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접속자(230)
  • 새글
  • 출석
  • |
  • 로그인
  • 회원가입
  • 검색

[51계획] 딤후 2:20-26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는 사람들



Loading the player...



딤후 2:20-26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는 사람들_1

 
[딤후]2: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게 쓰는 것도 있고 천게 쓰는 것도 있나니
[딤후]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2: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딤후]2: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딤후]2:24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고 모든 사람에 대여 온유며 가르치기를 잘며 참으며
[딤후]2:25     거역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 혹 나님이 그들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실까
[딤후]2:26     그들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따르게 실까 함이라



2011.7.10.주일오전, [5-1계획]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인생법칙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이 여름에 학생은 방학이 있고 직장인은 휴가가 있는 이 7월에 가장 알맞는 법칙은 준비는 자가 성공한다는 법칙입니다. 루이 파스퇴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기회는 준비는 자에게 찾아온다’ 디아스포라 유대경전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미래는 준비는 자의 몫이다’ 영어속담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많은 준비가 좋은 결과를 이끈다’
그렇습니다. 누가 뭐래도 준비를 통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말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 세상에서 경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 속에서 이러한 준비의 법칙이 옳다는 것을 더욱 실감합니다. 이번 남아공 더반에서 결정된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도 치밀한 준비가 가져온 결과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가 2번의 실패 이후에 더욱 준비고 더더욱 준비했을 때 이번 동계올림픽 유치라는 영광스러운 일을 경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 나라의 국력을 드높이고 우리 나라의 경제를 살리고 우리 나라의 자부심을 더욱 나타낼 수 있는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도 이렇게 항상 준비를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을 잘 준비고 예비면 귀한 결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나님은 그렇게 잘 예비된 신앙인을 주님의 려고 시는 일에 사용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말씀 21절을 한번 읽어봅시다.
“딤후2: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나님께서는 그 출신이나 성향이나 성격이나 능력 여부를 따지지 않으시고 누구든지 모든 불의에서 떠나 자기를 깨끗면 귀히 쓰십니다. 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그렇게 사용시기를 기뻐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님께서는 모든 선한 일에 대한 주님의 계획에 따라서 주님의 사람들을 적절히 사용십니다. 성경 속에서 그렇게 자신을 준비고 깨끗게 해서 사용된 사람들이 누가 있을까요?
 
야곱은 그가 삼촌 라반의 밑에서 모든 어려움과 부조리를 묵묵히 견디고 스스로를 깨끗였을 때에 나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았습니다. 삼촌 라반은 야곱에게 양들을 맡기고 일을 시켰지만 제대로 품삯을 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양들이 맹수에게 물려 찢기거나 상면 그 모든 손해를 전부 야곱에게 물게 였습니다. 야곱은 자지 못고 먹지 못면서 삼촌의 모든 불공정한 일들을 다 감수면서 인내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마침내 그가 얻은 것은 나님의 뜻에 따라서 많은 양과 염소와 나귀와 가축을 거느리고 온 가족과 함께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이삭은 부자였지만 또한 그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 역시 부자였지만 야곱은 그 부를 물려받지 않고 나님의 깨끗심 가운데 나님과 동행면서 자수성가여 가나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만 오히려 그 사랑으로 인해서 아무 것도 얻지 못게 되었습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고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 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만 그곳에서 그는 나님의 깨끗심을 경험했습니다. 그 깨끗심은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된 삶을 견디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것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보디발 아내가 씌운 억울한 누명 속에서도 묵묵히 참으며 다른 사람을 비난지 않고 감옥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억울함 속에서 요셉은 나님과 함께 였고 그러면서 요셉은 성숙해졌습니다. 그럴 때 요셉은 더욱 나님을 의지나님의 도우심을 받았습니다.

