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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계획] 49엡 1; 3-6 우리를 예정하셔서 자녀가 되게 하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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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3-6 우리를 예정셔서 자녀가 되게 신 이유_1

  

 

  

2018. 3. 4. . 주일오전.

  

 

  

*개요:  복음안에서 자녀됨의 이유, 51계획, 1적용, 6서신서

  

[]1:3    찬송리로다 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고 흠이 없게 시려고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셨으니

  

[]1:6    이는 그가 사랑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려는 것이라

  

 

  

 

  

갈라디아서에서 우리는 복음이 율법으로 변질되었을 때 어떻게 다시 복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고 천박한 초등학문이 율법이라면 강고 고상한 고등학문이 바로 복음입니다복음은 자발적으로 자원는 마음으로 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을 이루게 합니다. 또한 두려움없이 주저함없이 나님께 나아가게 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왜냐면 복음안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나님의 자녀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기뻐고 감사는 마음으로 자녀로서 살아가는 자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그러한 성도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려는 나님의 자녀들에게 이것을 , 혹은 이것을 지 말라라는 규칙은 무의미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흐름으로 그대로 이어가는 성경이 이번 달에 우리가 보는 에베소서입니다. 에베소서는 성도에 대한 예정과 교회의 의미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에베소서가 성도의 예정과 교회를 설명는 이유는 옥중에서 이 서신을 쓰면서 그가 마지막에 간절히 전고자 했던 복음의 의미를 더욱 심오게 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에베소서의 저작시기(AD 60,61)와 상황은 갈라디아서(AD 49,53)와 오묘게 비교됩니다.

  

다시 말면 갈라디아서나 에베소서는 연대와 시기가 다르게 각각 서로 다른 상황과 목적으로 기록되었으나 그 속에는 나의 연속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를 읽고 에베소서를 읽을 때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 모든 성경이 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와 에베소서를 이어서 볼 때에 그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에베소서를 보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은 종이 아니라 자녀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됨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께 우리를 위해 희생셨음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이고 복음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에 우리는 율법으로 퇴보지 않고 계속해서 복음의 능력을 붙들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복음 안에서 자녀됨이 에베소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보여주는 것은 그  우리의 행위나 우리의 열심이나 혹은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미리 예정되고 선택되며 불러주신 나님의 은혜에 기초고 근거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자녀됨은 확실고 불변며 항구적이 됩니다.

  

이러한 에베소서의 내용을 잘 이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 그 모든 자녀됨은 필연적으로 자녀로서 섬기게 되는 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중요성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를 깨닫고 바라보는 나님의 나라와 교회는 그 이전보다 완전히 다릅니다. 이제는 우리의 아버지 나님의 나라이며 그 자녀된 우리에게 나님께서 주신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가 나님의 자녀됨을 올바르게 알지 못면 결코 나님의 나라에 대해서도 마음이 열리지 않습니다. 반대로 나님 나라에 대한 마음이 열리지 않는 이유는 나님의 자녀됨을 올바르게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분명 법적으로는 자녀가 되었으나 마음으로는 온전한 자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님의 자녀됨과 나님의 나라의 일은 서로 밀접한 연결관계가 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원수를 양자로 삼은 일화는 아주 유명합니다. 1948년에 일어난 여순반란 사건에서 좌익 반란군 세력은 그 당시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전국학생연맹에서 활동고 있던 두 아들을 살해했습니다. 그러나 손목사님은 나중에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고 자백한 범인을 죽은 친아들을 대신여 자신의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 양아들은 안재선씨라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에는 손목사님의 양아들이 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습니다. 지만 나중에는 손목사님의 사랑으로 진정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손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셨을 때 상주의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나님의 자녀가 될 때 나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님의 일은 영원히 부담스러운 일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일이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 된다면 그 이유는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나님의 원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님의 일에 동참게 됩니다. 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님과의 관계를 잘 알기 위해서 우리는 예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일에 부르신 것은 단순히 현재의 일들 속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더 크고 놀라운 뜻이 그 부르심 속에 있습니다. 그 부르심은 창세 전에 미리 우리의 자녀됨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1:3  찬송리로다 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고 흠이 없게 시려고"

  

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 자녀됨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또한 나님의 일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은 창세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부르심은 단순히 시간적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셨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염두에 두시고 우리를 택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해서 구원받게 시는 것은 온전한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해서 구원받는 자들은 나님 앞에서 거룩고 흠이 없게 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우리를 예정시고 택셔서 구원셨다는 것을 말할 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예정이 자꾸만 그 반대로 이해되고 해석된다는 점입니다. 이 말씀은 결코 역으로 그러한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이 예정되고 버림받아서 구원을 받지 못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예정과 선택은 오직 구원받은 자들과 그들에 대한 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보여주는 말씀일 뿐입니다. 그것을 역으로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적용해서는 안됩니다.

