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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은혜] 44행27;18-26 풍랑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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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7;18-26 풍랑중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_1

 

 2015.4.26..주일오전.

 

*개요:    부활의 의미, 4극본, 6서신서, 5결심

[]27: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27: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27: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27: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7: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7: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7: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너무나 분명하지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너무나 희미합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는 등 신앙적인 활동을 할 때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은 너무나 확실하지만 집으로 가서 여러가지 일에 시달리고 세상으로 나아가서 여러가지 평지풍파를 겪다 보면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지 의심스럽습니다. 정말 우리를 위해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는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가 혼란스러워 집니다. 이러한 혼란은 단지 교회와 세상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에 대해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교회 안에서도 역시 이러한 혼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믿는 성도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지, 왜 열심히 하려는 교회가 어려움에 빠지는지, 왜 진실하게 하려고 하면 할 수록 더 외면받는지 이러한 의문이 들 때에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교회를 자신의 오른손에 쥐고 계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서지고 오직 흐릿해지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만이 남게 됩니다.

이러한 고민이 단지 작은 교회에만 해당되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큰교회는 큰교회대로 역시 이러한 고민속에 있습니다. 그속에서는 더 많은 성도들이 생명을 잃고 더 많은 성도들이 병원에 입원을 하며 더 많은 성도들이 이런 저런 개인적이거나 가정적인 일로 괴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큰 교회면 큰 교회일 수록 새로운 사회적인 도전과 세상의 요구사항에 대해서 반응해야 하는 책임을 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어떤 곳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추호도 의심할 수 없는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천국이 아닌 이상, 이 세상에 에덴동산이 아닌 이상, 이 세상은 가시와 덤불이 피어오르고 서로 원수됨이 있고 땀을 흘려야 하고 눈물을 흘려야 하고 마음이 상하고 아픔이 있고 괴로움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로 이 세상이 형통해야 하고 우리 삶의 평안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가를 통해 잘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그들과 함께 함을 믿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생활하던 그 예수님이 자신들과 함께 있었던 때에 함께 탄 배로 커다란 풍랑이 밀어닥치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어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죽으시기 전에도 풍랑은 일어났고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도 풍랑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풍랑 속에서 그 풍랑의 존재 자체로 혼란을 느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일어난 풍랑 속에서 주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의지할 때 그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4장에서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풍랑을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4: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4: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예수님께 의지하면서 당면한 여러가지 혼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뜻이 이해가 가고 마음이 잔잔해지고 평안해집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부활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도 여지없이 풍랑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풍랑은 성경에서 자주 나타나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풍랑은 단지 바다에서 배에 타고 있을 때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속에서도 이러한 풍랑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모든 것이 다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고비 고비에서 어려워보이는 상황이 있습니다. 모든 경기가 항상 이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듯이 우리의 삶도 그런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사도 바울 일행이 경험하고 있는 상황도 그랬습니다.

원래 사도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백부장과 군병들에 의해서 로마로 이송되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소요를 일으킨다는 죄목으로 군병들에게 잡혔고 재판이 진행되면서 로마시민권자였던 그가 가이사에게 상소하면서 로마로 가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로마에서 복음을 증거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러한 주님의 뜻을 따라서 바울은 진행하고 있었는데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러 바울은 더이상 진행하지 말고 잠시 쉬어가자고 했으나 백부장은 선장의 말을 듣고 계속 나아갔습니다. 그래서 뵈닉스라는 곳에 가고자 하였으나 유라굴로라는 태풍을 만나서 그들은 바다 한가운데로 밀려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27: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27: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그들의 손으로 내버리니라

그들은 그 고통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나고자 애를 썼습니다. 짐을 버렸고 배의 기구를 버렸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괴로움은 커져갔고 고통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27:20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

이미 그렇게 고통당하는 시간은 사흘이 지나 여러 날이 되었고(그들은 총 14일동안 풍랑에 떠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되고 나니 구원의 여망은 다 사라져서 완전히 절망한 상태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정도 되면 그들은 사는 것보다 빨리 죽는 것을 더 원하는 상태가 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괴로움 속에서 바울도 함께 고통당하고 있었습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자가 총 276명이었는데 바울은 그들 중의 하나로 함께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속에서 구원의 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7: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라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7: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그는 자신의 말을 듣고 애초에 무리하게 그레데에서 떠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지 않은 사람들은 배를 운영하고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 때 그들은 바울의 말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이제 이 모든 일이 이렇게 커다란 타격과 손상을 입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다시 그들에게 위로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안심시키고 있습니다. 배에 탄 모든 사람들이 짐을 버리고 기구를 버리면서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살아남는 것인데 그리고 그렇게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괴로웠던 것인데 그는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으리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다만 배만 망가질 것이고 생명은 다 구원받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였습니다.

