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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역] 23사 6;1-4 내가 본즉 주께서 앉으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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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사 6;1-4 내가 본즉 주께서 앉으셨는데


2010.3.14. 주일오전, [1영역, 2분류]

교회에서의 활동을 전도와 예배, 성경공부와 봉사의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전도를 돕는 계기가 되고 또한 예배는 성경공부와 봉사를 하게 하는 동기가 됩니다. 어느 교회에서나 예배가 어떤가에 따라서 전도나 성경공부나 봉사가 잘 이루어지고 예배가 부실하면 나머지 활동도 자연히 부실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한 예배시간이 되었을 때에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또한 어떤 부분을 가장 눈여겨 보시겠습니까?

우리는 전면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고 옆면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고 후면이나 상면이나 하면에 관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사회자를 바라볼 수도 있고 청중을 바라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을 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보든지 바라보는 그것이 교회에서의 예배를 좌우하게 만들 것입니다. 잠깐 보는 것이야 상관없겠지만 계속 바라보는 것이 무엇인가가 예배의 의미를 결정지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전부 다릅니다. 예배에 참석한 것은 같지만 바라보는 바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각 사람은 나름대로의 예배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수준대로 각자의 연륜대로 각자의 경험대로 각자의 취향대로 나름대로의 예배의 의미를 정하고 그것을 통해서 예배에 대한 평가결과를 얻게 됩니다.

여기에는 크게 네 가지의 단계가 있습니다. 각 단계를 생각해 보면서 여러분은 이 중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스스로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단계는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 사람들은 예배에 참여해서 나름대로의 문제를 깨닫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얼마나 믿음이 없었는지, 얼마나 소망이 없었는지, 얼마나 사랑이 없었는지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자신이 믿음을 더 가져야 하겠다, 소망을 더욱 가져야 하겠다, 사랑을 더욱 가져야 하겠다를 생각합니다. 이것이 1단계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문제를 인식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였구나, 이 사람에게는 소망이 필요하겠구나, 저 사람은 사랑이 너무 없으니 사랑이 있으면 좋겠다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연히 또 다른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예배의 단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 이르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되기도 합니다. 삶의 문제를 깨닫게 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자신이나 타인의 문제를 깨닫게 되는 계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배는 그것을 알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일주일에 한번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신의 문제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변화시키거나 발전시켜야 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면 이것은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그 시간에 몸을 즐겁게 하거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보다도 더욱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마치 마음을 닦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을 정화시키고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목욕하는 것도 결국에는 더러운 것을 없애는 과정인 것처럼 예배도 우리에게 우리의 문제를 깨달아서 그것을 떨쳐 버리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시간이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모두가 다 이 1단계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1단계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문제를 망각하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평소에 스스로 생각하고 있던 문제까지도 예배를 드리면 기억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문제를 들추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감추어 버립니다. 자신의 어려움과 연약함, 죄와 악행을 예배를 통해 합리화시키고 정당화합니다. 그럴 때 문제는 더욱 잊혀집니다. 자신이 더욱 자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처럼 생각됩니다. 영혼의 잠은 더욱 깊어져가고 삶의 악순환은 더욱 가중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오히려 예배시간을 통해서 형성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성경은 가리켜 말하기를 소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를 보십시오.

“벧후1:7-9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8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이런 것이 없는 자는 소경이라 원시치 못하고 그의 옛 죄를 깨끗케 하심을 잊었느니라”

