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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48갈 4; 4-9 종으로 살 것인가 자녀로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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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 4-9 종으로 살 것인가 자녀로 살 것인가_1

  

 

  

2018. 2. 25. . 주일오전.

  

 

  

*개요:  복음의 중요성, 56충만, 1적용, 6서신서

  

[]4:4    때가 차매 하나님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

  

[]4:6    너희가 아들므로 하나님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4:7    그러므로 네가 후로는 종 아니요 아들니 아들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4:9    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 하나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단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초대교회때에나 중세시대나 근현대 시대에서나 바로 지금 현재에도 단은 항상 존재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갈라디아서 16,8절에서도 단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상하게 여기노라

  

[]1: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

  

[]1: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외 디도서와 베드로후서에도 단에 대한 야기가 나옵니다.

  

"[]3:10             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벧후]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 일어났었나니 와 같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

  

러한 단에 대한 경고와 권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나 구원파나 초석, 박옥수, 재록, 정명석 등등은 통일교나 여호와의 증인나 안식교와 같 전부 정통에서 멀리 떨어진 단 혹은 교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단의 존재를 주목하면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단과 다른 정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도 단에 대한 경계와 권면과 회복을 통해서 더욱 정통 무엇인가가 잘 나타났습니다. 서기 4세기 초에 나타난 아리우스파의 존재는 러한 점을 잘 나타내 줍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사제였는데 예수님 반신의 존재로서 하나님의 아들 아니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주장에 교회가 혼란 있자 로마황제 콘스탄티누스1세는 325년에 니케아에서 공의회를 소집합니다. 그리고 아리우스에 대항해서 아타나시우스가 삼위일체를 강력하고 증거함으로써 결국에는 아리우스파는 단으로 정죄되었습니다.  

  

나타나기 전에는 정통의 의미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다소 모호하게 존재했었지만 나타나면서 정통 더욱 명확해지고 분명해지면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나타나는 복음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의 삶과 비교될 때 복음의 삶은 더욱 분명하게 증거됩니다. 그래서 복음 그 자체를 잘 정리해서 설명하는 로마서도 의미있지만 율법과 비교하면서 복음을 설명하는 갈라디아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정통만을 설명하는 것 보다는 단과 비교해서 정통을 설명할 때 정통의 의미가 더욱 잘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난 주에 우리가 본 신천지 단을 빗대어서 말한다면 복음을 따르는 진정한 신앙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나 구원파나 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왜 그런 곳에 나가느냐고 묻는다면 그분들 하는 말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은 형식적었기 때문에 잘못된 것었다고 합니다. 또한 진정한 성경의 진리를 그곳에서 배운다고도 말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더 강력한 체험과 기도응답을 받았다고도 합니다. 그 외에 그곳에서 더 확실한 천국에서의 보상과 축복을 얻게된다고도 말합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의 선택을 한 것고 그 선택 속에서 단으로의 정죄와 상관없 그들 원하는 것을 선택한 셈입니다. 그들에게는 고 정통고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신 더 의미있고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면 주변에서 라고 하든 말든 개의치 않고 그 교단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정통과 단에 대한 교리를 비교하려고 하는 것 아니라 정통의 삶과 단의 삶의 모습을 비교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정통의 삶의 모습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는 복음의 삶과도 일치하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단에 속한 자들 자기들 생각하기에 더 좋은 편을 선택해서 단에 들어갈 때 정통에 속한 자들 단에 따라가지 않고 정통에 있는 유는 무엇일까요? 4,5절을 보십시오.

  

"[]4:4  때가 차매 하나님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4: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

  

근본적으로 정통에 있는 자들 정통에 있는 유는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셨습니다. 단순히 하나님께 기웃거리면서 관계가 느슨한 자로 만든 것 아니라 자녀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과 가족관계를 만들고 아주 친밀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셨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는데 그 유는 바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함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너무 높아지면 율법 아래에 있는 인간들 그 아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을 것었기 때문에 인간과 동일한 수준으로 낮아지신 것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친밀함과 같 하나님과 친밀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의 명분을 갖는 것 중요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통으로부터 멀어져서 단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제 다시 단에 속한 자들의 생각으로 돌아가보면 그들 더 좋아보라고 해도 아무 상관없는 무리에 들어가는 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온전히 자신 누리는 유익과 욕구의 충족에 그 유가 있습니다. 형식적지 않고 실제적라는 것, 성경의 진리를 더 많 배운다는 것, 강력한 체험과 응답 있다는 것, 확실한 보상과 축복 있다는 것, 모든 것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그 자신 얻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 항상 기존 교회에서는 느슨한 하나님과의 관계와 불만 많은 교회생활 속에 있다가 단의 유혹을 받았을 때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듯한 제안에 손쉽게 넘어가게 되어버립니다.

