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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양선] 60벧전 2; 19-25 선을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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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벧전 2; 19-25 선을 말는 것과 행는 것_1

 

2017. 10. 8. . 주일오전.

 

*개요:  양선의 가치, 66양선, 53희생, 3관점, 6서신서

[벧전]2:19        부당게 고난을 받아도 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나님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2:21        이를 위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자취를 따라오게 셨느니라

[벧전]2:22        그는 죄를 범지 아니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벧전]2:23        욕을 당시되 맞대어 욕지 아니시고 고난을 당시되 위협지 아니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시는 이에게부탁시며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여 죽고 의에 대여 살게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우리가 언제든지 선을 말할 때 항상 따라오는 저항이 있습니다. 그것을 말는 당신은 얼마나 선을행는가 라는 것입니다. 당신도 선지 않은데 혹은 당신은 선을 행지 않는데 왜 선에 대해서 말느냐면서저항합니다. 이러한 저항은 대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에게서 나타납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더욱 확대됩니다. 지만 선을 말는자가 앞으로 선을 행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지만 선을 말는 자가 이전에 선을 행해야 했어야만 한다는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면 선을 행는 것이 먼저 시작이 아니라 선을 말는 것이 모든 선을 행는 것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악한 자들입니다. 그러한 악에서 선으로 나아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아마 살아있는 한 완전한 선에 머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악을 용서해 주시고 새롭게 시면서 우리가 선에 거게 합니다. 우리가 선에거할 수 있는 이유는 항상 나님의 은혜로 공급받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선에서선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악에서 선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면 선해서 선을 말는 것이 아닙니다. 다고 더라도 선으로 나아가야만 기 때문에 선을 말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라도 선을 향해야 고 마침내 선을 행는 것에 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지만 지금까지 선지 않았기때문에 선을 말지도 않는다면 결국은 선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선을 이루고자 는 의지와 결심이 없는데어떻게 선을 이룰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한 선을 이루고자 는 의지와 결심이 바로 선을 말할 때 생겨납니다. 그리고 그 말을 지키고 이루기 위해서 선을 행고자 노력는 것입니다.

지만 만약 이러한 선을 행지 않았기 때문에 선을 말지도 않는다면 결국에는 선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뿐만 아니라 정반대인 악을 행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선을 행할 것인가아니면 악을 행할 것인가가 바로 선을 말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선을 말면서 우리는 선을 행는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이러한 선으로의 변화와 노력이 중요다는 점에 대해서 성경말씀은 이렇게 말고 있습니다.

“[벧전]2:19       부당 고난을 받아도 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벧전]2: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선을 행면서 참을 때가 있고 악을 행면서 참을 때가 있습니다.  둘다 동일게 참는 것이지만 선을 행면서 참는 것은 아름답고 칭찬이 있지만악을 행면서 참는 것은 아무런 칭찬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악을 행면서 참는 것은 자신이 행한악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고 그 대가를 치르는 슬픔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인내를 행게 됩니다.

삶 속에는 수많은 악한 일이 있고 그 악한 일로 인해서 결과를 얻게 되면 그로 인해서 슬픈 일을 겪게 됩니다. 그런 슬픈 일을 겪으면서 참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선을 행면서 참는 것입니다. 그렇게 선을 행면서 참으려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악에서 선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감정 통제가 안되어서 누군가를 때리고 그로 인해서 법의 심판을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해 보십시오.법의 심판이 벌금이건 구속이건 간에 어떤 식으로든지 법의 심판을 받았을 때 그는 그 심판을 참아야 합니다. 악을 저지르고 그 다음에 그가 해야 는 것은 자신이 저지른 악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일을 참아야 는 것입니다. 그가 벌금을 내는 일을 참든 구속에 되는 일을 참든 악으로 행고 난 다음에 참는 것은 동일합니다. 그렇게 참으면서 자신의 악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모든 참음이 끝나고 다시 사회로 돌아왔다고 해보십시오. 그리고 동일게감정 통제가 안되는 상황이 생겼다고 해보십시오. 그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이 이전에 폭력행위로 벌금형이나 구금형을 받아서 법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또 그런 일이 있을때 역시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는 다시 악을 행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다시 이전보다더 혹독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이전에는 참지 못해서 대가를 치뤘지만 이번에는 달라졌다고 해보십시오. 선을이루고자 고 악을 행지 않으려고 할 때에 그는 비로소 달라지는 사람이 됩니다. 이전에 선을 행기위해서 참아야 할 때 참을 수 없었음으로 인해 생긴 죄악의 경험 속에서 그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거에어떤 악을 저질렀다 더라도 지금부터 다시 선을 행고자 할 때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선을 행려고 할 때만이 비로소 그는 악에서 떠난 자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선을 행기 위해서참을 때에 나님께서는 그에게 칭찬십니다. 또한 그의 인내는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 모든 것이 이전과는 상관없이 선을 행려고 니까 이루어집니다. 선을행려고 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는 노력이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도 생각해 보십시오. 믿지 않는 악을 행다가 믿는 선을 행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는 믿음을 고백는 선을 말는 것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리고그 말한 것을 지키는 선이 따라온 것입니다. 만약 이전에 악을 행했던 사람은 앞으로는 선을 행할 수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말한다면 그 말에 가장 먼저 해당되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도 바로 이전에악을 행했다가 이제는 선을 행할 것을 말는 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또한 완전한 선을 이루지는 못지만그 선을 이루기를 말면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항상 선을 말면서 선을 행게 되기를 기대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선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이전에 선을 행지 못했기 때문에 선을 말는 것을 포기해 버린다면 영영 악을 떠날 수 없습니다. 선을 말기 때문에 선을 행할 수 있지 선을 말지 않는다면 악을 벗어날 수 없고 결국에는 다시 악을 행할수 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악에서 선으로 나아가는 이러한 과정이 중요한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벧전]2:21       이를 위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따라오게 셨느니라

