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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평] 41막 4;35-41 괴로움을 이겨내는 믿음의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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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 4;35-41 괴로움을 이겨내는 믿음의 평안_1

 

 2014.3.9.주.주일오전.

 

*개요:    63화평, 2관점, 5은혜-6결심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라도 순종하는고 하였더라

 

 

어렸을 때 저는 플라스틱 모형장난감 만들기를 좋아했습니. 그래서 여러가지를 사고 만들고 그랬었는데 한번은 항공모함 모형을 보고나서 완전히 마음이 사로잡혔습니. 그래서 그 장난감을 간신히 졸라서 구입했습니. 오랜 시간에 걸쳐 항공모함을 조립했습니.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힘들지가 않았습니. 그런 모형 장난감류는 완성이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 과정을 즐거워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입니. 결국 만들고 나서 놓고 감상을 하니 아주 잘 만들었습니. 마음에 들었습니.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장난감을 물에 띄워보고 싶었습니. 원래 그 장난감은 물에 띄우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냥 감상만 하는 장난감이었는데 괜한 호기심어린 마음에 욕조에 놓고 띄웠습니.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냥 물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 항공모함 모형이었지만 잠수함이 되고 말았습니. 애초부터 물에 뜨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

 

평안이라는 주제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말하는 평안도 이러한 원리로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는 지금 평안이라는 장난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가요? 화평이라는 장신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가요? 그래서 정말 괴로움이 닥쳤을 때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런 결심인가요? 그렇면 우리는 우리자신에게 그리고 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 제가 경험하는 평안은 장식용입니라구요. 진정한 평안은 가장 어렵고 힘들때 의미있어야 하는 것입니. 소화기가 장신구라고 해보십시오. 가장 중요할 때 이 소화기는 작동을 하지 않습니. 그 소화기가 정말 효과가 있었면 큰 불을 끌 수 있었을 텐데 이 소화기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 왜냐하면 장식용이었으니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구명조끼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 왜나하면 장신구였으니까요. 내가 가지고 있는 낙하산은 아무런 도움이 안됐습니. 왜냐하면 장신구였으니까요. 정말 그렇면 우리는 천국에 빨리 가게 될 것입니. 평상시에 그렇게 준비하고 그렇게 애를 쓰고 그렇게 노력했어도 그 모든 것이 전부 장신구에 불과한 이유는 실제를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 늘 하는 척만 했기 때문입니. 정말 실제를 대비하려고 했면 부족한 그 무엇인가를 알아냈을 것입니. 한번에 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 이제 정말 배가 물에 뜨는 지를 알아보고자 한면 당연히 물에 띄워봐야 합니. 그래야 그 효과를 알 수 있습니. 예수님도 그러셨습니. 그래서 그 제자들을 데리고 바로 나가셨습니. 진정한 평안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

“35    그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저희가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우리는 그 인도하심을 피할 수 없습니. 결국은 하나님은 우리를 데리시고 저편으로 건너가십니. 이편에서 만족해 하는 것은 우리입니.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저편으로 인도하십니. 한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저편으로 말입니.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일가운데 어려움이 생깁니. 그렇게 시작된 인생에서의 어려움의 모습은 양하게 나타납니. 예를 들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을 때 단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 그 대학에 들어갔는데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는 것입니. 또한 군대에 들어갔는데 그 군대에서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것입니. 대학 졸업후 그냥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 회사에는 아무생각없이 들어갔는데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 것입니.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냥 결혼하는 게 아닙니. 아내에겐 시월드가 기리고 있습니. 남편에겐 처가살이가 있습니. 또 자녀를 낳는데 그냥 편하게 낳은 것이 아닙니. 분명히 자신을 닮긴 닮았는데 닮아도 가장 안좋은 것만 닮은(혹은 그렇게 생각되는) 그런 모습이 나타납니. 그리고 교회를 가긴 가는데 그 교회가 너무 수준높은 교회입니. 따라가기가 벅찹니.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평안을 잃어버립니.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몸부림치게 됩니. 제자들도 그랬습니. 바에 익숙한 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풍랑이었고 바로 그 풍랑이 밀어닥쳤습니. 예수님과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시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큰 광풍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습니. 설상가상으로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가 물에 잠겼습니. 이대로 가면 침몰합니. 침몰하면 죽게 됩니. 예수님이 함께 계심에도 불구하고 말입니.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기간이 짧면 짧고 길면 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전에 많은 예수님의 행하신 기적을 보았습니. 하지만 바로 이순간 예수님의 함께 하심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것 같습니. 그런 일이 아예 보이지 않게 해야지 어떻게 일이 이지경이 되도록 예수님은 가만히 계실 수가 있습니까?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 애초에 풍랑이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 애초에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 그러나 모든 일은 이미 시작되었습니. 이렇게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무서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 그들은 인간이었기 때문입니.

