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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교육] 60벧전2; 9-12 너희가 긍휼을 얻은 이유2



 

60벧전2; 9-12 너희가 긍휼을 얻은 이유2_2

 

 2013.10.13.주. 주일오후.

 

*개요:   [성경]

 

9    오직 너희는 택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11    사랑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는 자들로 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시는 날에 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려 함이라

 

 

 

우리는 오늘 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에 나아왔습니다. 이 시간에 이곳에 온 것은 여러분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것입니다. 억지로 나아온 사람이 없고 끌려서 온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여러분은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왔습니다. 지만 여러분은 지금 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의식을 건 의식을 지 못건 간에 여러분은 지금 나님이 불러서 이곳에 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야 는 것은 나님의 부르심의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점입니다.

 

1. 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나라)와 소유된 (백성)으로 부르셨다.   

 

아무리 새로운 나라에 가도 그곳에서의 삶에 적응지 못면 힘들고 어려운 법입니다. 아무리 부유고 행복고 새로운 나라에 있다 해도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면 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나님 나라에 가는 것도 그 나라에 뿌리를 내리지 못면 힘든 법입니다. 그래서 나님께서는 나님 나라에서 온전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구원받은 자들을 특별한 지위로 특별한 위치로 부르십니다. 9절을 보십시오.

“9오직 너희는 택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구원받은 자들은 단순히 나님의 나라에서 거주할 수 있는 자들이 된 것만이 아닙니다. 나님은 그들을 더욱 부르십니다. 그분의 택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소유된 백성이 되도록 부르십니다. 이것은 단지 죄인에서 그 죄를 사함받는 것보다 더욱 발전된  모습입니다. 그것은 더이상 죄가 없는 의인일 뿐만 아니라 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죄사함보다 한층 더 나아가는 놀라운 진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래 전 미국에서 한 탈북자의 자살이 보도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탈북자로 한국이 아닌 미국으로의 망명신청이 허락된 탈북자 1세대에 해당는 사람이었는데 우울증이 있었다고도 고 다른 탈북자들과 갈등이 있었다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주차관리원도 했었고 최근까지는 대형 슈퍼마켓 내 스시 요리사로 일해왔었다고 합니다. 지만 결국 그는 자살로 삶을 마감였고 자유가 없고 독재와 억압이 있는 곳을 떠나 새로운 나라로 갔지만 그곳에서 안타까운 삶의 종말을 맞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부르신 그 위치로 살아갈 때에 나님의 나라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2. 나님은 우리가 그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신다.

 

그런데 이렇게 더욱 부르시는 것에는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처음 나님이 우리들의 죄를 사해주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시기 때문입니다. 죄값으로 죽지 않게 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서 그런 우리들을 자녀로 택신 족속과 제사장과 나라와 백성으로 부르시는 이유는 바로‘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게’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택신 족속으로 제사장으로 나라로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다시 9절을 보십시오.

“9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려 함이니라”

 

여기서 선전한다는 것은 헬라어로 ‘eksagello’라고 는데 선포한다, 강게 말여 널리 알리다 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인정고 고백고 증거한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나님을 찬양고 높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나님의 특별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님을 드러내고 선포고 높이는 자가 되게 기 위함입니다. 그 목적을 알게 되었다면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단지 죄사함만 주신 것이 아니라 나님의 자녀로 높여주신 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나님의 목표이자 목적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의 목표와 목적은 무엇입니까? 나님께서는 이일을 위해서 우리를 불러주시고 나님의 족속과 제사장과 나라와 백성을 삼으셨는데 여러분은 어떤 목적으로 그분의 족속과 제사장과 나라와 백성이 되려고 십니까?

문제는 그분의 족속과 제사장과 나라와 백성이 되려고 는 이유가 나님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나님의 목표를 이해고 기억고 실천지 않는다면 여러분 자신의 목표가 여러분을 지배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나님의 족속이 되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편안함을 위해서 나님의 제사장이 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의 쾌락을 위해서 그것이 재미있어 보이니까 나님의 나라가 되려고 합니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남들이 다 그렇게 니까 덩달아서 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유익과 편안과 쾌락과 인정을 얻으려고 는 것이 나님의 족속과 제사장과 나라와 백성이 되는 목표가 될 때에 여러분은 반드시 큰 문제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육체의 정욕에 지배당는 것입니다. 

 

결혼식에 오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다들 결혼을 축러 오는 것이 목표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목표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부조를 도둑질러, 객의 지갑을 훔치려, 밥 한끼 얻어 먹으려, 아니면 기타 다른 은밀한 목표를 가지고 옵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혼의 목표를 알지 못니까 자신의 욕심에 이끌리게 됩니다. 그 욕심으로 인해 죄를 저지르고 행복고 축복되어야 할 결혼식을 저주와 원망의 장소로 만들어 버립니다.

 

 

3. 우리는 나님의 (부르심)을 이루기 위해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한다.

 

본문에서 왜 베드로는 우리가 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는 사람들임을 말면서 곧 이어서 육체의 정욕을 제어라고 였을까요? 그 육체의 정욕은 나님의 덕을 선전지 못게 막는 방해이자 나님의 사람들이 쉽게 빠져드는 실족함의 이유가 되기 때문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11사랑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라”

 

우리는 나그네와 행인처럼 나님의 나라에 관계가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지만 이제는 나님의 족속이요 제사장이요 나라요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 새로운 나님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삶을 거스리고 싸우는 것이 있으니 예전에 가지고 있던 우리 나름대로의 목표입니다. 그 목표가 바로 육체의 정욕이며 우리는 그것을 제어해야만 합니다. 그것을 제어지 않는다면 나님의 목표를 따라 살고자 는 우리 영혼의 소원과 목표가 방해됩니다. 우리가 나님의 목표를 온전히 따르고 순종며 받아들여서 진심으로 나님의 덕을 선포고 나타내는 자가 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는 일인 것입니다.

