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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덕행] 45롬14; 17-21 하나님의 나라와 덕을 세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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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4; 17-21 하나님의 나라와 덕을 세우는 일_1

 

 2014.11.2..주일오전.

 

*개요:    75덕행, 4극본, 6서신서, 6결심-7실천

[]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 14: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 14: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 14: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한 예화가 있습니다. 치열한 전투에 참가했던 두 사람의 군인이 기차를 타고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젊은 사병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나이많은 상사였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젊은 사병은 쾌활해 보였습니다. 그 옆에는 기독교인 노동자가 함께 타고 있었는데 그는 그 젊은 사병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당신이 전쟁터에서 돌아오고 있는데 무엇이 그렇게 행복하고 기쁩니까?’ 그 젊은이는 , 그이유는, 제가 커다란 유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커다란 유익이라니요, 그것이 무엇인가요?’라고 기독교인 노동자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젊은 군인이 말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했습니다. 한창 전투중일 때 과거에 배운대로 그리스도를 의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출을 받았고 그 이후 그분 때문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왔다면 상당히 심각한 모습일 텐데 그는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곳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전쟁에 못지 않는 갈등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미래에 가고자 하는 천국도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는 것이지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기 자신의 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어서 하나님의 나라요, 천국인 것이지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곳이 아니라면 그곳은 하나님이 없는 곳이고 하나님이 없는 곳은 지옥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는 우리들은 사실 미래에만 그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평안할 때만 그 나라를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괴롭지만 그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찾으며 만나기를 학수고대하는 곳,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로마서 말씀은 그 하나님의 나라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헬라어 원문 성경에서 의는δικαιοσύνη [dikaiosynē]이고  righteousness를 의미합니다. 평강은ερήνη [eirēnē] 이고 영어로 peace입니다. 희락은χαρά [chara]이고  joy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먹는 것(βρσις [brōsis]--meat)과 마시는 것όσις [posis]--drink)과 비교해 본다면 그 의미는 분명해집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은 결코 그 자체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노력을 하고 실천을 해야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meatdrink 는 그냥 다 되어 있는 것이고 더이상 무엇을 해야할 필요가 없지만 하나님의 나라로 설명되어져 있는 righteousnesspeacejoy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노력을 할 때에 그제서야 비로소 나타나는 것들이 됩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은 전부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즐기는 것이 아니라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성경말씀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먹는 것, 마시는 것에 국한 한다면 진정한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보여주는 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임을 안다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노력의 방향이 전혀 달라집니다.

 

작년 여름 저희 가족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무척 싸게 나온 콘도를 예약하고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값싸고 좋은 곳을 예약했다는 즐거움에 기쁜 마음으로 숙소에 도착했는데 방에 들어가 보니 너무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방도 허름하고 주방에서 냄새가 너무 났습니다. 일단 제가 가족들의 원성을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무조건 싼 것으로 해서 여름휴가를 망치게 되었다고 원망을 받았습니다. 저도 당황스럽고 미안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열악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부터 남은 3일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한방에 모두 모여서 이야기를 하거나 게임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평소같으면 각 방과 거실에 따로 떨어져서 자기의 일을 했을 텐데 방은 허름하고 주방은 냄새나는 상황이어서 정말 큰 방 하나에 모두 모여서 계속 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면서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하다 보니 재미가 있었습니다. 결국은 3일 내내 같이 모여있으면서 이전 어떤 때보다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주어진 열악한 상황으로 인해서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이었다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안좋은 시간이 되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위로하는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루려고 하니까 서로간의 문제와 약점과 실수를 끄집어내어서 그것으로 물고 뜯고 씹고 삼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의 희락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14:19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여기서 덕을 세우는 일은 헬라어로 οκοδομή [oikodomē]라고 하고 영어로 edify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교육, 훈육, 건덕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덕행이라는 실천을 찾을 수 있습니다. ‘덕행은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것으로 비난하고자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덕을 더욱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렇게 의와 화평과 희락을 누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덕을 세워서 각 사람이 진정한 의를 나타내고 진정한 화평을 누리고 진정한 희락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기 때문에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굳이 화평하게 하려거나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 우리는 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쓸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화평하려고 하지 않고 덕을 세우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겠습니까?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세상 나라일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배웠지만 성도들의 잘못과 어리석음과 부덕한 부분에 대해서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의를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불의로 채워지는 교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평강을 이루려는 것이 아니라 분란과 갈등만 조성되는 교회의 분위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덕행이 넘쳐나는 곳이 아니라 날마다 비난과 질책만 난무하는 교회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곳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가장 세속적인 세상 나라를 구현하는 곳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삶속에서 우리에게는 늘 부족한 먹을 것과 마음에 들지 않는 마실 것과 성에 차지 않는 앉을 곳과 편하지 않는 거할 곳이 있습니다. 항상 먹을 것과 마실 것과 거할 곳이 넉넉하면 의도 이루고 평강도 누리고 희락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불의와 갈등과 슬픔은 전부 먹을 것이 없어서 마실 것이 없어서 거할 곳이 없어서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먹을 것이 많고 마실 것이 많고 거할 곳이 많은 그런 장소와 환경을 찾아가서 한번 경험해 보십시오. 정말 그러한가요?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얼마나 풍성한 삶을 살고 있느냐가 아닙니다. 진정한 핵심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할 때만이 비로소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합니다.

