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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양선] 43요 9;4-12 나를 보내신 이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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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4-12 나를 보내신 이의 일_1

 

 2014.6.29..주일오전.

 

*개요:    66양선, 5복음서, 4극본, 5은혜-7실천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12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우리가 선을 행하는 것은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선을 행할 때에 이 세상은 우리가 지극히 선한 분이신 하나님을 닮은 자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선을 행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 선을 행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증거되어집니다. 하나님 안에서가 아닐 때 선함이 나타나는 것은 그저 이 세상이 아직은 살만하구나 정도의 이해가 될 뿐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선을 이룰 때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닮아 선을 행하게 되는 것을 주님은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을 닮아 선을 행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4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행한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닮은 모습으로 하나님의 행하시는 선을 따라서 행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며, 우리가 실천하기를 원하시는 선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이 그일을 행하셨고 이어서 우리도 그렇게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하는 것이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행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처럼 소경의 눈을 고치는 일을 하는 것일까요? 우리에게는 그런 초현실적인 능력이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일을 행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속에 진정한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어떤 일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주셨습니다.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그가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에 따라서 가서 씻고 보니 눈이 떠졌습니다. 앞을 보지 못했던 어두웠던 눈이 앞을 볼 수 있게 되는 밝은 눈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실로암 못의 이름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냄을 받았다라는 뜻이었습니다. 보냄을 받았다는 것은 아까 보았던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소경은 자신을 보내시는 예수님이 하라고 하신 그대로 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놀랍게도 눈이 떠지고 밝은 눈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 순종이라는 선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 계획은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경은 그 계획에 순종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으로 거부하거나 불순종하지 않고 그대로 주님의 일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그가 행한 첫 번째 선이었습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말을 잘 안들을 때마다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청개구리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부모의 말이라면 덮어놓고 반대로만 하던 청개구리가 있었습니다. 그것때문에 고생했던 어머니는 죽으면서 산에 묻히려고, 자식에게 반대로 냇가에 묻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불효를 뉘우친 청개구리는 유언대로 냇가에 묻었습니다. 정작 중요한 때에는 하라는 대로 했던 것입니다. 그 뒤 비가 올듯하면 무덤이 떠내려갈 것이 걱정되어 슬프게 운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말안듣는 자녀를 빗대어 청개구리같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런데 요즘 자녀들은 청개구리가 아닙니다. 황소개구리입니다. 하라는 것을 안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려는 것만을 하고자 합니다. 부모님들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청개구리같이 살때가 있었지만 점차 황소개구리같이 삽니다. 하나님이 감당을 하지 못하실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모든 불신앙과 어리석음의 죄가운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선은 순종입니다. 그 순종은 나중에라도 자신의 불효를 깨닫고 말씀을 듣고자 생각했던 청개구리이야기처럼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이루어야하는 모습입니다. 그것을 이루는 것이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어주신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대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선인 것입니다. 그 선을 이룰 때 우리에게 계획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이루어집니다.

 