  

마치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에서 무리와 떨어진 들소, 사슴, 영양 등 사자와 호랑의 습격을 받아서 목숨을 잃는 것처럼 그렇게 단에 빠지게 되어 버립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고 집회에 참석하고 예배를 드리고 선교를 한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은 결국 교주를 위해서 하는 것 뿐입니다. 그 자신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중에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의 삶뿐입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그 가족들 나와서 그를 다시 돌려달라고 하소연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탄의 유혹을 겨내셨는가 보십시오.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4:9    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4:10  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귀의 유혹을 따라서 그를 경배하면 모든 것을 얻을 것 같아도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과 대치되기 때문에 하나님 마귀를 심판하시고 또한 마귀에게 속한 자들을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겨내는 방법은 그런 유혹을 물리치고 오직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섬기는 것뿐입니다. 것을 해내는 사람들 바로 정통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 것을 하는 유는 하나님의 자녀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유익과 욕심의 충족을 위해서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것며 금하시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렇게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 확신 속에 사는 유는 하나님의 자녀 때문입니다. 자녀로서의 명분 있기 때문에 그 확신 속에 거할 수 있습니다.

  

 

  

와 같 사도 바울 갈라디아서에서 자녀의 명분을 말하고 있는 유는 단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함고 율법에서 복음으로 옮기게 하기 위함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 사실고 하나님 그렇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명한 사실과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할 때 단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율법에서 복음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점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

  

"[]4:6  너희가 아들므로 하나님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4:7    그러므로 네가 후로는 종 아니요 아들니 아들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사도 바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든 것 아닙니다. 하나님 그 아들의 영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 아들의 영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것지 사도 바울 우리보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는 것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다만 그 진리를 알지 못하는 자들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니 것을 우리가 깨달을 때 우리는 종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로서 하나님의 주시는 유업을 받을 자들입니다. 천사도 흠모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인 것입니다.

  

유명한 헐리우드 배우인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는 6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2명을 먼저 입양했고 그 다음에 1명을 낳았습니다. 그 다음에 다시 1명을 입양했고 다시 쌍동2명을 낳았습니다. 러한 과정 속에서 부모는 입양한 자녀들나 낳은 자녀들을 모두 동일하게 사랑해주었습니다. 그 두 사람  자녀들을 얼마나 사랑하며 돌보았는가는 헐리우드계에 커다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의 재산4,500억 정도 하는데 그 여섯 자녀들의 양육비로는 일년에 100억  소요된다고 합니다. 누구라도 그런 부모의 자녀가 되고 싶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다 더 귀한 자녀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받아들기 위해서 아들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자녀된 우리에게 더 좋은 분위기나 더 자세히 알게 되는 성경지식나 경험나 체험나 상급나 축복 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됨입니다. 그리고 자녀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분위기가 안좋아도 성경지식을 잘 몰라도 경험나 체험나 상급나 축복 없어도 오직 구원받음을 주시고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러한 선택을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을 높면서 사는 것입니다.

  

 

  

와 같 단에 비교되는 정통의 본질을 깨달을 때에 바로 복음으로 사는 삶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으로 사는 삶은 간단하고 명료합니다. 그것은 종으로 사는 것 아니라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4:9    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 하나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악한 자들과 우상에게 종 노릇하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그분을 알게 하시고 그분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는데 그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자녀로 살지 못하고 다시 종처럼 사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바울 한탄함으로 안타까움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율법의 삶 바로 그런 종 노릇하는 삶입니다. 종은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말고 아무런 생각 없습니다. 또한 자원해서 하는 마음 아니라 억지로 하는 마음입니다. 그들에게 종 노릇한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는 것 아니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들에게 종 노릇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거나 하나님을 생각해서 하는 것 아닙니다. 명절에 부모님께 선물을 드린다면 그것은 종으로 하는 것 아닙니다. 오직 자녀로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속에서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것며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는 것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을 배우지 못하고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율법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율법의 삶을 버리고 복음의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그것 진정한 정통단을 겨내는 신앙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자들입니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리고 렇게 하는 것 하나님의 자녀기 때문에 상한 일 아닙니다. 우리는 단순한 성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갈라디아서를 통해 우리는 복음으로 사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지금 당장 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러한 방향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하겠습니다. 그 방향을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서 더욱 그 은혜의 삶의 풍성함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종으로서의 부족함만을 느끼다가 쓰러지지 말고 자녀로서의 풍성함을 누리면서 복음의 은혜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누리시기를 주님의 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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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20; 19-23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강을 주신 예수님_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22 4 4721
460 63화평
41막 5; 35-41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하게 하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15 2 3871
459 63화평
43요 6; 16-21 예수님 오셔서 두려워하지 않게 하심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08 5 3915
458 63화평
41막 4; 35-41 삶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01 3 4350
457 62희락
58히 12; 1-3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24 7 4372
456 62희락
45롬 14; 13-18 하나님 나라의 의미와 가치는 희락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17 6 4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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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사 35; 3-10 여호와의 속량함을 기다리는 자들의 희락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10 5 4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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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전 8; 12-15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 얻는 희락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03 5 4401
453 66양선
49엡 6; 5-9 각 사람 선을 행하는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5-27 3 4250
452 66양선
48갈 6; 6-10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5-20 6 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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