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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능력] 10삼하7; 8-17 하나님의 영원하신 축복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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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삼하7; 8-17 하나님의 영원하신 축복의 능력_1

 

 2013.8.25.주. 주일오전.  주제설교-능력 

 

*개요   {2역사서} <3분석> [5은혜]->[6결심]

 

8    그러므로 제 내 종 다윗에게 처럼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처럼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데서 취하여 내 백성 스라엘의 주권자를 삼고

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름 같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10    내가 또 내 백성 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저희를 심고 저희로 자기 곳에 거하여 다시 옮기지 않게 하며 악한 유로 전과 같 저희를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루고

12    네 수한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13    저는 내 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

14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것 같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    나단 모든 말씀과 모든 묵시대로 다윗에게 고하니라

 

 

세상에는 많은 성공한 사람들 있습니다. 그 성공 속에는 여러가지 복 있습니다. 그가 타고 난 복과 그가 자라면서 얻은 복, 그리고 그가 열심히 노력했을 때 따라오는 복 있습니다. 모든 복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나타냅니다. 하나는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그 복을 나도 갖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집니다.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복에 대해서 부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은 복에 대해서 관심 없습니다. 그래서 따라하려고도 하지 않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 할 뿐입니다. 자 두 사람 중에서 누가 정말로 복을 받는 사람 될까요? 당연히 복을 부러워하는 사람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또한 복에 대해서 관심 없다면 복 없을 것 같지 않습니까? 복 달아나 버릴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 복을 받습니다. 정말 복을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 받은 복을 부러워한 사람 아니라 부러워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흥부와 놀부 야기를 아십니까? 흥부가 제비다리를 고쳐주고 얻은 박씨에서 엄청난 재물 쏟아지는 것을 본 놀부는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어서 흥부를 따라했습니다. 둘 사에는 큰 차가 없어보입니다. 다만 흥부는 제비다리를 고쳐주었지만 놀부는 제비다리를 부러뜨렀다는 것 다를 뿐었습니다. 다만 흥부가 열은 박에서는 재물 쏟아져나왔지만 놀부가 열은 박에서는 도깨비가 튀어나와서 놀부 부부를 흠씬 두들겨 주었다는 것 다를 뿐었습니다. 복을 부러워했던 놀부는 복을 받지 못했습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흥부였습니다. 놀부의 복을 부러워하지 않았던 흥부가 복을 받은 것입니다.

흥부는 복받기를 원해서 제비다리를 고쳐준 것 아닙니다. 마음 착해서 다친 제비를 고쳐주었고 그로 인해서 박씨를 얻게 되었고 그 박씨 속에서 재물을 얻게 된 것입니다. 렇게 진정한 흥부 놀부 야기의 교훈은 복을 구하려 하지 말고 착한 사람 되어야 한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 놀부를 닮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음식점도 흥부집은 없습니다. 놀부집 있을 뿐입니다. 놀부가 되는 비법, 놀부가 될 수 있는 10가지 방법, 놀부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등등의 자기개발서들 쏟아집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압니다. 놀부처럼 되라고 말하는 것은 대개 다 놀부같은 사람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제 성경말씀은 우리가 복을 부러워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복은 저절로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 축복을 사모한다고 해서 얻는 것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다윗에게 주신 축복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다윗은 흥부처럼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 받은 축복은 세 가지였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 속에서 그가 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세  가지 유가 있습니다. 제 축복을 구하지 않으면서도 축복을 받게 된 다윗의 놀라운 착함 무엇었는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다윗 받은 첫 번째 축복은 ‘네 름을 존귀케 하리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름을 존귀케 만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9절입니다.

“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대적을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세상에서 존귀한 자의 름 같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리라”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 름을 존귀케 만들어 주신다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존귀한 자의 되었고 다윗의 름은 그 모든 대적을 물리치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그 름은 신뢰성을 가졌고 그가 한다고 한다면 루게 되는 결과가 따라왔습니다. 그러면 왜 그는 러한 축복을 받았을까요? 그의 름을 존귀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셨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유가 있습니다. 바로 다윗 하나님의 름을 존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기억나십니까? 다윗 골리앗에게 무엇라고 말했는지를.

“삼상17:45 다윗 블레셋 사람에게 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름 곧 네가 모욕하는 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은 하나님의 름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어떻게 되든지 상관 없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모욕당하는 것을 괴로워했고 하나님의 존귀히 여겨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생명의 위협을 무릅썼고 결국 그 름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바로 복의 원인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름을 존귀히 여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존귀히 여기게 해주심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존귀히 여겼던 기업가의 성공의 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겼던 운동선수의 성공 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겼던 목회자와 평신도의 간증야기를 듣습니다. 하나님을 존귀히 여겼던 그들의 진실한 신앙을 보면서, 우리는 그로부터 오는 축복보다 그렇게 하나님을 존귀히 여긴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마땅히 존귀히 여김을 받으셔야 하는 분십니다.

 

두 번째, 다윗 받았던 축복은 ‘너를 평안케 하리라’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

11    전에 내가 사사를 명하여 내 백성 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않게 하고 너를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

 

하나님은 다윗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늘 대적에게서 시달리던 다윗의 젊은 시절을 생각해 볼 때 는 얼마나 감사한 축복인지 모릅니다. 항상 쫓기고 항상 숨어지내고 항상 도망치던 지난 날 다윗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 모든 대적에게서 벗어나 평안케 하리라고 하십니다. 두 다리 쭉 뻗고 자게 하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요!

