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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인내] 43요21; 7-14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의 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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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21; 7-14 다시 찾아오시는 주님의 인내_1
 

 2014.4.27.주.주일오전.

*개요:    64인내, 5복음서, 4극본,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8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11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12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프랑스의 장 리슈펭이라는 시인이 쓴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한 소녀를 사랑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 소녀가 요구했다.

"오늘 당신 어머니의 심장을 쟁반에 담아 가져다 줄 수 있나요?"

그 젊은이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 어머니의 가슴을 찢어 피로 물든 심장을 꺼내고 그리고는 사랑하는 연인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성급했던 젊은이는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심장은 땅바닥에 구르면서 애처로운 소리를 냈다. 그리고 심장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다치지 않았느냐?" - 장 리슈펭(프랑스의 시인)

이 글을 보면서 여러분은 무엇을 느끼십니까?  우리가 정말 느껴야 하는 것은 어머니의 진정한 사랑입니다. 어머니는 비록 자기 심장을 잃어버리면서도 아들걱정을 하였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결코 지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대로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만이 진정한 인내를 보여줍니다. 그러한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과 같은 숭고한 사랑 속에서 발견됩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랑에서는 인내란 발견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이타적이고 긍휼히 여기는 사랑에서만 진정한 인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을 다시 찾으시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놀라운 인내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한없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나타나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습이 겉으로는 별다른 문제가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매우 어색한 상황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 실상이란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알고도 갈릴리 바다로 가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기뻐하였고 또한 그 부활을 통해 예수님을 믿었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마음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에 가있었습니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와 도마와 나다나엘과 야고보와 요한과 또 다른 제자 둘까지 해서 모두 7명은 갈릴리 바다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사실 그들이 이 시점에서 고기를 잡기 위해서 바다로 갔다는 것은 자신들의 부르심을 포기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냥 잠시 바람을 쐬기 위해서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잠깐 나왔다가 자신들의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앞으로의 하나님의 사역과 예수님의 행하심과는 더 이상 함께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낙향의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낙향길을 주도한 사람은 다름아닌 베드로였습니다. 그가 바다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다른 제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전부 그를 따라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그런데 그들은 갈릴리 바다로 돌아갔지만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습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오히려 현실속에서 그들을 기다린 것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낙심과 절망 뿐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도 역시 한때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보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서 실족하거나 낙심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더이상 제자됨을 그만두고 다시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베드로와 6명의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때로 그들은 인사도 하지 않고 떠나갑니다. 그들은 기약도 없이 떠나갑니다. 얼마 후에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대로 움직인다기 보다는 지금 당장 이곳에 있기가 힘들기 때문에 떠나갑니다. 그들은 과거에 교회에서 수고하고 애쓰던 사람들이고 여러가지 일들을 맡아서 일하던 사람들이었지만 그 모든 것들을 버려두고 떠나갑니다. 그래서 더 편하고 더 안락하고 더 재미있는 일을 찾아서 나갑니다. 산에 가기도 하고 바다에 가기도 하고 들로 나아가기도 하고 아니면 집에서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합니다. 그런 모든 일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실생활에서 그들은 제자들처럼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얻어야 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그우먼 이성미씨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는가를 간증을 통해서 고백했는데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예수님을 믿기 전 그의 삶은 의외로 메마르고 공허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호사를 누리며 살아왔었지만 중학교 시절 가세가 기울어 끼니 걱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늘 죽음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현실은 힘들었고 언제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했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후 방송국에 입사해서 개그우먼으로 승승장구했지만 외롭고 허전한 마음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님의 인도로 신앙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떠나서도 잘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예수님을 떠나면 잘 살지 못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것을 알지못하고 세상으로 떠나갔을 때 그들은 춥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아무것도 건져 올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럴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자신을 떠나고 자신의 부름을 버리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서 바다로 돌아가버린 제자들을 찾아오신 선생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처음에 예수님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그 말씀대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을 때에 제자들은 놀랍게 많은 고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놀라서 다시한번 자기들에게 말씀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보는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렸습니다. 해변에 서서 그물을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해변에 서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제자들은 황급히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베드로는 그냥 물로 뛰어들었습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스럽기도 하고 황송하기도 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도 부랴부랴 하던 일을 정리하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해변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놀라운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서 식사를 차려놓으셨던 것입니다.

