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3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1. “꾀더냐” :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우리는 무엇인가를 시작할 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지고 시작합니다. 사랑을 할 때, 헌신을 할 때, 봉사를 할 때, 수험준비를 할 때, 연애를 할 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때 등등 무슨 일이든지
시작할 때에는 아름답습니다.
그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인도하심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헌신을 하고 봉사를 하고 연합을 하고 협력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일이 중간에 그만두게 될 때에는
안타깝게도 처음에 가졌던 좋은 것들이 다 사라지고 난 다음입니다. 믿음이 사라지고, 소망이 사라지고, 사랑이 사라지고 어느 것 하나 남지 않게
된 다음에는 하고 있는 일이 종결됩니다.
이러한 흐름은 어떤 면에서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믿음이 깨지고
소망이 사라지고 사랑은 미움으로 변했는데 왜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왜 헌신을 하며 왜 봉사를 하며 왜 연합을 하며 왜 협력을 하겠습니까? 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한 결과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이것입니다. 그렇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다 깨어져서 그만 두게 되는 일은 아무런 유익도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보람도 없이 아무런 성과도 없이 아무런 결과도 없이 중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시작했을 때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모두 헛된 것이 되어 버립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겠지요. 그래도 그 나름대로의 초기에 가졌던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고, 그래도 어느 정도 결실을 이루었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쌀이 열리지 않는 벼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사과를 맺지 못하는 사과나무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열매로 그 결실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때까지의 수고와 애씀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종종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 은혜에 의지함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악한 자의 꾐의 빠져 신앙을 중간에 포기해 버립니다. 헌신하는 마음과 섬기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생겨 그만 둬 버립니다. 사랑과 열정으로 시작했다가 미움과 실망 만이 남아서 끝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시작했던 그 선한 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란 말입니까?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바울 사도는 간곡한 편지를 써서 말했습니다.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사도 바울은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이 어리석게 행동하는 것이 마음
아팠습니다. 그들은 분명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을 부인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죄사하심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죄사하심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더이상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지 않고 이제는
자기 힘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며 죽으신 예수님의 사역을 아무 유익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어리석었던 갈라디아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전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했고 그분께 빌어도 보았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들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그렇게 하는 모든 것들은 꾀임을 받는 것입니다. 속는다는 것은 항상 손해나는 일입니다.
속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도 결코 꾀임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다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2. “믿음으로냐”: 2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애초에 우리의 시작은 무엇으로부터 시작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그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면 믿음이나 소망이나 사랑은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그와 함께 따라왔던 감사와 평안과 기쁨도 역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내 마음에 안드는 것이 있다고 해서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시작했던 일에 대한 의지를 하나님에서 자기 자신으로 바꾸어 버린다면 지금까지 했던 모든 일이 무산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빌딩을 짓는다고 해 보십시오. 오랫동안의 기초공사와 건물의
뼈대를 세우는 골조공사가 완성되었다면 그것으로 빌딩이 다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내장재 공사와 외장재 공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공사를 완료 하기 전에 스스로의 생각에서 환멸과 한계를 느끼고 스스로 그만 둬 버린다면 그 때까지의 모든 공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충 뼈대만
세워진 건물에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결국 중간에 돌아오게 되는 그 길은 더할 나위 없는 실패감과 좌절감에 빠져버리게 만듭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이 우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떤 말을 할지 너무나 분명합니다. 누가복음 14장에 그들의 말이 무엇일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눅14:29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눅14:30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우리가 선한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악한 마음으로 중도에 포기하게 되면 그때까지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고 사람들의 비웃음이 되고 사실 원래의 선한 마음까지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림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헛되냐” :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그 모든 괴로움과 수고와 애씀과 노력이 헛된 것이 되느냐 아니면 결실을 맺느냐는 현재의 인내에
달려있습니다. 조금만 더 참고 애써서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된 것이 되지 않게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갈라디아서
6:9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갈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 말씀을 기억하고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힘든 고비를 잘 견디시고 최후에 승리하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