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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능력] 63요이 1; 4-9 하나님을 따라서 진리를 행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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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요이 1; 4-9 나님을 따라서 진리를 행는 자_1

  

 

  

2019. 3. 3. . 주일오전.

  

 

  

*개요:  진리를 실천는 모습, 55동행-66양선, 6서신서, 1적용 

  

[요이]1:4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요이]1: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노니 서로 사랑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요이]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심이라

  

[요이]1:7             미혹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이]1:8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요이]1:9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지 아니는 자는 다 나님을 모시지 못되 교훈 안에 거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흔히 는 말 중에 모든 사람과 친한 사람은 사실 아무와도 친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관계에 있어서 모든 사람과 두리뭉실게 친분을 유지다 보면 특정한 몇 사람과 더욱 친게 지내는 것이 사라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반대로 특정한 몇 사람과 친게 지내게 되면 모든 사람과 친분을 유지할 수가 없게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둘 중 나에서 선택을 내려야 합니다모든 사람과 거리감을 가지고 적절히 친분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의 사람들과 깊은 친분을 유지할 것인가.

  

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나님을 사랑할 것인가 아니면 세상을 사랑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을 는 성도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목표는 어떻게 나님을 사랑할 것인가입니다. 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나님을 더 사랑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사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때에 비로소 나님을 사랑는 자가 됩니다. 나님에 대한 사랑이 부족더라도 세상에 대한 사랑이 줄어들 때에 비로소 나님께 대한 사랑이 커져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님에 대한 사랑이 아무리 커도 세상을 더 사랑나님에 대한 사랑은 무의미게 되어버립니다.

  

아주 친밀한 관계를 생각할 때 연인관계, 부부관계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계에서 핵심은 상대방이 나를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사랑는가 입니다. 연인관계에서 만약 상대방이 나도 사랑지만 다른 대상도 사랑한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 진행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부부관계에서도 배우자가 자신보다 더 사랑는 다른 대상이 생긴다면 파탄이 나게 될 것입니다. 언제나 친밀한 두 사람의 관계에서 바라고 원는 것은 자신을 더 사랑는 것이고 자신만이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나님께서도 우리가 그렇게 나님을 사랑기를 원십니다. 나님을 우습게 여기거나 소홀히 여기기를 원시지 않습니다. 또한, 그렇게 내버려 두시지도 않습니다. 나님은 그러한 모든 것에 대해서 죄라고 말씀시고 그에 대해서 심판십니다. 이것은 아담과 와 이후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나님께서 원시고 기대시는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는 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자발적으로 나님께 순종나님의 형상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나님은 우리가 바로 그렇게 되게 십니다.  

  

 

  

요한이서는 요한일서에 계속 이어져서 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말고 있습니다. 그러한 삶은 나님을 믿는다 면서 삶에서는 믿지 않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다고 말면서 정말 믿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유는 정말 믿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단순한 지식이나 감정이 아니라 분명한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렇게 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나님과 동행는 삶이라고 였습니다. 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서 보이지 않으시는 나님을 기쁘시게 는 것입니다

  

요한이서에서는 계속해서 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진리를 행는 자가 되기를 권면고 있습니다. 그 진리 속에서 서로 사랑라고 말합니다. 또한 그러면서 이단에 대해서 흔들리거나 현혹되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왜냐면 그것이 진정으로 나님을 사랑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님 사랑은 나님을 사랑기만 는 것이 아니라 성도를 사랑는 것이고 나님의 뜻을 부정는 이단을 거부는 것입니다. 4,5절에서 사도 요한은 바로 이것을 나님 아버지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고 있습니다.

