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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41막 14; 32-4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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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14; 32-42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2_2

 

 2015.3.29..주일오후.

 

*개요:    고난주간,

[]14: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14: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14: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14: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14: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14: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14: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순간일 것입니다. 단지 시간이 흐르기만 하면 결과가 나타나는 것과는 다르게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은 자신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더 이상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고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더욱 긴장감이 고조되고 초조해지기 때문에 힘든 시간이 됩니다. 더더군다나 그 결정이 너무나 중요한 결정이고 잘못 결정하면 커다란 낭패를 보게 된다는 것이면 그 선택의 순간은 가장 괴로운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우리는 그러한 절대절명의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를 고민하기도 하고 이길이냐 저길이냐 를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사람이냐 저사람이냐를 고민하기도 하였고 이곳이냐 저곳이냐를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무리 심각한 고민을 했다고 한들 예수님의 고민에 비하겠습니까?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심각한 고민을 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고민의 핵심은 이것이었습니다.

“[]14: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14: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여기에는 두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원대로 이 잔을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인 다른 소원도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원대로 이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원이 이 잔을 마시지 않는 것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뀌지 않을 때에 예수님이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나의 원대로 이 잔을 마시지 않는 것이냐, 아니면 아버지의 원대로 이 잔을 마시는 것이냐의 문제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선택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 자신에게도 이러한 선택이 있습니다. 때로 그러한 고민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리기도 합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저는 제가 원하는 것을 해버립니다. 자꾸 고민해버리면 갈등만 커지니까 얼른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그럴 때마다 저는 그렇게 선택한 것으로 인해 아버지의 원으로부터 자꾸만 멀어집니다. 이것이 반복되고 반복될 때마다 처음에는 심각했던 고민이 나중에는 전혀 죄책감들지 않는 고민이 되고 결국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의 고민은 더이상 하나님의 원을 따를 것이냐 나의 원을 따를 것이냐가 아니라 나의 어떤 소원을 따를 것이냐로 바뀌어서 제 자신의 삶의 상황은 예전보다 더욱 타락하고 불경건하며 이기적인 것이 되어버림을 발견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처럼 아버지의 원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나의 원을 따를 것이냐를 생각한다면 이것은 정말 신앙상태가 좋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것이 있고 그것은 아마 이런  일인 것 같다라도 생각만 할 수 있어도 꽤 괜찮은 수준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버지의 원은 생각도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무엇에 기뻐하시고 무엇에 싫어하시는지에 대해서 관심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지도 말하지 않습니다. 오직 관심이 있고 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나의 수많은 욕구들 중에서 수많은 하고 싶은 일들 중에서 어떤 일을 해야 가장 만족스럽고 행복할까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선택하던 가장 안좋은 것이 되버립니다.

 

예수님이 나의 원을 따를 것이냐 하나님의 원을 따를 것이냐를 심각하게 아주 심각하게 괴로워하고 계실 때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따르고 있습니다. 바로 잠을 자는 것입니다.