 

지난 99회 합동총회에서는 특별히 3개의 교회에 관한 문제가 총회에서 논의가 되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제자교회와 광명에 있는 광명동산교회, 그리고 광주에 있는 광주중앙교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3개 교회는 전부 교회성도가 두쪽으로 갈라져서 서로 갈등 중에 있습니다. 전부 큰 교회이다 보니까 본당과 교육관으로 나뉘어서 본당측과 교육관측으로 명칭을 가지고 서로를 고소고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해결은 쉽지 않아서 계속 갈등과 분쟁 중에 있고 원만한 해결을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걸릴 전망입니다. 이 경우를 생각해 보아도 오히려 먹을 것이 많고 마실 것이 많고 거할 곳이 많아도 하나님의 나라의 의와 평강과 희락은 사라진지 오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각 사안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의 교회 분쟁의 시작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세상의 물질적인 유익을 생각할 때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그 나라의 평안을 누리며 덕을 세우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욕심을 버려야만 합니다. 20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 14:20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말씀의 배경이 되는 그 당시 우상숭배를 하던 로마사회에 있어서 고기는 대개 우상의 제물로 바치어지고 난 다음에 사람들에게 판매되었습니다. 그래서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우상제물을 먹는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우상제물을 먹는데 거리낌이 있는 성도가 있었고 자유스러운 성도가 있었습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마신다는 것은 포도주를 먹는 것이었습니다. 음료용으로 포도주를 먹는 일에 있어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었고 그것이 술취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먹을 것이냐 말 것이냐, 마실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기 위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세우시는 사람들을 더욱 온전하게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의 희생이 따라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상제물과 포도주를 거리끼는 자들에게 좋은 모범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업이 무너지게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우리의 필요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려고 하는 것을 더욱 우선할 때에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만물이 다 정하기는 하지만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상제물과 포도주의 문제는 사라졌지만 새로운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주장할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일어납니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 자신이 마시고 싶은 것, 자신이 누리고 싶은 것을 주장할 것인가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그것을 포기해야하는가와 씨름하게 됩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이 기호나 선호에 대한 것을 다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포기하거나 변경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하자면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 됩니다. 바로 나 자신부터 행할 수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 14:21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자신에게는 굴레가 되고 올무가 되는 것이라고 느껴집니다. 나의 자유가 다른 사람의 존재때문에 억압받는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 세상은 얼마나 우리에게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을 행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래서 오히려 이러한 말씀에 거부감을 갖고 정반대로 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결코 이런 것을 가르치시지 않았고 아무도 두려워말고 아무도 의식하지 말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운다는 것은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게 너무 시끄럽게 떠들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지 않게 너무 티내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하지 않게 너무 자랑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되지 않게 너무 기뻐하지 않는 것 등등은 전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서 가르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르치는 우리 자신이 당연히 그러한 덕을 세우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를 바라보는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믿으며 하나님 안에 잘 거하면서 근실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고 우리는 고기를 먹고 우리는 포도주를 원하는 대로 먹으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기를 먹지 말고 포도주를 먹지 말라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덕을 세우지 못하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덕을 세우라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우리 자신의 얻고자 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원정 중에 있었던 일화입니다. 열사의 사막에서 장군 한 명이 오아시스에 가서 가죽 주머니에 물을 한 주머니 가져와서 알렉산더 대왕에게 바쳤습니다. 알렉산더가 그 물을 입에 가져가려고 하는데, 주위의 장졸들이 '! 대왕은 물을 마시는구나!' 하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알렉산더는 부하들의 이러한 감정을 느끼고 "나 혼자 물을 마실 수 없다. 우리 같이 전진해서 다 함께 물을 마시자" 하며 아까운 물을 마시지 않고 모래 바닥에 그대로 버렸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신의 나라를 추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나라를 추구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함락한 다음 자신만의 외투를 훔쳤던 아간과 같은 자들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기뻐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먹는 것, 마시는 것에 몰입하지 않고 오직 의와 평강과 희락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덕을 세우고자 합니다. 그렇게 덕을 세우고자 노력하는 것은 바로 자기의 원하는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정말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던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진정한 오아시스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펼쳐집니다.

“[] 14: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자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룬 자들입니다. 하나님께 기뻐하심이 있지만 사람의 칭찬은 없는 자들이 아닙니다. 사람의 칭찬은 있지만 하나님께 기뻐하심이 되는 일이 없는 자들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심과 사람의 칭찬이 다 있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우리 자신의 욕심을 포기하고 덕을 세워나갑시다. 그것은 결코 허비하거나 무익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의 목표를 우리 각 사람이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일을 위해서 함께 노력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각 사람의 삶의 희생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에 넘치게 임하게 되는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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