우리에게 있어서 악에 있다가 선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선을 말면서 선을 행게 되는 것은 매우 분명게 이해됩니다. 인간의 존재는 악에서 선으로 나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악에 거신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분을 본받아서 그의 자취를 따라가게 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악에 속신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와 같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예수님을따라가고자 할 때 예수님의 선의 모습은 아직 이루지 않으신 선과 이미 이루신 선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악에서 선으로 나아갈 때 주님은 미래의 선에서 현재의 선으로 나아가십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가 주님의자취를 따라 나갈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의 아직 이루지 않으신 선을 이해지 못했습니다. 22,23절을보십시오.

“[벧전]2:22       그는 죄를 아니시고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벧전]2:23        욕을 시되 맞대어 아니시고 고난을 시되 위협 아니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시는 이에게 부탁시며

예수님은 나님의 아들이셨지만 그 아들되심이 아직 나타나지는 않으신 때라사람들이 그 선심을 부정였을 때 그것을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대신 지시는 대속자이셨지만아직 그 일이 이루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대속심을 부정였을 때 그것을 나타내 보이실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두 가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선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그 선을 이루실 때에 행신 일은 바로 선을행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거부와 부정과 모욕과 비난과 무자비한 처형 속에서 주님은 죄를 범지않으셨습니다. 그 입에 거짓도 없으셨습니다. 맞대어 욕지도않으셨고 위협지도 않으셨으며 오직 그 모든 억울한 상황을 공의로 심판시는 나님께 부탁셨습니다. 바로이와 같이 주님은 모든 사람들의 악 속에서 선을 행셨고 자신의 모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선 속에서 그 선을 이루시기 위한 선을 행셨기 때문에주님은 온전한 선으로 나아가셨습니다.

