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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능력] 44행27; 33-37 너희를 구원하시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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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27; 33-37 너희를 구원하시는 능력_1

 

 

 2012.8.26.주. 주일오전, 주제설교-능력

 

*개요   [52능력] {5복음서} <C분석> [5은혜]-[6결심]

 

33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34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인이러라

 

이제 이번 달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생각해볼 시간이 되었습니다. 연속설교를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집중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주제의 반복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에 익숙하게 되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삶에 대한 관심사가 많기는 하지만, 때로는 그 관심사로부터 빠져나오게 되기 위해서 우리는 은혜를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잊고 살았던 가장 중요한 하나님을 삶속에서 다시 생각하고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릴레이 선수가 바통을 놓고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 남편과 아내,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고 직장인이나 가정주부가 되어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다 사라져도 하나님의 은혜만큼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 중에 무엇이든 하나를 붙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중에 우리가 이 달에 보았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그 능력은 우리의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지 한 인간의 소원과 한 인간의 야욕을 자극하고 그것에 쏟아붓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능력을 이해하기 위해서 국가의 능력을 생각해 보십시오. 국가는 몇 억원을 들여서 사회기반시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몇  조원을 들여서 국가기반사업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국가의 능력은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그런 국가의 능력이 개개인에게 원하는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전반적으로 고르게 국민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하는 것이지, 몇 몇 사람의 취미와 취향과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나타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그것은 구원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세상에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고 하나님은 그 구원을 이세상에 나타내십니다. 성령님은 그 구원을 우리가 받아누릴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그러니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이해할 때 우리는 올바르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에서도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풍랑을 만난 배와 그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임했습니다. 그들은 큰 풍랑속에서 열 나흘 동안이나 헤매며 죽음의 공포와 싸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날이 새어가고 있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33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 나흘인즉”

 

만약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한다면 그 능력은 어떤 것일까요? 그 능력은 배와 모든 사람들이 멀쩡하게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지 않을까요? 하나님의 능력은 그 어떤 희생과 손해도 생기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원래 출발했던 그대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아닐까요?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은 임했습니다.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목숨만 건졌을 뿐입니다. 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인 남자 276명이 탈 수 있었던 거대한 배는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목숨만 건졌을 뿐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일 수 있겠습니까?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구원을 얻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합당한 댓가를 치르게 하시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결단코 구원을 얻게만 하시지 않습니다. 그 구원의 놀라운 가치를 알고 그 중요함을 깨닫고 정말 그것을 간절히 사모하였음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희생을 요구하십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얻기 위해서 정말로 버리게 되는 것은, 그리고 버려야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을 버릴 때에 비로소 구원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자신이 얻고 싶은 마음, 가지고 싶은 마음, 누리고 싶은 마음을 버릴 때 그 사람은 참으로 구원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십니다. 그러니 그것이 진정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사람이 자기 욕심을 버릴 수 있게 하시고 그로 인해서 구원을 얻게 하시는 이 놀라운 일은 오직 하나님 만이 행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 많은 것들 중에 하필 ‘욕심’일까요? 왜 하나님은 구원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 욕심을 버리게 하실까요? 왜냐하면 욕심이 사망에 빠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야고보서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모든 욕심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낳게 만듭니다. 영어성경에는 이 표현이 너무나 적절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욕심은 뱃속에 아기로 생깁니다. 그리고 계속 자라나면 결국에는 죄를 출산합니다. 그리고 그 죄가 자라나서 성인이 되면 그 다음에는 사망을 출산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너무나 진실임을 우리는 삶속에서 뼈저리게 보고 있습니다. 왜 죽게 되었나요? 죄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왜 그 죄가 생겼나요?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살려주시는 조건으로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애초에 이 모든 사망을 만들어 냈던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릴 때 주님은 죄로 인한 사망이 아닌 은혜로 인한 생명을 주십니다.

