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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교제] 1창 6; 1-4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람의 자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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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1-4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람의 자녀들_1

  

 

  

2019. 6. 2. . 주일오전.

  

 

  

*개요:  교제의 의미, 85교제, 1적용, 1오경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6: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6월이 되었습니다. 이번 달에는 교제라는 사역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교제의 사역은 이 세상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혼자 살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이 있고 나이 적은 사람이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들과 어떤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야 할까요? 성경 속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가정 위주로 진행되었던 아담과 하와 이후의 인간의 역사가 점차 발전되어서 집단과 사회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 속에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두 가지 그룹이 생겨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람의 자녀들입니다.

  

“[]6: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6: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많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인간이 땅 위에서 번성하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을 보면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여자로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남자로 남편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이 좋고 당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람의 자녀들이 교제하고 혼인하는 과정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들과 결혼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들과 교제하고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자녀들과 교제하고 결혼하였을 때 그 가운데 태어난 자녀들은 사람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점차 하나님의 자녀들은 없어지고 사람의 자녀들은 더욱 많아지게 되었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이고 사람의 자녀는 누구입니까? 전부 동일하게 아담으로부터 나타난 인간들이 아닙니까? 이 당시에 하나님의 자녀와 사람의 자녀는 어떻게 구분된 것일까요?

  

여기서의 구분은 생물학적인 구분이 아닙니다. 신앙적인 구분입니다. 이미 창세기 4장에서는 그 당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셋은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 사람들은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23, 24절을 보십시오.

  

“[]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가인의 6대손이 라멕이었습니다. 그에게서 자랑은 사람을 죽이고 소년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벌을 받게 되는 것이 그의 자랑이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사람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그들 대로 번성하였고 악한 가치와 악한 목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가치와 목적은 자기 자신이었고 즐거움을 위해서 본능대로 사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사람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러한 사람의 자녀들을  사랑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여자는 예쁘고 남자는 용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예쁜 것은 높은 가치를 갖습니다. 용맹한 것도 역시 높은 가치를 갖습니다. 자신을 꾸미고 가꾸고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할 때 그러한 자들의 아름다움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더 잘하고 더 힘세며 더 용맹스러움을 위해서 날마다 노력할 때 그러한 자를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자녀들이 더 예쁘고 용맹스러웠습니다. 그들의 가치와 목표는 자기 자신과 이 세상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자녀들과 세상의 자녀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 보다는 하나님께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자신을 꾸미는 일을 등한시 합니다. 또한 용맹스럽게 되는 일에 부족함이 많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아벨의 제사를 본받아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살아갑니다.

  

반대로 세상을 따르는 자들은 자신의 미모를 가꾸고 힘과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대항하며 부인하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어떤 때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만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는 존재하지 않고 이 세상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러한 세상의 자녀들을 따라 가게 될 때 그로 인해서 잃어버리는 것이 생겼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자녀들을 따라갈 때에 더 이상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없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도 없어졌습니다. 세상의 자녀들처럼 세상을 따라가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생물학적인 구분이 아니라 정신적인 구분이자 신앙적인 구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속해있고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 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따르지 않기로 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 안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교회를 떠나서 세상으로 들어갔고 그 세상에서 세상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세상의 자녀가 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질 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는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사람의 자녀들은 항상 육신을 추구하고 육신이 목표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들도 그러한 사람의 자녀와 교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은 최소한 그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날은 백 이십 년으로 축소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생명이 있는 동안에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시지만 그 이후에 그들에게 제공된 시간이 다 지났을 때에는 그들은 생명이 다하여서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들의 영혼은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영을 찾아야 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고 구원의 기회가 있는 시간인 살아있을 때에 하나님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의 영을 따를 수 있는 기회가 있는 자들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찾고 따를 때 그들은 육신으로 끝나지 않고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나 혹은 사람의 자녀들이나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러한 관점을 갖지 못하고 세상의 자녀들을 동경함으로 바라볼 때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자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등한히 하고 사람의 자녀들을 따라서 육신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 그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아닌 세상의 사람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 사람들이 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상당히 좋아보이기까지 했습니다.

  

“[]6: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네피림은 히브리어로 타락한 자들을 의미하기도 하고 거인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여기서의 의미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사람을 따라서 서로 결혼하였을 때 그들은 세상에서는 용사가 되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타락한 자들이 되었던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네피림은 용사였고 고대에 명성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러니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볼 때에는 타락한 자들이었지만 사람으로 볼 때는 명성이 있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점차 그렇게 하나님을 따르는 자들이 세상을 따르는 자들로 변화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멸망을 결정하셨습니다.

  

“[]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6: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만약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렇게 속히 세상의 사람들이 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것에 대한 그분의 뜻을 이루는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의 사람들에 흡수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자들로 살아가고자 할 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 은혜를 받고자 할 때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목표와 가치를 따르고자 한다면 결국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심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이 세상은 죄악의 가득함과 그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악한 것들로 가득 차 있는 세상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세상의 죄악과 악함에 연합하고 더욱 동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나타내고 그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한 목적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이루는 자들이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남아있어야 합니다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자녀들로 변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함께 모여서 우리 자신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 가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고 세상의 자녀들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변질이 되지 않고 세상 속에 흡수되거나 연합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들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든 좋은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모든 좋은 것을 통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아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자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내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또한 세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노아와 아내와 세 아들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자 하였을 때 여기에 세 며느리가 연합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 있고자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좋은 사람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이삭을 위해서 아내를 선택하게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24: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24:5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24:6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24:7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24:8  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아브라함은 아들을 위해서 며느리를 얻을 때에 하나님의 보내심과 준비하심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준비된 사람을 만나고자 할 때 하나님은 정말로 가장 준비된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그것을 위해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가치를 따를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따르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따르는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가장 준비된 귀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준비하신 사람을 만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을 따르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따르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올바른 교제의 과정을 통해서 더욱 예비되고 준비된 귀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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