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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평] 42눅24;25-36 주님을 따라갈 때 누리는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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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눅24;25-36 주님을 따라갈 때 누리는 평안_1

 

 2014.3.23.주.주일오전.

 

*개요:    63화평, 5복음서, 3분석, 5은혜-6결심

 

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저희의 가는 촌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하는것 같이 하시니

29    저희가 강권하여 가로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저희와 함께 유하러 들어 가시니라

30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31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니

 

 

행복이라는 말과 평안이라는 말 중에서 여러분은 어떤 말을 더 좋아하십니까? 행복이라는 말은 평안이라는 말보다 더 자극적입니다. 행복은 뭔가 더욱 새로운 즐거운 요소가 있는 것을 의미하지만 평안은 그저 나쁜 일이 없는 정도로만 느껴집니다. 그래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평안보다는 행복을 더 선택하고 싶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고 평안을 누리십시오 라는 말보다는 ‘예수님을 믿고 행복해지십시오’라고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해버리고 나면 예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엄밀히 말하면 예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것이지만 듣는 사람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행복을 전해 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좀더 성경적인 의미로 수정을 한다면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십시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오해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의 근거가 되시고 평안의 동반자가 되십니다. 여기에서 죄로부터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로의 구원이 연결됩니다. 그래서 그 평안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게 되는 복음의 가치와 핵심에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평안이라는 가치는 행복에 비교할 때에 물질적인 어떤 것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정신적인 관계와 의미에 근거하는 온전한 신앙의 열매입니다.

이와 같은 평안의 본질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 말씀에 나타나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 관계 속에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의 의미가 잘 드러납니다. 우리가 삶속에서 누리게 되는 평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은 그냥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삶에서 특별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일상생활속에서 그들의 얼굴은 어두웠습니다. 슬픈 빛을 띠면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들에게로 다가가셔서 그들과 이야기를 시작하셨지만 그들은 주님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우울해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삶속에서 평안이 없던 그들의 상황이었습니다.

“눅24:13    그 날에 저희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 오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촌으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저희가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저희와 동행하시나 16 저희의 눈이 가리워져서 그인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그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별다른 효과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고민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둘이 다 자신의 경험하는 일들에 대해서 모르기는 마찬가지 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일에 대해서 해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우울함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슬픈빛을 띠고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비록 그들이 자신의 제자들이었지만 자신을 몰라보는 것에 대해서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그들의 나누는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문제에 대해서 듣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황만 생각하느라 눈이 가리워졌고 예수님을 알아차릴 수 없게 되었었지만, 예수님은 오직 그들에게 집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그들과 동행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삶의 문제를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해서 더욱 듣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은 그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만을 바라는 우리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가 원래 애초부터 생기지 않게 되든지, 아니면 생겼다 하더라도 빨리 없어지게 되기를 바라지 그 문제 속에서 뭔가를 알게 되거나 깨닫게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문제가 생기지 않는 삶이나 문제가 생겼다 하더라도 빨리 해결되는 삶을 원하지 그 문제가 여전히 있는 상태에서 평안을 느끼게 되는 것은 별로 바라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획기적이고 변혁적인 상황과 상태의 변화이지 실제로 아무 것도 변화된 것은 없으면서 그저 마음만 달라지게 되는 것,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럴 때 그속에서 놓쳐버린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었고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주님이 함께 하시지만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아무리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도 내가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떤 것 때문에 주님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어 버립니다.

 

예전에 우리 교회에서 전교인 수련회를 동해안으로 갔다 온 적이 있었습니다. 은혜롭고 감사한 시간을 잘 보내고 교회로 다시 돌아오는데 휴게소에 잠깐 들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밥을 먹고 다시 서울로 출발하는데 갑자기 한 성도님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알고보니 가방을 휴게소에 두고 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막히고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진 터라 도저히 되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방을 두고 온 것을 알게 된 그 순간이후부터 우리는 우울해졌습니다. 중요한 가방이었고 그 가방을 휴게소에다 두고 왔다는 것이 얼마나 아쉬웠는지, 그 가방만 있으면 너무 마음이 편안하였을 것 같은데 그 가방이 없다는 것 그 하나 때문에 모든 수련회에서의 은혜와 기쁨을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수련회 기간동안 받았던 은혜와 기쁨은 바로 그 가방 분실사건으로 인해서 모두 날라가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보다도 가방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우리 삶속에 늘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옆에 계시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현재 눈에 보이는 그것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도 그것이 더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은혜, 기쁨, 감사 보다도 그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그 대상이 더 크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주님은 바로 이러한 물질적인 근거와 세속적인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태양을 보기 위해서는 얼굴을 하늘로 들어야 합니다. 태양을 보려고 하는데 얼굴을 땅을 향하기만 한다면 절대로 태양을 볼 수가 없을 것입니다. 햇빛을 쬐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야 합니다. 햇빛을 쬐기를 원하면서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결코 햇빛을 쬘 수 없을 것입니다.

