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82연합] 42눅 17; 11-19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음







 

  

4217; 11-19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음_1

  

 

  

2024. 1. 28. . 주일오전.

  

 

  

*개요: 소원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들, #82연합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7: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7: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소원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대해서 소원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일인가를 돌아봅니다. 각자 원하는 것은 항상 있기 마련이고 그런 원함은 알아서 추구하는 것인데 꼭 그걸 하나님께 말해야 하고 의지해야 하고 신앙으로 연결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무런 상관없이 자신의 소원은 소원대로 신앙은 신앙대로 살면 안 되는 것일까요?

  

물론 각자가 자기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과 상관없이 산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면 하나님과는 별로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신앙적인 관계도 소원이 없다면 단순한 종교생활이 될 것입니다. 소원이 없으면 관계도 없는 법입니다. 그렇게 관계가 없다면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명목상의 종교일 뿐이지 하나님과 연결되는 신앙은 아닙니다.

  

반대로 하나님도 그렇게 하신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를 주일에 교회에서만 만나주시고 나머지 시간에서는 우리를 잊어버리신다고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24시간 시도때도 없이 돌보시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께 그러한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소원이 주님 안에서 온전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천국을 파트타임으로 가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천국은 풀타임으로 가야 하고 그 외 다른 곳에 갈 생각은 아주 끔찍한 생각일 뿐입니다. 이 세상에서 천국에서의 삶의 예를 경험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해서 소원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면서 존재하는 한 그렇게 소원을 갖는 일은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사모하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서 소원을 품으면서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준비하고자 할 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분명한 동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17: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7: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7: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7: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님께 소원을 가지고 간구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에게 가서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율법은 나병이 있을 때 그 나병의 완치를 제사장들이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에게 가서 자신의 몸을 보이라는 것은 몸을 깨끗하게 해주시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치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종들이 떠온 물을 잔치자리에 나눠주라고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때에는 종들이 순종함으로 그 물을 나눠주었을 때 그 물이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그와 같이 그들은 제사장들에게 자기 몸을 보이기 위해서 갈 때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자기 몸을 보이고 완치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을 때 그들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을 하고 나서 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한 사람은 소원을 들어 주심에 대해서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왔고 나머지 아홉 사람은 그냥 자기 집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원래 제사장에게 완치판정을 받고 정상인이 되었으면 집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 사람은 예수님께 돌아오는 것을 먼저 하였고 나머지는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가버렸던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17: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7: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천히 여기는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사마리아 지역은 그 이전에는 북이스라엘이었습니다. 하지만 BC 721년에 남유다보다 먼저 앗수르에 멸망하고 민족이 섞이면서 혼혈이 되었기 때문에 남유다 사람들은 북이스라엘 사람을 멸시하고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사마리아 사람이 오히려 유대인들보다 예수님께 더 감사할 줄을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이 단순히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께 소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두 번 다시 안 볼 것처럼 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계속 다시 볼 것처럼 대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해서 소원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한 사람은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돌아온 그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7: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7: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자신에게 감사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실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에 실망하셨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져도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과 아무런 연관이 없게 되는 것에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소원의 이루어짐이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인데 떠난 사람들은 그걸 하지 않았으니 자신들의 소원의 이루어짐은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돌아온 한 사람은 바로 그걸 했습니다. 그럴 때 그는 하나님과 상관이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신 것입니다. 소원이 그를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소원의 이루어짐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께 믿음을 가진 것이 바로 그를 구원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믿음으로 인해 그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구원받음을 믿음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 그 믿음은 결국 하나님께 대해서 소원을 가질 때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 소원을 갖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려고 할 때 소원을 갖게 되고 그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소원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고 하나님의 기쁨에도 참여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소원이 있으니까 이루어집니다. 소원이 없다면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종종 홈쇼핑에서 여행상품을 소개하는 것을 봅니다. 저는 평상시에는 그렇게 소개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감흥이 없었습니다. 전혀 소원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유럽, 일본, 동남아, 그 어디를 보여줘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족들이 국내여행지로 강릉 호텔 상품을 소개하는 것을 보고 저기 가면 좋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족들이 좋다고 하니까 그 상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결국은 그 상품을 구입해서 함께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 장소가 좋아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같이 가는 사람들에 대한 소원이 있으니까 가는 것입니다. 그런 소원이 있으니 가는 것이지 그런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좋아 보이는 그곳도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도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 소원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도 의미가 있지 하나님께 아무런 소원이 없으면 지금은 나온다 하더라도 나중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살펴보십니다. 현재 문제의 간절할 때만 예수님께 나아왔다가 그 다음에는 아무런 소원이 없어져 버리지는 않는가를 주목해 보십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소원을 갖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싶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싶어할 때 계속 소원을 갖는 사람이 됩니다.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구원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소원으로 채워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 성경공부 교재
제자 성경공부 교재
평일성경공부 교재1
온라인 상담전도

