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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죄책] 1창 3;4-7 죄악의 시작, 욕구의 시작

 
1창 3;4-7 죄악의 시작, 욕구의 시작

 
2010.4.4.주일. 주일오후 [4욕구]

이전에 ‘독심술’이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상대의 마음을 아는 법이라는 부제로 달린 이 독심술은 마치 상대의 마음을 요리조리 이용하고 자기 맘대로 조종할 수 있는 방법처럼 보여졌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이 독심술이라는 것은 사실은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빨리 파악해서 그것을 자극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하는 방법입니다. 엄밀히 따져보면 독심술이 상대를 조종한다는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다만 그 방법은 심리적이고 교묘하게 작용하는 것이지 최면술처럼 상대의 의지를 꺽거나 바꾸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독심술처럼 일상생활에서 익숙하게 사용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가리켜 ‘눈치’라고 말합니다. 눈치가 빠르다는 것은 결국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빨리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태도나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능력, 그것을 눈치가 빠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이같은 ‘눈치력’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눈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직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합니다.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어떤 사람은 너무 눈치만 봅니다. 자신이 아무리 원한다 하더라도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할 지를 결정합니다. 너무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만 해주려다가 자신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고 맙니다.
역시 좋은 것은 균형을 갖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너무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닌, 적절히 다른 사람을 보면서 자신도 보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 시간에도 우리는 좀 눈치가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할 때에 저는 좀 눈치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이야기할 때에 다들 피곤하고 지치고 졸려서 정신을 잃고 있다면 어려운 이야기 보다는 쉬운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도 눈치를 좀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졸거나 정신을 잃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무엇을 원할까를 잘 생각해서 보조를 좀 맞춰주면 좋을 것입니다. 이런 것이 눈치입니다. 이렇게 눈치가 빠른 사람은 어딜 가나 환영받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상대의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잘 맞춰주기 때문에 상대는 그런 사람을 편하고 좋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구별해야 할 것은 눈치가 빠르다는 것과 상대의 욕구를 알아차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눈치가 빠르다면 즉시 즉시 욕구를 맞추어 주려고 하겠지만 상대의 욕구를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알면서도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려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욕구는 그것을 들어주던 들어주지 않던간에 가능한 빨리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 이렇게도 할 수 있고 저렇게도 할 수 있습니다.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모를 때의 더 큰 문제점은 다른 것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요구에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배를 당하게 되면 어떠냐구요? 그것은 곧 이어서 죄로 나아가게 됩니다. 지배당했으니까 저항할 수 없이 죄악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하와가 뱀에 의해 꼬임을 받게 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나아와서 하나님께서 정말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하와가 대답하였을 때 뱀은 하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와는 뱀의 말을 들으며 자신의 욕구에 자극이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말하기 전에는 하와는 선악과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평소에 선악과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뱀이 그렇게 유혹했을 때 그는 자신의 욕구에 대해 자극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만약 바로 그 때 하와가 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렸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자신의 욕구를 자극해 오는 뱀에게 나름대로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와는 뱀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에 이끌리고 그것에 지배당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이단 종교인이 찾아와서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말씀하셨느냐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하와와 동일한 상황에 놓여진 것입니다. 이단은 그렇게 여러분의 약점을 파고들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욕구를 자극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욕구를 알지 못하면 정말 그 욕구에 자극받을 것입니다. 이단을 따르지 않으면 축복을 받지 못할 것 같고, 구원을 얻지 못할 것 같고, 지금까지 헛고생한 것 같고, 등등의 후회와 아쉬움이 따를 때 나중에는 이단과 함께 악한 길을 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욕구를 알게 되면 여러분은 반드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단이 왜 여러분을 찾아와서 유혹하는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쉽게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이단은 여러분을 망하게 하고 범죄하게 하고 파멸당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 의도를 알아차리면 결코 이단의 악한 시도에 넘어가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반드시 이러한 모든 유혹에서 이겨내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꼭 이단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군가 여러분에게 나아와서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정말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사람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아야 제대로 대화가 되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면 나누는 대화는 대화가 아닙니다. 서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친해지자는 것인지, 도와달라는 것인지, 하소연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그것을 알고 들어야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도저히 다른 사람의 요구가 무엇인지 들을 수 없다면 또는 아무리 해도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남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 어렵다면 자기 자신의 마음이라도 들여다 보십시오. 그 마음을 들여다 볼 때 마지막 기회가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남의 마음도 들여다 보지 않고 자기 마음도 들여다 보지 않으면 결국에는 욕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욕구에 지배당하고 나면 남은 것은 죄를 짓는 것뿐입니다. 실제로 죄를 짓기 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자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죄는 사소한 죄가 아닙니다. 욕구에 지배될 때에 짓는 죄는 아주 심각하고 큰 죄입니다. 그 죄는 살인이요, 간음이며, 폭행이고, 강도입니다. 이러한 악한 죄는 결국 욕구에 지배될 때에 일어납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우리는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하와의 경우로 다시 돌아가봅니다. 그녀의 마음 속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6절을 보십시오.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의 마음 속에는 이런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먹고 싶다, 예쁘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다. 선악과를 보면서 이러한 감정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 선악과는 먹으면 안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원래 이런 감정이 생겨나면 안되는 것인데 뱀의 유혹을 통해서 선악과를 볼 때 이런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각각 다양한 욕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먹고 싶다’는 유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예쁘다’는 것은 보기에 좋다는 뜻입니다. 눈의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쾌락을 주는 것이었지요. 어떻게 선악과가 얼마나 보기에 좋았길래 그것이 쾌락을 줄 수 있었을까요? 선악과는 분명 우리가 아는 그런 열매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것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지혜롭게 되면 그것은 세상을 다스릴 수 있게 만드는 길이 됩니다. 그래서 하와는 자기에게도 아담과 같은 지혜가 있어서 아담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또한 더 나아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지혜롭게 된다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기 때문에 더욱 자극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욕구는 전부 하와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선악과를 바라보는 동안 그의 마음 속에는 이런 저런 욕구가 계속 커져갔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밖으로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욕구에 사로잡히면 눈이 뒤집혀지기도 하고 이성을 잃기도 합니다. 하와가 그랬습니다. 그녀는 당장에 손을 뻗쳐 선악과를 따서 자신이 먹었습니다. 한번 욕구에 사로잡히니까 아담까지 이끌게 되었습니다. 아담이 순순히 응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지 자기만 먹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까지도 이끌어들여서 죄악에 동참시켰습니다. 그것은 사이좋고 우정이 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 욕구로 인한 죄책감을 줄이기 위해서 가능한한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소외나 부끄러움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욕구에 사로잡혀 먹지 말아야 하는 선악과를 따먹는 경우는 하와의 경우만이 아닙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뜻대로 안되서 분이 안풀려서 이성을 잃고 상대를 공격해서 살인에 이르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에 좋아 보여서 육정에 이끌려서 달콤한 유혹에 속아 넘어가서 간음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많은 유익을 얻으려고 조금 더 편하게 살아보려고 해서는 안되는 악한 방법을 동원하여 강도짓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모두가 다 욕구에 사로잡혀 저지르는 일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건 사고가 우리 주변에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만 조심한다고 해서 이런 사건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습니다. 저나 여러분도 언제 어느때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될 지 모릅니다.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 교통사고 유발자인 것처럼 손과 발이 있고 몸뚱이가 있는 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커다란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위인들입니다.

