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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실천] 41막 5;25-34 많은 무리 중에서 손을 내어 밀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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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 5;25-34 많은 무리 중에서 손을 내어 밀은 자_1



2010.10.17. 주일오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야이로라고 하는 회당장의 딸의 병을 고치러 가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장소는 갈릴리 맞은 편 거라사인의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야이로라는 사람은 회당장으로서 그 지역의 유명한 사람이었고 예수님도 역시 방금 전 귀신들린 자를 고치고서 성내로 들어오셨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직접 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더군다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뭔가 관심있는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모습입니다. 불이 나면 불구경하러 사람들이 모이고 사고가 나면 사고구경하러 사람들이 모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누군가를 고치러 가신다는 소식이 퍼지니까 많은 인파가 예수님께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지를 보기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때는 재방송이라는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냥 생방송, 딱 한번 밖에 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은 더 잘 보기 위해서 더 그 생생한 현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더욱 사력을 다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그렇게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중에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전혀 사람들이 기대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예수님을 생각했었지 그렇게 가는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군중들에게 밀리며 가는 와중에 예수님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서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이건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무리들이 손을 대고 함께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밀고 밀리며 가고 있는데 내게 손을 댄자가 누구냐니요! 그래서 제자들이 상황을 설명합니다.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미는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니고 그런 사람은 찾을 수가 없으니 그런 일에 너무 기분나빠하지 마십시오. 이런 식으로 점잖게 말하는 제자들을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당연히 옳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사람을 찾고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야이로의 집으로 가기 위해 움직이던 중에 놀랍게도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 능력을 힘입어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밀고 당기고 하는 바로 그 시점에 말입니다. 그 능력을 받은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그 사람은 바로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가에 손을 대었지만 아무에게도 능력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옷은 그냥 옷일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딱 한 사람에게만은 달랐습니다. 그에게는 능력이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열 두해 동안 고통받았던 자신의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고 있습니다. 이 순간 전국 방방곡곡에서 11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이 시간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고 나아옵니다. 또는 이 시간 뿐만이 아니라 10월 한달간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더 나아가서 2010년 한 해동안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거라사인의 땅에서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예수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아오던 사람들처럼 우리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나아옵니다.
그런데 그 속에는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온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을 행하시는 일을 보러 오는 사람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능력을 행하시기를 원해서 오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딱 한 사람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아오는 사람은 딱 한 사람이고 그 사람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혹시 바로 그분이 여러분 중의 한 분이 아니십니까? 오늘 이 예배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야구경기나 축구경기 혹은 농구경기에서 시합 중에 혹은 시합이 끝난 다음에 경품추첨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지만 딱 한 사람을 뽑아서 선물을 줍니다. 차량을 주기도 하고 해외여행권을 주기도 하고 돈을 주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았지만 딱 한 사람만이 경품의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딱 한사람 혈루증에 걸린 여인만이 예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그 능력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냥 예수님께 손을 대기만 한 것인데, 예수님이 안수기도를 해준 것도 아니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신 것도 아니고, 그 집에 들어가기도 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능력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손을 댄 사람을 찾으셨을 때에 이 여인은 떨며 나아와 엎드려서 모든 사실을 고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이야기는 우리가 아는대로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이 있었지만 아무에게서도 고침을 받지 못했고 옷가에 손을 대면 낫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손을 대었고 그로 인해 병이 나음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은 그녀의 병이 나은 이유를 말씀해주십니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이 여인의 병이 나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나을 수 없던 불치병을 예수님이 고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던 상황이었고 또한 옷가에 손을 대기만 해서 병이 나았다는 전례가 없었지만 이 여인이 그런 일들을 예수님이 이루실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왔고 그로 인해서 병을 고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여인을 친히 불러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구체적으로 믿음의 중요성을 확증시켜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아올 때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 사람은 상을 받습니다. 많은 사람이 나아왔지만 상받는 사람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능력을 베풀지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만 상을 베푸십니다. 이 한 사람은 숫자로 한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한 사람은 그곳에 있던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던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구경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 예수님 자신을 통해 구원을 받고자 했던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생명을 얻고자 했던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숫자적으로 여러 사람이 그 한 사람일 수도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한 사람에 해당하는 자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우리는 우리 삶 속에서도 발견합니다. 누군가를 믿는 믿음이 바로 그것입니다. 누군가를 믿고 그 믿음으로 유익을 얻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화배우 박중훈씨는 과거 97년 IMF가 터졌을 때 절친한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서 비상장기업이었던 새롬기술에 2억 5천만원을 투자했다고 합니다. 그 친구를 믿었기 때문에 그 어려울 때 선뜻 투자를 하였던 것이지요. 그후 새롬기술이 기사회생하면서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주가가 오르고 그 주식을 팔게 되니까 50억원의 유익을 거두게 되었답니다. 친구에 대한 믿음이 그런 유익을 누리게 된 것이지요.

