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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사회] 44행 7; 51-60 의인의 증거와 의로운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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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7; 51-60 의인의 증거와 의로운 죽음_1

  

 

  

2020. 1. 26. . 주일오전.

  

 

  

*개요:  사회속에 있는 성령님의 충만, 56충만, 5도덕, 6서신서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7: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7: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7: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충만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안에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넘치고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충만을 새롭게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충만을 힘써 깨닫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게 됩니다.

  

힘껏 달리기를 하고 나서 숨이 찰 때 어떻게 하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온 힘을 다해서 공기를 들이마십니다. 그래서 폐 속에 신성한 공기를 가득 품으면 점차 호흡이 안정이 되면서 상쾌해집니다. 공기는 이미 주변에 충만합니다. 그것을 자기 몸 속에 집어 넣으면 됩니다. 그럴 때 몸과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의 충만하심도 이와 같습니다. 충만의 은혜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사회도 없어져야 할 것 같은 부조리나 병폐도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충만의 은혜 속에서는 전혀 새롭게 보여집니다. 그 은혜를 깨닫고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바로 그렇게 가장 안타깝고 슬픈 상황 속에서도 가장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은혜를 볼 수 있었던 스데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함으로 사람들의 분노를 사고 곧 그들이 돌로 칠 수 있을 것 같은 그 급박한 순간에 하늘을 우러러 보고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54절입니다.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스데반은 가장 위협적인 상황 속에서 가장 은혜 충만한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바로 가장 높은 천국의 최정상인 하나님의 보좌와 그 보좌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 충만함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로 눈을 들었을 때 보통은 마음으로 생각만 하게 되지만 그 순간은 특별하게 하나님께서 눈을 여셔서 정말로 하나님과 예수님이 계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그는 세상에 있지만 천국의 하나님과 연결되는 자였습니다. 몸은 세상에 있었지만 마음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앞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가장 극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였습니다.

  

여러분들도 경험하셨겠지만 이 지구에 살면서 하늘을 우러러 보면 달을 볼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는 384000킬로미터라고 합니다. 이는 지구 지름의 30배에 해당합니다. 그러니 지구에서 달을 본다는 것은 맨눈으로 실제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최대의 거리입니다. 더 멀면 감각이 없어집니다. 그러한 먼 거리에 있는 달은 밤에 보이고 낮에도 종종 보입니다. 낮에는 태양빛이 너무 강해서 안보이는 것 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우리를 살펴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주목해서 보고 계십니다. 그분은 졸거나 주무시거나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항상 우리 몸이 눈동자를 지키는 것처럼 우리를 지키시며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의식하고 우러러 볼 때 비로소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삶 속에 풍성하신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살고자 할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 따르고 있는가 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선을 이루고자 한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을 이루고자 하는 방향이 바로 하나님을 따라가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낮이건 밤이건 달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살펴볼 때에 달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삶의 모습이 선을 향해서 나아갈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데반은 그냥 하늘만 우러러 보다가 하나님과 그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본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누구든지 하늘만 보면 하나님과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쏟아 붓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의인으로서의 증거함이었습니다. 51절부터 보십시오.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7: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7: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 있으면서 회당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고 그 일로 인해 공회에 잡혔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앞에서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는 결코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고 절망이나 낙심함도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놀랍도록 담대했으며 또한 너무나 능력있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반박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럴 때 그가 말한 것은 의인을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의인을 잡아 주었으며 그 의인을 살인하였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 의인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율법은 이미 예수님의 오실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예언된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예수님도 따르지 않으면서 오히려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스데반은 바로 그것을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스데반의 증거는 옳은 것이었습니다. 그 의인을 설명하며 증거하고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의인의 편에 서서 증거하였기 때문에 그도 역시 같은 의인이었습니다. 같은 예수님의 편에 있었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증거했던 것과 같은 것을 그도 동일하게 증거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의인의 증거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의인의 증거에 설 때 선을 따르는 자가 됩니다. 선이라는 것이 자신이 만드는 선이 아닙니다. 자기가 만드는 선은 자신에게는 선이 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악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따르는 선이어야 합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돕는 것인지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을 나타내는 것인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라면 선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자신을 나타내는 것은 다만 중립에 속하거나 혹은 악에 해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진정한 선을 행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오직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서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할 때 그것이 선이 됩니다. 하나님과 관계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중립이거나 혹은 악일 뿐입니다. 스데반에게 이를 갈았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박해했고 의인을 예고한 사람을 죽였고 의인을 잡았고 의인을 살인하였습니다. 그들 나름은 어떤 목적이 있었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행했기 때문에 악인이 된 것입니다.

  

 

  

세상을 살 때 우리도 이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고 그 속에서 더욱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선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의 추구는 하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따르며 하나님을 나타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악을 버려야 합니다. 악을 떠날 때 비로소 선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땅을 보지 말고 하늘을 바라볼 때 비로소 달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과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과 또한 그 돌을 던지는 자들의 외투를 받아주던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나중에 바울이 되었지만 예전에는 사울이었습니다.

  

“[]7: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7: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돌로 치는 사람들과 그를 돕는 사람들 속에 있던 사울의 모습과 스데반의 모습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옷을 맡아주는 사울은 악에 동참하는 자였습니다. 나중에 그가 회개하고 돌이켜 바울이 되었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악에 속한 자였습니다. 그와는 달리 사람들의 돌에 맞고 죽어가는 스데반은 주 예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럴 때 그는 선에 속한 자였습니다. 오는 돌을 다시 들어서 그들에게 던지면서 싸우는 자가 아니라 오는 돌을 그대로 맞으면서 예수님께 나아가는 그가 바로 선한 자요 의인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자기를 죽이는 자들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하나님께 자기 영혼을 부탁하는 의인이었습니다.

  

오늘날 착하게 살면 어리석게 되고 의롭게 살면 고달프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제 어리석고 고달프지 않기 위해서 악하게 살고 불의하게 살 것입니까? 현실이 그러하다면 우리가 취해야하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을 의지하면서 의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그는 의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또한 그렇게 죽으셨기 때문에 온전한 의인이셨습니다. 의인은 결국 이 세상에서부터 하나님께로 열심히 나아가는 자가 바로 의인입니다. 비록 그 길이 외롭고 험하며 구차하고 고달프다 하더라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간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의인입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가 삶 속에 기록됩니다. 나쁘게 살지 않았다면 평생 동안 악한 삶의 경험이나 기억 자체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 않은 일을 기억하거나 존재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그대로 우리가 나아가는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영원토록 그런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지 말아야 하는 악한 일이 있었다면 나중에는 그것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면 그것을 상회하는 의로운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예수님의 의를 의지하는 일입니다. 그 의에 동참하며 지지하고 동의하며 추구할 때 비로소 예수님의 의를 따르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치 바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더욱 희생적으로 하나님을 따랐던 청년 사울처럼 말입니다.

  

스데반은 그 의로운 죽음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7: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우리는 세상 속에 넘치는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은혜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 은혜는 이 세상의 악에서부터 하나님의 선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삶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의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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