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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35합 1; 1-5 하나님이 행하시는 한 가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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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 1-5 나님이 행시는 한 가지 일_1

  

 

  

2022. 12. 4. . 주일오전.

  

 

  

*개요: 박국에서의 신앙의 세움, [56충만], 나님이 세우시는 공의의 충만

  

 

  

[]1:1    선지자 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1: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지 아니시나이다

  

[]1:3    어찌여 내게 죄악을 보게 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1: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여짐이니이다

  

[]1: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리라 

  

 

  

 

  

12월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맞이였습니다. 올해 2022년이 가면 새로운 새해인 2023년이 올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 어떤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차이는 없지만 우리는 심정적으로 상황적으로 커다란 차이를 만듭니다. 그래서 만약 달력도 없고 시간도 알 수 없는 무인도에 있다면 해가 바뀐다는 것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겠지만 의미와 가치를 부여면서 우리는 커다란 차이를 경험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서 말는 의미와 가치는 어떤 물리적이고 현상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보여 달라고 한다면 전혀 보여줄 수가 없습니다. 지만 설명을 해달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설명을 들으려고 한다면 놀라운 의미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박국에서 말고 있는 선과 악과 공의와 정의와 구원과 심판도 관심이 없는 자들에게는 무의미한 개념이지만 그것을 알고자 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여기에 큰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면 성도는 바로 그런 개념을 통해서 소망을 갖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각각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통해서 즐거움과 기쁨과 소망을 얻습니다. 그것이 모두가 동일할 수는 없지만 각자의 관심과 방향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런 자극을 통해서 더욱 그 분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나님의 일에 관심이 있고 그런 분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이 일을 알고자 고 듣고자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박국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묵시이자 예언이자 선지자 활동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깨닫고 그것을 전는 것이 그의 소망이 되었습니다. 그가 알고자 했고 이해고자 했던 의미와 가치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1:1  선지자 박국이 묵시로 받은 경고라

  

[]1: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지 아니시나이다

  

박국 선지자는 어떤 대상에 대한 나님의 묵시를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이 고민는 의미와 가치에 대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갈급함에 대해서 나님의 응답과 깨달음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럴 때 바로 그의 삶이 특별해졌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나님 안에서 발견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움직이는 힘이고 근원이며 에너지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관심사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부르짖을 때 주님은 언제 들으실까, 내가 구원을 간절히 바랄 때 나님은 언제 나를 구원해 주실까? 이것이 우리가 관심을 갖는 분야입니다. 그 관심이 있을 때 박국이 받은 응답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응답이 바로 나에게도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저의 중학생 딸과 월드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 저의 딸은 월드컵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너는 무엇에 관심이 있느냐고 했더니 최근 학교에서 있었던 악덕선생님에 대해 전교생에 퍼진 소문에 관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한 선생님이 수행평가결과에 나쁜 평가가 올라온 것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 앞으로 학생들에게 편게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것이 전교생에 소문이 돌아서 교할 때 다른 학생들이 그 선생님 이야기를 면서 교를 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갔습니다. 저 자신도 그럴 때가 있었고 지금 들어도 그런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이 누구든지 관심사에는 귀가 곤두서기 마련인데 박국의 경우에는 구원의 가능성이나 시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그가 살던 시대에 구원은 너무나 절박한 주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이유는 그들이 사는 시대가 커다란 환난을 당할 때입니다. 본문에서도 박국이 경험한 시대적인 환난이 있었습니다.

  

“[]1:3  어찌여 내게 죄악을 보게 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1:4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여짐이니이다

  

만약 박국이 살던 시대가 태평성대였다면 구원이나 정의를 바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언던 시대는 BC 606년에서 604년 경으로 여호아스가 애굽의 침략으로 폐위되고 그 동생인 여호야김이 왕이 되어서 악을 행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경험했던 상황은 죄악과 패역이 일어나고 겁탈과 강포가 있으며 변론과 분쟁이 일어나던 환경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는 시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어려움과 곤고함이 있습니다. 괴로움과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속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위로를 찾습니다. 지만 이 시기에 나님 안에서 구원과 정의를 바라고자 할 때 우리는 나님께 대한 소망을 갖는 사람들입니다. 나님께서 바로 그 구원과 정의를 이루어 주시기를 소망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님의 구원을 소망는 자들에게 나님께서는 응답셨습니다.

