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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동행] 6수 6:8-14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성을 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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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수 6:8-14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성을 돌라_1



  2011.3.27.주일오전, 새로운 시작, [5-6동행]

[수]6: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나아가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수]6:9     그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행진하며 후군은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더라
[수]6: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수]6:11     여호와의 궤가 그 성을 한 번 돌게 하고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진영에서 자니라
[수]6:12     또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니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수]6:13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 일곱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행진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진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를 따르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진하니라
[수]6:14     그 둘째 날에도 그 성을 한 번 돌고 진영으로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3월 마지막 주가 되었습니다. 이번 3월 한달이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3월은 학교에서는 새학기가 시작되는 학기였습니다. 직장에서는 1,2월을 지난뒤 다시 맞는 한달이었습니다. 그러나 직장내에서도 이번 한달 여러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감사를 받는 달이기도 하였고 프로젝트를 완료하는 달이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3월은 교회프로그램을 시작하는 달이었습니다. 전도학교와 영어학교가 추가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제 이렇게 3월의 마지막 주를 맞이하고 보니 시작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달이 다 되었습니다. 지나보면 언제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그러나 우리는 한달 한달을 살아가면서 결코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 않습니다. 그 한달 동안 학생은 많은 과목을 공부합니다. 그 한달 동안 직장인은 많은 성과를 올립니다. 그 한달동안 사업가는 많은 돈을 벌고 그 한달동안 교회는 여러가지 하나님의 일을 행합니다. 한달을 어떻게 보내는가가 학생이 성적을 올리느냐 아니면 떨어지느냐를 결정짓습니다. 직장인은 나중에 승진을 할 수 있는가 아니면 할 수 없는가를 결정합니다. 사업가는 자기 사업을 발전시키느냐 아니면 문을 닫느냐를 결정짓습니다. 교회도 이 한달 동안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흥하느냐 망하느냐를 결정짓습니다. 그러므로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한달동안에 무엇을 했느냐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보고있는 가나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 중요한 일은 한달을 어떻게 보내는가입니다. 가나안이 목표라면 이 시간을 그냥 헛되이 보내서는 안됩니다. 그냥 지나가는 게 시간이어서는 안됩니다. 중요하고 의미있고 최선을 다해 목표의식을 가지고 이 한달을 보내야 합니다. 그래야 가나안에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정월 십일에 요단강을 건넜고 정월 십사일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그 한달 내에 그들은 가나안 정복의 첫 번째 전쟁인 여리고성 싸움을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 여리고 성 싸움을 어떻게 치루느냐가 그들이 과연 전멸하느냐 아니면 살아남아서 그 땅을 차지하느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전쟁을 앞두고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자신의 작전과 병법과 선호도에 따라서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방법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 속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6장 2,3절을 보십시오.
“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3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그런데 그것은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모든 군사들이 그 뒤를 따르며 여리고 성을 돌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이 자신의 성벽을 굳게 잠그고 임전태세를 지키고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태평스럽게 혹은 하릴없는 것처럼 성을 하루에 한바퀴씩 6일 동안 돌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마지막 날 7일째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행진을 마친 후 에는 제사장이 나팔을 불고 백성들은 소리를 질러 외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고 그 때 여리고 군대를 공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은 너무나 상식 밖의 대답이었습니다. 그것은 군대와 병법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방법이었습니다. 아무리 그 뜻을 따르고는 싶지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도저히 따를 래야 따르기가 힘든 일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일요일날 늦게 자고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은 학생들을 주일예배로 나오게 합니다. 일요일에 가족끼리 오붓한 시간을 가지고 야외로 나들이를 가야 할 것 같은 가족들을 교회로 부릅니다. 하루라도 더 일해야 할 것 같은 일요일의 금쪽같은 시간을 일하지 말고 주일로 지키라고 합니다. 더 준비하고 연습해서 장사를 하고 직장의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휴식을 취하고 해야 더 도움이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은 주일의 예배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 생각과 다르게 하시는 것일까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못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왜 다른 가족들처럼 주말을 보내지 않게 하시고 왜 다른 직장인들이나 다른 가게주인들처럼 일하지 않게 하시고, 다른 학생들처럼 공부하게 하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우리가 여기에 대한 대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가족들처럼 하고 싶어집니다. 다른 직장인들처럼 살고 싶어합니다. 다른 가게주인들처럼 일하고 싶어합니다. 다른 학생들처럼 공부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스스로 아무런 차이를 나타내보이지 못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믿는 자에 대한 의식이 없고 자부심이 없고 목표가 없기 때문에 믿는 사람에 대한 기대도 없고 소망도 없고 발전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뭔가 특별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땅을 차지하고 승리를 누리며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신앙고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신앙고백을 통해 새롭게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를 새로운 습관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셔서 우리를 의롭다 해주셨기 때문에 기쁨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고 결심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채워주시고 힘을 주시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충성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그냥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입니다. 하나의 목표가 삶속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오랜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피아노를 치는 학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을 하였겠습니까? 오랜 연습 후에 그렇게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시간 노력을 하였겠습니까? 심지어는 우리가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는 것도 오랜 시간의 연습과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연습은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경험입니다. 피아노를 쳐보지 않던 삶에서 피아노를 치는 삶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공부를 하지 않던 삶에서 공부를 하는 삶으로 변화됩니다. 운동을 하지 않던 삶에서 운동을 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날을 내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 하루를 주님의 날로 정하고 그 날을 지키고 그 날을 드리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날은 일요일입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날, 하고 싶은 대로 실컷 잠을 자고 실컷 공부를 하고 실컷 놀고 실컷 돌아다니고 실컷 일을 할 수 있는 날, 바로 일요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날은 주일입니다. 주님의 날입니다. 주를 위해서 드리는 날입니다. 모든 하고 싶은 일을 그치고 하나님께 드리는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전쟁을 앞두고 성을 일곱 번 돌게 하셨던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 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앞두고 전쟁을 연습하고 준비하는 일반적인 삶이 아니라 그 상황 속에서 묵묵히 하나님의 궤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인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요단물을 건넌 사람들임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홍해를 건넜던 사람들인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대홍수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래서 9절 말씀처럼 묵묵히 순종하면서 여호와의 궤를 따라서 성을 돌았던 것입니다.
“9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그런데 이런 삶을 살아가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중에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교회자체의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최근에 어떤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성도님이 그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준 것인데 그 교회는 예배시간에 늦으면 예배실 문을 잠궈버린답니다. 그래서 들어갈 수가 없게 한답니다. 예배시간에 늦지 않게 하려는 것이지요. 또한 예배시간 중에는 나가지도 못하게 한답니다. 이분이 예배를 드리고 있던 중에 차를 빼달라는 문자가 와서 차를 빼려고 나가려고 하니까 문에서 교역자분들이 못나가게 막았답니다. 그래서 성이 나서 왜 못나가게 하냐고 난리를 치니까 그제서야 못이겨서 나가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두번 다시 그 교회를 가지 않았답니다.