반대로 믿음이 없어서 유익을 얻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요즘 아이폰으로 인기를 올리고 있는 기업 애플컴퓨터는 처음 1976년도에 스티스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라는 사람이 세웠습니다. 그런데 처음 창업할 때에 도움을 받기 위해서 론 웨인이라는 사람을 끌어들여서 문서작업을 부탁했고 그일을 하는 댓가로 애플 주식의 10%를 받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오래지 않아 그 일을 그만 두었고 받았던 주식도 팔아버렸습니다. 그 때 받은 돈은 800불, 약 97만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포기한 주식 10%는 오늘날 220억불, 약 24조에 해당합니다. 일은 안하더라도 주식을 팔지만 않았어도 엄청난 거부가 되었겠지만 그는 그 회사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주식을 유지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받아본 사람은 자신을 믿어준 사람에게 정말 고마움을 느끼고 그 믿음에 보답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을 때 예수님은 그 능력에 응답하십니다. 만약 그 능력을 믿지 못하면 예수님은 아무런 일도 행하지 않습니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를 믿지 않는 자에게 행하는 능력이란 그저 조롱거리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그 능력을 의지하십니까? 그분을 믿어보십시오. 한번 그분을 믿어드리십시오. 주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믿는 그 믿음을 더할 나위 없는 가치로 바꾸어주실 것입니다. 혈루병에 걸렸던 이 여인처럼 비록 이전에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고 아무도 그 가능성을 믿지 못하는 상황일 지라도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을 갖는다면 그 믿음으로 인해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여러분에게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 믿음이 나타나야 하나요?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믿음을 정말 가지고 있다면 그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다른 건 그렇지 않나요?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면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나타내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는데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건 뭔가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소망을 생각해 보십시오. 소망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나타납니다. 또한 나타내야 합니다. 소망이 있기는 하지만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소망이 아닙니다. 뭔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그 믿음은 나타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믿음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나타내었을까요? 그녀는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녀는 먼 발치서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 만으로 병이 낫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앉아서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병이 낫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직접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몰려든 사람들을 뚫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이 여인은 악착같이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서로 밀고 밀리고 그 혼잡한 가운데서도 이 여인은 목표를 잃지 않고 예수님에게로 차근차근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의 손에 옷자락을 닿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 예수님은 능력은 그 몸에서 여인의 몸으로 임하였습니다. 능력이 예수님에게서 나가서 여인에게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여인은 자신의 혈루 근원이 마르는 것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믿음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헤쳐 예수님께 나아감으로써 온전히 나타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믿음을 이렇게 나타내야 합니다. 믿는다면 그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없다면 할 수 없지만 없는 믿음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겠습니까? 그런 경우에는 믿음을 갖게 해달라고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처럼 하나님께 간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다면 믿는다면 그 믿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믿음대로 되는 것입니다.

제가 접했던 어떤 분은 자신이 믿음이 있다고 합니다. 믿는답니다. 그런데 교회는 나가지 않는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는 너무 돈을 많이 걷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돈을 걷는 교회는 나가지 않으려고 생각해서 아무 교회도 나가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기는 믿는 답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지 않나요?
이런 경우는 마치 학생이지만 학교를 가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왜 학교를 가지 않는가 하면 돈을 내야 하기 때문이지요. 돈을 낼 수 없어서 혹은 돈을 내기 싫어서 학교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학비가 비싸서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비쌉니까? 형편이 정말 어렵다면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그런 경우가 있지 않았습니까? 너무 돈이 없어서 말이지요. 그러나 돈을 벌고 난 다음에도 여전히 돈을 내기가 싫어서 학교에 가지 않고 학원에 가지 않고 자신도 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녀들도 그렇게 보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큰 오해를 하고 있음 에 틀림없습니다.
