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주제 교육 만화 생활 특별

[절기] 43요 1 ;9-14 예수님은 왜 세상에 오셨는가?




43요 1 ;9-14 예수님은 왜 세상에 오셨는가?


( 2007-12-22, 성탄절 )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성탄절에 이르기가지 우리는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 에 해당하는 질문들을 가졌고 거기에 대한 의미들을 계속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침내 그 날이 되었고 예수님은 이곳에 오신 완전한 의미를 찾을 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깨닫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나름대로 생각하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성경에서 나타내는 그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11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십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
이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하는 개념을 뒤집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땅에 오셨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더 발전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맞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전부는 아닙니다. 더 구체적이며 더 오묘하고 더 완전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의미를 이해할 때에야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지만 오직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오셨다는 것을 닳고 닳도록 들은 후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11절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 땅에 자기 백성을 만나러 오셨던 것입니다.

그분의 계획과 뜻 가운데에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대로 구원을 위한 일이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이 자기 땅에 자기 백성에게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더욱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 이 세상은 왜 자기 땅일까요? 언제 이 땅에 대해서 무슨 일을 하기라도 하신 것일까요? 오히려 주님이 손님이고 인간이 주인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참빛이십니다. 태초부터 있었던 빛의 근원이시며 세계 만물이 생성되기도 전에 있었던 주님의 참빛이셨습니다. 그 분으로 인해 세계가 만들어 졌고 지어졌습니다. 사실 이 땅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혼자서 이 모든 것을 만든 것이 아니고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주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만을 알고 있었지 그 아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구원계획을 이루시려는 크신 경륜 가운데 아들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친히 자기 백성에게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그 백성은 바로 이스라엘이며 그 땅에 사는 민족이었습니다. 주님의 땅은 이 세계이며 그분의 백성은 이스라엘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이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왕되신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죽이려고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지도자요 대제사장들이며 서기관들이고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자기 땅에 오셨고 자기 백성에게로 오셨으나 그들은 철저히 주님을 무시하고, 거부하며, 배격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을 왕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왕이었을 뿐입니다.