영적 소경이 되었을 때 과거를 멀리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열매 없음을 깨닫고 게으르지 않게 되는 삶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는 열매가 없다는 문제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1단계로 나아간 사람들과 -1단계로 나아간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왜 어떤 사람들은 1단계로 나아가지만 왜 다른 사람들은 -1단계로 더욱 떨어지는 것일까요? 오늘 성경말씀에 바로 그 이유가 나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사6:1 1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이사야는 눈을 들어 보좌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 위에 앉아계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 때는 웃시야왕의 죽던 해였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신실했지만 나중에는 하나님의 벌을 받아 문둥병이 들어 별궁에 거하다가 홀로 외롭게 죽었습니다. 국가적으로는 왕이 죽었기 때문에 슬픔과 우울함이 있던 해였습니다. 그 때에 이사야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누가 함께 있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사모하며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 바라보았을 때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볼 수 있었고 거기에 앉아계신 주님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웃시야왕이 죽었기 때문에 더욱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신이 없고 복잡한 심경에 주님을 바라본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지 모릅니다. 사느라 바빠서 주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이런 저런 복잡한 심경이어서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웃시야는 바로 그 때에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주님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지 모릅니다. 자신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노라고, 그런데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고, 오히려 하나님은 나를 외면하셨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을 잘못 바라본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하는 분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본 주님은 어떻게 생기셨습니까?’ ‘어떤 주님을 바라보셨습니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양편 강도가 바라보았을 때 그 동일한 모습을 두 편의 강도는 각각 다른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쪽 편의 강도는 주님을 의롭고 선하며 주님의 나라로 인간을 인도하실 수 있는 분으로 보았지만 다른 편의 강도는 힘없고 연약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시는 분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결국 주님을 올바르게 바라본 강도는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게 되었지만 다른 강도는 가장 가까이에서 주님을 만나보았지만 결국 그냥 죽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차이입니다. 똑같은 주님을 보고 똑같은 예배를 드리고 똑같은 시간을 보내었지만 한 사람은 1단계로 올라서고 다른 한 사람은 -1단계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올바로 바라볼 때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주님을 비뚤게 바라볼 때에 우리는 더욱 비뚤어집니다. 주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문제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을 만난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문제를 의식했습니다. 주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는 그 어떤 순간보다도 더욱 자신의 문제를 절감했습니다. 그는 외쳤습니다.

“사6:5 5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이러한 자신의 문제의식 속에서 그는 다음 단계로 나아갔습니다. 2단계는 ‘원인을 이해하는 단계’였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을 때 그 원인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왜 그는 망하게 되었을까요? 왜 입술이 부정한 자로 그렇게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도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을까요? 이제 그는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요?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 때 그는 살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죄를 사해주시는 은혜가 있음을 알 때 그는 살 수 있었습니다. 원인은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였던 것이고 원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원인을 깨달을 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 뿐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죄를 사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습니다. 이사야가 받은 원인과 그에 대한 해결책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사6:6-7 6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우리가 원인을 이해할 때에 자연히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가 결정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 것과 그동안 어떠한 죄악된 삶에서 살아왔는가를 자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를 그 죄의 절망에서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고 하나님의 죄사하심만이 하나님의 단에서 취한 그 숯불이 우리의 몸에 닿을 때에 비로소 우리의 악이 제하여지고 우리의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흘린 보혈과 그분이 지피신 불꽃이 우리를 변화시키며 구원해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한 원인이요 해결책입니다.
웃시야 왕은 왜 죽었을까요? 하나님 앞에서 해서는 안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자신의 죄로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멀쩡하고도 신실한 왕을 죽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매정하고 야박하게 사소한 죄를 지은 왕을 죽이신 것이 아닙니다. 웃시야는 스스로의 죄로 죽었고 그 죄는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악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그 문제를 변화시킬 힘이 주님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문제가 우리 자신에게 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역시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다시 -2단계로 떨어집니다. 바로 ‘원인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웃시야왕을 치신 것은 결국 그렇게 살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올바르게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만 구원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주님께서는 알게 하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사함받기를 간절히 원하면 2단계의 ‘원인이해’로 나아갈 수 있지만 만약 우리가 그 죄를 부인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 해보려고 하면 -2단계의 ‘원인오해’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죄를 더욱 크게 만들며 하나님을 더욱 괴롭게 만드는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예배로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하나님만이 우리를 다스리시며 변화시키시며 새롭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주님앞에 여전히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배는 소중합니다. 예배는 꼭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예배를 통해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다면 예배로부터 떠나게 됩니다. 예배를 망가뜨릴 것입니다. 예배의 분위기와 수준을 저하시켜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이시간 예배드릴 때에도 영광의 주님, 엄위로우신 주님, 능력의 주님,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우리가 드려야만 하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예배입니다.
다음 주에는 이번 주에 이어서 계속 예배에 관한 이사야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설교 속에서 예배에 대한 분명한 의미를 세우시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이사야가 보았던 영광스러운 주님의 모습을 다시한번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사6:1-4 1웃시야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4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목차
1.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의미와 네가지 발전단계
2. 문제인식: 자기 자신이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를 깨닫는다 (문제)
3. 문제망각: 자신의 문제를 도리어 더 합리화, 정당화한다 (
3. 원인이해: 그 문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없어질 수 있음을 깨닫는다. (소망)
6. 자신의 예배의 위치를 깨닫고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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