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교사주일, 3관점, 6서신서, 66양선 [갈]6:6 가르침을 받는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6:7 스스로 속이지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6:8 자기의 육체를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갈]6:9 우리가 선을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10 그러므로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소감 1. 크게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것을 언제 까지 해야 하는가를 기도하고 있음, 정해진 시기가 있는 것은 아님,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할 때까지 이일을 해라고 이해함,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선하다고 하셨고 그 속에 악도 포함됨, 왜 악이 존재할까,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시려는 과정이라고 이해함, 부족함을 느낌,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함, => 도덕적 해석
2. 착하게 해야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모습,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실천하는 모습, 인간으로서 해야할 목표, 제일 어려운 것이 아닐까,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부담스러움, 좋게 좋게 하자, => 극본적 해석,
3. 가룟 유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 중의 하나인데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집중하고 변화되었는데, 자기 마음에 드는 것에 집중을 했음, 좋은 것에 집중을 해야겠다, => 분석적 해석
4.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이 나에게도 좋았다, 교회생활 속에서 적응 기간이 필요할 때 노력을 했음, 감정으로 서운했을 때 그에 따라서 결정하지 않았음, => 적용적 해석
5. 선을 추구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라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영혼을 준비해야 하겠다,
6. 가르침을 받는 자의 마음을 생각함,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은 생각을 못했음, 에수님이 가룟 유다를 포기하지 않으신 이유를 알게 됨, 나도 친구들을 포기하지 말아야 겠다,
7. 마음의 상태가 불안해지는 다른 사람의 삶을 볼 때 착하게 양선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달음
I. 적용적 해석
1.본문을 통해서 알게 된 ‘원리’는 무엇입니까? /좋은 것을 함께 하는 것이 나에게도 좋았다, 교회생활 속에서 적응 기간이 필요할 때 노력을 했음, 감정으로 서운했을 때 그에 따라서 결정하지 않았음,
2.본문을 통해서 알게 된 ‘예화’는 무엇입니까?
3.본문을 통해서 알게 된 ‘방법’은 무엇입니까? /우회하는 방법을 알게 됨,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됨, 이 교회에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형성됨,
4.본문을 통해서 알게 된 ‘사례’는 무엇입니까? /마음의 상태가 불안해지는 다른 사람의 삶을 볼 때 착하게 양선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달음, (육체를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소감 및 적용
II. 관점적 해석
1.본문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알게된 것은 무엇입니까?
2.본문을 통해서 ‘타인’에 대해서 알게된 것은 무엇입니까?
3.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된 것은 무엇입니까?
4.본문을 통해서 ‘사탄’에 대해서 알게된 것은 무엇입니까?
*소감 및 적용
III. 도덕적 해석
1. 본문에서 나타난 ‘선 주도’에 해당하는 내용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2. 본문에서 나타난 ‘선 동참’에 해당하는 내용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 크게 낙심하지 말고 선을 행하는 것을 언제 까지 해야 하는가를 기도하고 있음, 정해진 시기가 있는 것은 아님,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할 때까지 이일을 해라고 이해함,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은 선하다고 하셨고 그 속에 악도 포함됨, 왜 악이 존재할까, 정금과 같이 나오게 하시려는 과정이라고 이해함, 부족함을 느낌,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함,
3. 본문에서 나타난 ‘중립’에 해당하는 내용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구별하지 않으려는 마음, 어떤 것에도 소속되지 않으려는 것,
4. 본문에서 나타난 ‘악 동참/주도’에 해당하는 내용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똑같이 대응하는 것, 똑같이 악을 행하는 것,
*소감 및 적용
IV. 극본적 해석
1.본문 중에서 ‘발단’에 해당하는 부분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가룟 유다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은 자 중의 하나인데 다른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집중하고 변화되었는데, 자기 마음에 드는 것에 집중을 했음, 좋은 것에 집중을 해야겠다,
2.본문 중에서 ‘전개’에 해당하는 부분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룟 유다가 했던 것을 하지 않는 것,
3.본문 중에서 ‘절정’에 해당하는 부분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런 일로 부터 오는 깨달음을 갖는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4.본문 중에서 ‘결말’에 해당하는 부분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가룟유다를 보면서 내가 변할 것이다,
*소감 및 적용
V. 분석적 해석
1.본문 속에서 가장 와닿은 ‘단어’와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착하게 해야겠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모습,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을 실천하는 모습, 인간으로서 해야할 목표, 제일 어려운 것이 아닐까,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하는 사람은 오히려 부담스러움, 좋게 좋게 하자, -> 믿음의 가정
2.본문 속에서 가장 와닿은 ‘어구’와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착한 일을 하되, 좋게 대하는 것,
3.본문 속에서 가장 와닿은 ‘문장’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선을 추구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라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영혼을 준비해야 하겠다,
4.본문 속에서 가장 와닿은 ‘문단’과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는 모습을 생각하게 됨
*소감 및 적용
VI. 통찰적 해석
1. 본문에서 ‘이해’가 있었어야 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가르침을 받는 자의 마음을 생각함,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은 생각을 못했음, 에수님이 가룟 유다를 포기하지 않으신 이유를 알게 됨, 나도 친구들을 포기하지 말아야 겠다,
2. 본문에서 '이해'가 안 되는 ‘사건’에 해당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포기를 많이 했는데 그 친구들은 나름 성장했음,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 것은 줄어 들었음,