  

“[요이]1:4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요이]1: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노니 서로 사랑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성도들 중에는 나님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는 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존재와 모습은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사도 요한이 계속해서 바라고 구는 것은 그렇게 나님께 받은 계명대로 살면서 흔들림없이 서로 사랑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롭게 말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이었습니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면서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나님을 사랑는 자들이 서로를 사랑지 않는다면 온전한 사랑 속에 거는 것이 아니라 온전지 않은 사랑 속에 거는 것입니다. 나님이 말씀신 온전한 사랑이란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의지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나님의 계명에 대한 실천 속에서 사랑라는 것이 가능합니다.

  

나님께서는 나님을 좋아라고 신 것이 아니라 나님을 사랑라고 였습니다. 그와 같이 나님은 성도를 좋아라고 신 것이 아니라 성도를 사랑라고 셨습니다. 그러한 숭고한 사랑의 실천 속에서 성도들은 나님 사랑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이미 앞선 요한일서에 자세히 나타나 있습니다.

  

“[요일]4:7            사랑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자 사랑은 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는 자마다 나님으로부터 나서 나님을 알고

  

[요일]4:8             사랑지 아니는 자는 나님을 알지 못나니 이는 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나님께 속한 사랑을 통해서 우리는 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나님의 사랑을 알고서 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그 사랑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을 사랑게 되었습니다. 나님의 사랑은 좋아는 마음이 아니라 긍휼히 여김으로 용서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도 긍휼히 여김으로 용서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나님 사랑 속에 거게 됩니다.

  

부모님에게서 받는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랑을 받고 있을 때 다른 형제들에게도 그 사랑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서도 형제들에게는 사랑없이 대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계속해서 그 사랑 가운데 거기를 원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형제 자매 간에 서로 사랑지 않는다고 해보십시오. 부모님의 사랑의 분위기는 큰 변화를 나타낼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녀들이 서로 사랑게 되기를 원기 때문입니다.

  

나님께서도 우리가 나님으로부터 받는 사랑 가운데 거기를 원십니다. 그래서 그 사랑 안에서 나님 안에 여전히 거기를 원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면서 나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6절을 보십시오.

  

“[요이]1: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심이라

  

다른 사람을 사랑는 것은 계명을 따라 행는 것이고 그 계명을 따라서 행는 것은 나님과 함께 행라는 의미입니다. 나님은 지금도 우리 같은 사람들을 사랑십니다긍휼히 여기면서 용서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나님과 동행는 자들은 같은 성도들을 사랑면서 긍휼히 여기고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나님과 동행는 것이며 그 계명을 따라서 행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행할 때에 그 사랑이 온전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지 말아야 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이단들입니다. 나님을 사랑고 성도를 사랑지만 이단은 사랑면 안됩니다. 왜 그런가 면 이 사랑은 나님께 기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님이 사랑시는 자를 사랑나님이 미워시는 자는 미워해야 합니다. 나님의 미워시는 자는 나님의 역사심을 부인는 자입니다. 7,8절을 보십시오.

  

“[요이]1:7            미혹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요이]1:8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이단은 불신자와 다릅니다. 불신자는 안믿는 자들로서 개개인으로 존재지만 이단은 집단적으로 안믿는 자들이면서 의지적으로 진리를 거부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막대한 악영향을 주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부인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것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의 나님의 아들되심도 부인나님과 동등심도 부인며 교회의 머리되심도 부인합니다. 교회도 부정고 성도도 부정고 모든 것을 부정면서 기존의 교인들을 미혹고 불신자들을 유혹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적그리스도가 되어서 결국 최종 받을 심판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자들을 따르게 되면 지금까지 일한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신앙도 믿음도 천국도 영생도 다 잃어버립니다. 그들이 갈 곳은 오직 지옥과 불심판을 받을 것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한 자들을 사랑고 용납면 그것은 나님을 사랑는 것이 아닙니다. 나님을 사랑는 것은 나님과 동행는 것이지 나님의 말씀을 부정는 자와 동행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누구와 친한지 누구를 자주 만나며 누구와 소통을 많이 는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게 자주 만나며 친고 소통을 많이 는 사람이 악한 사람이라면 자연히 악한 자가 됩니다. 그러한 자를 사랑고 용납며 가까이 면 결국에는 그 악한 자의 악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당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은 그 일을 지 않았기 때문에 악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지만 그 일을 지는 않았다 더라도 그 일에 연루가 되고 그 일에 공범이 되며 그 일에 돕는 자가 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러한 이단세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증거였습니다.