  

비슷한 예를 이전에 말씀드렸던 안젤리나 졸리의 입양사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녀가 캄보디아 소년인 매독스와 에디오피아 소녀인 자, 그리고 베트남 소년인 팍스를 입양했다고 해서 캄보디아 어린이와 에디오피아 어린이와 베트남 어린이를 버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안젤리나 졸리가 각각의 어린아이를 입양기 위해서 자기 욕심에 따라 고르고 골라서 제일 예쁘고 맘에 드는 한 명을 선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입양한 어린아이들은 나같이 부모가 없고 버림받아서 불쌍한 처지에 놓여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고 안타깝게 생각해서 자신의 자녀로 삼은 그녀의 사랑이 귀한 것이지 한 명을 선택했다고 해서 나머지 전부를 버렸다고 말한다는 것은 온당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선택셨다는 말씀이 누군가를 창세 전에 버리기로 작정셨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그러한 내용을 설명지 않습니다. 오직 나님의 사랑을 이해지 못함으로 인해서 그 사랑을 곡해고 오해해서 이미 사랑을 베푸신 나님과 사랑을 받은 자녀들의 기쁨을 평가절는 잘못된 생각일 뿐입니다.

  

그 부르심의 의미를 성경말씀이 뭐라고 말는지를 보십시오.

  

"[]1: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셨으니"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셨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자인 성도들은 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을 받은 것입니다. 창세 전에 예정을 받은 것은 나님의 기쁘신 뜻이었습니다. 나님께서 세상을 창조시고 그 세상이 나님의 보기에 좋으셨던 것처럼 나님은 우리를 구원시기로 예정셨는데 그 예정은 나님의 보기에 기쁘셨습니다. 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들은 나님이 억지로 자녀로 삼으신 것도 아니고 무덤덤게 자녀로 삼으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기뻐심으로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창조의 기뻐심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 삼으시는 방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기로 예비되고 정말 때가 되어 그렇게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예수님의 행신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셨고 그 순종과 감사 속에서 우리는 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는 마치 자녀가 태어날 때 앞으로 들어갈 모든 비용을 계산고 그것을 감당기로 결심는 부모와 같습니다. 그 진실한 마음의 연결 속에서 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죽으심이 먼저 있은 뒤에 예수님을 믿게 된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믿는 자들을 위해서 죽으시기 전에 살았던 자들에게도 이러한 믿음으로 자녀됨이 적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예수님이 자신들을 위해서 죽으실 것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다윗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와 같이 구약의 모든 성도들은 앞으로 이 땅에 오셔서 어린 양으로 죽으실 예수님을 미리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믿음 속에서 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것이고 우리는 그 믿음 속에서 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제사와 예배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자녀 삼으시는 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님의 자녀로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믿는 자들을 자녀로 선택고 부르신 나님의 사랑의 이유를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렇게 나님의 놀라우신 뜻과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1:6  이는 그가 사랑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려는 것이라"

  

그 이유는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거저 받았습니다. 또한 창세 전에 예정함으로 그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복합적인 요소가 우리로 여금 는 것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찬송할 때 우리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우리 행위의 댓가가 아니라 무한한 나님의 사랑임을 증거게 됩니다. 또한 그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희생을 통해서 얻게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님의 영광스러우심을 선포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찬송면서 우리는 우리가 영광스럽게 나님의 자녀들임이 나타납니다. 그 자녀됨으로서 지금까지의 모든 나님의 구원사역에 대해서 동참며 합력며 충성나님의 자녀의 모습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억지로 는 것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 그 자신이 영광의 찬송이 되게 십니다.

