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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은혜] 행1;1-8 기억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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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기억시는 나님


<주일오전-10.30>

나님은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억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위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놀랍게도 그 계획은 멀리 떨어진 베드로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디에 어떤 상태로 있든지 우리에게 대한 계획을 이루어주시는 분이십니다.”

1. 과연 나님이 도우실까라는 두려움
2. 고넬료를 도우신 나님의 능력
3. 우리에게 임할 나님의 인도
4. 나님의 계획을 소망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


우리에게는 나님이 정말로 도우실까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이 있습니다. 상황이 어렵고 힘들며 어떤 가능성이 보이지 않게 되면 우리가 생각기에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는 가능성을 지 못게 됩니다. 그리고 나님도 못시리라고 낙심해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못기 때문에 혹은 상황이 못기 때문에 또는 다른 사람도 못기 때문에 나님도 못시리라고 단정짓습니다.
그렇지만 그 생각이 과연 옳을까요?
우리는 신학적으로 나님은 모든 일을 다 실 수 있다고 믿고 말지만, 상황적으로 나님은 이런 일은 지 못실 것이다라고 단정합니다. 최대한 양보해서 이런 일을 실 수는 있지만 지 않으실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신앙적 양심에도 거리끼지 않고 차라리 현실을 담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최대한 양보한 것이고 상당히 신앙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말한 것이라고 더라도 나님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은혜를 조금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면 그렇게 생각는 것으로 인해 아무런 기쁨도 없고 아무런 감사도 없고 아무런 소망도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올바르게 생각기 위해서 우리는 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가는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특별히 그것은 우리가 읽은 이 본문가운데에서 나타납니다. 고넬료에게 나님은 어떠한 분이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에게 나타난 나님은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4절 말씀이 그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나님은 바로 ‘기억시는 나님’이었습니다. 고넬료의 기도라는 경건생활과 구제라는 행동과 삶의 모습은 모조리 나님께 보고되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면 모조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에 대한 나님의 응답은 무엇이었나요? 단지 나님의 사자를 고넬료에게 보내서 그의 기도와 구제가 응답되었다는 말씀만 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이미 멀리 떨어져 있던 베드로에게 주님의 뜻을 알려주셨고 그래서 고넬료의 집으로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이 정확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2천년전 중동지역에서 이루어진 일 뿐만이 아닙니다. ‘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을 보면 그곳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이루어집니다. 복음을 전파한다고 투옥되고 고통받던 윈형제는 나님의 환상속에서 풀려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동일한 내용을 그 아내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그들이 본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신비한 일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임할 나님의 인도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은 이성적이며 논리적이고 이해가능며 추측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혹시 그렇지 못더라도 그것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닙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님의 능력에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될 수 없다고 속단한다든지 그렇게 지 않으실 것이라고 단정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인생에 일어날 나님의 인도심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을 통해 일어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을 통해 일어나는 것일까요? 여러분의 상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이해가능고 논리적이며 충분히 납득가능한 것이라면 어쩌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상상을 항상 훨씬 뛰어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혹은 저렇게 상상다가 혼자 지켜 포기해 버리느니 차라리 아무런 상상도 지 말고 조용히 나님의 임재심을 기다리는 것이 낫습니다. 그것이 정말로 우리에게 유익한 방법입니다.

그러면 나님의 임재심과 불러주심을 기다리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냥 시간만 허비고 있으면 될까요? 아무 것도 안면서요? 고넬료를 보십시오. 그는 2절 말씀처럼 경건였고 온집으로 더불어 나님을 경외였으며 백성을 많이 구제나님께 항상 기도였습니다. 그것이 더욱 나님의 응답심을 촉구는 방법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해야 는 일을 꾸준히 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는 말입니다. 그럴 때 나님은 때가 되었을 때 우리를 불러주십니다. 베드로와 같은 다른 사람을 통해 역사해주시고 미리 준비해주시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구요.
헛된 환상을 품지 말고 생각해야 할 것 이상을 공상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을 최선을 다해 감당는 가운데 우리는 점차 나님의 정신 때에 준비됩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꾸준히 노력는 이유는 바로 나님의 불러주심을 기다리고 간구며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님은 기억시는 나님이십니다. 잊어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찾아오시는 나님입니다. 그분을 오늘도 믿고 의지여 맡은 일에 충성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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