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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동행] 47고전 15; 1-8 다시 살아나셔서 보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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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고전 15; 1-8 다시 살아나셔서 보이신 예수님_1

  

 

  

2018. 4. 1. . 주일오전. 부활절.

  

 

  

*개요:  부활을 믿는 믿음의 중요성, 5동행, 6서신서, 3관점

  

[고전]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전]15: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전]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고전]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고전]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부활절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 부활절을 맞이해서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기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2천년여년 전에 후대에 태어나게 될 우리를 위해서 죄를 사해 주시는가 하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죄에 대한 심판자이시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죽으셨을 때에 그것은 이미 있던 과거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당대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과 그리고 미래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한 죄사함이 되기로 하나님과 약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죽으셨던 예수님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죄가 없는 분으로서 단지 세상 죄를 위해서 죽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또한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로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었기 때문에 죽으신 이후에는 더 이상 죽음에 계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자신이 능력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온전한 현현이자 예수님 능력의 영광스러운 나타남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는 이러한 부활에 온전히 동참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입니다. 그 이전까지 아들이 죽기까지 참으셔야 했던 하나님의 모든 인내와 인간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모든 고통과 그리스도의 모든 희생과 헌신에 온 마음을 다해 동참하신 성령님의 간절함이 완전히 해소되는 시간이 바로 부활입니다. 이 부활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에게 얼마나 기쁘고 중요한 시간인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것은 참으로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부활에 대해서 제자들의 모습은 너무나 미흡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이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고 또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들었었지만 그들은 실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일이 일어났을 때에는 앞으로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때를 기다리지도 않았고 부활을 준비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등 여자들은 오히려 예수님의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향품을 준비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여기에 더 나아가서 우리의 모습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분명 제자들과는 좀 다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있습니다. 사실 그래서 우리가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당시에 제자들은 부활에 준비되지 못했지만 우리는 부활에 준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을 믿지 못했지만 우리는 부활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제자들보다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부활을 믿고 제자들보다 더 나은 모습을 갖게 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렇지만 그 만남은 육체적인 만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신적인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만남이 의미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바로 그것을 고백했습니다. 그가 믿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한번에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단 한번의 만남이 그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했습니다. 그는 그 때의 만남의 경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전]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는 칠삭둥이 혹은 팔삭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미숙아의 상태는 매우 위험하며 많은 어려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숙아임에도 불구하고 잘 성장하여 훌륭한 사람이 된 경우도 많습니다. 아인슈타인이나 뉴턴 등과 같이 유명한 사람도 미숙아로 태어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었는가를 말하면서 자신이 그런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연약한 자에게 예수님은 나타나셔서 그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22:8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2: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그 말씀에 따라서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제자들과 함께 거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각 사람에게 나타나셔서 그 모습을 보여주신다면 예수님을 잘 믿게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안믿는 우리 자녀에게 예수님이 한번만 나타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예수님을 안믿는 우리 부모님에게 예수님께서 한번만 나타나신다면 얼마나 잘 믿을 수 있을까요?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예수님은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만나게 되면 주님을 믿고 그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살아계시며 모든 인간들의 구주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만남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육체적인 만남이 아닙니다. 그 만남은 정신적인 만남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어떤 행하게 하심이 있습니다. 육체적인 만남으로라면 주님을 만난 사람이 얼마 없지만 정신적인 만남으로는 주님을 만난 사람이 많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각 사람이 해야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 만남이 특별한 것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경험했던 예수님과의 만남은 너무 특별하여서 그 이후에 그는 3일 동안 앞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보다 좀 덜 특별하게 예수님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항상 사도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10층 건물에 화재가 났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1층에 있으면서 그냥 밖으로 나올 수도 있습니다. 굳이 10층 옥상까지 올라가서 특별하게 구조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헬기나 구조사다리차나 에어 매트 위로 떨어지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나오라는 인도에 그대로 나올 수 있으면 그것이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좀더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는가 보십시오.

