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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충만] 49엡 1; 15-23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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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 15-23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가자_1

  

 

  

2018. 3. 18. . 주일오전.

  

 

  

*개요:  복음의 자녀됨의 중요성, 56충만, 6서신서, 3관점

  

[]1: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1: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오늘 우리가 본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이어왔던 내용의 가장 하이라이트입니다. 이 말씀의 중요성이 커서 한번에 다 보지 못하고 15절부터 19절까지를 이번 주에 보고 20절부터 23절까지는 다음주에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다음 주는 고난주일인데 고난주일과 어우러져서 왜 주님이 죽음에 이르게 되셨는지를 되새길 수 있는 좋은 말씀이 될 것입니다. 이번 주에 보게 될 이 에베소서 115절부터 19절의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가 복음 안에서 자녀 된 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정말 의미심장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을 계속 알아나가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에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자들은 하나님의 자녀들뿐입니다. 그들은 자녀됨의 시작이 우리 자신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현재 자녀됨을 받아들인 우리 자신의 믿음의 선택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자들입니다. 마치 끊임없이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르려고 하는 수소풍선처럼 그들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앞으로 베푸실 은혜와 이루실 계획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욱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사도 바울은 오늘 읽은 말씀에서 에베소 교인들이 더욱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관심을 두고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 관심을 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반복적으로 그분의 자녀들의 자신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서 죽으심을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녀됨은 특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이전까지는 자신을 위해서 살았지만 이후로는 자신을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관심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다 그렇게 살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이 바로 그러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신실한 자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내용을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은 큰 유익이 있습니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하신 것처럼 이 말씀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는 눈이 열립니다. 사도 바울도 간절함으로 이 말씀을 전하고 있고 저도 역시 이 말씀이 잘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필요성은 말의 부족이나 지식의 부족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고후]11: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고후]11: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그는 자신이 다른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비록 자신에게 말의 부족함이 있지만 지식에는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바로 그 지식에 대한 내용을 너희가 알 것이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바울도 말의 부족과 싸우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온전한 말씀의 지식을 전해주고자 애를 썼습니다. 저는 말도 부족하고 지식에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나타내는 일에는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말의 부족이나 지식의 부족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15,16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1:15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1:16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주 예수 안에서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믿음과 성도를 향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과 사랑은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감사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있던 믿음과 사랑은 결코 완성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시작이었습니다. 믿음이 있고 사랑이 있는 것은 앞으로 하나님께 대한 지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놀라운 토대입니다. 만약 믿음과 사랑이 없었다면 하나님께 대한 지식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하나님께 대한 관심도 없고 의지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사랑이 있을 때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는 놀라운 소망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과 사랑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은 오직 믿음과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과 사랑이 없어도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믿음과 사랑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그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다시 하나님을 알아가면 됩니다. 그럴 때 첫 번째 하나님을 아는 것은 구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두 번째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바로 성화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믿음과 사랑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필요한 의미입니다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성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구원을 받아서 믿음과 사랑을 갖게 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서 더욱 성화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떤 경우에서든지 어느 누구에게든지 중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말과 지식에는 부족할지 몰라도 다른 사도들에 비해서는 부족함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많은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었어도 여기 있는 몇 사람만이라도 구원을 받게 하고 또한 저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는 없었어도 저와 함께 성화를 이룰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제가 말에 부족하거나 지식에 부족해도 구원과 성화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외진 곳에 마을 몇 사람들을 위해서 목회자가 존재할 때 그분이 말을 잘하거나 혹은 지식에 뛰어나지는 않아도 그분은 그 지역에서 부족함이 없습니다. 결국은 그들을 구원받게 하거나 성화를 이루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더 큰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말의 부족이나 지식의 부족이 문제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런 목적이 아니고 단순히 구원과 성화를 위해서라면 우리에게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나 여러분이 과거에 다 그런 교회와 목회자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당시에 그 상황에서 가장 온전한 분을 주셨던 것입니다. 저도 중학교 때 한 전도사님에게서 기도를 받고 방언을 받았는데 그분은 저에게 가장 온전한 교역자였습니다.

