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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선악] 1창 4; 11-17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거부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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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1-17 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거부는 사람_1

  

 

  

2020. 7. 12. . 주일오전.

  

 

  

*개요:  창세기에 나타난 아들의 소원, 23선악해석, 55동행은혜, 1오경          

  

[]4:11  땅이 그 입을 벌려 손에서부터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4:12  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며 유리는 자가 되리라

  

[]4: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짐을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리니 내가 땅에서 피며 유리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4: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시니라

  

[]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더니

  

[]4:17  아내와 동침매 그가 임신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여 에녹이라 니라

  

 

  

나님께서 만드신 구원의 방법은 인간의 죄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애초에 인간의 죄가 없었다면 그런 구원의 방법조차 필요지 않았겠지만 어리석은 인간의 죄 때문에 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셔야 는 구원의 방법이 생겨났습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방법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는 쉬운 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방법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중요한 한 가지의 전제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죄를 지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아담과 와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선악과를 먹은 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에덴동산을 쫓겨나고 자신의 죄로 인해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고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땀을 흘리면서 살게 되었음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나님의 심판을 온전히 받아들여야만 나님의 구원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나님의 구원은 죄인을 위한 죄사함의 방법이었지 의인이라고 생각는 자들을 위한 합리화의 방법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심판을 받아서 세상으로 나간 아담과 와 이후로 이러한 구원의 방법을 새롭게 받아들여야 는 자들은 그 자녀인 가인과 아벨이었습니다. 아담과 와는 에덴동산을 경험였다가 세상으로 쫓겨난 자들이었지만 가인과 아벨은 에덴동산을 경험지 못했고 날 때부터 세상에서 삶을 시작한 자들이었습니다. 지만 그들에게 동일게 주어진 것은 나님의 존재심과 말씀심이었습니다. 여전히 나님께서는 가인과 아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셨고 에덴동산의 존재는 그 부모인 아담과 와에게로부터 들어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너무나 분명고 명백지 않겠습니까? 지만 가인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인의 모습은 구원이 단지 경험에 근거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가인은 자신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은 후에 더욱 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자가 되었습니다.

  

“[]4:11             땅이 그 입을 벌려 손에서부터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4:12  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며 유리는 자가 되리라

  

가인은 동생 아벨을 들에서 쳐죽였지만 그 일에 대한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님께서 동생 아벨이 어디있느냐라고 물어보실 때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럴 때 나님께서는 땅에 흘린 피의 증거를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이 행한 죄악의 증거를 숨기려고 했지만 나님의 눈을 숨길 수는 없었습니다. 죄의 결과인 아벨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나님께 호소였던 것입니다.

  

결국 죄의 증거로 인해서 숨길 수 없게 된 가인에게 내리신 살인에 대한 벌은 그가 땅에서 저주를 받아서 다시는 그 효력을 얻을 수 없게 되는 일이었습니다. 원래 가인은 농사는 자였었지만 더 이상 그 일을 지 못고 떠돌아 다니는 자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죄인이 된 가인에 대한 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죄는 선악과를 먹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욕심에 이끌리기 시작할 때에 인간의 그 다음 번 죄는 살인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죄들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음으로 인해 생겨난 죄의 결과였습니다.

  

나님의 심판은 본질적으로 그러한 죄를 짓지 않게 는 것이었습니다그런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나님께 순종면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왜냐면 죄의 기준은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나님의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 기준에 안 맞는 모든 사람을 자기 기준대로 처리할 수 밖에 없었고 그것은 나님 보시기에 죄였습니다. 그런 죄를 깨닫고 나님의 뜻에 순종는 것이 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심판이 있는 것이고 그래서 가인은 땅에서 저주를 받아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지만 가인은 그 심판을 고분고분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 모든 심판에 이의를 제기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살 길을 추구했습니다.

  

“[]4: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짐을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4: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리니 내가 땅에서 피며 유리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그는 죄짐을 너무 무겁다고 였고 주님이 쫓아내시는 것이 아니었지만 쫓아내신다고 였고 주의 낯을 볼 수 없다고 지 않으셨지만 그 낯을 볼 수 없다고 였으며 그를 만나는 자가 그를 죽이는 것이 아니었지만 그를 죽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님께서는 그의 말을 듣고 긍휼을 베푸셔서 죽지 않을 표를 주셨지만 근본적으로 가인은 자신이 받은 심판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나님 앞을 떠나 살았고 지리적으로는 멀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나님과 멀어졌습니다.