나님은 우리를 다양한 방법으로 깨끗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과거의 모습이 크게 문제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의 깨끗심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모난 부분을 깎아냅니다. 우리의 추한 모습을 사라지게 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모습을 강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깨끗심을 잘 감당면 그로 인해서 새로운 성숙함을 가지게 됩니다. 로마서 5장 3절은 환난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롬5:3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기에서 나오는 연단이라는 단어는 영어성경에 보면 ‘character’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글성경 중 새번역이나 현대인의 성경에서 찾아보면 이것을 '인격'으로 번역을 고 있습니다. 인격적인 변화가 바로 환난 가운데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 환난을 인내면 그것이 새로운 인격의 형성을 가져옵니다. 그것이 바로 소망을 갖게 만듭니다. 놀라운 일들은 전부 인격이 뒷받침이 될 때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님은 이렇게 우리가 잘 예비되어서 나님께서 시고자 시는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기를 원십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 영광이 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우리가 우리에 대한 나님의 쓰심에 합당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된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주인이신 나님의 쓰심에 합당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런 영광 없어도 된다고 면서 예비지 않습니다. 또한 그런 유익은 안 받아도 된다고 면서 준비지 않습니다. 자기를 스스로 매우 부족한 자로 여기면서 나님이 시는 모든 선한 일에는 다른 사람들이 예비되어지면 된다고 생각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크게 오해고 있는 모습입니다. 왜냐면 모든 선한 일에 예비된다는 것은 주인의 쓰심에 합당게 되는 것이었고 그렇게 예비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주인의 쓰심에 합당게 되지 못는 것을 의미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를 다른 예를 통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미국 프로야구에서 활약던 한 프로 선수는 일본 프로야구단에 26억원 정도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였습니다. 일본 구단은 그 계약금을 주고 그 선수를 영입였고 그만큼의 역할을 기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의 활약은 안타깝게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별로 구단의 쓰임에 합당지 못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님은 우리를 구원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을 지불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셨습니다. 그 구원은 단지 천국인 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만을 의미지 않습니다. 나님은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신 주님으로서 쓰고자 시는 용도가 있습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은 예배드리는 사람으로, 성경공부를 잘는 사람은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사람으로, 전도를 잘는 사람은 전도는 사람으로, 봉사를 잘는 사람은 봉사는 사람으로 사용기를 원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움을 극복려고 지 않고 인내려고 지 않는다면 사용될 수가 없습니다. 예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사용고자 셨지만 제대로 사용지 못했던 성경속의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모세입니다. 처음에 그는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가 물위에서 건짐을 받아 바로 공주의 아들이 되고 훌륭한 교육을 받아 잘 성장기는 했지만 주인의 쓰심에 합당지 못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애굽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칠 때 옆에 있다가 애굽사람을 자신이 쳐 죽여 버렸습니다. 그일로 인해 그는 도망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물건너 가버린 것입니다.
 
이번 해병대 총기사고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기수열외라는 끔찍한 따돌림을 받던 김상병은 자기를 그렇게 따돌리던 병사들을 전부 총으로 쏘아 죽였습니다. 그가 받은 따돌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충분히 짐작합니다. 그가 받은 자존심의 상처와 그로 인한 괴로움이 얼마나 컸을 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총으로 죽여서는 안되었습니다. 자신의 분노를 참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내해야만 했지만 인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이제 체포되어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처벌을 기다리는 그의 삶은 전혀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삶이 아닙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이 선한 일에 예비되기를 원셨지만 선한 일은 커녕 더욱 악한 일에 참여여서 안타깝게도 자신이 행한 악의 처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크고 작은 모습으로 동일한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잘 예비고 준비면 앞으로 주님이 행실 일들에 참여할 수 있는 자들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면 준비지 않으면 스스로를 불의에서 깨끗지 않으면 선한 일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주인의 쓰심에 합당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받겠지요. 그러나 그 구원은 너무나 부끄러운 것이 될 것입니다. 그저 자기 몸 나 구원 받은 것이지 나님을 위해서 한 일이 나도 없으니까 자기에게도 보람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해야 모든 선한 일에 예비심이 되는 것일까요?

이일을 위해서 우리는 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교역자, 사역자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자, 직분자, 부서임원이 되라는 것도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나님의 종으로 삼아야 합니다. 사실 이 모든 사람들이 나님의 종입니다. 사역자, 교역자, 봉사자, 직분자, 임원, 전부 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나님의 종으로서의 자기이해를 가질 때 비로소 선한 일에 예비심을 이루는 놀라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전을 통해서도 우리는 이러한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세계가 인정는 가장 능력있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입니다. 지만 그가 자동적으로 유치위원회에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받아들였고 본인이 승락였기 때문에 한국을 대표는 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그가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할 때 IOC위원들로부터 두번이나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프리젠테이션을 실행기까지 그는 쉴새없이 연습고 또 연습였으며 많은 지도와 교육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본분은 피겨스케이팅이었지만 나라를 위한 시간에 자신의 모든 여가시간과 고 싶은 일들을 다 포기며 노력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나름대로의 직업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님은 그 모습 속에서 나님의 일들로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나님의 일들보다 나님의 종이 되는 것보다 여러분의 일을 더 중요게 여기면 결코 나님의 선한 모든 일에 예비함이 되지 못합니다. 일을 였으니까 쉬어야 해서 나님의 일을 지 않고 일을 고 있으니까 바빠서 나님의 종이 되지 않고 일을 고 있음을 어떻게 해서든지 핑계를 대어서 나님의 종이 되지 않는다면, 그 일은 도대체 왜 누구를 위해서 고 있는 것입니까? 그 일이 우리를 구원나님의 일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마치 김연아 선수가 자기 컨디션 조절고 좀 쉬어야 니까 남아공 더반에 프리젠테이션을 위해서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김연아 선수를 아는데 나가기만 면 다 알아볼 텐데 바로 그런 역할을 감당기 위해서 나님이 지금까지 승리셨는데 자기 휴식을 위해서 자기 일정을 위해서 나가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불의고 이기적인 것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직장을 다니고 돈을 벌고 가정을 꾸리고 한 모든 일들은 다 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서 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그렇지만 그 축복이 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나님께 쓰이도록 준비는 마음을 갖지 않는다면 나님이 과연 계속해서 복을 주시겠습니까? 네 맘대로 해봐라 고 내버려 두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받은 복을 감사함으로 주님의 쓰임에 합당게 되려고 나님의 종이 되고자 한다면 이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24절입니다.
“딤후2:24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고 모든 사람을 대여 온유며 가르치기를 잘며 참으며 25 거역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실까 며”