  

“[]1:5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여러 나라를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 너희의 생전에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할 것이라 누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리라

  

나님께서 한 가지 일을 행신다고 였고 그것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님께서는 놀라고 또 놀랄지어다라고 셨습니다. 나님께서 이루신 한 가지 일은 주님의 임재였습니다. 주님께서 임재셔서 그 심판을 베푸실 때에 놀라움이 임할 것이고 그 심판을 통해서 나님께서 기뻐시는 온전한 구원과 정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셨습니다.

  

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이러한 임재의 약속 속에서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에 이루어졌는가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나님께서 행시는 일들을 깨닫고 인정할 때 이루어졌습니다. 이미 나님께서 이루신 심판과 구원이 바로 나님의 행심을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가장 온전한 구원과 소망으로 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으로 나타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나님의 역사심과 임재심을 깨달을 때 비로소 나님께서 신 일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님께서 어떤 일을 고 계시는가를 알게 될 때 비로소 나님께서 행고 계심을 알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나님께서 바벨론을 보내어서 이스라엘을 치게 셨음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분명한 심판과 공의를 이루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또한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온전한 구원과 소망을 갖게 셨을 때 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시고 우리를 위해서 일시는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나님의 역사심에 대해서 지금까지 행심을 깨달으면서 앞으로 실 것을 알게 됩니다. 이미 신 것이 너무나 놀랍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일 때 앞으로도 행실 일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님의 일에 관심과 소망을 가지면 그 일에 대한 이해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바로 그래서 나님의 일에 동참며 그 일을 실천해 나가는 자들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나님의 행심을 잊지 말고 감사해야 겠습니다.

  

지난 주에 쓰레기를 한보따리 버렸는데 아침에 살펴보니 그 쓰레기가 깨끗이 청소된 것을 보았습니다. 간밤에 청소시는 분들이 싹 정리를 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나님께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기도를 통해 싹 전해 드리면 나님께서는 밤 사이에 그 모든 기도를 다 잘 해결해 주신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기도의 응답이 오늘 아침이 되거나 내일 아침이 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행시는 주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주시는 나님도 믿지 않겠지만 그것을 믿으면 구원을 주시는 것도 믿고 더욱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님이 행시는 한 가지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행신다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가 모든 행심을 의미고 있습니다. 그 한 가지 일로 나님은 심판과 구원에 관한 모든 일을 행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 나님을 잘 의지할 때 우리에게 이미 이루신 그리스도의 오심은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서 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이 세상에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에게는 어떠한 나님의 역사심이 나타나고 있는가를 바로 이 시기에 생각해 보십시오. 그럴 때 그것이 얼마나 감사고 고마운 일인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역사심을 잘 따라 나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방해는 모든 사탄의 훼방과 사탄의 자식들의 악행이 있지만 그보다 더욱 큰 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바라보아야 겠습니다.

  

 

  

박국서에서의 묵시와 경고를 통해서 신앙의 의미와 가치를 더욱 깨닫고 놀라운 일을 행시는 나님께 기대와 소망을 가져서 주님을 더욱 믿고 의지여 그 행심에 잘 따라 나가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2관점적해석

  

1. 우리는 나님으로부터 구원이 있기를 바라고 그 구원을 통해서 자신에게 결실이 있기를 바란다.

  

2.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어려움과 괴로움 속에서 어떤 구원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3. 나님은 임재를 약속해 주셨고 온전한 구원과 공의를 이루신다고 셨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역사심이었다.    

  

4. 사탄이 그리스도의 공의를 무시할 때 이를 잘 극복는 성도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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