만약 죄악 된 우리가 예수님과 동일한 위치였다면 우리는 악으로 돌아가기쉬웠을 것입니다. 선을 말했고 선을 행고자 는 마음은 있었지만 다시 죄를 지으며 거짓을 말며 맞대어욕며 위협며 공의로 심판시는 나님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이 직접 심판을 이루고자 였을 것입니다. 우리가그렇게 면 결국은 다시 악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원래는 선고자 했을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그누구보다도 더 악한 자로 악의 화신이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우리는 현대사에서 이러한 악의 피해를 많이 경험였습니다. 친일과 반일, 그리고 친공과 반공 사이에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안타까운 일들을 경험했습니다. 그 결과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었습니다. 이 모든 반복되는 악순환 속에서 예수님께서 행신 일은 온전한 선을 이루시는 일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온전한 선을 이루시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희생셨습니다.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여 죽고 의에 대여 살게 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주님은 결국 그 모든 이루어지지 않은 선을 마침내 이루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심으로 주님을 부인고 거부며 죄없으신 나님의 아들을처형던 죄까지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전한 선을 이루셨고 그 선을 행심 속에서 바로우리가 살아가게 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들도 주님을 본받아서 선을 행면서살아가게 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더이상 죄를 짓지 않고 의에 대해서 살아서 선을 행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으로 인해서 우리는 악에서 선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대신 맞으시고대신 고통당시고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는 맞지 않게 되었고 고통 당지 않게 되었으며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죽으심을 기억고 감사고 의에 대해서 살아가고자 할 때 우리가 해야는 일은 선을 행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는가가 나타납니다. 우리는 맘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악을 행고 난 뒤 그결과의 고통을 참으며 살아가는 자들도 아닙니다. 선을 행며 그로 인해서 생기는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왜냐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심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악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선으로 나아가게 셨습니다. 이제 그 구원받은 삶의 방향성은 분명합니다. 바로 선을 행면서 살아가게 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악을 대신 지시고 죽으신 대속자이십니다. 그리고 모든 선을 이룰 수 있도록 시는 인도자가 되셨습니다. 그 인도자되신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서 선을 행할 수 있도록 인도시는 목자와 감독이 되셨습니다. 그 예수님과 함께 우리는 매 상황 마다 어떻게 선을 행할 수 있을지를 생각고 판단며 결정고 실천할 수있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25절이 말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길을 잃은 상태는 어디로 가야 며 무엇을 해야 는지를 알지 못는상태입니다. 그 속에서 악을 행며 그렇게 악을 행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지만 이제 예수님께서는 선을 알게 시고 그 선을 말셨습니다. 그런다음에 기회가 왔을 때 선을 행십니다. 선을 행고자 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영혼의 목자이자 감독이 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인도해주시고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주님께서 알게 십니다.

 

우리가 선을 행해야 는 상황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우리가 당면해야 는 상황들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와아들과 딸에 대해서 놓이게 되는 갈등상황들이 있습니다. 좋을 때 좋지만 문제는 나쁠 때입니다. 나쁠 때에는 감정이 격화되는 때이고 뜻대로 되지 않는 때입니다. 바로그 때 우리의 영혼의 목자이자 감독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기억며 그분께 물어야 겠습니다. 그분을 의지해야 겠습니다. 그럴때 말을 해야 되는지 말아야 는지 말을 한다면 무슨 말을 해야 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예수님을 의지며 그 인도심을 받는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선을 행게 될 것입니다.

교회에서 우리가 선을 행해야 는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 선인가를 생각해 볼 때 예수님을 의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이기뻐실까, 주님이 이것이 선이라고 말씀시는 것일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교회생활 속에서 주님을 영혼의 목자요 감독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교회생활을 면서 예수님을 생각지 않고 그 뜻을 고민지 않고 그분을 의지지 않는다면 교회생활은결코 선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생활 속에서 자신의 악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학교와 직장과 사회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선해서 선을 행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악지만 선을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이렇게 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아무도 폄거나 부정거나 비난지마십시오. 그렇게라도 선을 따르고자 지 않는다면 악을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악을 따르게 되면 가장 먼저 피해보는 사람이 선을 행는 것을 조롱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우리가 오직 전적인 예수님의 은혜로 선을 말할 수 있고 그 선을 행도록노력할 수 있음을 기억고 그분을 따라서 선으로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는주님의 자취를 따라가는 귀한 나님의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나님의 자녀됨의 놀라운 은혜가여러분의 삶 속에 넘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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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느 9; 12-17 긍휼심으로 버리지 않으신 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9-03 0 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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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 26; 19-25 이삭이 끝까지 인내할 수 있었던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8-26 3 4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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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15; 1-6 나님의 약속을 인내로 받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8-19 2 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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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 6; 11-16 노아의 인내이야기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8-12 4 4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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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창 4; 4-8 가인이 인내지 못한 이유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8-05 3 4130
461 63화평
44행 27; 20-26 내곁에 서서 평안케 시는 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29 3 4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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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20; 19-23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평강을 주신 예수님_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22 4 4818
459 63화평
41막 5; 35-41 두려워지 않고 평안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15 2 3963
458 63화평
43요 6; 16-21 예수님이 오셔서 두려워지 않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08 5 3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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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막 4; 35-41 삶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예수님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7-01 4 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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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히 12; 1-3 그 앞에 있는 기쁨을 바라보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24 7 4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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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롬 14; 13-18 나님 나라의 의미와 가치는 희락이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17 6 5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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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사 35; 3-10 여호와의 속량함을 기다리는 자들의 희락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10 5 4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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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전 8; 12-15 나님을 경외는 자들이 얻는 희락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06-03 5 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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