선한 일에 쓰여지고자 나님의 종들은 다투지 않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 대여 온유기를 예비해야 합니다. 가르치기를 잘며 잘 참으며 거역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해야 합니다. 이런 덕목을 예비해야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래야 주인의 쓰심에 합당게 됩니다. 비록 지금 당장 그렇게 준비가 되지 않는다 더라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는 바로 그 준비되지 않은 모습 때문에 커다란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마치 모세처럼 말입니다. 사람을 죽여버렸으니 어떻게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모세는 우리가 아는대로 결국에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어떤 일이 그에게 일어난 것일까요? 그가 어떻게 변화된 것일까요? 그에게는 온유함이 생겼습니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 그는 나님의 일에 예비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온유게 된 가장 큰 유익은 그가 자기 누나를 온유게 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에게 처음 반기를 든 사람은 장로들이 아니라 바로 누나인 미리암이었습니다. 그 누나는 어린 모세가 갈대상자에 담겨 떠내려갈 때에 보던 사람이었고 모세를 건진 바로의 공주에게 어머니를 소개해준 사람이기도 였습니다. 그랬던 미리암이 누구보다도 더 모세를 거역였고 모세에게 저항였으며 그 권위에 도전였습니다. 그때 모세가 강퍅한 사람이었다면 누나를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온유한 자가 되었고 미리암이 나님의 저주를 받아 문둥병이 걸렸을 때에 미리암을 위해 기도였으며 또한 그가 다시 진가운데 들어올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잘 준비되지 않으면 그런 모습을 나타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된다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모세도 사람을 때려 죽이던 자에서 온유함이 지면의 어떤 사람보다 승한 지도자로 바뀌었습니다. 왜냐면 그 자신도 주님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유함으로 섬기면서 나님의 종이 되어야 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온유함으로 대해야만 나님의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의 부족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지금은 부족지만 언젠가는 의로움으로 돌아올 날을 기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은 나님의 종이 온유해야 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고 있습니다.
“딤후2: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실까 함이라”

나님께서 임실 그 시간을 바라보며 꾸준히 인내며 온유게 대할 때에 마침내 모세는 미리암의 충성도 얻게 되었습니다. 가족들도 그를 새롭게 보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충성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님의 쓰심에 합당여져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일을 잘 감당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의 일에 예비되기 위해서 인내고 온유한다면 나님은 우리를 귀게 사용실 것입니다. 그일은 나님이 우리를 구원시면서 원셨던 바로 그 모습입니다. 그렇게 예비되고 준비된 우리 모두를 주님은 모든 선한 일에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이 7월에 더욱 준비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적으로도 준비되고 생활적으로도 준비되고 학업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준비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잘 준비되어서 준비기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선한 일을 해야 할 때에 놀랍게 나타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원교회
1.신앙구조
2.성경적용
3.마음변화
4.변화방법
5.신앙고민