다른 교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예배실이 좁아서 도저히 본당에는 제때 들어갈 수가 없고 항상 교육관이나 기타 다른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럴 때에는 항상 스크린으로 예배를 보게 된답니다. 그렇게 멀뚱하게 스크린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는 게 싫고 또 어떤 때에는 주차를 하지 못해서 싫고 또 어떤 때에는 번잡한 게 싫어서 예배를 안나가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런 다음에는 자연히 아무 교회도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큰 교회도 이모양이니 작은 교회는 오죽하겠나 싶어서 아예 기대도 하지 않게 된 것이지요.

항상 이교회에는 이런 문제가 있고, 저교회에는 저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런 문제가 생기고 저렇게 하면 저런 문제가 생깁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이런 저런 문제를 만듭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도 크고 작은 문제를 만듭니다. 그러니 우리 생각에는 교회를 다니는 것도 문제요 주일을 지키는 것도 문제니 도저히 제대로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이쯤되면 교회를 다니는 것이 놀라울 정도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 모든 일을 잘 견디면서 다니는 것일까요?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주일을 성수하면서 예배를 드리면서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만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오.
“5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시매”

정말 중요할 때 한번 외치기 위해서 그 때 승리하기 위해서 나머지 6일을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묵묵히 걸어갑니다. 말하고 싶은 모든 욕구를 견디고 뿌리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거스르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추스려서 하라는 대로 하면서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갑니다. 덜 중요한 일을 포기하고 더 중요한 일을 의식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외치라고 할 때 외칩니다. 말하지 말라고 할 때는 말하지 않고 때가 되어 말하라고 할 때는 말합니다. 그러면 그럴 때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습니다. 비로소 진정한 승리를 얻게 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인생의 모습이 그렇지 않습니까? 신앙생활이 아닌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이나 심지어는 가정생활도 묵묵히 걸어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계속해서 말을 내고 이런 불평과 저런 불평으로 일관한다면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 일 속에서 열매를 거둘수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저항하지 않고 순종함으로써 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들어간 학생은 이런 저런 지시에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그 일을 감당하면서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학업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직장에 들어간 직장인은 이런 저런 지시에 거부하지 않고 묵묵히 그 일을 수행할 때에 더욱 그 일에 집중할 수 있고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은 이런 저런 어려움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묵묵히 자기가 해야 할일을 꾸준히 행할 때에 그 순종함을 통해서 자신의 하는 일에서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모자가 학교생활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어보십시오. 『어머님.학교에서 절 좋아하지 않는 눈치가 보여요.교사들도 절 싫어하는 것 같고,아이들도 반기지 않아요. 학교 직원들도 절 쫓아내려고 해요. 학교 버스 운전사나 경비원조차 절 냉대하는 것 같다니까요.정말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아들아, 그러나 그래도 너는 학교로 가야 한다.너는 건강하고 배울게 많아.아들아,너는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야 해. 너는 지도자야. 넌 이제 49세밖에 안됐잖니? 네 학교의 교장이기도 하고. 자, 이제 학교로 꼭 돌아가거라』