풍랑속에서 모두가 다 좌절하고 절망해 있을 때에 그가 이렇게 자신있게 확인을 가지고 생명을 구원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가 망상이나 잘못된 신념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이 다 잘될거야 라고 주문처럼 말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3,24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27: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7: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는 어제 밤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고 이번 여행에서 생명을 잃지 않고 가이사 앞에 서게 하겠고 함께한 276명의 생명을 다 살리셔서 그와 함께 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이러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풍랑과 괴로움 속에서도 담대하였고 흔들리지 않았고 사람들을 위로하며 격려하며 구원의 소망을 다시 갖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좀 걸리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을 뿐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이전에 사도행전 23장에서 그는 로마에서 주를 증거하리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 이전에 사도행전 18 9절에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말하라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던 주님을 만났습니다. 늘 이렇게 주님을 만나던 사도 바울인데 왜 이번에는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상황에서 더 중요한 더 급박하며 더 절박한 문제에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을까요? 이 문제가 별 큰 의미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에서는 다릅니다. 과연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도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났을 뿐인 상태에서 그 지시하심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을까요?

알고 보면 그도 사람입니다. 그는 신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가 사도요 전도자요 신학자였다 하더라도 그가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에게 부족함이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때가 있습니다. 이제 그때 그는 결정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믿고 따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의심하며 낙심할 것인가. 그리고 그때 그는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듭 태어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도 그러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습니까? 열심히 공부하여 모든 것을 다 배워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더라도 새롭게 등장한 이론에 대해서 해석을 내보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자신만의 확신을 가지고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순간 그가 진정한 박사님입니다. 모든 기초학문을 잘 연마하고 모든 과학기술에 대한 학위를 다 마쳤지만 처음 해보는 인공위성사업을 차질 없이 성공시켜야 하는 최종적인 모든 책임을 짊어졌을 때, 성공에 대한 확신과 믿음을 가지고 그 일을 성공시켰을 때에 그가 진정한 과학자입니다. 아무리 수련을 잘 받았다 하더라도 새롭게 등장한 병과 듣도 보도 못한 환자와 씨름하면서 마침내 그 병을 고치고 환자를 낫게 하였을 때에 그가 진정한 의사선생님입니다. 모든 법전을 외우고 모든 판례를 다 숙지하고 있더라도 새롭게 생긴 중대사건 속에서 제한된 증거의 한계와 사회적 압박감으로 씨름하면서도 마침내 확신있고 지혜로운 결정적인 판결을 내릴 때 그가 진정한 법관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듣는 것처럼 만지는 것처럼 쉽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그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만질 수 없을 때 그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쯤에 하나님이 계실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따라갈 때 정말 하나님은 그곳에 계십니다. 그의 믿음은 틀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27: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7:26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그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확신했습니다.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확신있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안심시켰습니다. 구원의 소망이 사라진 그들에게 부활하신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살리신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가장 구원의 소망이 사라지고 가장 절박하고 가장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그들은 자신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온전히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거짓된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전하여진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이었습니다. 44절을 봅니다.

“[]27:42           군인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그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27:43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27:44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

276명 한사람도 남김없이 그들은 모두 구조되었습니다. 군인들 중의 일부는 죄수가 도망갈 수 있으니 일부러 죽이자고도 하였지만 백부장은 아무도 죽이지 못하게 하고 모두가 다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물에 빠져 죽는 것이 아니라 칼에 찔려 죽는 위험이 있었으나 모두다 살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확신에 찬 권면이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그들 중 일부는 칼에 찔려 죽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랐기 때문에 모두가 다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하나님은 풍랑중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주십니다. 왜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시지 않고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주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친히 등장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이나 하나님의 일군이나 하나님의 종을 보내어주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응답은 온전히 확신하기에는 부족한 면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활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보내신 자가 천사이건 사람이건 그 누구건 간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고 따라나갈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손을 내미시는 것이 아니라 그 손을 잡고 계시는 밧줄을 내려주시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주님을 믿는다면 그 밧줄을 굳게 붙잡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 밧줄을 통해 우리를 당겨주시고 마침내 두 손으로 우리를 잡아주실 것입니다.

깊은 풍랑중에서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도움을 거부하지 말고 그 주님의 허락하신 도우심을 힘입어 일어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이 오늘도 우리의 인생의 풍랑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 주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결코 망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 것이지 하나님의 보내시는 도우심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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