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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희락] 23사 35; 3-10 여호와의 속량함을 기다리는 자들의 희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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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35;3-10 여호와의 속량함을 기다리는 자들의 희락_1

 

2017.6. 11. . 주일오전.

 

*개요:  희락의 의미, 3관점, 4선지서, 51계획-62희락

[]35:3             너희는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35:4             겁내는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35:5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35:6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35:7             뜨거운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35:8             거기에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35:9             거기에는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희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하나님 안에서 희락을 누리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희락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한 희락의 의미를 알지못한다면 결국 희락을 누리지 못하고 괴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맛있는 레스토랑에가서 많이 먹지 못하고 돌아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예전에 고속터미널에 있는 한 식당에 일행들과 함께 간 적이 있습니다. 유명한 한식전문점이었는데 한 상에 맛있는 한식이 그득하게 차려 나오는 식당이었습니다. 좋다는 소문을 듣고 제가 일행을 데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일행 중 한 명이 사정이 있어서 늦게 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은 먼저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늦게 오는 사람을 배려해서 우리들은 음식을 조금씩 먹었습니다.늦게 오는 사람을 위해서 남겨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 사람이 도착해서 그 남은음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이미 음식은 많이 식었고 남기느라고 남겼지만 별로 많지는 않았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우리는 모두 배가 고팠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이 이야기를 사모에게 했습니다. 그러자 사모가 하는 말이 그 한식집은 반찬을 무한정 제공하는 집이라는것이었습니다. 사실 반찬을 계속 달라고 할 수 있었는데 어리석게도 우리는 그러지 않고 주어진 대로만먹고 끝을 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데 희락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면 사람이 주는 괴로움만 얻게 됩니다. 그렇게고생하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면 세상에서 얻지 못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 너무나 아쉬울 것입니다. 제가그 한식집에서 배부르지 못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희락의 근원을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진정한 희락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만 그풍성한 희락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서는 그러한 희락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서 그러한 희락을 얻기 위해서 노력해서도 안됩니다. 결국하나님으로부터 얻는 것이 진정으로 우리의 영적 결핍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다른 것은전부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을 통해서 얻는 기쁨과 즐거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35: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자들은 노래하며 돌아와서 시온에 이릅니다. 그들은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습니다. 그들에게서 슬픔과 탄식이 사라집니다. 그들이 이렇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는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시온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그리고 그들이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죄사하심을 얻었기 때문에 그들은이렇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속량함이란 몸값이 지불되어서 구원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그들은 그래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여호와의속량함을 얻었기 때문에 돌아올 뿐만 아니라 시온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시온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한 희락을 가지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돌아왔고 마침내 하나님의 전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이 그 모든기쁨과 즐거움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즐거움은 우리들에게는 단순히 구원의 즐거움이라고만 생각됩니다. 그래서 어차피 하나님 나라에 가기로 되었고 그 하나님의 나라를 얻어 놓은 상태에서 이미 얻은 하나님의 나라를또 다시 기억하면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되었음을 기뻐한다라는 것은 별로 와닿지 않는 일이 됩니다. 하지만하나님 안에서 날마다 누리는 진정한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속량함이란 단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현재의 삶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현재 당면한 일들속에서 속량함을 받고 있습니다. 그 일들에 대한 기쁨과 즐거움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3장에서는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행하신일로 인해서 기뻐하는 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13:16 그러면 열여덟 동안 사탄에게 매인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3:17 예수께서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8년동안 귀신들려서 조금도 몸을 펴지 못하는 한 여인을 보시고 그 여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 때 회당장은그 일에 화를 내면서 엿새 동안에 고침을 받을 수 있지만 안식일에는 병을 고쳐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하나의 일로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라고 가르쳤는데 예수님은그 안식일에 일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하느냐 일하지 않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이 아브라함의 자손인 여인을 그 매임에서 푸느냐 풀지 않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 매임에서푼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의 은혜를 경험한다는 것이었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에 대해서 정말 그러한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여 몸을 펴게 되고 귀신의 매임에서 벗어나게 되는것이 정말 감사하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한 자들은 그 일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면서 기뻐하였습니다. 그것은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생각해 볼 때 우리도 동일하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그 능력의 손길을 누리며 그 영광이 나타남을 깨달을 수 있을 때 우리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나의 어떤 형편이나 상황이나 조건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생각하면서 우리는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며 시온에 이른 자들입니다. 그 모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뻐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뻐하면서얼굴을 펴게 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바로 조금도 몸을 펴지 못하다가 예수님으로 인해서 몸을펴게 된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도 잘 생각해 보면 이러한 속량함이 있습니다.우리를 시온에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아시고 늘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늘 인내할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오랫 동안 귀신에 매여서 펴지 못하던 마음을 한번에풀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왔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의지함 속에 이미 하나님이 이루신 모든 구원에 대한 영광돌림이 있습니다.바로 이러한 희락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있습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정말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온 무리가 기뻐할 때에 기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던 자들이었습니다. 회당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예수님이 자신들의 규칙을 깨트리고 그러한 규칙을 준수하고자 하는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에 대한 안좋은 감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오랜 병자가 나았다 하더라도 결코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하필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는 바로 그것이그들에게는 기뻐하는 자들과는 정반대로 기뻐할 수 없는 이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그런일을 행한다는 것이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래서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뻐하지 못하는 자들의 존재는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 말씀의 8절에도 바로 그런 자들이 있습니다.