1.신앙구조
2.성경적용
3.마음변화
4.변화방법
5.신앙고민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24-01-29 (월) 09:48 10개월전
*소감적용
1.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서도 거기서 끝나는 경우도 있고 하나님과 더 연결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더 연결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2. 하나님이 필요할 때만 소원으로 필요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소원이 이루어짐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믿음이 자라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
3. 하나님의 소원을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4. 소원은 꼭 가슴에 품고 하나님께 다가가야겠습니다.
5. 내 소망만 고집하는게 아닌 하나님의 소망과 일치하는지 늘 확인하고 그걸 향해 나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6. 하나님 안에서 평생 소원을 가지고 이어나가야겠다.
7. 하나님께 대한 소원을 가지고 더 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8. 소원의 전과 후가 일정하고 주님과 연결된 신앙으로 나아왔으면 좋겠습니다.
9. 끊임없이 소원을 갖고 항상 주님께로 나가야겠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10. 소원이 생겨날 때, 힘들 때 귀찮을 때, 감정이 생길 때 하나님과 연결하여 그 뜻을 먼저 생각하고 습관을 갖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 어디에나 충만하시고 함께 하시며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이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거룩한 곳들이기 때문이다.
주소 추천 0
번호 분류 이미지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조회
1180 82연합
42눅 4; 16-22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15 0 517
1179 51계획
42눅 2; 46-50 예수님을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2-08 1 929
1178 74경건
42눅 2; 36-40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사람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30 1 1351
1177 62희락
54딤전 4; 3-6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16 0 2228
1176 56충만
11왕상 18; 41-46 작은 구름을 기다리는 소망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09 1 1364
1175 55동행
50빌 4; 6-9 선택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구함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1-02 0 2398
1174 64인내
46고전 10; 10-13 피할 길을 내셔서 감당하게 하시는 하나님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27 1 1336
1173 56충만
45롬 8; 25-28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19 2 2856
1172 51계획
10삼하 2; 1-5 응답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12 1 3475
1171 34두렴
2출 14; 22-25 나아가는 이스라엘과 쫓아오는 애굽인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0-05 0 3465
1170 66양선
42눅 22; 28-32 하늘의 일은 다스리는 일이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28 1 1903
1169 66양선
42눅 19; 11-17 하나님의 일에서 하늘의 일로 나아간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21 2 3538
1168 66양선
43요 21;15-17 예수님을 사랑할 때 하는 일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14 2 3720
1167 66양선
42눅 10; 38-42 하나님의 일과 내 일의 차이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9-07 2 3705
1166 66양선
43요 5; 17-21 일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31 4 4142
1165 63화평
42눅 6; 1-5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24 2 4109
1164 63화평
1창 18; 5-8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하는 방법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17 1 2306
1163 63화평
1창 18; 1-5 휴식 중에 복을 받는 사람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10 2 4323
1162 63화평
1창 2; 1-3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안식의 의미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8-03 1 4739
1161 62희락
52살전 5; 14-18 범사에 감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27 2 5396
1160 62희락
50빌 4; 4-8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삶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20 2 5325
1159 62희락
44행 27; 33-37 감사를 통해 구원을 얻게 되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13 1 5209
1158 62희락
44행 16; 19-26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서 감사를 드림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7-06 2 5698
1157 74경건
66계 21; 1-4 사람들과 함께 있는 하나님의 나라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29 2 5758
1156 74경건
45롬 14; 17-22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곳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22 1 6289
1155 74경건
43요 18; 33-37 예수님의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15 2 6169
1154 74경건
40마 20; 20-23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방법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8 2 5883
1153 74경건
54딤전 2; 1-4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이유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6-01 2 6737
1152 84교육
46고전 7; 1-5 가정의 화목 속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25 1 3991
1151 84교육
51골 1; 26-29 가르치는 자들은 비밀을 알게 하는 자들이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18 2 7763
1150 84교육
46고전 12; 19-26 부모가 알아야 하는 한 몸의 원리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11 1 7808
1149 84교육
20잠 22; 1-6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5-04 1 4122
1148 76우애
45롬 8; 1-6 생명과 성령의 법을 이루는 우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4-27 1 4335
1147 76우애
51골 2; 16-19 우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발전된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4-20 2 8225
1146 76우애
61벧후 1; 7-11 우애를 통해 구원의 확증을 이룬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4-13 2 8682
1145 76우애
45롬 12; 9-13 우애를 이루는 삶은 사랑의 삶이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4-06 2 8919
1144 53희생
46고전 15; 1-8 나에게도 보이신 그리스도의 부활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3-30 2 8429
1143 53희생
47고후 12; 7-10 약한 그 때에 강하셨던 그리스도 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3-23 2 8819
1142 11개인
44행 1; 12-15 제자들이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의 모습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3-16 1 9124
1141 11개인
42눅 4; 16-21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의 모습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3-09 1 9359
1140 11개인
41막 1; 1-8 복음의 시작과 삶의 시작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3-03 2 8937
1139 12가정
1창 9; 19-23 가족의 단점이 아닌 장점을 보는 이유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2-24 1 4928
1138 12가정
1창 6; 14-20 가족들이 함께 해야 하는 일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2-17 2 9288
1137 12가정
1창 3; 8-13 책임감당을 통해 가족이 된다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2-10 2 9821
1136 12가정
1창 4; 6-9 가족은 선을 행하는 대상이다 2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2-03 2 9638
82연합
42눅 17; 11-19 소원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음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1-27 1 9759
1134 62희락
42눅 19; 1-10 드러나지 않은 마음의 소원이 있음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1-20 3 9215
1133 74경건
41막 7; 24-30 소원을 통해 침상에 누운 아이를 보게 됨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1-13 2 10011
1132 66양선
40마 15; 21-28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예수님 1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01-06 2 9554
1131 74경건
47고후 5; 18-21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원하는 사람들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12-30 1 5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