 

수년 전에 시찰회에서 목회자 세미나로 태국을 갔 온 적이 있습니. 파타야에서 관광을 하는데 가이드가 바건너에 아주 물이 깨끗한 섬이 있고 그리고 배를 타고 간는 것이었습니. 그 때 날씨가 아주 좋았습니. 옆에서 른 일행이 먼저 출발을 했습니. 우리는 조금 늦게 출발을 했습니. 저 멀리 섬이 보였고 거기까지 간는 것이었습니. 그래서 앞에 가는 일행을 보면서 시원하게 가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앞이 캄캄해지고 비가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습니. 그러자 가이드와 보트기사가 뭐라고 말을 주고 받더니 배가 옆으로 방향을 틀었습니. 가이드가 말하기를 배를 돌린고 했습니. 이대로는 갈 수가 없는 것입니. 우리 바로 앞에 가던 보트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더니 거기는 배를 돌릴 수 있는 지점을 이미 벗어났는 것이었습니. 신기하게도 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니 비가 그쳤습니. 그 비가 바로 동남아 지역의 나라에만 있는 ‘스콜’이라는 현상이었습니. 대낮에도 갑자기 비가 오는 현상이었던 것입니

그날은 그래서 스케쥴을 변경하고 른 데를 먼저 보고 그냥 돌아갔습니. 그 음날 또 시 도전을 하기로 했습니. 어제처럼 하늘은 맑았습니. 어제와 똑같이 하늘이 맑을 때 배가 출발했습니. 잔뜩 긴장을 한채로 배는 달렸습니. 그래도 우리가 목사님들인데 설마 또 비가 오랴 우리가 어제 얼마나 기도를 했는데, 그런 생각을 했습니.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 중간에 와서 뒤로 선착장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그 스콜이 시 찾아왔습니. 어떻게 하냐고 하니까 이제 우리는 무조건 가야 한는 것이었습니. 그리고 배는 앞이 보이지 않는 전방을 향해서 힘껏 달렸습니.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우리는 두려움을 견뎌야만 했습니.

 

예수님은 그들을 바로 그러한 풍랑으로 인도하셨습니. 그리고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 크게 일어나는 풍랑 속에서도 담대하며 배안으로 물이 들어오는 그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안하기를 원하셨습니. 그것을 위해 주님은 모범을 보이십니. 그래서 주님은 고물(배의 뒷부분)에서 배게를 베고 주무셨던 것입니. 일부러 모범을 보이시는 건지 아니면 너무 평안하셔서 자연스럽게 모범을 보이시게 된 것인지는 몰라도 여하튼 그 모습 자체가 모범이었습니.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울 수 밖에 없었습니. 선생님이 그들과 함께 두려워하기를, 그들과 함께 무서워하기를, 그들과 함께 낙심하기를 바랬습니. 엄밀히 말하자면 꼭 그런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런 의미였습니. 예수님은 너무 평안하셨기 때문입니. 그래야 주님이 뭔가 대책을 세워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 하지만 주님은 그냥 평안하셨습니. 함께 공감하면서 같이 괴로워하면서 대책을 세워주실 줄 알았는데 주님은 오직 평안의 모습만을 보여주셨던 것입니.

 

우리가 말하는 이 평안, 화평의 모습은 분명 그 반대되는 모습과 완전히 비교됩니. 평안의 반대가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가 해당됩니. 분노, 절망, 두려움입니. 이 위에 평안이 있습니. 어떤 사람에게 평안의 반대는 분노가 됩니. 또 어떤 사람에게는 평안의 반대가 절망이 됩니. 또 른 사람에게 평안의 반대는 두려움이 됩니. 여러분에게 평안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사람마 그 반대가 조금씩 릅니. 평안이란 바로 그 분노, 절망,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입니. 그러한 감정이 물이라고 한면 평안이란 그 위에 둥둥 떠있는 의미입니. 그리고 가라앉지 않습니. 그리고 휩쓸리지 않습니. 굳건히 서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 그것이 바로 평안입니. 바로 예수님 처럼 말입니. 제자들은 그렇게 분노 위에서, 절망 위에서, 두려움 위에서 평안을 누려야 했습니. 그냥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 안락함 속에서, 형통함 속에서, 승승장구함 속에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 이런 일이 자신에게 왜 일어나는가라는 분노 속에서, 이렇게 끝나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는 절망 속에서, 너무나 무섭고 떨리는 두려움 속에서 그들은 평안하기를 요구받았습니. 또한 그렇게 평안하지 못함에 대해서 질책도 받았습니. 제자들이 깨워서 일어나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1)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여기서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으신 것은 영어로 ‘rebuke’이고 이것은 잘못을 질책할 때 쓰이는 말입니. 주님은 바람을 마치 사람처럼 꾸짖으셨습니. 그리고 명령을 내리시기를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셨습니. 그러자 바람이 순종하였습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졌던 것입니. 그리고 제자들에게 이르셨습니. 왜 이렇게 무서워하였느냐, 왜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라고 하셨습니. 그들에게 믿음이 있어야만 했던 것입니. 그들이 평안하지 못했던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 그러면 그 믿음의 내용은 무엇이어야 했을까요? 그들이 무엇을 믿었어야만 했을 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어야만 했습니. 그 믿음 만이 그들로 하여금 평안을 갖게 만들수 있기 때문입니. 이점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 우리가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통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 서약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도 아닙니. 또는 우리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기 때문도 아닙니. 그 어떤 것도 우리의 평안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 오직 하나님께 대한 믿음 만이 우리로 하여금 평안을 얻게 만드는 것입니.

