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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연합] 47고후11; 2-6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양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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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고후11; 2-6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양육함_1

 

 2015.2.1.. 주일예배

 

*개요:    82양육, 2관점, 6서신서, 7실천-8사역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고후]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고후] 11: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옛말에 중매는 잘하면 옷이 세벌이요 못하면 뺨이 석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중매가 어렵고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결혼을 잘못하면 평생 고생이고 결혼을 잘하면 평생 호강합니다. 그 정도로 결혼이 중요하고 또한 만남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주변 사람을 보면서 경험합니다. 그리고 직접 살아보면서 경험합니다. 사람을 잘 만난 사람은 어려움도 이겨내고 즐거움도 온전히 누리지만 사람을 잘못 만나면 어려움도 이겨내지 못하고 즐거움도 누리지 못합니다. 늘 괴로워만 하다가 인생을 허비하게 됩니다. 사람과의 만남이 이렇게 중요한데 이보다 더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사람과의 만남은 어쨌든 인생에서만 유효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은 영원토록 이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려움을 만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되십니다. 또한 즐거울 때에 그것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게 하시는 근원이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중요하고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중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잘 도와주면 하나님께 상을 받고 그 만남을 망가뜨리면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하나님과의 만남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중요한 만남을 성도들에게 이루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습니다. 배우자를 중매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알아봐야 하고 조심해야 하고 설득해야 하고 연락해야 하고 기타 등등의 여러가지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로 중매하는 것도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이 이일을 힘들다고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힘들지만 열심히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로 하나님과의 중매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자각하며 깨닫고 있었습니다. 2절 같이 읽어봅니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중매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헬라어로도 ρμόζω (harmozō)라고 하고 해서 ‘약혼시키다 결혼하게 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바울은 성도들을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을 중매하기 위해 노력하사람들 중에는 옷 세벌을 얻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뺨 세대를 안맞으려고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중매하고 하는 바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 열심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낸다고 하였습니다.

“[고후] 11: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여기에 하나님의 열심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이일을 위해서 열심을 가지고 계시고 그일을 기뻐하신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남편되신 그리스도께로 연결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중매하기 위해서 열심을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을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들기 위해서 애쓰시는 그리스도의 열정과 애쓰심에 대해서 그도 함께 동참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의 열심보다도 그가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열정이 더 크고 강합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성도들이 자기에게로 와서 그 안에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이러한 연합의 관계를 예수님은 간절히 원하시고 그 일을 위해 노력하고 계시기 때문에 바울도 그 주님의 원하시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열심을 내었던 것 뿐입니다. 결혼에 있어서도 더욱 열심을 내는 편은 상대방을 더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간절한 사랑의 마음이 있을 때 중매자도 함께 열심을 내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서 더 큰 열심을 가지고 있는 쪽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와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커다란 열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속에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러한 열심을 내는 결혼으로 우리는 룻기에 나오는 보아스와 룻의 결혼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룻은 모압여인으로서 나오미의 며느리였는데 남편이 죽은 뒤에도 시어머니를 따라서 이스라엘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남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하면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때 그녀가 일하던 밭이 바로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긍휼히 여기고 여러가지 편의를 봐주었습니다. 나오미는 이것을 알고 나서 룻에게 보아스에게 가서 자신을 거두어달라고 말하게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나오미가 중매인의 역할을 한 것이었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말대로 밤중에 타작마당에서 보리추수를 하고 난 다음에 잘 때 보아스가 자는 이불 발치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가 자다가 깨어서 보니 룻이 있었던 것입니다. 깜짝 놀라 자초지종을 물어보는 보아스에게 룻은 자신의 기업을 이어달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대를 이을 수 있도록 결혼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을 사랑하고 긍휼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일을 룻이 나오미에게 알렸을 때에 나오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3:18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보아스는 쉬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가 열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해야할 모든 일을 다 했습니다. 그일이 비록 자신이 생각했던 결혼이나 꿈꾸던 어떤 모습이 아니었을지라도 보아스는 룻을 사랑하여 룻의 기업을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을 다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보아스의 모습은 우리를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신 그리스도의 열심을 깨닫게 합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다 바치셨습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이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무엇을 아까워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열심에 따라서 주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고 주님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도 바울이 열심을 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하나님께로 성도들을 나아가게 하는 과정중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 어려움은 성도들이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나아가지 않고 전혀 엉뚱한 대상으로 바뀌어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분명 하나님께로 인도하려고 하였고 그일을 위해 애를 썼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요? 그 원인은 바로 그들을 미혹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거짓 선지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성도들이 미혹을 받아 하나님에게 나아가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에게로 나아가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것을 걱정하고 근심하였습니다. 2절 끝부분부터 그 말이 나타납니다.

