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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경건] 40마13; 47-52 천국의 제자들의 경건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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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3; 47-52 천국의 제자들의 경건의무_1

 

 2014.10.26. . 주일오전.

 

*개요:    74경건, 3분석, 5복음서, 5은혜-7실천

[]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 13:50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 13: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 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은 경건을 위해 노력합니다. 그리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술이나 담배나 기타 악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관용하고 인내하며 긍휼을 베풀고자 하는 것은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서 돌아보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한 경건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보고 예배드리고 교회생활과 및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신앙생활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이룰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본다고 한다는 자들이 이러한 경건의 모습을 이루지 않을 때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습을 이루려고 애쓰는데 잘 안되는 것과 아예 경건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경우입니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데 잘 안되는 학생과 아예 공부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학생이 전혀 다른 것처럼 경건을 이루려고 마음은 원이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잘 못하는 것과 처음부터 왜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노력하면서 우리들은 발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경건을 포기한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왜 아예 경건을 포기했을까요? 대부분의 이유가 그 경건을 힘들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삶이 어렵고 힘들 때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먹고 살기가 힘든데 어떻게 경건을 생각할 수 있겠느냐고 말합니다. 지금 이런 저런 고민이 많아서 강퍅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어떻게 경건을 위해 노력할 수가 있겠느냐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건은 아주 시간이 많고 아주 돈이 많고 아주 편안한 삶을 살고 있을 때에나 가능하지 지금 현재의 상태로서는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나 경건생활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팔자편한 소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지금은 삶이 힘들어서 하나님 나라까지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의미를 모를 때 가지는 생각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어렵고 힘들 때 빛이 나는 것입니다. 경건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울 때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의 가치, 천국의 잠재력, 천국의 결실 등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천국을 설명하신 것은 천국의 단순한 한 가지 면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딱히 한가지 측면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이유는 그 나라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하는 것은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같습니다. 늘 부분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님이 코끼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 부분을 만져볼 때입니다. 자기가 만지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에 어느 정도 코끼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오늘 본문말씀에서 주님은 천국의 모습을 말씀하실 때에 이전과는 또 다른 천국의 구별성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주제인 고난과 역경속에서 경건한 사람과 경건하지 않은 사람이 구별된다는 의미였습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들이 구별되어지고 있으며 그 본질이 평가되어지고 있었습니다. 본문 말씀 47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여기서 그물이란 헬라어로σαγήνη(sagene, a large fishing-net, 대형그물망)였습니다. 이는 배와 배가 끄는 아주 커다란 물고기 그물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그물이란 말로 헬라어로δίκτυον(diktyon, net, 작은 그물)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개인이 던지는 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그물은 개인이 다루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커다란 상황이나 분위기의 의미였습니다. 그래서 47절에 나오는 그물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 주석가들은 말세의 심판이나 혹은 교회의 복음전도 등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면서 그 나라에 대한 경건을 생각할 때에 이 그물의 의미를 좀더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그물에는 각종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그 물고기들이 잡힌 것입니다. 각종 물고기는 더 자유롭고 활발하게 다닐 수 있었지만 그물에 매여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물 속에서 정말 좋은 것과 못된 것이 구별되었습니다. 그물이 아니었다면 그런 구별을 하기가 어려웠겠지만 그물 속에서 오히려 좋은 것과 못된 것이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우리가 먼 미래에 만나게 될 최후의 심판을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로 지금 현재에서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이나 상관없이 모두가 함께 만나게 되는 그물이란 바로 고통과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어려움 속에서 과연 어떠한 모습을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럴 때 정말 좋은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쁜 것도 알게 됩니다. 겉으로 볼 때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려움이 당해보면 정말로 하나님을 찾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지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로서 편안할 때만 하나님을 찾기 되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어려울 때에는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모든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목표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럴 때 더욱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것은 그물처럼 우리를 구별하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 우리에게 주어졌던 환경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바울은 실라와 함께 마게도냐로 전도여행을 떠났습니다. 특별히 마게도냐로 떠난 것에 의미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울이 밤에 마게도냐 사람이 우리를 도와달라고 청하는 환상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하고 기쁜 마음으로 소아시아로 가려는 마음을 버리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그중 한 곳인 빌립보라는 곳에서 자주장사 루디아를 만나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가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또한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이 하도 복음증거하는 것을 방해하길래 그에게 있던 귀신을 쫓아내는 것까지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그 여종의 주인이 더이상 점을 칠 수 없게 되니까 바울과 실라를 모함해서 관원들에게 신고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잡혀 매를 맞이 맞고 옥에 갇히게 된 것은 아주 안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행했는데에도 말입니다.

하지만 바울과 사울은 그로 인해서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진정한 그들이 섬기는 자가 누구이며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나라가 무엇인지가 나타났습니다.