3. 본문에서 '사건' 속에서 나타난 ‘감정’에 해당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4. 본문에서 '감정' 속에서 나타난 ‘신체’에 해당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소감 및 적용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하나님을 믿고 따를 때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나를 위해 좋은 사람들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믿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로따라가게 됩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따르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주시는 사람들을 통해 그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잘 공급받을 때에 우리가믿음에서 성장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잘 준비되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이 바로성경교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 하나님의나라를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우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섬기도록 부르신 하나님의 일군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나라에 대한 믿음은 쉽게 가질 수는 있지만 쉽게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계속 실천되고 발전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믿음이 더욱진실하게 됩니다. 믿음대로 살아가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믿음이 더욱 그 가치를 나타내게 됩니다. 도자기 굽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진흙으로 도자기를 빚었다 하더라도 뜨거운 불에 구워지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습니다. 얼른 다시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실천을 요구하고있습니다. 믿음대로 사는 삶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는 별다른 준비없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 나라보다 더 오랜 기간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라를 잘 준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나라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고등학교에 들어가기만 하면 대학에 가는 것이 아니고 대학에 다니기만 하면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입학을 위해서 잘 준비해야 하고 대학에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잘 준비해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에 들어가는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이 세상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더욱 잘섬길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더욱 잘 준비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가르치는 자를 주셨습니다. 그러한 의미를 기억할 때 우리는 이와 같은 가르치는 자를 잘 대하고 그에순종하며 협력하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성숙한 믿음과 잘 준비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가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6절 말씀입니다. “[갈]6:6 가르침을 받는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여기서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고 할 때에 사용되는 단어는 ‘κοινωνέω koinōnéō’ 입니다. ‘나누다, 교제하다, 사귀다’ 등의뜻이 있고 명사형인 ‘코이노이아’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받는 자는 이렇게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에서 나누고 교제하고 사귀라고 하십니다. 이 말이 물질을 나누고 전하라는 의미로도 많이 쓰이고 있지만 그렇게 협소하게 생각하지 말고 넓고 크게 생각해서보이지 않는 것을 나누고 교제하며 사귀라는 의미로도 해석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가르침을 받는 자이거나 혹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입니다. 먼저 알게 된 자이면 나중에 알게 된 자를 가르치게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직분을 맡아서 그렇게 된 것이거나 혹은 아무런 직분이 없든지 간에 어떤식으로든지 우리는 가르침을 받는 자 이거나 혹은 가르치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우선 가르침을 받는 자가 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가르치는 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순서는 항상 가르침을 받는 자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르침을 받는 자로서 가져야 하는 모습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됩니다.
처음 교회에 왔거나 혹은 다른 교회에 다니다가 교회에 온 어떤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특별히 가르침을 주기위해서 온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게 되고 믿음에 대해서 배우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배우게 되고특별히 자신이 다니게 될 교회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모든 시간들과 과정들의 핵심은바로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배운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에 함께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배운다면 믿음에 함께 굳게 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나라에 대해서 배운다면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함께 부요한 자가 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대해서배우게 된다면 교회를 함께 같이 다닐 수 있게 되려고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모든좋은 것을 함께 하게 됩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운동을 배운다고 해보십시오. 수영장에가서 아쿠아를 하실 수 있고 탁구장에 가서 탁구를 치실 수 있습니다. 동네 배드민턴장에 가서 배드민턴을배우실 수 있습니다. 축구팀에 들어가서 축구를 배우실 수도 있습니다.아니면 골프장에 가서 골프를 배우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렇게 새로운 운동을 배울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에게서 그 운동을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결국 하라는 대로 잘 따르는것입니다. 가르쳐 주는 사람은 자기 처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줄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쳐 준다고 해서 가르쳐주는 사람만큼 잘하게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을 따라 하면서 완전 초보의 수준을 벗어나게 됩니다. 이렇게 어떤운동을 잘 배우게 되면 얻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바로 운동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목표를잘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아쿠아로 건강하게 되고 탁구를 잘 치게 되고 배드민턴을 잘 하게 되고 축구를잘하게 되고 골프를 잘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서 운동 그 자체가 더욱 재미있고 몸도 건강해지고 좋은결실을 누리게 됩니다. 신앙에서도 가르침을 받는 자가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할 때 더좋은 결실이 나타나게 됩니다. 바로 영생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좋은 것을 잘 같이 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런데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그것에대해서 성경은 특별히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갈]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왜 이런 말씀이 이어지고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가르침을 받는 자가 있고 가르침을 주는 자가 있을 때 그것은 변하지 않지만그런 관계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가 정말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려고 하지 않을 때 문제가 생깁니다. 바로스스로 속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엇으로 섬기든지 간에 자신이 심은 그것으로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의미는 사람이 자신을 속이는 것이 있을 때 하나님은 스스로 속이는 바로 그것으로 결실이 나타나게 하신다는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사람이 심는 것을 그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무엇으로 심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제자들가운데 이렇게 스스로 속이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가룟 유다입니다.