이 시대에 주님은 다시 오셨습니다. 성탄절을 통해서 주님은 그분의 나심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분의 위엄과 영광과 존귀를 받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백성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분의 땅과 그분의 백성들에게서 주님은 외면받으십니다. 성탄절에 마땅히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나심을 기뻐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성도들은 더 이상 성탄절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그 성탄절의 시간을 활용하고 이용합니다. 성탄절의 절기와 형식을 무거운 규례처럼 여기고 나름대로 바쁘고 복잡하고 신경쓰이는 일들을 생각하며 주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탄절보다 휴가를, 예수님의 나심보다 개인적인 계획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결국 이 모든 일들은 주님을 왕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주님을 구주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귀찮게 만드는 분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얼마전 우리 청년부에서 본 ‘코치 카터’라는 영화는 우리가 주님을 무엇으로 생각하느냐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 좋은 영화였습니다. 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로 새로 부임한 카터씨는 학생들에게 계약서를 작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코치로 인정하면 농구부에 남고 그렇지 않으면 내 체육관에서 떠나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학생들은 남았고 인정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떠났습니다. 때로 얼르기도 하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많은 과제를 주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그들은 승리했습니다. 그들중 5명이 대학에 가고 그 팀은 가장 많은 화제를 모으면서 유명한 팀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왕으로 인정하면 주님을 우리를 이렇게 저렇게 다루십니다. 그 모든 일을 잘 감당하면 마침내 우리 자신에게 유익이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명령하십니다. 이런 저런 눈치를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당하게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왕으로 섬긴다면 이건 하고 저건 못하고 하지 않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명령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 말씀에 잘 순종하고 나갈 때 우리는 영접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들에게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는 바로 어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친척관계로나 혹은 인간관계로나 다른 이기적인 목적으로 된 것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믿고 그 유익을 누리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진실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을 때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눈이 열리고 그 영광을 바라봅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모습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따라 가면서 주님을 닮은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영광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렇게 되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사람들에게 오셔서 자기처럼 만드시는 이 놀라운 연합에 우리 모두가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그러한 2008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번호 분류 이미지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48 절기
5신 1; 29-33 광야에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1-02 2 437
47 절기
40마 2; 7-8 박사들이 기뻐하고 기뻐한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25 2 452
46 절기
1창 32; 20-26 혼자 있는 시간에 주를 만나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12-30 1 1081
45 절기
42눅 2; 1-7 때가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12-25 1 1101
44 절기
41막 12;28-34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도다 (송구영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12-26 2 1532
43 절기
43요16; 28-33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2-25 2 1576
42 절기
40마 1; 18-25 예수님의 나심에 관한 세 가지 의미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1-12-24 1 1739
41 절기
66계 22; 10-16 믿음에 대해 상을 주시는 하나님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2-31 1 2565
40 절기
1창 50; 22-26 모든 것의 끝과 새로운 시작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01-01 1 2171
39 절기
43요 1; 9-14 예수님은 왜 세상에 오셨는가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12-25 2 2534
38 절기
40마 1; 20-25 임마누엘되신 하나님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12-22 1 2348
37 절기
42눅 23; 37-43 함께 낙원에 있게 된 자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04-14 2 2456
36 절기
43눅 2; 41-52 아버지 집에 있는 자녀2_2b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2-30 2 2527
35 절기
42눅 18; 37-43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2-27 2 2396
34 절기
40마 2; 9-13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주시는 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2-23 2 3163
33 절기
42눅 2; 1-7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2-23 2 2554
32 절기
42눅 1; 45-55 큰 일을 인간에게 행하심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2-15 1 2305
31 절기
58히 4; 13-16 체휼하시는 예수님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4-01 2 7368
30 절기
43요16; 28-33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12-30 1 2484
29 절기
40마 2; 7-11 별을 보고 아기를 만나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12-24 1 2320
28 절기
43요 21; 12-15 세 번째 나타나신 예수님3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4-16 6 2616
27 절기
6수 22; 21-27 우리가 단을 세운 이유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1-01 12 2413
26 절기
44마 1; 18-25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2-18 16 6414
25 절기
42눅 1; 26-38 구원계획으로의 동행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2-18 17 3083
24 절기
42눅 1; 13-17 주님을 예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2-11 19 3382
23 절기
42눅 1; 1-7 말씀의 목격자되고 일군된 자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2-04 22 3409
22 절기
50빌 3: 10- 14 무엇을 위해 쫓아가는가 (2006송구영신, 예배녹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5-07 13 2793
21 절기
2006년 성탄절 유초등부 예배녹음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5-07 6 3827
20 절기
66계22; 10-15 각 사람의 일한대로 상을 주리라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1-01 12 6186
19 절기
66계 3; 7-13 적은 능력이지만 배반치 않음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1-01 7 3348
18 절기
66요 1; 9-12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3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2-27 23 4560
17 절기
40마 2; 9-12 세가지 예물의 의미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2-26 10 3841
16 절기
42눅 2; 1-14 하늘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2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2-20 25 7604
15 절기
43요 19;25-27 예수님께서 부모님을 섬기게 하심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5-11 11 5629
14 절기
43요 19;25-27 진정으로 어버이를 섬김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5-11 18 4330
13 절기
41막 14; 32-4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3-30 21 4312
12 절기
1창 29; 15-20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01-01 8 3290
11 절기
6수24; 14-18 섬길 자를 택해야 하는 시간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1-01 10 3382
10 절기
42눅 2; 1-7 구유에 뉘이신 예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12-25 7 4163
9 절기
40마27; 54-66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3-26 10 4102
8 절기
40마27; 21-26 민란을 두려워한 빌라도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3-26 13 3568
7 절기
40마20; 20-28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01-09 8 2917
6 절기
42눅2; 8-14 하나님이 주신 표적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12-30 9 2968
5 절기
66계22: 10-15 각 사람의 일한 대로 상을 주리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1-06 7 3196
4 절기
40마 2;9-12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돌아가니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01-06 26 5017
3 절기
1창 29; 18-20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8-01-04 8 4061
절기
43요 1 ;9-14 예수님은 왜 세상에 오셨는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2-29 8 4277
1 절기
42눅 2; 1-7 왜 누우실 곳이 없었는가?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07-12-29 13 4991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