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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은혜] 40마15;25-31 하나님이 들으신 삶의 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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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5;25-31 하나님이 들으신 삶의 소원_1

 

 2015.3.15..주일오전.

 

*개요:    5은혜, 5서신서, 1적용, 4욕구-5은혜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15: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15: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15: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교회이름을 변경한 이후에 우리는 교회 이름에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어색할 때가 있지만 계속 노력중입니다. 소원교회에만 적응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교회표어에도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표어는 신앙과 삶의 소원을 이루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앙의 소원삶의 소원에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자주 들어야지 익숙해질 것입니다. 소원교회는 금방 적응되겠지만 의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신앙과 삶의 소원은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신앙의 소원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삶의 소원을 생각해 볼 차례입니다. 과연 삶의 소원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많은 결핍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뭔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입을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잘 곳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의식주의 문제가 생깁니다. 혹은 그이외에 물질적이거나 비물질적인 결핍을 느낍니다. 장난감이 부족하거나 도구가 부족하거나 사랑이 부족하거나 인기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그 부족이 채워지고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랄 때 우리에게는 바램, 원하는 것, 소원이 생겨납니다. 여유있고 풍족하며 넘쳐날 때에는 어떤 바램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뭔가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결핍이 일어나고 그 결핍으로 인해서 우리에게 소원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바램들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채우심을 받기를 원할 때 우리에게는 삶의 소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소원이란 삶의 여러가지 결핍들을 단순히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채워지고 얻게 되기를 바라는 그 무엇인가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도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신의 딸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때 그 여인은 딸의 문제를 예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 시대에 딸의 문제로 인해서 고통을 받는 수많은 어머니가 있었겠지만 특별히 이 여인이 의미있었던 것은 그가 주님께 도움을 간구하며 나아왔다는 것입니다. 25절입니다.

 

문제의 존재는 도움의 필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그럴 때 이 여인은 주님께로 나아왔고 주님을 통해 그 도움을 얻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문제를 느끼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가장 처음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거니시는 동산에 아담과 하와가 살고 있을 때입니다. 그곳에 그들은 벗었으나 옷이나 집을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을 따로 보관하지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에덴동산에서 어떠한 결핍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 자체로 모든 것이 충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고자 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했을 때 그들은 더이상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죄를 저질렀고 그 죄악속에서 그들이 가까이 한 것은 사탄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 어떻게 사탄이 함께 거할 수 있는가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는 항상 선과 악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이었기 때문에 완전한 악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그 완전한 자유의지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하게 되기를 바라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안타깝게도 악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선하신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가 없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세상으로 나오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그들이 거하게 된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결핍되게 되었습니다.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거할 곳도 없습니다. 유형의 혹은 무형의 모든 것에서 혹독하게 결핍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삶에서 이러한 결핍을 느끼게 되는 때가 있는데 그 때는 바로 집을 떠났을 때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때 자취를 하게 되었습니다. 3이 되었을 때 집이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도저히 집근처 학교로 전학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만 학교근처에서 살면서 자취를 하며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혼자 산다고 했을 때에는 웬지 모를 자유로움에 신이 났었지만 막상 새벽6시에 학교를 갔다가 밤12시에 집에 들어오는 고3수험생활이 시작되니 외롭고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혼자 대충 도시락을 싸서 학교에 가는 것이나 공부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아무도 없는 불꺼진 방에 불을 켜는 것은 참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불편하니 성적도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고 남들은 고3이라고 해서 집안에서 엄청난 후원을 해주는데 혼자 먹고 자고 하려니 황량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풍성하게 살았을 때를 생각해 본다면 밖으로 쫓겨나와서 살아가게 된 아담과 하와는 얼마나 불편하고 괴로웠을까요? 그들은 항상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을까요?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던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에덴동산 밖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에덴동산에는 하나님께서 화염검을 든 천사들을 두루 배치해 놓으셨기 때문에 다시는 에덴동산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이 에덴동산 밖에서 할 수 있었던 일은 오직 거친 삶의 모든 필요에 대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상황이 바뀌어서 에덴동산에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을 기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벌을 받는 자들로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자들로서 다시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와는 첫 번째 아이를 낳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아이를 얻었다는 의미로 그 이름을 가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4 1절입니다.

“[]4: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아담이 하와의 동침하였고 하와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았는데 왜 하와는 내가 하나님으로 인해 아들을 얻었다고 생각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지만 하와가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모든 과정 중에서 하나님을 찾고 도우심을 간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벌을 내리신 분이었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시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그녀가 깨달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예수님께서 매몰차게 대하셨을 때에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15: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예수님이 좀더 친절하게 대해주셨으면 좋았을 것 같지만 사실 이 여인은 지체높은 헬라인 가문의 수로보니게 여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어려운 것은 자존심을 굽히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시험하셨을 때에 이 여인은 겸손하게 예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진심으로 간구하였습니다. 그것은 진실로 예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의 판단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맡기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었습니다. 그것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그 소원에 응답하셨습니다.