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치셨고특별히 몇 사람들은 따로 불러서 교육을 시키셨는데 그 특별한 열두 명에 포함되었던 가룟 유다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좋은 것에 예수님과 함께 하였지만 가룟 유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로 악한 것을 심는 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는 마리아가 지극히 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발을 닦아드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가룟유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12:4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요]12:5 이 향유를 어찌하여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요]12:6 이렇게 말함은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그는 이전부터 돈궤를 맡았고거기 넣는 것을 조금씩 훔쳐가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해서 드리는 정성마저도 자신이 훔쳐가지못해서 아쉬운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는 왜 그렇게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까? 그것이 그를 제자로 부르신 예수님의 잘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정말 배우는 자로 가르치는 자이신 예수님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지 않았던 그 자신의 씻을 수 없는 죄였던것 뿐입니다. 결국 그래서 그가 함께 한 자들은 누구였습니까? 바로대제사장들이었습니다. “[마]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마]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26: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그는 어리석게도 예수님을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교제하는 자가 되었고 그들에게서 돈을 받고예수님을 파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가룟 유다는 스스로 자결하게 되는 미련한 자가되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자일 때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는 자로서 우리는 그 가르침이 보여주고 있는 그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자기 육체를 위해서 심는자는 육체의 썩어질 것을 거두게 되지만 성령을 위해서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하나님께서그렇게 만드십니다. 예수님에게서 배운다 하더라도 배우는 자의 목표가 부정하며 악하며 욕심에 대한 것이면그것을 통해 얻을 것은 육체의 썩을 것 밖에 없습니다. 수영장 아쿠아를 하는 이유가부정한 것일 때, 탁구를 배우는 이유가 세속적인 것일 때, 배드민턴을하는 이유가, 축구를 하는 이유가, 골프를 하는 이유가 악하고추한 것일 때 열심히 그것을 배우는 것으로 인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겠습까? 육체의 썩어질 것 밖에는없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것에 함께 하지 않으면 영생에도 함께 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그 모든 것 속에서 좋은 목표와 선한 목표가 있을 때 인생의 모든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 가르침을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되고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좋은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
이것이 가르침을 받는 자에게주시는 하나님의 뜻이었는데 이와 함께 가르치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9절 말씀을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갈]6:9 우리가 선을 행하되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열심히 가르침을 받다보면어느 새 우리가 가르침을 주는 자가 됩니다. 하다못해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을 때 화장실은 어디입니다라고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가르치고 섬기고 봉사하고 인도할 때 우리는 어느 새 선을 행하는 자가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그 모든 좋은 것을 나누다 보면 우리는 가르침을 받는 자가 아니라 가르치는 자가되어 있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바로‘낙심하지 말지니’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정성을 알아주지않을 때 우리의 열정을 받아주지 않을 때 우리의 관심과 사랑에 응답하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하게 됩니다. 그러나포기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때가 이르면 거두게 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렇게 거둘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때가이르게 되면 거두게 된다는 것이지 그렇게 거두게 될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포기하지않는 이유를 우리는 뒤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앞에서 찾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이유는 우리 자신이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는 자들’이기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자들일때 우리는 가르침을 받는 자들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그 자체가 이미 우리가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됩니다. 예수님이 비롯가룟 유다와 같은 제자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으셨던 이유는 나머지 열 한 명의 제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자신이 그 열 한 명의 제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셨기 때문에’바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르침의 일을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승천하시는그 순간까지 가르치셨습니다. 그 모습이 바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하는 모습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을 이유는 우리가 믿는 자들과 그리고 하나님과 여전히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선생으로서가르침을 전한다면 그것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그것은 우리의 체력이 다하는 날까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건강이 다하는 날까지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직분이 유지되는날까지도 아니고 우리에게 물질이 충분히 있는 날까지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할 때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누군가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다시 선을 행하는 자가 되고 가르치는 자가 되고 돕는 자가되고 섬기는 자가 되고 인도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일을 꾸준히 열심히 지속으로 잘 해내기를 원하십니다. 특별히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갈]6: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믿음의 가정들이 그 구성원들이바로 모든 착한 일에 대한 대상자들입니다. 또한 모든 가르치는 일이 필요한 대상들입니다. 그 남편이 그 아내가 그 아들이 그 딸이 그 가정이 바로 착한 일을 해주어야 하는 믿음의 가정들입니다. 교사 주일을 보내면서 우리가 더욱 우리 교회의 믿음의 가정들에게 귀한 일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행하고 있는 직분자들이 열심을 내어서 그 일을 더 잘 감당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안에서 우리 모두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