  

“[벧후]2: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는 자들이라

  

[벧후]2:2             여럿이 그들의 호색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벧후]2: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지 아니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느니라

  

거짓 선지자와 거짓 선생이 멸망게 할 이단을 끌어들이고 주를 부인며 멸망을 스스로 취는 자들이 됩니다. 그로 인해서 진리의 도는 비방을 받고 지어낸 말로 이득을 삼습니다. 결국 그들은 심판을 받아 멸망게 됩니다. 이 모든 일에 동참해서 활동는 것은 결코 나님을 사랑는 것이 아닙니다. 나님을 사랑는 것은 나님이 미워시는 것을 지 않는 것이며 나님이 심판실 모든 대상들과 함께 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그럴 때 진정한 나님께 대한 사랑이 완성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두 가지 기로에 서있습니다나는 성도를 사랑는 것과 사랑지 않는 것입니다. 성도를 사랑할 때 나님의 사랑 속에 거함을 더욱 깨닫게 됩니다. 긍휼히 여기고 용서할 때에 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더욱 잘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른 나의 기로는 이단을 사랑지 않는 것과 사랑는 것입니다. 이단은 유혹고 미혹며 진리의 가르침을 비방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멀리 할 때 비로소 온전히 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이런 이단에 대한 이야기를 니 어떤 다른 교회에 다니는 성도가 말기를 자신은 그 이단 집회에서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목사님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들을 이단이라고 느냐고 했습니다. 또한 그런 근거가 과연 정당며 이단으로 매도는 것이 정말 나님의 사랑이 맞느냐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단을 거부는 목사님이 오히려 이단인 것은 아니냐고 했습니다.

  

조금 당황기는 했지만 이단의 존재를 통해서 저도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이단에 속지는 않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을 부인는지, 진리의 도를 비방는지, 지어낸 말로 이득을 삼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음을 깨달을 때 다시 나님을 사랑고 성도를 사랑는 자들임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저런 모습으로 등장는 이단들을 통해서 우리는 늘 생각합니다. 정말로 우리가 나님을 사랑는가, 그리고 성도를 사랑는가 그것을 잊지 않을 때 이단이 아니고 항상 나님과 동행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들도 돌이켜서 주님을 부인지 않고 진리의 도를 비방지 않고 지어낸 말로 이득을 삼지 않고 나님을 사랑며 성도를 사랑한다면 정통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요이]1:9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지 아니는 자는 다 나님을 모시지 못되 교훈 안에 거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주의 교훈 안에 거는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신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뿐이겠습니까?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는 사람들도 우리는 모실 수 있습니다. 왜냐면 주의 교훈 안에 거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나님을 따라서 진리를 행는 자가 될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해야 겠습니다. 그래서 나님을 사랑고 성도를 사랑나님의 뜻을 지키는 모습으로 나님과 함께 동행는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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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살후 1; 3-8 자기를 높이는 자와 거짓을 믿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7-07 0 3638
508 56충만
53살후 1; 3-8 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된다는 것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6-30 1 3878
507 51계획
52살전 5; 12-18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나님의 뜻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6-23 1 5107
506 55동행
52살전 4; 14-18 친히 늘로부터 강림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6-16 1 3902
505 55동행
52살전 1; 8-10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님과의 동행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6-09 1 3883
504 51계획
52살전 1; 2-7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사람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6-02 0 4200
503 55동행
51골 1; 24-29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소망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5-26 0 4297
502 53희생
51골 1; 18-23 거룩고 흠 없는 자로 세우려 는 자들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05-19 0 4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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