 

예수님이 바람을 꾸짖으며 말씀하실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시기 때문입니. 제자들이 놀라워한 점이 바로 이것입니.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라도 순종하는고’했습니.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습니. 그렇면 우리는 누굽니까? 우리가 누군데 그 평안을 따르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 우리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평안에 들어가야만 합니. 그분의 자녀들이기 때문입니. 이사야서는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그 믿음의 평안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 하느냐

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그 말씀으로 살아있게 하고 그 말씀으로 치솟아 오르는 감정을 꾸짖을 수 있습니. 말씀의 검이라 하더라도 분노와 절망과 두려움앞에서는 아무 소용없이 툭 떨어트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검이 휘둘러져서 불어치는 바람과 들이닥치는 물을 멈추게 만드는 것입니. 정말 변화되는 것은 상황이 아니었습니. 정말 멈추어진 것은 상대가 아니었습니. 진정으로 고요하게 된 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었습니. 그래서 예수님도 아무런 감정없이 어떠한 분노도 절망도 두려움도 없이 온전히 말씀으로 선포하시며 말씀으로 꾸짖으셨던 것입니. 주님은 바람과 바가 잔잔해져서 평안하신 것이 아닙니. 바람과 바가 몰아칠 때에 평안하셨습니. 그리고 그 바람과 바를 꾸짖으셨던 것입니.

주님이 보여주시는 평안은 상황의 평안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믿음의 평안이었습니. 하나님은 우리가 바로 그렇게 평안하게 되기를 원하십니.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평안하게 되기를 원하십니. 그렇게 되지 않을 때 주님은 질책하십니. 왜냐하면 주님의 자녀들은 마땅히 그래야만 하기 때문입니. 주님이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 주님이 새 힘을 주시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 주님이 새 일을 행하시려고 하시기 때문에 중단해버리지 않습니. 그래서 우리가 의연히 서 있을 때 주님의 일이 일어납니. 예수님이 계신 그 배를 버리고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죽었고 생각하고 스스로 죽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계시는 이유 하나를 붙들고 견뎌내야만 하는 것입니. 그럴 때 우리에게 믿음의 평안이 생겨나고 비로소 모든 바람과 파도가 잔잔해지며 주님과 함께 하심의 모든 의미가 밝혀지게 됩니. 하나님은 그렇게 괴로움 속에서 우리에게 평안이 생기기를 바라십니. 우리와 함께 하심을 바로 우리가 깨닫기를 원하십니.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도우심을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 그뜻을 깨닫고 순종할 때 우리는 정말 그 놀라운 평안을 누리게 됩니.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우리도 원하는 바가 됩니.

 

아까 그 스콜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게 한참을 빗속을 뚫고 달리고 있는데 옆의 목사님들은 어떻게 하고 계시나 궁금해졌습니.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니 그분들은 아주 편안해 보이셨습니. 한분도 동요하거나 걱정하는 분이 없었습니. 오히려 저만 긴장하고 저만 전전긍긍하는 것 같았습니.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날이 싹 개이는 것이었습니. 그리고 우리가 가려고 하는 섬이 나타났는데 물이 아주 맑은 에메랄드 빛깔의 해변이 나타났습니. 우리는 그곳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습니.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가이드분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아주 감명을 받았답니. 이유인즉 이전에 무속인들을 데리고 동일한 코스를 온 적이 있었답니. 그런데 그 무속인들은 비가 오기 시작하자 ‘귀신들이 여기까지 우리를 따라왔군, 이곳은 지나가지 맙시’하고 돌아가자고 해서 억지로 돌아갔는 것입니. 그에 반해서 우리는 비가 오거나 말거나 평안했으니 그점이 너무 인상적이었는 것입니.

하나님 안에서의 평안은 어려움을 피하는 평안이 아닙니. 어려움을 뚫고 가는 평안입니. 여러분에게 그 어떤 어려움이 온고 해도 여러분은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 능력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 오직 사탄만 우리로 하여금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더욱 두렵게 만들고자 할 뿐입니.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갔가 풍랑을 만났던 제자들처럼 주님과 함께 하면서 어려움을 만나고 괴로움을 겪을 수도 있겠으나, 주님의 평안을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 그래서 주님과 함께 하는 믿음의 평안을 이 세상에 나타내 보이시고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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