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41막 5; 21-24 가족에 대한 간곡한 간구의 결실_1![]() Loading the player...
41막 5; 21-24 가족에 대한 간곡한 간구의 결실_1
2026. 5. 24. 주. 주일오전.
찬양: 73. 내 눈을 들어 두루 살피니, [528장] 예수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 [183장] 빈 들에 마른 풀같이, [138장] 햇빛을 받는 곳마다
개요: 가족에 대한 간절함이 이루게 하는 것을 생각함, #82연합 [막]5: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막]5: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막]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막]5: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 어떻게 하나님이 알게 하신 가정의 의미를 잘 실천하면서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녀에게 예수님을 알게 하면서 가정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또한 부모를 공경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더욱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가정은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 구현하는 신앙의 공동체가 됩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정을 왜 주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왜 가정 속에서 태어나게 되었을까요? 그래서 부모님 밑에서 자라게 되었을까요? 또한 왜 부부가 되어서 가정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자녀를 얻게 되었을까요? 왜 선생님을 만나서 가정을 잘 섬기는 법을 배우게 되었을까요? 이 모든 것이 전부 우리를 변화시키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변화를 이루고 하나님 나라에 도달하면 가정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서는 장가가고 시집가는 것이 없고 천사와 방불한 자들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은 오직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다음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환경인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때 마가복음 5장에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만드는 가정 속에서 배워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게 됩니다. 마치 지구에 중력이 있어서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바로 이런 근원적인 마음이 있어서 우리가 주님께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시작되고 있는 다음 장면을 살펴 보십시오. “[막]5:21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막]5: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예수님은 마가복음 5장에서 갈릴리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가셔서 귀신들린 자를 고쳐 주신 다음에 다시 배를 타고 맞은편 가버나움으로 건너오셨습니다. 그곳에서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아왔고 예수님을 보자마자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그에게는 간절한 청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이 그 내용을 보여줍니다. “[막]5:23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막]5:24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그는 간곡히 구하여 자신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으니 오셔서 그 머리 위에 손을 얹어 그 아이가 구원을 받아 살게 해 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가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큰 무리가 따라가면서 예수님이 이루시려고 하는 일을 보기 위해서 에워쌌고 서로 밀면서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야이로에게는 커다란 근심이었습니다. 시간적으로 지체가 많이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도중에는 열두 해 혈루증 걸린 여인이 고침받고 확인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런 일들이 이어질 때 야이로의 마음은 얼마나 타들어 갔을 까요? 그러나 그는 계속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이 딸에게 빨리 도착해서 딸을 고쳐 주기를 바랬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면 애초에 예수님께 회당장 야이로가 나아왔던 것은 딸이 어떤 이유로 죽어가고 있을 때 그 딸을 살리려는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에게 딸이 없었다면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었을까요? 딸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을 때 그는 회당장이었지만 예수님께 엎드렸습니다. 주님께 나아온 것은 바로 그런 절박함이 있었을 때 가능했습니다. 어쩌면 그런 간절함은 꼭 예수님에 대해서가 아니라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그런 간절함이 있습니다. 또한 의학을 통해서도 그런 간절함이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야이로의 간절함이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가 예수님께 나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는 그의 간절함을 들어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고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딸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에서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특별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말했습니다. “[막]5: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막]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안타깝게도 야이로의 딸은 예수님이 그 집으로 가시는 동안에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회당장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주님께서는 딸을 구원해 주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행하셨던 놀라운 일이 바로 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일이었습니다. 그 앞서 야이로의 집으로 가는 와중에 행하신 열두 해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을 고쳐 주신 것보다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것이 더 놀라운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 일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야이로의 간절함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었고 그 간구를 들어 주시는 예수님의 행하심은 이미 구원을 이루고자 하시는 예수님의 분명한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간절한 마음을 갖고 뭔가 자신의 힘으로 노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행하실 일을 의지하면서 두려워 하지 말고 믿고 따라갈 때 이루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는 방식을 사람의 방식대로 하지 않으시는 이유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게 행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을 통한 사람의 구원이 아니라 사람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사람은 자신의 방식 대로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해달라고 하고 저렇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식 대로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따라가고 저렇게 따라가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그 구원을 통해서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 하지 않고 따라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것은 절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이렇게 해야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큰 뜻과 계획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서 엎드리고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믿고 두려워 하지 말고 따라 나갈 때 비로소 가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면서 놀라운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이제 야이로의 딸에게 예수님께서 이루셨던 구원의 모습으로 보십시오. “[막]5:41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막]5:42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님은 죽은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셨습니다.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죽었던 소녀가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열두 살 되었던 어린 소녀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해서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은 크게 놀라고 놀라워했습니다. 이것이 야이로의 딸을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병이 나아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병으로 죽었을 때 다시 살리셔서 구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 있었던 열두 해 혈루증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었는데 그 순간 혈루 근원이 마르면서 병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찾았고 여인이 예수님 앞에 엎드려 나아왔을 때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해주시고 병에서 놓여 건강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열두 살 딸을 살리실 때나 열두 해 혈루증이 있던 여인을 고치실 때나 예수님은 전부 인격적이고 친밀한 방법으로 그들을 살리시고 고치셨습니다. 전부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구원을 받는 방법은 항상 예수님을 통해 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노력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통한 구원이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대해 가족의 간절함을 가지고 있을 때 주님은 우리에 대해 구원의 간절함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그 주님의 간절하심을 이해하고 믿고 따라갈 때 우리는 주님의 뜻과 계획을 이루는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주님의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때에 그 구원을 믿고 따라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먼저입니다. 그러니 내 방식대로 구원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애초에 구원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하겠습니다. 그 뜻이 더 오래되고 더 강렬하며 더 구체적입니다.
우리의 가족에 대해서 놀라운 구원을 마련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해서 가족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가족을 주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동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리 1.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의미를 잘 이해할 때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게 된다. 2.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계획을 나의 계획보다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3. 예수님을 믿으면서 두려워 하지 않고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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