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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53살후 3; 7-13 재림을 바라보는 삶을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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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살후 3; 7-13 재림을 바라보는 삶을 산다는 것_1

  

 

  

2018. 7. 29. . 주일오전.

  

 

  

*개요:  재림에 대한 오해를 해결함, 56충만,

  

[살후]3: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살후]3: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살후]3: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살후]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살후]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살후]3: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살후]3: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이제 데살로니가후서의 마지막 시간에 이르렀습니다. 이번 데살로니가후서를 살펴보면서 재림에 대한 오해를 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것은 결코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현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예수님은 그 재림을 어떻게 이루실까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 재림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준비할까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 재림을 준비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현재에 집중하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는 몰랐던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못 생각했던 것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또한 잘 알고 있는 것들도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잘 알고 있는 것들이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달 데살로니가후서를 살펴보면서 했던 일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오해를 풀고 몰랐던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아는 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날마다 더욱 새로워져 갑니다.

  

자동차를 사면 계속 관리를 해줘야 합니다. 새 차를 사도 4년부터는 정기검사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고 타던 그대로 계속해서 타면 결국에는 차가 망가져버립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유초등부 시절의 믿음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중고등부나 청년부 시절의 믿음에 머물러서도 안됩니다. 20년전, 10년전의 신앙은 그때가 가장 최선이었을 뿐입니다. 지금은 다시 새로운 도전과 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에 마음을 열고 연합하며 참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바로 그러한 당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림의 오해를 해결하고자 서신서를 썼던 사도 바울은 재림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살후]3: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살후]3: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살후]3: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과 사역자들이 모범을 보인 이유는 오직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재림을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본을 보이며 본을 받는 일은 성도들을 더욱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며 그 믿음에서 발전되게 만듭니다.

  

여기서 본을 보이고 본을 받는 일이라고 할 때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만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생활 속에 나타나는 것이며 세상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삶에서 본이 되고 본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한 본을 통해서 성도들은 믿음대로 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중요한 이유는 바로 그 배움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어떤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묻는 장면이 있습니다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10: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율법교사는 영생을 얻는 방법에만 관심을 기울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영생을 얻는 방법을 행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하셨습니다. 율법교사는 이웃이 누구냐에만 관심을 가졌지만 예수님은 이웃에 대한 사랑을 행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언제나 알기만 하는 지식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갖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과연 그대로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요한복음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서 유대인 중의 지도자였는데 그는 배울 뿐만 아니라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3: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와서 그분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을 알고 배우고자 하였을 때에 그의 나아옴을 통해서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본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타났습니다. 니고데모는 그 가르침을 통해서 거듭나고자 했을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그는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에 몰약과 침향을 가져왔고 그것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항상 이와 같이 말씀대로 행하는 자들을 통해서 그들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고 그것을 통해 복음의 전파가 이루어집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고넬료는 종을 보내 베드로를 초대하였고 온 가족을 모은 뒤에 그에게서 배우고자 하였을 때에 놀라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또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는 바울과 바나바의 이야기를 듣고 감화를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말씀을 들으며 바울을 따랐습니다.

  