이제 이것을 이기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욕구와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욕구를 잘 처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욕구를 어떻게 처리해야 그로 인한 범죄함을 막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 속에 귀중한 지혜가 있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이 구절은 그들이 죄악을 저질렀을 때 눈이 밝아져서 몸을 가리기 시작한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악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을 저질렀다는 뜻입니다. 죄를 저지르기 전에는 죄악에 눈이 어두워지지만 죄를 한번 저지르면 죄악에 눈이 밝아집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수치심을 가지게 되고 그런 다음 자신의 은밀함을 숨기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반드시 죄악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욕구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범죄함을 막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은 이와 정반대로 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로 숨겨서는 안됩니다. 범죄함을 숨기려고 하면 할 수록 그것은 더큰 범죄로 나아가게 됩니다.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듯이 여러분의 치부를 여러분의 수치를 여러분의 부끄러움을 가리면 안됩니다. 그것을 빨리 고백해야 합니다.

가족 관계에서 뭔가를 숨긴다는 것은 문제가 이미 생겼다는 뜻입니다. 빨리 그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무엇인가 숨기기 시작하면 무언가 일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빨리 고백해야만 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인가를 자꾸 숨기면 그것은 더 큰 문제로 나아갑니다. 그것은 반드시 드러나야 합니다. 살다 보면 그것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그것은 밖으로 노출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기회인지 모릅니다. 그 기회를 통해서 모든 진실을 다 밖으로 드러내고 그 모든 수치를 다 제거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럴 때 더욱 숨기거나 다시 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다시 악화됩니다. 더욱 강해지고 더욱 풀기 어려워집니다. 하와와 아담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죄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평생 형벌을 받을 뿐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러지 마십시오. 욕구가 자라나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욕구가 죄악이 되지 않도록 그 욕구를 고백하십시오. 주님께 그 욕구를 도와달라고 간구하십시오. 마음 속에 자꾸만 유익을 추구하는 마음이 생길때, 자꾸만 편안하고자 할 때, 계속해서 쾌락을 추구하고자 할 때,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주님께 고백하고 인정하십시오. 그런 죄성이 있음을 시인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는 그것을 도와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욕구를 바꾸어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요한1서의 한구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 말씀처럼 우리 속에 있는 죄악을 늘 주님께 고백하면서 욕구를 처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죄를 저지름 없이 새롭고 깨끗한 마음으로 온전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한주도 이러한 마음으로 삽시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이렇게 주님께 우리의 약함을 고백하고 자백하고 깨끗함을 받고 빛가운데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목차
1.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은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다.
2. 사람의 욕구를 읽지 않으면 그 욕구에 의해 지배당하게 되어 있다.
3. 욕구에 지배당할 때 인간은 반드시 죄를 짓게 된다.
4. 단순한 명령으로 지키려하지 말고 지혜롭게 욕구에 대처하라
5. 죄를 지었을 때에도 반드시 욕구를 깨닫고 돌이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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