“9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

예수님이 준비하신 음식에 더해서 제자들이 잡아온 생선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잡은 고기를 세어보니 153마리였고 그중 일부를 식사자리에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이 마련하신 모든 것이 다 완성되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준비하신 음식물과 제자들이 가져온 음식물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가운데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주님을 떠난 자들에게 다시 주님이 나아오시고 그들을 다시 받아주시고 그들을 다시 인도하시고 그들과 다시 이전처럼 교제를 나누시는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시면서 그들을 사랑하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이 모든 교제와 나눔과 교통함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랑 속에서 그들을 인내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교제가 가능했지 만약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면 그러한 교제는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인내는 참으로 놀라운 모습입니다. 우리는 참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번 배반한 사람들, 한번 기대를 저버린 사람들, 한번 마음에 아픔을 준 사람들을 우리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우 자르듯 내어버리며 두부 자르듯 잘라버립니다. 인간관계도 우리는 얼마나 잘 쳐내는지 모릅니다. 인간관계를 붙이기는 어렵지만 쳐내기는 쉽습니다. 우리의 사회에서 우리의 직장에서 우리의 학교에서 모든 관계를 붙이기는 어려워도 쳐내기는 쉽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인내가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왕따가 생기고 소외현상이 일어나고 외톨이가 만들어집니다.

이렇게 관계를 자르는 것이 단지 사회생활에만 국한되는 것일까요? 그렇게 자르고 자르다 보니 가족관계도 단절됩니다. 부부가 서로 관계가 단절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시부모님과 며느리가, 장인장모와 사위가, 사촌과 사촌이, 동서지간에, 형제자매 사이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물론 안보면 편하고 시원하고 후련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로 인해서 조직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지지 않습니다. 한 두 사람이서 무슨 조직이 형성되겠습니까? 삼대가 어울리고 3,4촌이 연결되며 구성되어야 조직이 이루어지는데 그러한 조직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니 결국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를 통해서 더욱 미움이 커지게 됩니다. 그 미움은 자기안에 쌓이는 악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결국에는 자기를 파괴시키고 하나님도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특히 이런 갈등과 분열의 모습이 교회에서 생겨날 때에 우리는 가장 위협적인 대상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사탄입니다.

아기돼지 삼형제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첫째 돼지는 지푸라기로 집을 짓고 둘째 돼지는 나무로 집을 짓고 셋째 돼지는 벽돌로 집을 지었는데 늑대가 쳐들어와 첫째 돼지 집을 부수고 둘째 돼지 집을 부수었습니다.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는 모두 셋째 돼지 집으로 피신해 왔는데 마지막 셋째 돼지 집을 늑대는 부술 수가 없어서 결국에는 물리쳤고 돼지 삼형제는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의 진정한 감동은 벽돌로 집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잘 살았다는 것입니다. 생각과 마음이 틀린 세명의 형제들이 어떻게 함께 잘 살수 있었을까요? 그들에게는 바로 인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인내는 이기심이 아니라 사랑에 바탕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에 바탕한 인내가 바로 그들에게 함께 살 수 있는 상황을 허락한 것입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늑대에게 잡혀먹어버렸을 텐데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함께 살지 않으면 잡혀먹어버릴 수 밖에 없는 영적 환경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사탄을 극복해야 하며 그 노력은 자연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끼리 연합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믿는 사람들과 교회의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쉽게 성도들에게로 그리고 교회에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는 많지만 내가 다닐 교회는 적다고 말할까요? 여기서 이런 문제, 저기서 저런 문제를 발견하니 결국에는 아무곳도 다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제자들이 호락호락한 사람들이었습니까? 주님께 제자들은 100%순종적이고 100%뜨거운 자들이었습니까? 우리가 읽은 마지막 구절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몇번째 나타난 것인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첫 번째는 안식일 다음날 저녁에 나타나신 것이고, 두번째는 팔일이 지난 뒤 도마도 함께 있을 때 나타나신 것이고, 세번째가 바로 갈릴리 바다에서 나타나신 것이었습니다. 부활의 명확성도 설명되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연약함 때문에 그리고 그 믿음의 회복을 위해서 다시 세번째 나타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돌이키게 하시기 위해서라면 주님을 몇 번이라도 계속 나타나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고 양을 먹이기 위해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주님은 그들을 감당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쩌면 마음도 착하고 심성도 순하고 성품도 훌륭한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분위기를 찾아 헤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실은 열악하고 거칠고 투박하며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들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또한 그 인내의 근원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다시 서로를 인내하며 다시 이 상황을 인내하며 다시 사탄을 이겨내며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 성경책을 보고 혼자 기도하며 혼자 신앙생활해서 주님께로 나아오라가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교회를 주셨고 그 교회는 우리가 타고가는 배요, 우리가 타고가는 비행기이며, 우리가 타고가는 버스입니다. 그 교회를 다시 감당하면서 주님을 바라봅시다. 부족한 제자들을 부족한 우리들을 찾아오시는 주님을 생각합시다. 그래서 주님의 인내를 본받아 다시 주님을 바라보면서 인내하며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시 숯불이 피워지고 다시 고기가 구어지며 다시 떡이 익어서 우리가 가져온 것들과 주님이 준비하신 것이 어우러지는 놀라운 화목하고 친밀한 교제가 시작되기를 기원합니다. 그속에서 더욱 믿는 자가 생기고 더욱 일하는 자가 생겨나고 더욱 상급받는 자가 나타나서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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