 의미가 있습니다. 죄사함의 기쁨과 구원의 감격이 있는 자들이 성도의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바로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는 것입니다. “[행]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르침을 받으면서 교제하였고 떡을 함께 먹으면서 교제하였고 그 교제 속에서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순순히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죄사함의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고 떡을 함께 먹을 수 있었던 이유는 패역한 세상을 떠나 구원받는 사람이 되고자 하였기 때문이고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던 이유는 그들이 그렇게 구원받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세탁기의 원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세탁기에는 모든 세탁물들이 들어갑니다. 세탁이 필요한 옷들은 전부 더러운 옷입니다. 그 더러운 옷들이 세찬 물살 속에서 서로 엉키면서 돌려지면서 오염물질을 분해시키는 세제와 함께 섞일 때에 때가 빠지고 오염물질이 사라지며 더러움이 사라지고 깨끗함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세탁이 끝나고 잘 말리면 깨끗한 옷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속에서 살면서 모든 패역함을 자의든 타의든 얻게 되었을 때 성도의 교제를 통해서 그 더러움을 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사람들도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성도가 되어갔던 것이고 우리도 말씀의 가르침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룩한 삶은 패역한 삶을 살던 자들에게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얻는 것이 있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야생에 살던 야만인이 있다고 해보십시오. 그가 현대 세계에게 현대인으로 살라고 하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야생에서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긴 사람이라면 현대세계에서 안전하게 사는 것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제 3세계에서 우리나라에 취업을 위해 온 외국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합니다.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그 일에 소망을 갖습니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외국 선진국에 나가서 살 때 열심히 삽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삽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소망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공부든 직장이든 거주환경이든 교육문제이든 무엇이든지 그곳에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구원의 소망이 있고 영생의 소망이 있습니다. 죄사함의 기쁨이 있고 미래에 대한 희락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성도의 교제를 행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럴 때 성도의 교제의 선순환이 나타납니다. 그렇게 살면 그로 인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그 모인 사람들을 아십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 도우심은 때로 기적으로, 역사로, 표적으로, 각종 좋은 일로 나타납니다. “[행]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다는 것은 사도들이 기사와 표적을 일으켰다는 뜻이 아니라 사도들을 사역을 통해서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다는 의미입니다. 본질적으로 기사와 표적은 하나님께서 행하십니다. 다만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남으로써 그 본질이 바로 하나님이심이 증거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을 그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하나님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를 잘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기사와 표적은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욕심을 채워주는 내용들은 아닙니다. 때로는 절박한 문제가 해결되고 심각한 어려움이 해소되며 절망적인 상태가 개선되는 것 등이 바로 오늘날 이 시대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애초에 성도들은 그런 기사와 표적 때문에 성도의 교제를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구원의 기쁨과 감사 속에서 성도의 교제를 했던 것입니다. 다만 그렇게 성도의 교제를 하는 중에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기 때문에 더 힘을 받고 소망에 차서 계속해서 성도의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가르침이 말씀에 근거한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모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떡을 떼는 것이 욕심과 탐욕에 의한 것이었다면 우리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기도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면 기도할 힘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했고 그로 인한 좋은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 다음에도 기도합니다. 그러면서 성도의 교제가 지속됩니다. 그것은 우리 세대 뿐만이 아닙니다. 다음 세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교제가 근본적으로 이루어지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살아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렇게 성도의 교제가 진행될 때에 그 수준도 더욱 올라갑니다. 자신의 소유에 대해서 더욱 풍성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행]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물건을 서로 통용한다든지 혹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준다든지 하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삶이 자기 중심적이지 않고 신앙 중심적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오늘날 과거와 동일하게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이 시대에 물질에 대한 사용도 그 당시와 동일하게 되어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렇게 물질에 대해서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내놓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확장도 할 수 있고 건축도 할 수 있고 사역도 할 수 있고 구제도 할 수 있게 됩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교회건축을 위해서 성도들이 십시일반하여 헌금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언젠가 때가 되면 그렇게 건축헌금이나 작정헌금을 하게 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의 구체적인 목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두가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라도 그 일을 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성도의 교제는 의미를 갖게 될 것입니다. 헌신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든 헌신과 열심이 다 이루어졌다고 해 보십시오. 그래서 공간이 확장되고 건물이 건축되고 사역과 구제가 이루어진다고 해 보십시오. 그 정도 규모와 사이즈가 되었을 때에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성도의 교제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겠습니까? 다시 모든 것은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가장 처음에 했던 일들이 다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행]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다시 마음을 같이하여 모이기를 힘쓰고 함께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칭송을 받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감화를 받는 자들을 통해서 구원 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럴 때 하게 되는 일은 맨 처음에 했던 일들을 다시 하는 것이고 그럴 때 맨 처음에 구원받은 사람들이 있었던 것처럼 그 이후에도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놀라운 성도의 교제의 선순환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선순환을 바라보며 성경에서 보여주는 좋은 성도의 교제를 지금부터 해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말씀의 가르침을 받고 함께 떡을 먹으며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는 귀한 성도의 모습을 이루어가기를 바랍니다. 그 일에 함께 하시는 여러분, 더욱 공통의 목표와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 안에서 함께 교제하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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