“[]35:8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할 것이며

시온의 대로에 여호와의 속량함을 입은 자들을 들어가지만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합니다. 우매한 행인은 그 길로 다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보시기에 깨끗하지 못한 자요 어리석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안식일에 병고치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백부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함께 기뻐하지 못했을까요? 그들은왜 부끄러워하기만 하였을까요? 그들은 병을 고치시는 예수님이나 병이 나은 병자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자신들의 규칙과 전통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럴때 그들은 예수님이 오셔서 이루시는 기쁨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견해와규칙과 전통과 방식에 집중할 때에 기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오직 자신의 기준에어긋나는 모든 것만을 생각하게 될 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기쁨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안됩니다. 자신의 기준보다 더 우월하고 높으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 영광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영광이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래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도 그 영광 속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자기만의 기준은 다른 사람도 힘들게 하고 그 자신도 힘들게 합니다. 늘 내가 그 기준에 올바르게 되었는가만을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 규정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데 하나님이 주신안식일 규정을 가지고 내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면 결국은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법도를 지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 충돌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충돌하게 되듯이말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놀라운 것입니다. 자기자신의 법도나 기준이란 어리석고 편협하게 만들지만 하나님의 뜻은 인간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이이루고자 하시는 뜻은 바로 이것입니다. 5절부터 보십시오.

“[]35:5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35:6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것이며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35:7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것이며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못하던맹인의 눈이 밝아집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듣지 못하던 자의 귀가 열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실천하기가 힘들었던 자가 사슴같이 뛰게 됩니다. 말못하던 자가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 모든 것이 광야에서 물이 솟는 것이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르는 것입니다.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고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됩니다. 승냥이가누울 정도의 황량하던 곳에 풀과 갈대가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모든 놀랍고 좋은변화가 일어납니다. 이 모든 일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기다리며 바라고 사모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함께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어떻게 한 개인의 기준이나 생각이나 목표와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도 우리를 불러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놀라우신 분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평안과 인도하심을 받게 된 것이 놀라운 속량함입니다. 우리에게소망이 있고 대안이 있으며 감당할 만한 힘이 있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입니다. 이 모든것이 우리에게는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닌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과 도우심의 결과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이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도우신 은혜의 결실입니다.  이 모든 것에 의미를 가지고 감사를 드릴 수 있을 때 우리는 시온에 이르는자입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지혜로운 자들입니다. 우리의삶이 바로 그러한 지혜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큰 회사의 임원을 맡고 있는 한 남자가 아침 식사를 하러 한 레스토랑에 들렀습니다. 입구에 들어가던 남자에게 잠시 나와서 쉬고 있는 웨이터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어휴, 당장 5만원만 있어도 삶이 참 행복할 텐데...”

남자는 웨이터에게 무슨 딱한 사정이 있나 싶었습니다. 그래서식사를 마치고 웨이터를 불러 5만원을 팁으로 주었습니다. 식사를마치고 나오던 남자는 웨이터가 다시 휴식을 취하러 나온 것을 보고 그가 어떤 말을 하나 귀를 기울여보았습니다. 그는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휴, 10만원이라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언제나 괴로움과 슬픔 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진다면 인생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곳이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희락의 근원이 됩니다. 그것이 3,4절에 나옵니다.

“[]35: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35:4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앞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희락이 됩니다. 이전에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희락이 됩니다. 그희락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무력화시키지 말고 하나님의영광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이루셨고 앞으로도 이루실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사모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으로 한 주 한 주를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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