“[]13:43           회당의 모임이 끝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르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13:44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시민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이러한 배우고 행하고자 하는 열정과 의지를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설명되며 확장되고 발전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할 때 그 말씀을 듣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또한 그 말씀을 행하게 하시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는 자들은 마땅히 주님 안에서 배우고자 하며 행하고자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출산 시대의 여파로 학생들이 없어서 많은 학교들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대학들은 부실한 대학부터 하나 둘 씩 문을 닫고 있으며 지역의 초중고 학교들은 그 지역의 학생이 없기 때문에 지방에서부터 하나 둘 씩 문을 닫고 있습니다. 배울 학생이 없으니 가르칠 선생님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와 같이 신앙도 배우고자 하는 자들이 없으면 가르치는 자도 사라지게 됩니다. 성경의 내용에 대해서 배우려고 하지 않고 성경대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배우려고 하지 않을 때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나 성경대로 살고자 모범을 보이려는 사람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주님 앞에 섰을 때 주의 뜻을 아는 자들도 없고 주의 뜻을 행한 자들도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유럽이 그렇지 않습니까? 유럽에 교회가 없다면 그것은 유럽에서 주님 앞에 가는 사람들도 없다는 뜻입니다. 주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래서 그 뜻을 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재림을 바라보며 해야 하는 일은 주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이를 위해서 계속 배우고 배우며 배워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알게 되고 깨닫게 되며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영생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면 영생을 얻게 되기 때문이고 영생을 얻게 되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계속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관계와 연결성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 일을 앞으로 재림 이후에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바로 지금 재림 이전에 그 일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생활 속에서 늘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배운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사역자들이 왜 무질서하지 않았고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았으며 수고하면서 주야로 애써 일했을까요? 그들은 말씀의 본을 보여서 본받게 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그 당시의 좋은 본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말씀대로 사는 삶을 배웁니다. 또한 그러한 삶을 가르칩니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모본이 되려고 합니다. 이 모든 일이 재림하실 그리스도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들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배우고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배움과 행함이 잘 이루어진다면 그 다음에는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재림을 생각하고 준비한다는 것은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림을 생각하면서 일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살후]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살후]3: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데살로니가 교인 중에는 재림을 생각하면서 오히려 더 게을러 져서 재림이 올 것이니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단지 재림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것이 기본적인 삶의 모습인데 정반대로 재림이 다가오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오해는 그들로 하여금 일을 안할 뿐만 아니라 일을 더 만드는 자들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재림에 대한 생각이 그러한 불성실을 만드는 이유는 재림을 단순히 종말로만 생각하기 때문이고 재림의 심판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방학을 기다리지만 시험이 끝난 다음에 방학이 오는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험성적표는 방학의 수준을 완전히 바꿔 놓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시험 성적이 좋으면 편안한 방학을 얻겠지만 시험 성적이 나쁘면 밀린 공부를 위한 불편한 방학을 얻을 텐데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재림의 주님을 생각할 때 일하지 않고 놀기만 하는 자들이 어떤 심판을 받을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재능과 달란트를 땅에 묻고 어떤 식으로든지 사용하지 않았던 한 달란트 받은 종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도 많은 성도들이 자신의 달란트를 땅에 묻고 있습니다. 애써서 그 달란트를 활용하고 이용하고 개발할 생각을 하자니 힘들고 귀찮아서 혹은 세상 일에 바빠서 그냥 고스란히 묻어만 놓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받은 귀한 것을 사용하지 않고 묻어두기만 한다면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중국의 한 농부가 그렇게 자기가 번 돈을 땅에 묻어두었다가 고스란히 잃고 말았습니다. 쓰촨성에 사는 한 농부는 돈을 은행에 예금하는 것이 귀찮아서 침대 밑에 땅을 파고 지폐뭉치 2만 위안(376만원 정도)를 묻어두었습니다. 그 다음에 그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1년이 지난 다음에 문득 그 지폐가 생각났습니다. 얼른 지폐를 꺼내보니 땅속에 묻어놓았던 지폐는 다 삭아버린 상태였습니다. 흰개미들이 지폐를 다 갉아먹었던 것입니다. 자연현상으로 삭는 경우도 있고 이렇게 예기치 못한 훼방자에 의해서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의 믿음의 달란트도 활용하지 못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어 버립니다.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종에게 주인은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25: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5: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5: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주인은 취리하는 자들에게라도 맡겼어야 했는데 그렇게도 하지 않은 종을 질책했습니다. 스스로 장사하는 것은 고사하고 은행에 맡기기조차 귀찮아 했던 종은 주인에게 아무런 결실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섰을 때 아무런 결실도 드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입니다. 십자가의 한 강도처럼 구원받자마자 죽었다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구원받고 십 수 년이 흐르고 구원받고 평생을 지냈는데 아무런 결실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드릴 그 무엇인가를 스스로 막은 셈입니다. 재림의 시간이 더디면 더딜 수록 예수님이 오시는 시간이 지체되면 지체될수록 우리는 마음대로 살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추궁을 받을 일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주님은 그래서 재림주로 오시기 전까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권면하십니다.

  

“[살후]3: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살후]3: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그리스도 안에서 조용히 일하며 자기 양식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해야할 일을 꾸준히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양식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지금도 우리는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받은 달란트대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 일을 하면서 받는 자신의 양식이 있습니다. 그 양식을 놓치지 말고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이 일을 행할 때에 주님은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일에 주님이 이미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본이 되려고 하고 본을 받고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셔서 그 일을 도와주십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그 선을 행할 때 주님은 바로 우리 옆에, 우리 앞에, 그리고 우리 뒤에 계실 것입니다. 주님은 직접 나타나시지는 않아도 주님의 사람들을 그렇게 앞에서 옆에서 뒤에서 적절하게 배치해 주셔서 우리를 주님께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주님께로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며 날마다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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