 

두 제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괴로워하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말씀드렸을 때에 예수님은 그 모든 괴로움에 대해서 주님은 당장 그 모든 상황을 뒤바꾸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풀어주셨습니다.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그 말씀 속에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풀어 설명해주시는 것이 바로 그들의 고민과 괴로움에 대한 해답이 되었습니다. 25절을 보십시오.

“25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주님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을 통해서 성경에 쓰여진 대로 그리스도의 영광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기쁨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실 예수님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원래  그들 자신에게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우리는 이렇게 되리라고 바랐고, 우리는 저렇게 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주된 관심이 우리 자신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 아닌 것이 중요하게 되고 그래서 주님을 놓쳐버리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은 우리의 관심을 다시 돌려놓으십니다. 그 관심이 있어야 할 곳에 있게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구원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관심은 바로 하나님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더욱 알게 되고 주님을 더욱 깨닫게 되고 주님을 더 생각하게 되어집니다. 그속에 비로소 우리와 대화하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깨달아지게 됩니다. 제자들은 바로 그 말씀 속에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정말 주님이 그 영광에 들어가시는 것을 알아서 마음문이 열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런 내용을 자기들에게 말씀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한분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누굴까요? 바로 예수님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32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그들은 말씀속에서 주님이 함께 하셨음을 깨닫고 그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로 엠마오로 계속 가는 것이 무의미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는데 왜 엠마오로 가겠습니까?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마음이 변화될 때에 행동이 변화되었습니다.

“33    곧 그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한 자들이 모여 있어”

진정으로 마음이 평안하다는 것은 엠마오로 가면서도 마음이 평안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만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행하면서도 마음의 평안하게 되는 것은, 또는 그렇게 되리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일 뿐입니다. 진정한 마음의 평안은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히 인식되고 그리고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될 때에 비로소 우리에게는 진정한 마음의 평안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평안 속에서 예수님의 동행하심이 우리에게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에게 설명해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누립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마음의 변화가 생기고 행동의 변화가 뒤따릅니다. 그리고 그 행동의 변화 속에서 진정한 평안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마치 배가 고플 때 밥을 먹고 싶은 것처럼 우리가 본능적으로 찾는 영적인 공급입니다. 평안이 없을 때 평안을 누리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에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평안에 대한 아주 좋은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편18편입니다. 그중에 1-6절을 생각해 봅니다.

“시18:1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4 사망의 줄이 나를 얽고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였으며 5 음부의 줄이 나를 두르고 사망의 올무가 내게 이르렀도다 6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

  시편 18편에서 보여주는 평안은 우리에게 그것이 단지 감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그것은 주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 평안은 관계입니다. 이 평안은 우리가 물질적인 것에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그 평안을 얻고자 할 때에 주님은 우리를 받아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관계 속에서 주님과 함께 동행하도록 주님은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 인도하심을 따라서 나아갈 때에 평안을 얻게 됩니다. 바로 사망의 줄과 사망의 올무에서 말입니다. 가장 평안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평안한 마음을 얻게 됩니다. 사무엘상에서도 아기를 낳지 못하던 한나는 아기를 낳고 나서 평안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기도의 들으심을 깨닫고 나서 평안을 누렸습니다.

“사무엘상 1: 17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18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

아무리 사소한 상황에서라도, 아무리 심각한 상황에서라도 주님을 생각하면서 평안을 누리십시오. 주님의 함께 하심을 생각하면서 평안을 되찾으십시오. 그렇게 얻게 되는 평안은 그 어떤 성경읽기보다 그 어떤 예배보다 그어떤 찬양보다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하나님과 동행하심을 알게 할 것입니다. 지각을 하였더라도, 결석을 하였더라도,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더라도,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예수님이 주시는 그 평안을 잃어버리지 마십시오. 주님은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을 만나셔서 그들에게 평안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제자들에게, 그리고 더 많은 제자들과 함께 그 평안을 허락하십니다.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니”

이 말을 생각하면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평안을 얻게 하십니다. 그 평안은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함으로 이루어지는 평안입니다. 오직 주님과 함께 함으로 그 평안을 먼저 누렸을 때에 다른 여러가지 것들은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평안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고 그속에서 주님을 가장 중요하게 붙들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나머지 것들은 자연히 우리에게 커다란 중요성이 사라지게 되어 버립니다. 그런 다음에 그것들은 ‘되도 그만 안되도 그만’이 되게 됩니다. 주님을 묵상하는 것이 원래대로의 온전한 우선순위를 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나머지 문제들도 적절히 해결됩니다. 한나는 걱정근심이 없었을 때에 아이 사무엘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린 수련회 가방사건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나중에 그 가방은 휴게소 관리자가 찾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소포로 성도님의 집으로 보내주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기다리고 애타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안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모든 일들 속에서 가장 먼저 주님으로 평안을 누리십시오.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로 인해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이 모든 일이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고백하십시오. 그때 여러분 마음에 놀라운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 주님을 먼저 마음에 모시어 들이면 그 다음에 문제해결도 얻고 형통함도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온전한 평안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의 삶속에 긴장과 절망과 두려움의 연속이 아니라 하루 하루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기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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