  

 

  

이제 이 모든 준비 속에서 다시 말해 믿음과 사랑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그 의미가 흐려집니다. 그럴 때 믿음과 사랑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가는 분명한 시작점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17절을 보십시오.

  

“[]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게 되면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있습니다바로 성령님입니다. 성령님이 지혜와 계시의 영이신 이유는 그분은 항상 이전에 있었던 일을 깨닫게 하시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생각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지혜는 과거에 대한 것이고 계시는 미래에 대한 것입니다. 그 성령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마다 특별히 세례문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만약에 세례문답에서 확신이 없다면 굳이 세례를 받게 하지 않습니다. 너무 당연하지만 그렇게 하게 되기까지에도 힘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항상 그냥 세례를 받게 하자는 의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성령의 역사하심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과거에 하신 예수님의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을 깨닫게 합니다. 또한 미래에 예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가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셔서 그 나라로 인도해주시고 영원토록 살게 하심을 알게 합니다.

  

이러한 지혜와 계시의 영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기 때문에 세례문답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은 세례 만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의미있는 일로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아까워하는 그 무엇인가를 버릴 때 그 이유는 항상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던 그 무엇인가를 하게 될 때 그 이유는 항상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말과 행동과 신앙생활과 경건생활과 교회생활에 이어집니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에게 갈등을 일으키고 결단을 하게 하며 비로소 실행하게 합니다.

  

예전에 제가 처음 주일저녁예배에 나가게 되던 때가 생각납니다. 집은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았고 교회에서는 저녁에 종을 쳤는데 그 소리를 들으며 갈등하고 괴로워하다가 결국은 집을 뛰쳐나와 교회로 왔습니다. 수요예배가 금요철야예배가 새벽예배가 늘 특별한 사연과 결단의 결실입니다. 이미 지금은 습관이 되어버렸지만 그 습관은 누구에게나 특별한 이유와 목적의 결실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유와 목적은 바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주시는 하나님, 도우시는 하나님, 힘주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나 헌금을 하는 것이나 봉사를 하는 것이나 그 모든 것은 전부 하나님을 아는 것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주님이 주신 지혜와 계시의 영의 역사하심입니다.

  

 

  

그 성령의 역사하심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정말 중요하게 알아야 할 것은 세 가지입니다. 그것은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며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며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입니다.

  

“[]1: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는 정말 우리를 부르신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단순히 구원을 위해서만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거룩한 성화의 목표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다음에 연결되는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의 목적은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입니다. 바로 이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성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 때 우리가 그 영광에 합당한 자가 되기 위해서 거룩에 이르러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집에 충성한 아들로서 얼마나 영광스러우셨는가를 보십시오. 우리도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깨달아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 위해서 성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마지막은 베푸신 능력의 크심입니다. 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을 버티고 견디게 하시는 힘은 더 큽니다. 댐이 얼마나 많은 물을 막고 있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를 버티고 견디며 마침내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놀랍습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 자신의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을 사라지고 그 영광을 간절히 보고자 하는 마음에 우리의 마음은 천국을 향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하루 하루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이 세상에 있으나 우리의 몸은 하늘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잡고 있는 풍선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풍선은 언제나 하늘로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줄을 놓기라도 하면 그 풍선은 지체없이 하늘로 날아갑니다. 풍선이 하늘로 날아가지 않는 것은 오직 줄을 잡고 있기 때문일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언제든 하나님 아버지의 나라에 가고 싶고 그 나라의 영광을 보고 싶습니다. 저도 꿈에 영광의 면류관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면류관을 꼭 보고 싶습니다. 그 면류관을 씌워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습니다.

  

우리의 모든 상황에서 이제 더욱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갑시다믿음과 사랑이 있을 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우리는 성화로 나아갑니다. 믿음과 사랑이 없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구원으로 나아가보십시오믿음과 사랑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성화를 위해 다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가십시오. 초등학교를 마치면 중학교로 중학교를 마치면 고등학교로 가는 것처럼 구원을 마치면 성화를 위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전부 자신에게 맞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믿음이 크나 적으나 있으나 없으나 오직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지는 못했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지만 여기 몇 사람에게 만이라도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저도 더욱 기도하고 감사하며 간구하겠습니다. 함께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나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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