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예배 오전 11시 ‘애가서에서의 신앙의 목표’
묵 도 / 인도자
신앙고백 / 사도신경
찬 송 / 2022년 2월의 찬양: 주 손길이
찬 송 / 265.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기 도 / 인도자
설 교 / 25애 1; 1-5 이스라엘의 심판에 대한 슬픔의 마음
찬 송 / 325. 예수가 함께 계시니
봉헌광고 / 인도자
*찬 송 / 2022년 2월의 찬양: 주 손길이
*축 도 / 인도자
*주일오후예배(온라인) ‘골로새서 연구’
영상 설교 / 51골 1; 19-23 거룩하고 흠 없는 자를 세우는 일의 의미2
*새벽기도회(월-금) 오전 5시 ‘’성경통독”
찬 송 / 96, 97, 98, 99, 100
성 경 / 스바냐 3, 학개 1, 2, 스가랴 1, 2
*수요예배(코로나로 인해서 쉽니다)
*금요예배(코로나로 인해서 쉽니다)
2022년 2월 6일 주일 <23권 - 6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원교회 / 담임목사: 윤 홍 식 목사
*2022년 표어: “신앙의 문제 속에서 목표를 이루는 성도가 되자’
*2022년 주제성구: “[시]37:4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애]1: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애]1:2 밤에는 슬피 우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들 중에 그에게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들도 다 배반하여 원수들이 되었도다
[애]1:3 유다는 환난과 많은 고난 가운데에 사로잡혀 갔도다 그가 열국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쉴 곳을 얻지 못함이여 그를 핍박하는 모든 자들이 궁지에서 그를 뒤따라 잡았도다
[애]1:4 시온의 도로들이 슬퍼함이여 절기를 지키려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들이 적막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시온도 곤고를 받았도다
[애]1:5 그의 대적들이 머리가 되고 그의 원수들이 형통함은 그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곤고하게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지자로서 예루살렘의 회개와 자성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요시야왕13년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BC 586년까지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라는 다섯 명의 왕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와 배교와 혼합주의로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은 마침내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공하게 하셨고 마침내 이스라엘은 B.C. 586년에 멸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아남은 자들도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게 된 참담한 상황에서 더 이상 선지자를 통해서 증거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없었습니다. 그럴 때 선지자는 애가를 지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은 정확히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였습니다. 시켜서 한 것은 아니었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에 대한 이해가 멸망한 이스라엘에 대한 슬픔과 고통으로 표현되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단순히 형식적이고 소극적이며 타성적인 신앙에 그치지 않았고 본질적이고 적극적이며 주도적인 신앙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랬기에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서 안타까워 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일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 삶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치나 사회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합니다. 미움과 분노나 절망이 더 익숙한 감정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슬픔과 고통과 아픔을 느낀다면 그런 사람은 이상하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런 마음을 가진다고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이제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에 슬픔의 애가를 말할 수 있었다면 그가 이해한 마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를 통해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1장 1절을 보십시오.
“[애]1:1 슬프다 이 성이여 전에는 사람들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하게 앉았는고 전에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전에는 열방 중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강제 노동을 하는 자가 되었도다”
예레미야는 애가의 저자로서 슬프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슬프다가 히브리어로 ‘ אֵיכָה’이고 애가의 히브리어 제목도 역시 ‘ אֵיכָה’입니다. 이러한 슬픔의 내용은 이전과 달라진 심판 이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적막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큰 자가 이제는 과부 같이 되었고 이전에 공주였던 자가 이제는 노예가 되어서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