  

 

  

이것이 바로 나님의 역사심입니다. 이 세계 속에 나타난 위대한 나님의 영광스러우심입니다. 나님의 이 모든 사역은 창세 전에 이미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창조가 이루어질 때 나님은 이 모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세계를 창조시고 그리고 인간을 창조실 때 앞으로 어떤 일이 이루어질지를 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빛을 만드시고 궁창을 만드시고 늘을 만드시고 땅과 바다를 만드시고 그속에 모든 아름다운 것을 만드시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을 때 그 만드신 인간이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창조계획과 더불어 인간의 타락 이후의 구속에 대한 계획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놀라운 계획이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게 되면서 나 이루어졌습니다. 그 계획은 바로 지금까지도 성취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말씀고 있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시고 예정셔서 구원시는 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자녀됨 속에서 온전한 의미를 갖습니다. 주님은 주를 믿고 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에게 말씀여 주십니다. '네가 나의 자녀된 것은 이미 창세 전에 내가 너를 택여 자녀 삼았기 때문이다'라고 십니다. 이제 그 놀라운 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기쁨으로 그 사랑에 응답며 그 영광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창세 전부터 지금까지 우리를 사랑셨던 나님의 은혜에 응답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사랑을 받았던 안재선씨는 손양원 목사님이 소천신 후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손목사님은 안재선씨가 목사가 되기를 바랬지만 그는 그 기대에 온전히 부응지 못했습니다. 신학교에도 들어가면서 손목사님의 기대를 따르고자 노력였지만 살인자라는 주변의 시선과 비난 때문에 결국에는 자신의 존재를 숨기면서 살아가는 자가 되어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 안경선 목사님을 통해서 그분의 존재가 나타났습니다. 안재선씨는 목사가 되지 못했지만 그 아들인 안경선씨에게 신학을 고 목사가 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 아들인 안경선 목사님을 통해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졌을 때 결국은 안재선씨가 양아버지인 손양원 목사님의 기대를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그 자녀됨을 온전히 이해지 못할 때 이런 저런 방황과 혼란을 겪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죄로 인해서 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나님의 자녀라는 이 영광스러운 위치를 망각게 됩니다. 그러나 나님은 창세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를 사랑십니다. 그리고 나님의 자녀됨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창세 전과 같은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어리석고 죄많은 우리들에게 나님의 용서와 사랑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마침내 자녀로 살게 시고 자녀의 모습을 갖추게 십니다. 그것은 도매급으로 그 일원이 되게 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님의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을 딴 메달리스트가 되게 십니다.  

  

그 모든 것은 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는 것입니다. 나님의 자녀들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지 않는 자들이 없습니다. 나님을 높이며 나님께 감사나님의 역사에 동참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빨리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우리의 삶은 변화됩니다. 자녀가 부모를 존경게 되도록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모범과 사랑 뿐인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어기면서 아버지의 일을 떠나는 둘째 아들의 모습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아버지의 일에 동참는 첫째 아들의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녀의 모습은 나님 아버지의 일인 교회의 일로 연결됩니다. 교회는 바로 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나타내고 성취는 은혜의 현장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말씀을 잘 새겨서 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나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6절 말씀은 '이는 그가 사랑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자녀됨의 의미를 기억고 우리를 예정셔서 자녀삼으신 나님의 영광을 온전히 나타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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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딤전 1; 12-17 내가 긍휼을 행는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9-23 3 3799
468 65긍휼
40마 18; 23-35 긍휼을 받은 자의 긍휼함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9-17 3 3984
467 65긍휼
19시 103; 8-14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9-09 2 5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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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느 9; 12-17 긍휼심으로 버리지 않으신 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9-03 0 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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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 26; 19-25 이삭이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8-26 3 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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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15; 1-6 나님의 약속을 인내로 받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8-19 2 4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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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 6; 11-16 노아의 인내이야기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8-12 4 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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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 4; 4-8 가인이 인내지 못한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8-05 3 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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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행 27; 20-26 내곁에 서서 평안케 시는 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29 3 4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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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20; 19-23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강을 주신 예수님_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22 4 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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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 5; 35-41 두려워지 않고 평안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15 2 3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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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6; 16-21 예수님이 오셔서 두려워지 않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08 5 3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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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 4; 35-41 삶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01 4 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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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히 12; 1-3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24 7 4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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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롬 14; 13-18 나님 나라의 의미와 가치는 희락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17 6 5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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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사 35; 3-10 여호와의 속량함을 기다리는 자들의 희락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10 5 4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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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전 8; 12-15 나님을 경외는 자들이 얻는 희락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03 5 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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