 

정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욕을 제어해야만 나요? 우리 속에 유익을 추구는 마음이 있고 편안고자 는 마음이 있고 쾌락을 추구는 마음이 있고 인정받고자 는 마음이 있는데 그것을 왜 꼭 반드시 버려야 나요? 완전히 버렸다 더라도 다시금 고개를 쳐드는 그 정욕을 평생동안 제어며 살아야 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적당히 수용면서 타협면서 어느 정도 유익이나 쾌락으로 자극면서 나님의 백성이 되면 안될까요?

 

안됩니다. 절대로 안됩니다.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전혀 나님이 기뻐시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님이 미워시는 일입니다. 나님이 우리에게 해주신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원래 우리가 주님의 백성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백성이 되게 셨습니다.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던 자였는데 이제는 긍휼을 얻는 자가 되게 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백성이 아니었던 자를 백성으로 삼으시고 긍휼을 얻지 못던 자를 긍휼히 여기신 분은 바로 나님입니다. 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을 희생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의 족속으로 제사장으로 나라요 백성으로 삼으시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구원시기 위해서 탄식시고 위로시고 격려시며 우리와 함께 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나님의 노력과 애쓰심과 사역은 오직 우리가 진실로 나님의 족속이자 제사장이자 나라이자 백성이 되게 시기 위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 거룩한 부르심을 우리 자신의 악한 정욕으로 더럽힐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우리는 (선)한 (행실)을 통해 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자들이 되자.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마디로 말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덕을 선전고 선포기를 원시는데 우리는 그렇게 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그일을 못할까요? 왜 안할까요? 왜 노력조차 시도조차 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렇게 해야 는 것을 정말 모를 수도 있도 또한 고는 싶지만 그런 마음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제어되지 않는 육체의 정욕이 우리가 아는대로의 모든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이 육체의 정욕을 제어지 못기 때문에 우리는 싸웁니다. 다툽니다. 살인합니다. 시기합니다. 싸울 때에도 가족끼리 싸우고 부모와 자녀가 싸우고 형제끼리 싸웁니다. 다툽니다. 친구끼리 성도들끼리 사랑는 사람끼리 다툽니다. 살인합니다. 자기 자신을 죽이고 다른 사람을 죽이고 정말 죽이지는 않더라도 죽이려고 합니다. 시기합니다. 잘되는 사람을 시기고 성공는 사람을 시기고 축복받은 사람을 시기고 은혜로 채워진 사람을 시기합니다. 이 문제가 우리의 가정을 덮치고 우리의 교회를 덮치며 우리의 직장과 학교를 덮칩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당고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며 세상 사람들의 모욕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부모님과 다투고 다투다가 가출해버리면 누가 가장 비난할까요? 바로 세상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남편이나 아내와 매일 싸우다가 이혼해버리면 누가 가장 욕을 할까요? 바로 세상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매일 시기고 다투다가 깨져버리면 누가 가장 손가락질을 할까요? 바로 세상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학교나 직장이 서로 죽고 죽이고 시기고 질투다가 학교가 문을 닫고 직장이 망해버리면 누가 제일 조롱할까요? 바로 세상 사람들입니다.

 

이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가 나님께로부터 받은 가정과 교회와 학교와 직장에서 선한 일을 나타내고 그 일로 인해 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는 일은 육체의 정욕을 제어는 일입니다. 전부 육체의 정욕으로 인해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에 그 정욕을 제어고 이겨내어야만 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정욕을 이겨내는 것이 어떻게 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연결될까요? 어떻게 그저 정욕을 참기만 는 것이 나님의 기뻐시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요? 12절을 보십시오.

12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는 자들로 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시는 날에 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려 함이니라”

 

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여러분이 선한 일을 행는 것을 볼 때 세상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경탄과 놀라움 속에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정말 잘 살아야 합니다. 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의 가정은 화목해야 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의 교회는 성장해야 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의 학교는 우리의 직장은 발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여러분의 악한 정욕을 제어십시오.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학교와 직장이 망는 이유는 악한 정욕을 제어지 못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고 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악한 정욕을 제어십시오. 성경을 많이 읽고 예배를 많이 드리고 기도를 많이 했다고 해서 영광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그리스도인들이 악한 정욕을 잘 제어는지를 통해 나님이 영광 받으십니다. 그것이 힘들기 때문에 그 일을 이루는 그리스도인들이 대단고 놀라운 것입니다.

 

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백성이 되게 셨고 긍휼을 얻지 못였지만 이제는 긍휼을 얻게 셨습니다. 그리고 나님의 택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 되게 셨습니다. 그 은혜를 잊지 말고 보답나님이 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는지 그 목표를 기억여서 정욕에 대한 인내를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우리가 그 ‘인내’를  나타내게 되면 그 어느 누군가가 또한 이 놀라운 나님의 덕에 들어와서 새로운 나님의 은혜를 받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이 목표를 기억며 행할 때에 나님은 더욱 여러분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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