  

“[고전]15: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여기서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아마 개인적으로 야고보는 예수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후에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쓰게 되는데 그렇게 되게 되는 가장 결정적인 근거가 바로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는데 이렇게 나타나신 예수님을 생각해 보면 주의 나타나심은 부활 이후 승천하신 다음에 나타난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 자신도 승천 이후의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의 일을 행하는 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 만남과 나타나심은 단순히 예수님의 존재를 믿게 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교회의 일군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일을 열심히 행하고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혹은 주님의 특별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주님은 만나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게 되면 바로 그렇게 특별한 주님의 일에 대해서 열심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야고보나 사도들이나 사도 바울이나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온힘을 기울여서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주님이 하게 하시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만큼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의 경험이 아닙니다많은 무리들이 단체로 예수님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고전]15: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이 때는 부활하신 뒤 승천하실 때의 일이었습니다. 오백여 명이 보는 앞에서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정말 그런 놀라운 일은 보기만 하면 당장 믿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증인이 되어서 그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세상을 떠나기도 했지만 그들은 믿는 자로 세상을 살았습니다. 그 때 그들이 들은 말씀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주님이 부활하심을 만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을 만나기만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신 분이십니다. 삶의 문제와 죽음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안다면 삶은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또한 죽은 이후에도 다시 깨워줄 수 있다면 죽음은 두렵지 않습니다. 온전한 삶을 살게 인도하시고 심지어 죽음으로부터도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는 모습을 보았다면 결코 그 예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시는 분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다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분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셨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의 능력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분이 승천하실 때에도 인간이 하늘로 날아 오를 수 없음을 상기시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혹은 그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부정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자기 눈으로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본다면 그냥 아무 말도 못할 것입니다. 피조세계의 법칙은 창조세계에서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데 혹시 우리 중 어떤 사람이 그것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나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앞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만남은 육체적인 만남이 아니라 정신적인 만남입니다. 그래서 그 능력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말씀 속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나 야고보나 사도들이나 오백여 명의 형제들이나 인간은 다 동일합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비로소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생겨납니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는 예수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깨닫고 믿는 만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믿게 되었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이론으로 혹은 원리로 예수님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로 혹은 증언으로 예수님을 믿게 될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예수님께 대한 믿음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만남이 성경말씀을 통해서나 기도응답을 통해서나 교회생활을 통해서일 뿐이지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는 아무도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 개별적이고 특별한 개개인의 신앙경험 속에서 예수님은 각 사람을 만나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만나주셨습니다. 또한 앞으로 다른 사람들도 만나주실 것입니다. 그 만남은 이전에 성경에서 나타난 것을 증거하는 만남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이 4절에 나와 있습니다.

  

“[고전]15: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전]15: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이 말씀 속에 우리를 만나주시는 예수님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대로'입니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살아나셔서 보이심은 그냥 한낱 개인적인 체험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성경말씀에 따라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졌음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는 반석을 의미하는 뜻인 아람어로 게바이자 헬라어로는 베드로인 시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21: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따르게 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더 중요함을 알려주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고 그 말씀이 전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성경에 기록된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예수님은 베드로를 불러 주셨습니다이것은 다른 열두 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셔서 평강을 주셨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 자신을 보내신 것 같이 예수님도 우리를 보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 그들은 정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장난치고 춤추고 즐겁게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내시는 일을 하실 때 그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싸우고 다투고 결투하고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으로 다시 주님이 하게 하시는 일을 할 때에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난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만나주십니다. 성경말씀을 통해서 만나주시고 기도응답을 통해서 만나주시고 신앙활동을 통해서 만나주시며 개인적인 특별한 경험 속에서 만나주십니다. 그럴 때 주님과의 만남은 항상 어떻게 살며 무엇을 해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시는 만남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항상 살아계시고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예수님이 계시고 그분이 얼마나 영광스러우신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그 영광 속에 어떻게 동참하게 하는가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성경말씀 속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또한 신앙생활 속에서 주님을 만납니다. 그분은 살아계셔서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의 가는 길로 인도해 주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길에서 만나 인사를 하고 지나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뿐입니다. 진정한 만남은 만나서 함께 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만났다가 헤어질 자들에게 만나주신 것이 아닙니다. 함께 갈 자들과 만나셨습니다. 그들에게 또 찾아오셔서 만나주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주님께서 이 시대에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여전히 행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순간에도 주님은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말씀대로 죽으셨고 말씀대로 살아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그 말씀을 붙들 때에 우리는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고 살아나신 주님과 함께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고전]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주님은 성경대로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것은 온전한 성경 말씀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있으리라고 한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일에 주님은 자기 생명을 바치셨으니 앞으로 그 성경말씀은 얼마나 온전하며 얼마나 영광스럽게 이루어지겠습니까? 그 말씀은 결코 변개함이 없이 우리에게 펼쳐질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기상예보가 아닙니다. 그 생명을 걸고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붙들 때에 우리의 생명을 주님이 보장하십니다. 우리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붙들 때 앞으로 더욱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고전]15: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고전]15: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주님이 오늘도 주의 부활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에게 약속해 주십니다. 이 약속을 붙들고 주님의 부활과 함께 동행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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