“[]15: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네 믿음은 무엇에 대한 믿음입니까? 바로 자신을 긍휼히 여기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은 자기보다 더 높은 자신의 주인이시라는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예수님은 그 소원을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을 통해 자녀의 병이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어머니의 삶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삶의 어떤 결핍을 아뢰고 도우심을 받고자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와도 가인의 출생에 대해서 하나님께 간구하여 들으심을 얻은 것이고 수로보니게 여인도 예수님께 나아와 들으심을 얻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 삶의 문제를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그 들으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삶의 문제들은 내 자신의 개인의 문제와 우리 가정의 문제와 교회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세 가지는 개인적인 영역에서의 삶의 소원입니다. 그리고 좀더 대인적인 영역으로 학교, 직장, 사회의 영역에 대해서 삶의 소원들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영역들이 전부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는 삶의 소원의 문제들입니다. 이러한 삶의 소원을 하나님께 간구할 때에 그것은 문제이기만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또한 목표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단지 현재의 어려움이 해결되기만을 바라는 수동적인 것이지만 목표는 미래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능동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의 소원을 가지고 그 문제 속에서 혹은 목표 속에서 주님을 날마다 바라보며 주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기대하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 있는 문제와 목표로 이루어진 삶의 소원을 하나님 안에서 이루게 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문제와 목표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와 목표를 이루게 하시기 위해서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신 것처럼 우리 중심으로 모든 것이 진행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나 목표로 시작이 되었지만 그 끝은 우리의 문제와 목표의 해결이 아닙니다. 그 끝은 우리의 문제와 목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우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삶의 소원으로 나아올 때마다 사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수로보니게 여인과의 일이 끝난 다음에 어떤 일들이 이어지고 있는가를 살펴보십시오. 29절입니다.

“[]15: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15:30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15:31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을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셨습니다. 거기에서 산에 올라가서 앉으셨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는 다리 저는 사람과 신체장애인과 맹인과 말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말못하던 사람은 말하게 되고 신체장애인은 온전하게 되고 다리를 절던 사람은 걷게 되었으며 맹인은 보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일들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나 동일하였습니다. 이것이 문제를 가지고 온 자들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준다면 지금도 이러한 일들은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바로 목표를 가지고 온 자들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능력을 의지하고 사모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연약함을 통해서 주님의 풍성하심이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3장에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나타나셔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그들은 겉으로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목표도 없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부자라고 생각했고 잘 입었다고 생각했고 잘 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이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목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연약한 상태 그대로 아무 경각심없이 태평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목표를 주십니다. 그래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게 하고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그러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을 내면서 나아갈 때에 비로소 영적으로 부요하게 하시며 영적으로 흰옷을 입게 하시며 영적으로 눈을 뜨게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삶의 소원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 것도 구할 것이 없으면 아무 것도 노력할 것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노력할 것이 없으면 도와주실 수 있는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 어떤 신세도 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면 우리는 마땅히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문제를 그리고 우리의 목표를 들으시고 도와주십니다.

 

미국 남침례교의 저명한 로이 앙겔(Roy Angell)목사님이라는 분이 자신의 교회에 있는 한 집사님의 고백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월터(Walter)집사님이라는 분이었는데 모든 교회일에 솔선해서 수고하는 아주 열심이 있는 분이었습니다. 한번은 로이 목사님이 그러한 성실함에 대해서 혹시 어떤 사연이 있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월터 집사님이 최근에 결혼한 자신의 딸을 위해서 과거에 기도한 적이 있었음을 말하였습니다. 그 딸이 12세때 심하게 앓았고 열이 40도나 올랐다고 합니다. 의사선생님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고 기도를 할 줄 안다면 하나님께 기도를 하시라고 말했습니다. 그밤에 월터 집사님 부부는 함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딸을 다시 맡겨주신다면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은 무엇이나 다 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딸은 무사히 고비를 넘겼고 그 이후부터 자신은 지금까지 하나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기쁨으로 살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것을 보십시오. 스스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개라고 여겼던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신의 딸에게 있던 귀신들림을 고침받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그와는 또 다른 그리스도의 피로 사하심을 받은 그분의 백성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아바아버지라 부르짖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로서 마땅히 삶의 소원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삶의 소원을 올려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들으시고 그 들으심으로 인해서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께 영광돌림을 기대하며 더욱 삶의 소원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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