하나님은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우리를 타이르십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고 해야하는 일을 묵묵히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앞으로 전쟁을 치루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들이 피비린내나는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사람들인데 하나님께서 다만 묵묵히 성을 돌라는 것을 명하실 때에 그것을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묵묵히 성을 도는 것이 정말 힘들어서 일까요? 그일이 전쟁을 치루고 사람과 싸움을 벌이는 것보다 더 힘들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걸 못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뿐입니다. 그렇게 성을 묵묵히 돌아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여서 이고,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신 분입니다. 요단강을 마르게 하셔서 건너게 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여러분보다 백배는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여러분도 똑똑하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천배는 똑똑하십니다. 여러분도 계획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보다 만배는 더 놀라운 계획이 있으십니다. 사실 여리고 성 사람들은 완전히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요단강을 건너왔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성경은 여호수아 5장 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5:1 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여리고 성 사람들은 이미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만 생각하면 오금이 저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무시할 수 없고 두려워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별 능력없는 별 볼일없는 사람으로 생각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대단한 이유는 하나님이 여러분 뒤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뒤를 봐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걱정이 없고 든든합니다. 여러분에게 뭔가 대단함이 있어서가 아니고 여러분 뒤에 있는 하나님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이 능력이고 그 능력으로부터 모든 것이 나오는데 그 능력을 여러분 스스로 버린다면 너무나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버리게 됩니다.

어느 날 사자하나가 어느 동네 길을 걸어가다가 참으로 아름다운 처녀를 보게되었습니다. 한 눈에 반해버린 이 사자는 그 처녀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 처녀는 그 동네 농부의 딸로 아름답기로 소문이 날 정도였습니다. 사자는 한눈에 사랑에 빠져 농부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 딸을 사랑하니 결혼을 하겠소, 만약 싫다면 당신 딸을 잡아먹고 말겠소. "
갑자기 사자의 청혼을 받은 농부는 앞이 캄캄했으나 사자가 무서워 거절하지 못하고 하루의 말미를 달라고 사정을 해서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걱정 때문에 그 날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걱정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서 딸은 그 자초지종을 묻고는 괜찮으니까 내일 사자가 오거든 이렇게 저렇게 시키는 대로 하시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사자가 아침 일찍 찾아왔습니다.
"생각해 봤소?" 사자가 큰 소리로 묻자 농부는 반색을 하며 사자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는 웃는 낯으로 말했습니다.
"내 딸도 당신처럼 성실하고 용감한 사자라면 결혼하고 싶다고 그럽니다. 다만 한가지 걱정을 하더군요.” 기분이 좋아진 사자는 침을 삼키며 물었습니다. "한가지 걱정이라니?" 농부는 머뭇거리다가 "저..말입니다. 내 딸도 당신을 좋아하는데 사자님의 그 날카로운 발톱이 무서워 가까이 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발톱을 뽑아주면 시집을 가겠답니다."
"뭐, 그거야 어렵지 않지." 농부의 딸에게 마음을 온통 빼앗긴 사자는 자기의 발톱을 모조리 뽑고는 다음날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사자를 추켜세우며 말했습니다.
"내 딸은 사자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눈물까지 흘리고 있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이 있답니다. 그것만 들어주시면 기꺼이 시집을 가겠답니다." "오 그래? 그 부탁이 뭐요?"
"실은 내 딸이 사자님의 그 날카로운 이빨이 무서워 가까이 갈 수가 없답니다." "알았소. 그럼 내일 다시 오겠소" 이미 발톱을 뽑아버린 사자는 뒤뚱거리며 물러갔습니다. 사자는 그대로 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왔습니다.
"내 당신 말대로 이빨도 뽑았소, 자 이제 당신 딸을 나에게 주시오" 그러자 농부는 갑자기 몽둥이를 들더니 "네 이놈, 지금까지는 네 발톱과 이빨이 무서워 꼼짝못했지만 이제는 무서울 게 없다." 하며 사자를 마구 두둘겨 팼습니다. 사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쳤지만 이미 발톱도, 이빨도 다 뽑아버린 뒤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사자의 발톱과 사자의 이빨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분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주일을 지키며 내일도 주일을 지키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때에 하나님은 딱 하루 힘껏 소리를 지르게 하십니다. 그동안 준비한 모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십니다. 그런 집중력으로 우리는 학업에서 승리하고 직장생활에서 승리하며 인생에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께 순종함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처럼, 그리고 여리고 성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것처럼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여러분의 삶속에 여리고의 승리가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럴 때 언제 성을 돌아야 하며 언제 외쳐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순종으로 하나님의 승리가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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