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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결심] 46고전 15;12-20 부활이 없다면 일어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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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고전15;12-20 부활이 없다면 일어나는 일들_1

 

 2015.4.19..주일오전.

 

*개요:    감정,

[고전]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전]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고전]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고전]15: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고전]15: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묵상할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중의 하나는 상상력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은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출생과 성장과 사역과 고난과 죽으심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어려움이 별로 없습니다. 그 모든 일은 전부 우리가 살면서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고 혹은 수많은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능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부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자료를 찾고 근거를 찾아보아도 이 세상에는 부활의 모습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내용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활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는 상상력이 필요해 집니다. 아마 이러이러한 모습이지 않았을까에 대하여서 무궁무진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그 상상이 커지면 커질 수록 과연 실제의 모습이 어떠할까에 대해서는 의혹도 생깁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때문에 믿음이 굳건한 성도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부활을 진심으로 믿고 그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지만 연약한 자들은 바로 그 부활에 대해서 수십번도 더 의심하고 불안해 합니다. 이러한 차이는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출발하느냐에 있습니다. 진실한 신앙인들이 부활의 모습에 대해서 조금의 의심이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부활을 믿는 것은 결코 부활이 경험적으로 믿겨져서가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고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연속선상에서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패러글라이딩은 낙하산을 타고 높은 산에서 아래로 뛰어 내리는 것입니다. 원래는 고지대의 산악을 등반한 후에 하산을 쉽게 하기 위해서 사용했지만 이제는 오직 패러글라이딩을 위해서 산을 오르는 스포츠가 되었습니다. 하늘을 날 수 없는 인간이 하늘을 날아보는 경험을 제공하면서 스릴을 만끽하는 스포츠입니다. 패러글라이딩으로 하늘을 나는 원리도 산에 오르고 그 산에서 패러슈트라는 낙하산을 이용해서 뛰어내릴 때에 하늘을 날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실한 신앙인들이 부활을 믿는 것은 이미 믿음의 산에 올랐고 그 모든 것을 능력으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치 높은 데서 뛰어 내리면서도 바닥에 쳐박히지 않고 오히려 날아 오르는 패러글라이딩처럼 죽으셨으나 3일만에 부활하시고 새롭게 변화되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믿음이 없거나 약한 사람들에게 난데없이 보여지는 부활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일입니다. 애초에 동정녀 마리에게서 태어난다는 것이나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소경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떡 다섯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는 일들을 믿지 못하는데 부활은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믿음이 연약한 자들에게 부활은 마치 평지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통해서 하늘을 날아 오르려는 것처럼 어리석게 보일 뿐입니다. 또는 높은 산에서 뛰어내렸다가 바닥에 쳐박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에게 정말 부활은 존재할 수 없고 이루어질 수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활을 분명히 믿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부활을 따라 우리도 부활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예수님의 부활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우리도 부활하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부활을 믿는 것과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날아 오르는 것과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낙하산을 메고 뛰어 내렸을 때 부활을 믿는 자는 하늘을 훨훨 날아 오를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고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땅바닥에 그대로 쳐박힐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절대로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낙하산을 메고 산위로 올라가지 않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 부활을 믿지 않기에, 낙하산으로 하늘을 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올라가 보아도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부활을 이루기 위한 교육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에 보내는 첫번째 편지속에서 바로 이러한 현실을 간파했습니다. 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중 어떤 이들은 부활을 준비하지 않을까, 왜 그들은 부활을 배우려고 하지 않을까, 왜 그들을 부활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않을까를 고민할 때에 사도 바울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고전]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새 우리도 부활이 없어도 살만한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굳이 부활을 준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부활을 따라 나가기에는 너무나 바쁜 시대가 되었습니다. 혹은 부활하지 않아도 별다른 문제가 없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부활없이 사는 것이 더 좋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누가 굳이 부활을 위해 애써서 주님을 따라나가겠습니까?

하지만 부활은 우리의 정체성이자 삶의 목표입니다. 우리는 그냥 이세상에 정착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한번 왔다가 그냥 없어지기를 바라는 무의미한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는 영원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 세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저 세상에서 영원히 이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서 이런 저런 모양으로 살지만 우리는 저 세상에서 새로운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어질 것입니다. 그곳에서는 오직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만이 영원토록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는 우리가 어떻게 부활을 외면하면서 살아가겠습니까? 어떻게 부활을 부인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부활을 거부하는 자들,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 부활을 외면하는 자들의 생각을 극복해 내어야 합니다. 그 생각에 동참하고 연합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일깨우고 새롭게 하여서 잠자는 자가 아니라 깨어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냥 내버려두어도 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을 돌이켜야 합니다. 그들이 사실 우리 주변에 있는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서 사도 바울은 만약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정말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하였습니다. 비유컨대 우리는 날아오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날아오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한 굳이 날아오를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애써서 날아오르려고 하지말고 그냥 원래대로 살자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그들의 생각을 십분 고려해서 그들의 말대로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봅니다. 정말 부활이 없다면 그래서 날아오르지 못한다면 혹은 날아 올랐다 하더라도 떨어진다면 혹은 아예 날아오르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들의 생각대로 된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까요? 13절입니다.

