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1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1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14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성경연구를 비전으로 삼아서 하나님의 사역을 준비할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경을 잘 해석하는
일입니다. 그 성경의 내용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을 해석하는 틀을 가지는 것입니다.
각 교회에서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성경을 연구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교단인 사랑의 교회는 자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성경대학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정은 두학기로 나뉘어서 1학기는 구약, 2학기는 신약을 배웁니다. 남서울교회, 왕성교회, 열린교회는 특별한
성경대학이 없습니다. 남서울교회, 왕성교회는 목장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열린교회는 교리중심으로 성경을 공부합니다.
이렇듯 교회마다 다양한 방식의 자기교회만의 색깔을 가지고 성경을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연구법을 가르치고 그 성경연구법에 따라서 성경을 공부하게 합니다. 전반기, 후반기로 나누어서 주일성경공부와 평일성경공부
시간을 설정하고 그 시간에 성경말씀을 살핍니다. 주일성경공부에서는 주제중심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평일성경공부에서는 교리별로 성경말씀을 살핍니다.
더 성경을 공부하고자 할 때에는 리더반, 순장반에 들어가면 되고 그속에서 성경통독과 성경강해가 이루어집니다.
이모든 성경공부의 과정을 네가지 성경연구법을 통해서 진행합니다.
적용적해석, 관점적해석, 분석적해석, 극본적해석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방법들은 마치 햇빛에 스펙트럼을 대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적용적해석은 지난주에 살펴보았고, 오늘은 관점적 해석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관점적해석은 성경말씀을 다음과 같은 네가지
관점에 따라서 나누는 것입니다.
‘1자신, 2타인, 3하나님, 4사탄’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성경말씀을 살펴보면서 관점적 해석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풍성하게 깨닫게 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자신]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첫번째 관점적해석은 자신의 관점에서 본문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읽을 때에 어떤 것을 깨닫게 되나요? 각자 깨달음이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이것을 공통적으로 모아보면 주님을 위해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이 여인은 주님께 부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가장 중요하시기 때문에 주님께 그러한 사랑과 헌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7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이것은 주님을 당황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식사하시는 예수님은
식사하는 태도로 앉아계시는 예수님의 의미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식사할 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서 식사를 하였는데 예수님은 바로 그렇게 앉아계셨습니다.
또한 여인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예수님의 은혜가 감사하였기 때문에 그분께 향유를 바쳤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행하는 일들이나 주님을 위하여 하는 일들은 모두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표시입니다. 그럴 때 주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도 그런 기쁨으로 봉사할 때가 있고 헌신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께서 주신 은혜에 기쁨으로 화답하였다는 의미가 됩니다.
2.[타인] 다른 사람들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일이 더 우선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번째 관점적 해석을 해보면 이러한 이해와 정반대되는 새로운 시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첨예한 대립 속에서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향유를 붓는 것보다는 차라리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더 우선적인 일이고 생각한 것입니다. 8절을 보십시오.
“8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9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거늘”
그들에게는 예수님보다 가난한 자들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 향유로
많은 값을 받고 파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향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가난한 자들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 돈은 어쩌면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게도 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자 관점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첨예하게 대립되는 관점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교회에서
사용되는 모든 헌신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면 좋으리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모든 물질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교회에는 교회의 것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가난한 자들의 받아야 할 것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것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역시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교회에 주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었습니다.
3.[하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하는 자가 되기를
기뻐하신다.
정반대로 대비되는 견해의 차이에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그렇게 했던 여인을 축복하셨습니다.
“10예수께서 아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여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자는 좋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 행한 일은 가난한 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계십니다. 그 십자가 전에 이 여인이 한 일은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빛내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시간
속에서 여인의 행한 일은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1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2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그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가장 우선순위로 하라고 말입니다. 향유를 붓지 않는다고 예수님의 일이 중단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 유향을 부음으로써
그 여인의 헌신이 빛났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중요한 순간은 항상 예수님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때만이 나타납니다.
4.[사탄] 사람들이 예수님을 넘겨주어 죄짓게 되도록 만든다.
마지막으로 보는
관점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모든 상황을 어떻게 몰아가려고 할까요? 사탄은 어떤 갈등이든지 어떤 대립이든지 어떤 고민이든지
가능한 하나님의 일이 망하게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속에서 주님의 제자들이 죄짓게 되고 실족하게 되고 망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일에서도
사탄이 한 일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그 가르침 때문에 가룟유다는 더욱 악해지고 있습니다. 14절입니다.
“14그 때에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15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6저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
그가 그렇게
변해버린 것은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느냐고 말했던 주도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훈계를
잘 받아서 겸손하게 행했으면 좋았겠지만 그속에는 예수님께 대한 반발심이 있어서 그렇게 말하면 할 수록 더욱 예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분노의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팔아버리는 제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서 사탄에게 이끌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성경말씀에서는 그때 사단이 가룟유다에게
들어갔다고도 합니다.
“눅22:3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우리는 이러한
사단을 경계하며 우리 마음이 오직 예수님의 생각에만 순종해야 할 것을 기억합시다. 그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으로
더욱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 여인은 더욱
주님께 나아가고 한 제자는 더욱 주님께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여러가지 관점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힘써 하나님께로 나아갑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은혜주실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온전히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