 

애초에 사도바울은 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말했습니다.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하지만 그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욕심때문에 눈앞의 위험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의 욕심이 다가올 사망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지금 당장 유익을 얻고 싶고, 편안하고 싶고, 쾌락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점차 다가오는 사망의 시간을 깨닫지 못합니다. 지금 자신을 유혹하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존경받고 싶은 마음과 지배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을 따라야 하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저버리게 만듭니다. 결국 눈앞에서 사망의 위험을 보고서야 지금까지의 헛된 삶을 후회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죽은 다음에 지옥의 불길을 보고서야 그제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이 욕심의 위험이 얼마나 악한지를 깨닫게 하시고 그것을 버리게 하시는 과정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예전에 그렇게 욕심에 따라서 살아가고 절대로 그것을 버리지 못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붙들릴 때에 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불쌍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장중에 붙들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한번도 해보지 않았고 해보리라고 생각하지도 않던 일을 실행하게 됩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욕심’을 버리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의 장면 속에서도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가운데 그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38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놀랍게도 그들은 밀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이 장면이 놀랍지 않습니까? 당연하다구요? 그런 상황이면 다 그렇게 할 것이라구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런 상황이면 다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배를 가볍게 할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평상시에는 절대로 못할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특별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그런 일을 저절로 할 수 있도록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밀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배를 가볍게 하고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셨나요? 주님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일으키셨습니다. 구름과 안개와 바람을 통해서 주변에 섬이나 혹은 육지를 볼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절박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신 다음에야 비로소 ‘욕심’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밀’을 버리게 하십니다. 쌓아놓았던 ‘돈’을 버리게 하십니다. 빌딩을 가지고 있으면 노후가 편안하다구요? 안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욕심을 버리게 하시기 위해서 그 빌딩을 스스로 버리게 하십니다. 건강하면 만사가 다 평안하다구요? 자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좋던 건강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하십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능력은 왜 그렇게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는 말입니까? 버리게 하시고 가져가시고 사라지게 하시고,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만을 간절히 붙들게 하십니다. 다 버려도 주님만을 버리지 않게 하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구원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환경 때문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은혜만 간절히 붙들 때에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 은혜를 붙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분을 믿고 의지하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34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정말 바울의 이 말을 믿고 따를 때에 그들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의지할 수 있었을 때 그들은 그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흥분하지 않았고 절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차근 차근히 바울의 말을 듣고 배부르게 먹은 뒤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밀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을 받는 길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살아나는 우리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마지막 유혹도 막으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계획이 온전히 성취되게 하십니다. 바울 일행에게서 마지막 유혹은 그 이후에 39-42절에 나옵니다.

“39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41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를 걸매 이물은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고물은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42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이 장면은 거의 구원을 얻게 되는 때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 군사들이 죄수들을 죽이자고 한 위기를 보여줍니다. 항만이 눈에 보이기는 하지만 배가 암초에 걸려 깨어지고 있을 때 죄수들을 풀어놓아 주면 도망할 수 있으니까 아예 그곳에서 죽이자고 한 것입니다. 그 순간 풍랑 가운데서는 살아났지만 사람들에게서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 어려움은 피했는데 저 어려움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 괴로움은 견뎌냈는데 저 괴로움이 나를 죽이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 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계획 때문에 사도 바울 자신도 꼼짝없이 죽임을 당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것을 도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백부장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으니라”

 

우리는 결코 우리 힘만으로 우리 노력만으로 우리 희생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받는 구원에 상응한 댓가를 치루어 드릴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항상 은사요 선물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것 보다도 더 큰 것을 넘치게 주십니다. 원금에 이자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본봉에 보너스를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선물입니다. 구원은 우리에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겠지만, 구원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그 능력이 얼마나 우리에게 축복되는가를 깨달으실 수있을 것입니다. 그 능력을 날마다 사모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능력은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넘치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구성
1.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이다.
2.    하나님은 우리가 욕심을 버리고 진정한 구원을 얻게 하신다.
3.    하나님은 덜 중요한 것을 버리고 더 중요한 것을 붙들게 하신다.
4.    하나님은 마지막 유혹도 막으시고 선한 결과가 이루어지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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