“[고전]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고전]15: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가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사라지는 것이지겠지요. 원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으로 태어났다가 인간으로 죽으셨을 때 부활이 없다면 그러면서 하나님의 아들은 사라지는 것이 될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그 속에 원래 신적 본성이 있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나서 인간으로 죽으셨을 때 하나님의 신적본성도 함께 소멸한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천국이나 지옥이나 이런 곳이 존재하지 않고 그냥 소멸한다는 의미이니까 우주를 만드시고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셨다가 사라지시게 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지요. 옷을 버렸다고 해서 옷을 입은 사람도 같이 사라지게 된다면 그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이 안되는 가정은 계속됩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시고 그대로 소멸해 버리셨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고 우리의 믿음도 헛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믿음은 그리스도께 근거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그리스도를 통한 생명을 믿는 것인데 그리스도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분을 통한 구원과 생명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애초에 우리가 믿음을 갖고 하나님을 따르고 신앙생활을 하고 생명을 기대했던 그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리게 되어 버립니다. 그리스도의 소멸은 기독교의 소멸이기도 하고 우리가 했던 모든 신앙생활의 소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파국에 대한 생각은 계속 이어집니다. 15절입니다.

“[고전]15: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는데 부활이 없다면 그 증거가 거짓이 되는 것이고 또한 정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고 그냥 죽은 자는 소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않으셨다는 뜻이니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소멸케 하셨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이 계시다는 전제하에서 할 수 있는 말이고 아들이 소멸하게 되는 마당에 아버지가 존재하신다는 것조차 확신할 수 없게 되어 버리니 그것은 어쩌면 세계를 만드신 하나님은 애초에 존재하시지 않으셨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하나님이 계셔서 세계를 만드시기는 했으나 그 모든 것은 소멸을 향해 나아가게 하신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극단적인 생각을 통해서 우리는 부활이 없을 때 우리가 믿었던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리는 충격에 휩싸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파국은 신앙적인 부분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나아가서 우리 자신에게로 이어집니다.

“[고전]15: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고전]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고전]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이렇게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이전에 죽었던 자들은 다 소멸된 것이고 그저 이 세상의 삶뿐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불쌍한 존재입니까? 어차피 죽으면 다 없어질 텐데 무엇하러 애써 살아가며 무엇을 위해 노력하며 존재하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자신의 인생도 믿을 수가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시지 않고 소멸하신다고 생각할 때 우리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고 무가치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렇게 부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자들은 무엇을 위해 사는 자들입니까? 그들은 오직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과 이 세상에서의 향락과 이 세상에서 살아있을 때 즐기는 모든 것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과연 이러한 말이 옳은 말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부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들이 그 말속에서 자신들이 어떠한 자들인가를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부활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자들도 역시 그 말속에서 자신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만을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그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고 사실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결정적으로 현재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존재하심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과 그 현상들로 인해서 존재하는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에 대한 그리스도의 능력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건물의 전체 전원이 꺼지면 그 안의 모든 전기제품들이 작동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데 안의 모든 전기제품이 계속 작동을 하고 있다면 분명한 것은 건물의 전원이 꺼져있지 않다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증거가 됩니다. 성경은 이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을 믿을 때에는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그럴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소멸하신 것도 아니고 잠자는 자들도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며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고 그리스도처럼 부활하게 되었으며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하게 됩니다. 부활 속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여전히 다스리고 계시며 선한 자와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그 중에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자들은 은혜로 구원하시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존재할 때에 우리의 증거도 확실하며 우리가 거짓말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도 그럴 때 의미가 있고 그럴 때 우리가 죄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럴 우리가 가장 행복한 자들이 됩니다!

 

자 이제 부활은 우리에게 있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러니 그 부활을 향해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치 하늘을 날아오르기 위해서 낙하산을 짊어지고 한걸음 한걸음 높은 산을 향해서 부지런히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부활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서 부활을 알아가고 부활을 연습하며 부활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이상 평지에서 일상생활에 안주하는 자들이 아니라 산 위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리스도와 함께 날아오르는 자들이 됩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부활을 고백하며 부활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자들과 같이 부활을 부정하며 부활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언젠가 내게 찾아올 그 놀라운 부활이 가장 영광스러운 부활이 되도록 날마다 준비하며 되새기며 확신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부활의 자녀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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