왜 그 비싼 돈을 들여서 공부를 하는 것일까요? 왜 배우기 위해서 돈을 내는 것일까요? 학교에 다니고 학원에 다니고 과외를 하고 전부 돈을 내고 배우는데 그런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면 그보다 더 많이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을 내고 공부한 게 아깝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하고 난다음에는 돈을 많이 벌게 되는 것입니다.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이런 저런 다른 면으로 공부를 하는 것이 유익하기 때문에 돈을 내고 공부를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없습니다. 돈을 내기만 하고 얻는 것이 없어서 학교에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지나치게 교회에서 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전혀 돈을 내지 않고 교회를 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돈은 내게 됩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 내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내 재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을 드리면 하나님은 다 갚아 주십니다. 배운 것이 어떤 식으로든 보람이 있는 것처럼 교회에 다니고 믿음생활을 하며 헌금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그리고 저 세상에서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또한 믿음이 있어서 믿음을 나타내야 할 때 그 방식은 헌금의 형식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때로는 꾸준히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때로는 지속적으로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다. 때로는 봉사나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때로는 전도도 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다 교회생활입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 그 믿음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믿음이 나타날 때 비로소 하나님은 그 믿음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믿음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것이 꼭 있어야 합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믿음이 교회생활로 반드시 나타나야 하나요? 그냥 조용히 신앙생활하면 안됩니까?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그것이 원하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왜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찾으셨다고 생각하시나요? 왜 그냥 여인을 조용히 병고침을 받고 물러가게 하지 않으시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의 존재를 꼭 찾으셨을까요? 왜 우리는 조용히 믿음만 가지고 살면 안되나요? 왜 반드시 믿음이 있으면 그 믿음을 나타내야 하나요?
주님이 여인을 불러서 하신 말씀에 그 이유가 있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주님은 이 여인에게 무엇인가를 받기를 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돈을 원하거나 충성을 원하거나 헌신을 원하거나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이 여인을 찾으신 이유는 그녀에게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평안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건강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원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기 위해서 불렀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을 뚫고 주님께 나아갔을 때 자신의 병고침을 받았고 다시 주님이 불러서 그 앞에 섰을 때 병고침에 더하여 평안과 건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몸의 문제 뿐 아니라 마음의 문제까지 해결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무서운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악한 분도 아닙니다. 주님은 선하고 의로우시며 은혜가 많으신 분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오라고 부르시는 것은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이지 우리를 슬프고 괴롭게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오해하여 하나님이 부르심을 피해 도망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아들 일곱 형제를 둔 갑부가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는 모든 아들들을 불러놓고 똑같은 액수의 저금통장을 유산으로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에게만은 통장을 주지 않고 성경책을 주면서, ‘궁핍할 때 펴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맏아들은 불만이 가득하여 그 성경책을 아예 한구석에 처박아두었습니다. 그 후 오랜 날 동안 가난과 궁핍 속에서 살아가던 그는 우연히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성경책을 펴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종이 갈피마다에 보증수표가 끼어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액수는 아우들이 받은 돈을 합친 것보다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나아오라고 하십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입니다. 올때마다 더 주시는 분이십니다. 상을 하나라도 더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든지 여러분을 괴롭게 하는 분으로 이해하신다면 안타깝게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주시고 주시며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일부를 드리는 것은 내가 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작은 것을 드릴 때 주님은 더욱 큰 것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와 그 믿음을 주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더욱 큰 것을 다시 우리에게 주십니다. 구원을, 평강을, 건강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님을 믿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많은 무리 중에서 손을 내어 밀은 바로 이 혈루병 걸린 여인과 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병들었던 여인이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와 구원을 받기까지 몇년동안이나 고통받았을까요? 12년 동안이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그녀는 할 수 있는대로 자신의 병을 고쳐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효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셨을 때 그녀는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왔고 비로소 12년동안 아무 효험이 없던 병이 순식간에 나아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기다리고 계십니까? 다른 방식으로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다리십니까? 아니면 더 여러분의 문제는 견딜만 합니까? 주님께 가지고 나아올 필요가 없습니까?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습니까?
주님을 믿는 자에게 주님은 할 수 없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못 믿어서 그렇지 그래서 나아오지 않으니까 그렇지 나아오기만 하면 주님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십니다. 그 일을 해결하는 주님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습니다. 건강문제, 학업문제, 직장문제, 인간 사이의 모든 문제를 주님은 인간이 알 수 없는 특별한 방식으로 해결하십니다. 주님께 믿음을 가지고 나아오십시오. 교회에 나아오지 말고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정말로 하나님께 간구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문제를 주님께 의지해보십시오. 주님은 바로 여러분을 위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를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요 {4서신서} <1적용> [1영역-개인]~[0복음-창조]~[5은혜-능력]
1. 예수님께 많은 사람들이 손을 대었지만 그 능력을 받은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46절).
2. 이 여인이 능력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48절).
3. 이 여인이 믿음을 나타내었던 방식은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님께 나아갔기 때문이었다(44절).
4. 하나님은 그렇게 믿음이 있는 자를 구원해주기를 원하시고 그렇게 이루신다(45,48절).
5. 우리는 이 여인처럼 교회에 와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는 자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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