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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59약1;26-27 경건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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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9 (화) 22:02
12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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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약
1
;
26-27
경건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루어진
다
_
1
20
1
2.5.20.주. 주일오전, 주제설교-충만
*개요 [55충만] {6서신서}
[5은혜]-[7실천]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
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1
. 경건의 의미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삶의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
다
.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령충만이라는 말을 합니
다
. 그런데 성령충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
다
. 성령충만을 받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성령충만함을 받을 때 생겨나는 일들은 삶의 변화입니
다
. 또한 이러한 삶의 변화를 얻고자 할 때 필요한 것은 성령충만함입니
다
. 이러한 현재적인 충만함과 동행하심을 받을 때에 우리는 삶의 순간 순간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
다
. 성령님의 사역의 핵심은 과거와 미래가 아니라 바로 현재에 있는 것입니
다
.
성령께서는 우리 손을 잡아주시지 않습니
다
. 우리 발을 붙드시는 것이 아닙니
다
. 우리 마음을 잡아주시고 붙들어 주십니
다
.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도록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굳건한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잡아 주시는 것입니
다
. 그럴 때 우리는 순간 순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
다
.
이것을 자전거 타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
다
. 처음 제가 저희 딸에게 자전거를 가르칠 때 우리는 공원으로 나갔습니
다
. 그리고 균형 잡는 법을 알려주었습니
다
. 몸이 오른쪽으로 쓰러질것 같으면 왼쪽으로, 왼쪽으로 쓰러질 것 같으면 오른쪽으로 기울이라고 했습니
다
. 하지만 결과는 안좋았습니
다
. 몸을 왼쪽으로 기울이면서 오른쪽으로 쓰러졌던 것입니
다
. 이런 식으로는 자전거를 배울 수가 없었습니
다
. 그래서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나아가면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고 왼쪽으로 기울어지면 왼쪽으로 돌리라고 했습니
다
. 그랬더니 핸들이 마구 흔들리
다
가 결국에는 넘어졌습니
다
. 혼자 힘으로는 아무리해도 안되었습니
다
.
그
다
음에 마지막으로 한 방법이 제가 뒤에서 목을 잡아주는 것이었습니
다
. 정말 제가 목을 굳게 잡아주고(목을 조른 것이 아니라), 균형을 잡아주니까 그제서야 중심을 잡기 시작했습니
다
. 그리고는 앞으로 넘어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
다
. 나중에 우리 딸은 아빠가 목을 잡아줘서 균형을 쉽게 잡을 수 있었
다
고 고백했습니
다
. 딸이 스스로 자전거를 타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없는 기쁨이었습니
다
.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
다
. 우리 힘으로는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없습니
다
. 그렇
다
고 지금 당장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
다
. 이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성령을 의지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
다
.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사는 것입니
다
. 그리고 그럴 때 균형을 유지합니
다
. 흔들리지 않습니
다
. 바로 그렇게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의 모습 중 하나가 바로 '경건'입니
다
.
2. 고넬료는 바로 그렇게 경건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
다
.
우리는 경건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수 있습니까? 거룩하게 사는 것,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것, 조단조단 이야기하는 것,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분들은 이런 경건을 영성이라는 말과 혼동합니
다
. 영성이라는 말은 그 자체가 성경적 용어가 아닙니
다
. 그것은 영어로 'spirituality'라고 하는데 그 기원은 5세기 경으로 성직자나 수도사들이 추구했던 것입니
다
. 그 이후에는 주로 카톨릭을 통해서 전해 내려왔고, 최근에는 개신교회도 이러한 영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
다
. 그러나 이러한 영성의 근본적인 의미는 성경적인 가치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
다
.
신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영성의 의미는 '한 사람의 행동이 유래된 태도나 정신의 바탕이 되는 어떤 종교적 또는 윤리적 가치'를 의미한
다
고 합니
다
. 또한, 더 넓게는 영성이란 특별한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
다
고 합니
다
. 그래서 기독교 영성은 물론 선, 불교, 유대교, 이슬람 영성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
다
. 기독교에서 영성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에는 물론 기독교 영성을 의미하겠지만 그 자체의 의미가 너무나 범용적이기 때문에
다
소 생소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
다
.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이러한 영성의 의미와는
다
릅니
다
. 그것은 지극히 구체적인 삶 속의 모습입니
다
.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경건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
다
.
"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
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경건이 경건하
다
는 생각과 자기 마음에의 집중에만 해당된
다
면 그것은 헛된 경건이라는 것입니
다
. 자기 혀를 재갈 먹이고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경건이라고 합니
다
. 혀에 재갈을 먹이는 것은 통제를 가하는 것입니
다
. 마스크를 씌우는 것이 아니고 마개를 덮는 것이 아닙니
다
. 할 말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통제가 되는 말을 한
다
는 것입니
다
. 그것이 경건입니
다
. 그렇게 해서 자기 마음을 속이지 말아야 한
다
는 것입니
다
. 아무 말이나 막 하면서 마음과는
다
른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
다
.