  

“[]4: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더니

  

그가 산 곳은 에덴을 기준으로 동쪽이었지만 에덴과는 상관없었습니다나님은 그의 행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그는 나님 앞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가 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 심판을 통해서 이루기를 원는 모습을 이루고자 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인에게 있어서 나님을 믿고 안 믿고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자신에게 말씀시고 자신의 제사를 거부시고 자신에게 죄를 경고시고 자신에게 심판을 내리신 나님을 인정고 부정는 것이 나님을 믿고 안믿는 것일까요? 그는 이미 나님을 부정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만 나님을 따를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나님은 자신에게 심판을 내리신 분이시고 던 농사를 지 못신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님은 자신을 쫓아내시는 것이었고 낯을 볼 수 없게 는 분이었으며 그러니 나님 앞을 떠나서 주어진 삶 동안 자신의 삶을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 문화에서 자라고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고 기독교 교육에서 자라서 나님의 존재는 확실게 느끼지만 실제 자신의 삶이 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 사람들의 삶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인처럼 인간의 죄성과 죄악된 삶에 대한 나님의 심판을 부정기 때문에 생겨납니다. 그래서 그러한 나님의 심판을 오히려 거부며 그 심판이 보여주는 죄악을 도리어 정당화고 합리화며 살아갑니다. 그럴 때 그들은 가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이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로마서 1:32입니다.  

  

“[]1: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나님께서 정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는 자들을 옳다 느니라

  

그래서 기독교 국가나 문화나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이 도리어 더욱 배교와 불신과 부정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악을 버리게 기 위한 나님의 심판에 악게 대응니 더 큰 악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에덴동산을 바라지도 않고 세상에 나가게 되도 흔들리지 않으며 그 세상에서 유리는 자가 되어도 자신의 죄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러한 죄인들이 가게 될 그 다음의 심판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세상에서 유리고 저주를 받아 아무런 소득도 얻을 수 없게 된 심판을 받더라도 여전히 죄악 속에 거한다면 그 다음에 당면할 벌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와 같이 더욱 더 큰 악을 심판시기 위해서 나님께서는 지옥의 형벌을 마련신 것입니다.

  

 

  

이를 깨닫고 가인의 죄악을 따라가지 않고 되돌이키고자 할 때 우리는 가인이 한 일을 정반대로 면 됩니다. 가인이 받은 심판 속에서 그가 한 일은 나님을 아랑곳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심판 속에서 나님께 나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인이 나아간 길은 이렇습니다.

  

“[]4:17 아내와 동침매 그가 임신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여 에녹이라 니라

  

가인은 나님 앞으로 떠나 잘 살았습니다. 아이도 낳았고 성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 붙였고 그 이름은 에녹이었습니다. 에녹은 헌신되었다, 시작되었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는 나님을 떠난 삶에 전적으로 몰입했습니다. 성도 쌓을 수 있었고 아들에게도 성에 이름을 붙일 정도로 깊은 애정과 사랑을 주었지만 그 모든 삶은 본질적으로 나님이 아닌 세상에 몰입는 삶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여전한 죄인이었고 죄가 당연히 여겨졌으며 그의 5대손에는 라멕이라는 사람도 나타났는데 그는 자신의 기분대로 사람을 죽이는 자가 되었습니다. 대대로 죄를 이어갔던 것입니다.

  

가인의 삶은 심판을 부정고 더 큰 죄악으로 나아가는 삶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받은 심판을 받아들이고 지 말아야 할 일을 금여 궁극적으로 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반대의 삶을 창세기 5장의 셋의 후손인 에녹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5:24             에녹이 나님과 동행더니 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였더라

  

동일한 에녹이었지만 창세기 5장의 에녹은 나님께 헌신되고 몰입되며 나님으로 시작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럴 때 그를 나님께서는 나님께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세상에 있다가 나님께로 올라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선녀와 나무꾼이야기가 있습니다.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나의 설화로 동,서양의 많은 지역에서 비슷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동일한 점은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본래의 본질을 잃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그 본질인 늘나라를 기억고 그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처벌이고 심판이며 고통과 괴로움이라고 더라도 그것이 정말 되어야 는 삶의 반대였음을 기억한다면 되기를 바라는 삶을 향해서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가인을 닮고자 는 것이 아니라 셋의 후손인 에녹을 본받는 삶을 소망고 있습니다. 그럴 때 나님의 심판을 잘 감당고 받아들여야 겠습니다. 어려운 일이 있다면 그것이 다 자신의 잘못임을 고백해야 겠습니다. 그러면서 나님의 긍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때가 되었을 때 나님께서 다시 은혜로 불러 주십니다.

  

이러한 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잘 기억해서 나님께 온전히 나아가고 그 은혜로 충만해 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구성

  

1. 가인은 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2. 그는 더욱 온 힘을 다해서 나님 없이 살아가는 자가 되었다.

  

3. 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면서 나님을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4. 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때 나님께 올라가는 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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