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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동행] 65유 1; 17-25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되기를 기다리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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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1; 17-25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되기를 기다리는 자들_1

  

 

  

2019. 3. 31. . 주일오전.

  

 

  

*개요:  하나님과의 동행의 결과, 55동행, 1적용, 6서신서

  

[]1: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1: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1: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1: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세기 미국의 소설가인 나다니엘 호손이 쓴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줄거리는 어니스트라는 주인공은 마을에 있는 사람 얼굴 모양의 바위산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는 그 얼굴을 닮은 위대한 인물이 등장할 것이라는 전설을 믿으면서 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훌륭한 사람들도 만났는데 그 얼굴을 닮은 사람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그 위대한 인물이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라는 소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사이엔가 자기 자신이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 그 사람을 향해서 당신이 바로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입니다!’라는 말을 했고 사람들도 그 말을 듣고 놀라면서 그를 보았을 때 그는 자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조용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교훈적이면서도 감동적인 이 단편 소설은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어떤 소망과 꿈에 대한 것을 열심히 바라보며 살고 있을 때 어느 순간 그 자신에게 그것이 이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훌륭한 운동선수를 본받고자 노력하면서 열심히 연습하였던 어린 선수가 나중에 위대한 선수가 되기도 하고 훌륭한 학자를 존경하면서 그 사람처럼 되기를 간절히 바라던 학생이 나중에 또 다른 훌륭한 학자가 됩니다. 이 모든 것은 그 대상을 마음에 품고 그 대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 때에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 새 우리 속에 하나님의 모습이 예수님의 마음이 이루어집니다. 그분의 성품과 그분의 의지가 우리 자신의 것으로 변화되어서 우리 속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의 결과입니다. 그럴 때 믿는 자들에게 놀라운 삶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 삶의 변화를 성화라고 합니다. 복음을 듣고 마음으로 믿어서 신앙을 갖게 되고 신앙을 가진 자들이 성화의 과정을 통해서 영화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유다서를 통해서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과의 동행은 바로 성화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믿음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고 있는가 믿지 않고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경계선에 대해서 논하는 것도 아닙니다. 믿을 뿐만 아니라 믿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여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그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다음 사람들이 따라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지 않는다면 누구도 하나님의 모습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간다면 바로 그 사람의 모습을 따라서 다음 사람들이 하나님을 따르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1: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1: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성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마지막 때에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면서 성도들의 경건함을 조롱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사도들이 하는 말은 그들을 본받지 말고 오직 사도들을 본받아서 하나님을 따라 나가라는 것입니다. 경건을 조롱하는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보여주는 대로 세상을 따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은 사도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을 따라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 뒤를 따라 가다 보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종종 탁구를 치다 보면 잘 치는 사람과 탁구를 치는 것이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애초에 이기려는 의지는 없습니다. 원하는 것은 그저 탁구공이 잘 왔다 갔다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치는 사람과 치면 실력이 금방 늘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가지 실수를 다 받아주기 때문입니다. 일대일로 하는 경기가 대개 그렇습니다. 테니스도 잘 치는 사람과 하면 실력이 늘고 배드민턴도 잘 치는 사람이 함께 하면 재미도 있고 실력도 빠른 시일 내에 늘게 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의 부족을 받아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로 신앙이 없고 부족하면 별로 도움이 안되지만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신앙이 더 있으면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신앙적인 사람이 있으면 어디로 인도해야 할 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과 발전의 최종적인 도착지는 바로 예수님 앞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모든 영광과 감사를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성도들끼리만 하나님을 찾아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찾아 나아가는 우리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영육간에 보호하시고 지켜주십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믿음이 더 큰 사람이 믿음이 없는 자들을 도우면서 나아갑니다. 그럴 때 비로소 하나님 안에 있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만날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나아가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로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에서 부서발표를 준비한다고 해 보십시오. 성극이든 찬양이든 뮤지컬이든 부서별로 발표를 하기 위해서 준비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준비한 것으로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노력하게 됩니다. 잘 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함께 격려하면서 그 날을 준비합니다. 또한 발표를 잘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함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발표 날이 되어서 발표를 잘 마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얼마나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서 믿음이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시간을 겪고 난 다음에 그들은 한층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뻐하시고 받아주시며 은혜를 풍성하게 부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러한 시간들을 보내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한 시간들을 보낼 것입니다. 그 모든 시간들의 핵심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준비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애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습이 우리 속에 형상화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우리 속에 이루어진 모습은 무엇이겠습니까? 교회 생활을 통해서 신앙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우리가 이루는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요?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1: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그것은 그리스도의 긍휼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습을 본받는 것이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긍휼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하심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모습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가 그분과 동행하고 그 모습을 본받는 것은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항상 그 긍휼히 여김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됩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1997년에 만든 영화인데 세계적인 흥행을 한 유명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인상깊은 한 장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배가 침몰하면서 사람들이 피신하는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돕는 손길입니다. 끝까지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이 있었습니다.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 먼저 탈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선원들과 탑승자들이 있었습니다. 구차히 죽음을 면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오히려 자신의 탈출기회를 포기하는 희생적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영화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 실제로 1912년에 있었던 타이타닉호의 침몰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고증해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을 본받는 자들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봅니다. 구원을 향해서 천국을 향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모습과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그 모습은 얼마나 추하고 부끄러운 모습이 될지를 상상해 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긍휼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서는 또 말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1: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까지도 미워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어떤 자는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기 때문에 그를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옷을 육체로 더럽힌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옷은 미워하되 그 사람은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말하자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긍휼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긍휼 속에 들어가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는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분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때 우리는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나서 천국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바로 긍휼히 여길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이러한 긍휼이 가능합니다. 주님 자신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셨고 지금도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계십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 긍휼 하심으로 인해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이 모든 일을 잘 감당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세우신 것이 됩니다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이 세상을 긍휼히 여기며 살아갈 때에 어느 덧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예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분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하나님 앞에 세우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24,2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기쁨으로 서게 하실 이

  

[]1: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 날이 되면 우리를 보호하셨고 거침이 없게 하셨으며 그 영광 앞에서 흠이 없게 기쁨으로 서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하나님과 함께 우리를 도우신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과 예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기쁨과 희락 가운데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1주된 아기도 아기입니다. 10주된 아기도 역시 아기입니다. 20주된 아기도 아이이며 마침내 38주에서 42주가 되면 출생하게 됩니다. 출생 전까지의 시기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성화는 완성되거나 완성되지 않거나 상관없이 성화를 위해서 나아가게 되면 무조건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성화를 위해서 살아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영원을 살기 위해 100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형성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일이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리스도의 긍휼을 본받으면서 미래의 영광의 일을 맞이할 일이 예비되고 있습니다. 이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계속해서 그 때를 기다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그 날의 기쁨과 영광이 우리 자신의 삶 속에 조금씩 형성되어질 것입니다.

  

우리를 그 놀라운 날을 위해서 흠이 없이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더욱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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