“[] 16: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 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바울과 실라는 가장 힘들고 어렵고 괴로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를 실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들이 깊은 옥에서 발이 착고에 든든히 채워졌을 때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을 때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그저 상황이 이렇게 변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뿐이지만 그들이 보여준 하나님께 대한 지극한 신뢰와 깊은 충성스러움은 바로 그 순간에 다른 모든 죄수들이 경험하게 되는 놀라운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었습니다. 다른 죄수들은 놀라움과 경이로움 속에서 그들의 찬양을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상황이 어려워서 기도할 수 없었고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에게는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기도하는 것이고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고난과 괴로움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그나라를 잊어버리게 만드는 이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을 준비하고 경건을 연습하고 경건을 목표로 하는 모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힘들고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정의란 다 다릅니다. 이 사람에게 힘든 것이 저 사람에게는 힘들지 않을 수 있고, 저 사람에게는 힘든 것이 이 사람에게는 힘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가사를 돌보는 것이 남편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괴로움이겠지만 아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바깥에 나가서 일하는 것이 아내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지만 남편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이든 자기에게 괴로운 것이 찾아온다는 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여지없이 그물에 갇히게 됩니다. 두려움이 생깁니다. 절망이 찾아옵니다. 화가 납니다. 이렇게까지 상황을 만든 모든 사람이나 환경에 대한 미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럴 때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골라내는 기준이 됩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때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나라를 이루고자 하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입니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난 뒤에 장애인아시안게임이 열렸습니다. 장애인들이 각 나라의 국가대표가 되어서 여러가지 종목들에서 경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정상인들보다 더 열악한 환경속에 있습니다. 하반신 마비가 된 분들도 있고 손을 쓸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혹은 정신지체로 연약한 상태에 있기도 합니다. 그 모든 장애의 상태는 태어난 뒤의 사고나 혹은 날 때부터의 문제로 생긴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 그런 장애를 가지게 되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것으로 생의 소망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아시안게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정상인들보다 더 나은 자들이었습니다. 장애라는 어려움을 딛고서 더 나은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는 그들은 단순히 어려움이나 괴로움 속에서도 쉽게 쓰러지는 보통 평범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노력과 애씀에 대해서 각자 나름의 충분한 보상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경기성적으로 혹은 대회참가에서의 보람으로 그들 모두가 그 대회에 참가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여러가지 어려움이란 사실 한도 끝도 없습니다. 10대에서나20대에서나 30대에서나 그 이후 어떤 세대에서도 우리는 항상 어려움을 갖게 됩니다. 지금 각자의 세대에서 지금까지 겪었던 모든 어려움이 있겠지만 앞으로 겪게될 또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더 나이가 들게 되면서 더 생활이 발전되면서 문제는 생깁니다. 이미 문제가 생겼다면 바로 지금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이고 아직 문제가 안생겼다면 앞으로 문제가 생길 때가 바로 주님을 의지할 때입니다. 그때는 지금까지 했던 모든 경건과 모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과 모든 하나님께 대한 선한 마음을 총동원해서 그 문제속에서 주님을 의지하여 어려운 때를 넘어야만 합니다. 우리는 바로 그 모습에 따라서 좋은 자들과 나쁜 자들로 구분되어집니다. 49,50절을 보십시오.

“[]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 13:50            풀무 불에 던져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세상 끝에 하나님이 부리시는 종들인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냅니다. 그물에 걸린 여러 물고기중에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골라내는 것처럼, 사람들이 흔히 말세라고 말하는 세상의 끝에 어렵고 힘들고 괴롭고 슬픈 그 시기에 천사들은 더욱 두드러진 악인들을 의인들과 갈라냅니다. 의인들을 찾아보기 보다 악인들을 찾아보기가 더 쉬워진 그 때에 무정하며 무자비하고 강퍅하고 자기중심적인 그 악인들을 구별해서 그들을 풀무 불에 넣어 심판을 받게 합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지 않았다고 해서 심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세상 나라를 구하고 세상 나라와 짝하고 세상 나라 속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분명히 아시고 그들에 대해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면서 나타내시는 엄위로우심과 공의로우심에 대해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신앙감정론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아주 지혜로운 임금이, 충성된 신하인 척하면서 임금을 전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하고 이런 저런 때에 그런 사랑을 느꼈다고 말하며 임금을 향한 충심이 생겼다고 고백했기 때문에 임금이 자신을 가장 신뢰할 만한 친구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상 줄 것을 기대하면서도, 실제로는 임금에 대한 반역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임금의 왕위를 찬탈하고자 하는 자를 따르며 때때로 임금을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키는 그런 사람에게 속아서 좌절을 겪을 것인가?

또는 어떤 지혜로운 주인이 그 주인을 많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척하고 주인의 친절함과 자비를 크게 깨닫고 있는 척하면서도, 동시에 주인에게 순종하기를 거절하고 섬기려고 하지 않는 종에게 속아서 수치를 당하겠는가?" 

당연히 그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알고 있기에 그분을 만홀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분을 존중하고 섬기면서 주님을 따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경건을 쌓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나를 하나님 백성 삼으심에 감사하여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고자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그나라를 사모하며 살아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 13: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 13:52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 것과 옛 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이 모든 천국에 대해서 설명하시고 제자들이 잘 깨달았다고 대답했을 때 예수님은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구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갑자기 서기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서기관은 바로 지금까지 이 천국의 비유를 들었던 제자들입니다. 또한 우리들입니다. 그들이 바로 천국의 제자들입니다.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전문가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서기관은 사실 성경말씀을 다루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때에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님은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어오는 집주인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새것(καινός,  kainos: new things)과 옛것(παλαιός , palaios: old things)에 대해서 어떤 주석가들은 구약과 신약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고 어떤 주석가들은 과거의 전통과 새시대의 변화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의 주제인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는 자들의 경건한 삶속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것은 여러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다 보물곳간(θησαυρός [thēsauros], treasure)에서 나오는 것들이었습니다. 전부 다 소중한 것이고 그것을 내어오면서 천국의 기쁨을 맛보는 자들이 바로 천국의 제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경건 속에서 우리는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하려고 하는 이유는 절대 우리를 높이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려는 의지입니다. 여러분의 삶속에서 경건하십시오. 기도하시고 성경을 읽으십시오. 예배를 드리고 신앙의 교제를 나누십시오. 절제되고 구별된 삶을 사십시오.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사랑을 베푸십시오. 그러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여러분들을 통해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목표로 살아나가서 언젠가 맞이하게 될 그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를 바로 현재의 이 세대에서 바로 여러분의 삶속에서 누리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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