자, 제 아까처럼 축복은 어디서 왔는가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 렇게 다윗을 평안케 하신다고 하셨는데, 다윗은 하나님께 대해서 어떻게 했을까요? 다윗은 그 모든 대적들 틈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당장은 먹고 살아야 하겠고, 당장은 목숨을 부지해야 하겠고, 당장은 나부터 살고 봐야 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는 쫓기는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바로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순간에서 그는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삼상24:6 자기 사람들에게 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니라 하고”

 

그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었는데 죽지 않았습니다. 사울왕을 죽면 자기가 편할 수 있었는데 그를 죽지 않았습니다. 그 유는 여호와 하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금하시는 일을 하면 편하지 않지만 그는 그렇게 편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자기가 편하면서까지 하나님의 금하시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은 그를 편하게 해주셨습니다. 다윗 편안의 축복을 얻은 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편안함보다 하나님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편안케 하셨습니다.

 

횡단보도가 저기 있을 때 굳 곳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 편하기 때문입니다. 육교가 바로 앞에 있는 데 그 밑을 꿋꿋 지나는 사람들은 그것 편하기 때문입니다. 휴지통 저기 있는데 그 휴지를 곳에다 버리는 사람들은 그것 편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느 나라를 여행을 했는데 그곳에 관광온 그 나라 사람들은 앉아서 오만 곳에다 쓰레기를 버렸습니다. 서로들 그 쓰레기를 피해서 앉다보니까 결국에는 앉을 곳 없게 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편안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편안하기를 원할 때 신앙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가깝고 시원하고 재미있고 인테리어가 잘되어 있고 편안한 곳을 찾아 헤메다 보면 결국 하나님을 안 찾는 것 더 편안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버릴 때, 모든 대적들 다 좇아 옵니다. 그를 지켜주시던 그 하나님을 버리니 아무도 그를 지켜주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은 편안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지켰습니다. 자신의 불편을 감수했을 때 돌아온 것은 하나님 그와 함께 하셔서 편안하게 되는 것었습니다. 러한 축복의 면에 있는 다윗의 복받을 행동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복 그 자체만을 바랄 것 아니라 어떻게 그런 복을 얻게 되는가를 눈여겨 봐야 합니다.

 

세 번째, 다윗 받은 축복은  ‘네 위를 견고케 하리라’는 것었습니다. 16절입니다.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다윗에게 너의 집과 너의 나라가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놀라운 축복 속에서 그가 얼마나 기뻐했을 지가 눈에 선합니다. 그는 늘 자신의 집과 자신의 나라를 뒤흔드는 삶속에서 살았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시글락에서 그가 모든 것을 잃어버릴 뻔 했던 것을.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의 의지해서 쫓아가서 다 찾아왔습니다.

“삼상 30:8    다윗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군대를 쫓아 가면 미치겠나까 여호와께서 대답하시되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미치고 정녕 도로 찾으리라”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는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다시는 재기하지 못할 뻔 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가진 그였기에 그의 집과 그의 나라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는 것은 너무나 마음속에 와닿는 축복었습니다. 다윗은 한순간에 무너질뻔한 자였기에 견고하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아는 사람었습니다. 

극단적인 사람들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는 것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스스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버려버립니다. 다시는 얻을 수 없게 된다는 것 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냥 다음에 다시 얻을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생각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기가 따먹는 선악과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습니다. 가인은 자기가 아벨을 죽는 것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말을 들었지만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본 롯의 처는 어떤 일 일어날 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세계는 한순간에 몰락해 버렸습니다.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견고해지기를 원했습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그 순간에도 그는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실 견고해지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분입니다. 구원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합니다. 변화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자신의 가정 올바르게 세워지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상담을 받던 어떤 부인 렇게 저에게 물었습니다. ‘왜 저만 렇게 상담을 하면서 애태워야 하지요?’ 그래서 제가 대답해주었습니다. ‘성도님 더 의롭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사람들에게 하나님 필요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물었고 그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늘 제가 달려가면 따라잡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네가 정녕 따라잡으리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래서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쫓아가는 자들에게, 기업을 세우기 위해서 쫓아가는 자들에게,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쫓아가는 자들에게,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쫓아가는 자들에게, 가정을 세우기 위해서 쫓아가는 자들에게, 자신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참된 능력 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그들 견고해지는 비결은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세대가 흘러도 원칙은 변함없습니다. 다윗 견고해진 유는 그가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었습니다. 하나님 그를 견고하게 세우셨기 때문었습니다.

 

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직도 아직도 흥부가 받은 박씨만 보입니까? 다윗 받은 축복만 보입니까? 다윗 의지했던 하나님은 안보십니까? 우리는 정말 보아야 할 것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다윗 받은 축복은 다윗 성전을 짓겠다고 나단에게 야기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본 것처럼 다윗 단순히 성전을 짓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렇게 복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정말로 하나님을 위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짓겠다는 말도 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은 성전을 지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대신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비록 자신 성전을 짓지 못했어도 기뻐했습니다. 하나님 자신의 마음을 받으셨음을 깨닫고 기뻐했습니다.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에게 복받을 일을 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렇게 아무리 작은 것라도 주님께 마음을 드리는 자를 사랑하십니다. 잠8:17절의 말씀은 러한 원리를 너무도 잘 보여줍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니라”

 

성전을 짓겠다고 해서 복받는 것 아닙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는 자가 그 복의 근원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은 복받을 만한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복을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능력을 바라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능력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놀라운 능력을 보여 주십니다. 주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축복을 주실 수 있는 놀라운 능력 있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만 보는 것 아니라 그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 진정으로 주님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흥부의 행동만 따라하다가 더 벌을 받은 놀부가 되지 말고, 진정한 흥부의 참된 착한 마음을 본받읍시다. 다윗 받은 축복만 보지 말고 다윗 바라보았던 그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존귀케 해주시는 축복과, 평안케 해주시는 축복과, 견고케 해주시는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와 같 하나님을 더욱 진실히 의지해서 그분의 놀라운 축복의 능력을 온전히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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