이제 소경은 실로암으로의 보내심을 받고 그곳에서 눈을 씻음으로써 눈이 떠졌습니다. 그런데 그가 행해야 하는 선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이 나았지만 그 이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그가 경험한 일의 의미를 물어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8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9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10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이것은 요한복음 5장에서 베데스다의 병자가 들었던 말과 동일합니다. 지금도 믿는 자가 순종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이루게 되면 당장 사람들은 그 비결을 묻습니다. 공부를 잘하게 되면 어떻게 공부를 잘하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취직을 하게 되면 어떻게 취직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합격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합격을 할 수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그렇게 삶의 어려운 일들을 이루었을 때 사람들은 관심을 가집니다. 그래서 이 소경도 그와 관련된 질문을 받았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11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는 그 모든 된 일을 있는 그대로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진실이었습니다. 이 소경되었던 자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온전히 증거하였고, 그것은 예수님께 영광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베데스다의 병자가 말했던 것처럼 누가 나를 고쳐줬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예수님이 자신을 고쳐주셨음을 올바르게 고백했습니다. 그것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해서 스스로 한 것이었습니다. 아는대로 믿는대로 그대로 고백하는 것은 결코 타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까 우리가 본 청개구리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고전설화입니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이 중국고전에 나옵니다. 중국 당나라 이석의 <속박물지>라는 책에 이 내용이 실려있습니다. 또한 일본에도 비둘기와 부엉이로 변화된 비슷한 설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동양적인 사고 속에서는 시키는 대로 하기를 원하는 가치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유럽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의 뜻을 어긴 독자적인 행동이 오히려 더 큰 결실을 거두게 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재크와 콩나무, 백설공주, 피노키오 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분명한 문화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한 차이 속에서 새삼 강조되는 것은 의지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두 번째 선입니다. 우리가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에 대해서 올바르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며 그러한 증거를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이랜드 그룹의 박성수 회장의 일화입니다. 1997년도의 외환위기는 기업들에게 너무나 힘든 시기였습니다. 30대 그룹 가운데 절반 이상이 사라지고 1980년 이후 생긴 수십 개 그룹 가운데는 이랜드 회사를 포함,단 두 개만 살아 남았다고 합니다. 당시 그의 회사는 외국인들이 투자를 결정해 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1차로 5억달러를 들고 왔는데 그 회사 외에는 1년간 투자를 더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박성수 회장이 그들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회사는 모두 헐값이어서 당신들에게는 매우 좋은 기회일 텐데 왜 사지 않고 있느냐. 그들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우리도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소. 그래서 이미 좋아 보이는 수십 개 회사를 방문해 투자를 하려고 했소. 그러나 조사 결과 모두 장부가 두 개라서 투자를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회사는 장부가 하나였기 때문에 그들이 투자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회사가 장부를 하나만 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회사를 운영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은 정직하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꾸며내려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광도 온전히 나타낼 수 있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세 번째 선까지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나타나는 세 번째 선은 그가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전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그를 만나서 바로 주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알려주셨습니다. 다음은 35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35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36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38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그를 만나주신 예수님은 그 소경에게 인자에 대해서 알려주셨습니다. 그 인자는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었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행했던 세 번째 선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늘에 계신 분임을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선의 모습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일을 따라한다는 것은 진정한 선의 모습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진정한 선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보내신 분임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어주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마음에 모시고 받아들이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가장 좋은 일인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을 때에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우리도 하게 됩니다.

 

현재 미국 뉴욕의 명물인 브루클린 다리에는 다음과 같은 사연이 있습니다. 미국 뉴욕이 커져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왕래하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물살이 너무 쎄 아무도 다리를 놓을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그런데 존 뢰블링이 교각 없는 다리를 설계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공상가라고 비웃었습니다. 몇 개월 뒤 존 뢰블링은 사고로 공사장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 워싱턴이 뒤를 이어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저도 뇌를 심하게 다쳐 말도 못할 뿐 아니라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겨우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수 있었을 뿐이었던 워싱턴 뢰블링은 아내와 대화를 시도했고, 침상에서 다시 다리 공사를 진행시켰습니다. 또한 그러다가 워싱턴 뢰블링도 사망을 하고 마지막에는 그의 아내가 전권을 이어받아 공사를 완성시켰습니다. 이러한 가족의 열정에 공사장 노동자들도 감동을 받아 열심히 일했고, 마침내16년 만에 총공사비 2500만불( 250)이 소요되어서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 다리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아버지의 뜻을 아들이 물려받고 그것을 아내가 물려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관계가 친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을 이룬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 일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들이 그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던 것처럼 이 시대의 사람들은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면서 예수님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예수님을 우리가 나타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하는 일은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면서 따르는 일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정으로 예수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요 우리의 사명이고 우리의 목표입니다. 이러한 삶의 중요성을 기억하고 우리를 보내신 이의 일을 행할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순간 순간 우리의 삶속에서 그와 같이 예수님의 은혜를 나타내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고백할 수 있는 자들이 되시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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