주일 성경공부 교재
제자 성경공부 교재
평일성경공부 교재1
온라인 상담전도

소원교회 주일오전 예배실황
소원교회 유튜브 설교채널
소원교회 네이버 블로그
소원교회 네이버 전도답변


번호 분류 이미지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152 56충만
7삿16:1-6 당신의 큰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8-20 19 10078
151 56충만
2출 4:10-17 가라 내가 너에게 형과 지팡이를 주노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8-06 21 7633
150 54용서
45롬 3:23-26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이 되신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8-06 24 7480
149 53희생
26겔33:12~20 은혜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시는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7-25 25 7615
51계획
딤후 2:20-26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는 사람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7-25 22 9009
147 55동행
44행 2:42-47 결국 교회에서 는 일들은 무엇인가?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7-04 17 10697
146 55동행
44행 1:3-5 아버지의 약속신 것을 교회에서 기다리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6-25 17 8486
145 53희생
40마27:50-54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교회가 시작됨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6-18 25 8093
144 52능력
40마16: 13-18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이기지 못리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6-07 23 7900
143 51계획
43요 1:1-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5-29 11 8109
142 53희생
43요19:25-30 진정한 어버이의 모습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5-29 15 8099
141 1영역
41막10:13-16 어린 아이와 같은 자들을 용납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5-06 12 7292
140 55동행
43눅24;33-43 부활신 주님과 함께 먹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4-27 13 9908
139 53희생
43눅22:63-71 네가 나님의 아들이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4-18 21 8231
138 53희생
43눅23:39-46 당신의 나라에서 나를 기억소서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4-10 19 8384
137 55동행
6수 6:8-14 아무 말도 지 말고 성을 돌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27 21 8449
136 53희생
6수 3;7-13 이스라엘을 구원시는 나님의 희생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20 18 8286
135 56충만
6수 1:10-15 나님께 순종고 이 땅을 차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19 12 7972
134 52능력
6수 1: 5-9 내가 맹세여 준 땅을 얻게 리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07 21 8090
133 54용서
51골 1:20-23 나님과 화목케 되기를 노력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3-03 11 8422
132 53희생
51골 1; 18-20 교회의 머리로서 희생시는 그리스도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2-26 21 8310
131 51계획
51골 1;15-20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존재한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2-26 24 8028
130 54용서
51골 1;12-20 우리를 아들의 나라로 인도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2-18 17 8407
129 51계획
1창35; 1-7 야곱이 지킨 세 가지 창조의 명령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2-12 17 8083
128 51계획
1창 6; 17-20 방주를 세우도록 부르심을 받은 노아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1-28 17 9276
127 51계획
1창 4;9-15 죄인의 죽임을 면케 시는 나님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1-21 18 8989
126 51계획
1창 3;16-17 창조명령을 이루며 살지 못는 이유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1-21 13 9444
125 51계획
1창 1; 27-28 창조의 나님이 주신 명령 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1-12 18 10339
124 6결심
43요 1;1-8 빛과 그 빛을 증거러 온 사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1-04 14 7490
123 5은혜
42눅 2;1-14 늘에서는 영광, 땅에서는 평화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2-28 15 7982
122 7실천
40마 2;1-8 왜 헤롯은 동방박사들을 따라가지 않았는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2-20 15 7775
121 5은혜
43요14;6-11 예수님은 나님을 나타내신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2-20 22 7610
120 6결심
44행16; 29-34 나와 내집이 구원을 얻은 증거는 무엇인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2-07 10 7765
119 6결심
6수 5;10-15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음의 의미가 무엇인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2-07 18 8344
118 5은혜
42눅15;20-24 구원은 나님께 돌아옴으로 얻는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1-24 17 7160
117 5은혜
47고후 6;1-2 구원은 나의 때가 아니라 나님의 때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1-15 9 7974
116 6결심
58히 11;33-38 믿음으로 볼 때 과거의 삶은 어떠였는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1-06 19 6980
115 6결심
58히 11; 7-12 믿음으로 할 수 있는 일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0-23 17 7544
114 7실천
41막 5;25-34 많은 무리 중에서 손을 내어 밀은 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0-23 14 7739
113 7실천
41막 9;19-24 믿음이 없는 세대가 믿게 되는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0-17 12 7451
112 7실천
45롬 5;5-6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지 않는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0-11 15 7781
111 35죄책
45롬 1;21-25 나님을 버리는 자들과 나님이 버리시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0-02 21 7598
110 5은혜
44행 2;4-11 성령충만과 복음전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27 12 7027
109 8사역
44행17;22-27 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는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14 14 8004
108 5은혜
11왕상17;17-21 내죄를 생각나게 심입니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12 18 8543
107 6결심
44행11;12-18 내가 누구관대 나님을 막겠느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9-10 20 7428
106 8사역
44행10;24-35 무슨 연유로 그들은 만나게 되었는가?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6 15 7323
105 5은혜
44행10;17-23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1 13 7295
104 5은혜
44행10;9-16 네가 속되다 지 말라 더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1 9 7673
103 5은혜
50빌 3;18-21 우리를 자기 몸의 형체로 변시는 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8-21 23 7811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