아무래도 이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아야 좀더 구체적인 경건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겠습니
다
. 성경에서는 경건한 사람 중의 하나로 '고넬료'를 말하고 있습니
다
. 고넬료에 대한 설명을 보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
다
.
"행
1
0: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2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는 경건하였
다
고 했습니
다
. 경건에 대한 성경의 설명대로라면 그의 혀는 재갈 먹여진 것 같습니
다
. 또한 마음을 속이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
다
. 또한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
다
고 했습니
다
. 그런데 여기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경건하여서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였
다
는 것입니
다
. 그렇
다
면 그의 말은, 그의 혀는 도대체 어떤 용도로 쓰여진 것일까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다
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는 말을 하였
다
는 의미입니
다
. 또한 백성을 구제하면서 하나님께 항상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
다
는 것입니
다
.
다
른 사람들은 어떻든지 간에 자기 영성만 추구하면서 살아간 사람이 아닙니
다
.
다
른 사람들과는 일체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 심지어는 가족도 버리면서 산속에 들어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간 사람이 아닙니
다
. 그는 백부장으로 군대를 맡아서 수고하면서 경건했습니
다
. 그의 말로 온 집은 하나님을 경외했습니
다
. 그의 말로 그는
다
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
다
. 그래서 그는 경건한 것입니
다
.
경건하
다
는 성경의 표현은 영어로 'religious'라고 합니
다
. 종교적이라는 의미입니
다
. 일견 거부감이 들수 있수도 있지만 만약 우리의 경건이 우리 믿는 기독교의 의미를 온전히 나타내는 삶이라면 그런 경건은 대환영입니
다
.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합니
다
. 또한 그런 말과 행동을 하게 합니
다
. 그것이 바로 성경이 보여주는 '경건'입니
다
. 성령의 충만함으로 생겨나는 '경건'입니
다
.
3.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에서 만나고 삶에서 만나시기를 원하십니
다
.
무엇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산속에 들어가 속세를 떠나서 영성을 추구하는 것과 삶속에서 경건을 이루는 것, 무엇이 더 어렵겠습니까? 사람마
다
다
르겠지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성을 쌓으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만, 경건을 행하라고 하신
다
는 점입니
다
.
"딤전4:7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미쁘
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
다
"
그러므로 우리는 경건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겠습니
다
. 영성은 선택이지만 경건은 필수입니
다
. 이러한 경건을 이루기 위해서 성령충만을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합니
다
. 성령의 충만함이 없이 경건을 이룰 수 없습니
다
. 그것은 마치 산소통이 없이 바
다
로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
다
. 잠수를 아무리 잘한
다
하더라도 산소가 없이는 오래 바
다
밑에서 작업할 수 없습니
다
. 반드시 산소통이 있고 그러한 공급이 있을 때만이 바
다
밑에서 해야하는 작업을 잘 할 수 있습니
다
.
이와같이 우리가 성령충만해야 하는 이유도 그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경건의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
다
. 그리고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것은 경건의 능력을 가지게 되고 모습을 이루게 되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
다
. 그것은 경건에는 비밀이 있기 때문입니
다
.
"딤전3:
1
6 크도
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
다
하는 이 없도
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
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경건의 비밀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입니
다
.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나셨지만 영으로 의롭
다
함을 입으셨습니
다
. 천사들이 그분을 보았습니
다
. 천하만국에서 전파되셨습니
다
. 그리고 믿음의 주님이 되셨고 영광 가운데서 승천하셨습니
다
.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입니
다
. 그것이 바로 우리의 경건의 비밀입니
다
.
다
시 말해서 그런 경건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
다
.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의 삶을 닮는 것이 바로 경건입니
다
. 이 세상에 오셔서 조용히 산속에 들어가셔서 한평생 영성을 추구하
다
가 죽으신 분이 예수님이 아니라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의 죄를 위해 죽으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
다
. 그러니 우리도 경건을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이 세상에서 이루어야 합니
다
. 우리도 주님처럼 그렇게 하나님 나라에 갈 자들이기 때문입니
다
.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경건의 모습을 갖기를 원하시는 것입니
다
.
4. 경건한 삶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
다
.
야고보서는 우리에게 경건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
다
.
"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
다
.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의 경건이 의미가 있습니
다
. 아버지를 닮아가는 경건이 중요한 것입니
다
. 그래서 예수님도 그런 삶을 사셨고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합니
다
.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
다
.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
다
. 그래서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며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
다
. 그것이 우리의 신앙과 삶의 가치입니
다
.
고넬료의 삶 속에서 결국 경건한 그가 만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
다
. 베드로는 고넬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을 보며 고백하였습니
다
.
"행
1
0:34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35각 나라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줄 깨달았도
다
"
오늘도 진실로 주님을 경외하며 성령에 충만하여 경건한 사람을 주님은 받으십니
다
. 그러한 사람들이 되십시
다
. 그래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의 빛과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을 나타내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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