“[고후] 11:2 ...그러나 나는

[고후]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하나님만 잘 따라 나가면 좋았겠지만 성도들은 이상하게도 하나님이외의 다른 존재를 잘 따라갑니다. 이것은 뱀이 하와를 미혹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와가 아담과 함께 하나님께 대한 진실함과 깨끗함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없을 때 뱀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배반하고 거부하면서 하나님을 극복하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선악과를 먹게 된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렇게 이단에 빠져서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함과 깨끗함을 잃어버리고 부패해버리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가 전파하지 않은 다른 예수님입니다. 또한 우리가 받지 않은 다른 영입니다. 혹은 다른 복음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내용과 대상에 대해서 이단이기 때문에 주의하고 조심하여 그로부터 돌이키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 어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저는 등촌동에 갔다가 아주 커다란 교회를 한곳 보게 되었습니다. 그 자체로도 컸는데 계속 성전을 짓고 있었습니다. 교회이름을 보니 예원교회라는 곳이었는데 별로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곳이었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큰데 어떻게 교계에서나 방송에서나 그 이름을 들어볼 수가 없었을까 의아해서 검색을 해보니 다락방이단에 속한 교회였습니다. 이전에는 강서로교회라고 했는데 이름을 바꿨던 것입니다. 그렇게 문제가 많은 교회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에 다닙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이런 저런 이단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단들을 경계하라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교회가 이단이라고 해도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면 그냥 다니고 싶다고 합니다. 이단이라는 말이 끝이 다르다는 의미인데 이렇게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이라고 해도 별로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고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얼마나 부패하는 것입니까? 안타깝게도 이러한 어리석음이 성도들에게 존재합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사탄이 그들을 미혹하기 때문이고 성도는 그 미혹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뱀이 존재했기 때문이고 그 뱀이 하와를 미혹했을 때 하와가 그 미혹을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서 하와와 아담이 부패하게 되고 죄를 짓게 되었을 때 그 죄의 결과는 바로 그들 자신이 감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온전한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그러한 방향에서 사탄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화가 없습니다. 여전히 하와에게 했던 식대로 그런 이단을 통해서 더 똑똑하게 되고 더 유익하게 되고 더 수준높고 가치있는 삶을 살수 있게 될 것 같게 만듭니다. 또한 기존의 방식은 구차하고 비천하게 하며 속이고 어리석게 만드는 것 같이 생각하게 합니다. 이러한 유혹은 지금도 강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신랑되신 그리스도께 신부된 교회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정결하게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달라질 때 다시 같은 예수님, 같은 복음, 같은 영으로 그리스도께 대한 진실함과 깨끗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단교회의 발전을 보면서 저는 허탈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시여기면서 그렇게 정결한 처녀로 하나님앞에 나아가게 하려는 진실한 복음은 이렇게 무력한데 어떻게 이렇게 기존복음과는 차별시 되는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주장하는 이단들에는 어쩌면 사람들이 많이 몰릴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유기농으로 경작된 청정식품을 먹게 하려는 노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비위생적으로 만들어진 불량식품은 사람들이 많이 찾을 때 그것을 고민하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내가 뭔가 문제가 있는가?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나도 뭔가 색다르고 획기적인 방식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도 바울도 아마 이러한 고민을 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고민속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후] 11: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고후] 11: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그는 자신이 말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지식에 부족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습으로 나타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확신은 그 자신이 하나님께 대해서 진실하고 깨끗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말에는 능력이 있지만 지식에는 능력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해서 가까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가고자 할 때에는 오히려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부족함이 결국은 같은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으로, 같은 영이 아니라 다른 영으로, 같은 예수가 아니라 다른 예수로 변질되게 만드는 치명적인 한계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어필할 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연결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사탄의 미혹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올바른 일에 대해서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바다를 건너 다른 나라로 간다고 해보십시오. 그곳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결코 출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분을 소망하고 의지할 때에 우리 자신의 부족함도 넘어설 수 있고 사탄의 유혹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의 사람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진실함과 깨끗함으로 그리스도께 나아도록 양육을 받기 때문에 우리 자신도 역시 진실함과 깨끗함으로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 자신이 대중을 선동하여 세상을 변혁시킨 분이 아니라 대중의 버림을 받아도 세상을 구원하신 분이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진실하고 깨끗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역시 그러한 자로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갔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에 의해서 양육을 받았던 자들도 역시 그렇게 변화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나 여러분들이나 모두 진실함과 깨끗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양육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이 세상에는 어리석을 지 몰라도 하나님앞에서는 진실하고 깨끗한 한 사람의 성도가 됩니다.

교회는 바로 이렇게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도록 양육하는 곳입니다. 교회의 인도하는 자들이나 인도되는 자들이나 우리 모두는 전부 정결한 신부로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자들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변질의 미혹에 굴하지 말고 예수님께 대한 진실함과 깨끗함을 잘 유지하면서 욕심내지 말고 하나님과 더욱 연합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비록 말에는 졸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않았음을 자랑으로 여기며 다른 복음에 흔들리지 말고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그분의 거룩하신 백성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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