“[]14: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그들은 내가 나의 피곤함으로 인해 잠을 더 자고싶은 원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예수님이 자신들을 애써 오게 하시고 그 고난과 괴로움에 동참하게 하시니까 주님과 함께 주님을 위해서 기도할 것인가의 선택 속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몸의 피곤함을 이기지 못했고 그리고 특별히 애써 이기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은 밤새도록 새벽이 될 때까지 기도하셨지만 하루밤이라도 못자면 안되는 제자들은 아무리 자지 않으려고 했지만 쏟아져 오는 잠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잠을 자지 않아야 할 때 잠을 자게 되는 것 뿐만 아닙니다. 그들은 먹지 말아야 할 때에 먹었습니다. 마시지 말아야 할 때에 마셨습니다. 입지 말아야 할 때 입었고 벗지 말아야 할 때에 벗었습니다. 떠나지 말아야 할 때에 떠났고 머무르지 말아야 할 때에는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모든 각 요구에 이르지 못하게 될 때에 갖게 되는 변명은 한결같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그들의 당한 시험을 피해가 하지는 못했습니다. 너무나 졸려서 잠을 자게 되고 그 때문에 기도를 못하게 되었다는 변명이 그들의 자신의 마음을 위로했을 지는 몰라도 그 변명이 그 다음날 그들이 경험하게 되는 강력한 시험상황 속에서 그 시험을 이길 수 있게 도와주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 연약함으로 인해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 연약함 때문에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세 번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잠을 잤습니다. 그리고 다가온 시험에 여지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이 깨어 기도하심으로 그 이유를 가장 잘 보여주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왜 깨어 기도해야만 했을 까요? 예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냥 잠을 자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기도할 때 나의 원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의 원을 따를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결정을 내려야 할 때 그 결정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게 할 때 여러분은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나의 원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의 원을 따르게 된다면 다가오는 모든 상황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처럼 기도로 준비할 때만이 나의 원을 따르지 않고 아버지의 원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아버지께서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모든 은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민의 순간은 너무나 괴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심히 놀라며 슬퍼하셨습니다. 또한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하셨습니다.

“[]14: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주님은 왜 그렇게 괴로워하셨을까요? 그냥 빨리 끝내버리면 어떠했을까요? 그냥 자신의 원을 선택하든지 아니면 아예 아버지의 원을 따르든지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 버리면 속이 시원했을 텐데 왜 예수님은 밤새 괴로워하실까요?

 

예수님은 세번 그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그렇게 쉬웠을 텐데도 주님은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잠깐만 말해도 다 아실 텐데도 예수님은 하나님께 밤새 기도했습니다. 정말 어려운 것은 하나님의 뜻을 꺾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은 그냥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태초에 예비하신 계획과 섭리에 의해서 진행되고 실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애써 밤새 괴로워하신 이유는 아버지의 뜻을 꺾기 위함이 아니고 아버지의 원을 받아들이기 위함입니다. 그것을 그냥 단순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 번째 제자들에게 오셨을 때 담담하셨습니다. 그 때는 오히려 제자들에게 자고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14: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여러분은 그것을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밤새 두려움과 갈등으로 기도하고 난 뒤 도리어 담대해지고 강건해지는 것을. 밤새 기도함으로써 나의 원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버지의 원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예수님은 인간으로서 그렇게 가장 약한 부분을 경험하셨고 가장 강한 부분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지만 하나님을 의지할 때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인간은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결코 우리 스스로 강해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을 의지해서 강해지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할 때에만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원을 따르게 되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14: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주님은 죄인의 손에 팔리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겟세마네로 함께 가셨습니다. 그럴 때에도 함께 가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제자들을 이끌고 인자를 잡고자 하는 죄인들에게로 인자를 팔고자 하는 자에게로 함께 가자고 하십니다. 주님이 이렇게 나아가시려고 할 때 준비된 자는 따를 것입니다. 자신의 원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원을 아버지의 원을 따르려고 하는 자들은 주님을 계속해서 따라나갈 것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인도하십니다.

 

주님을 따라가야만 구원에 이르고 하나님에 나라에 이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곳에 이르기까지에는 어떤 정석의 길이 있거나 혹은 누구나 예수님이 없이도 그 길을 따라가야만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을 따라가야만 합니다. 그럴 때 따라가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 길은 자신의 원을 버리고 가야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기 싫은 곳에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이 보여주신 모범처럼 우리의 원을 버리고 아버지의 원을 따르려고 한다면 능히 그것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할 때 새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자고 하신 것이고 주님은 기도를 통해 그 고비를 넘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기도할 때에 그 고비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기도하면 가장 두려워하는 자는 누구일가요? 바로 사탄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더이상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가면 바로 하나님께서 물리치시는 그 사탄을 우리도 물리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기신 사탄은 누구입니까? 표면적으로 예수님은 사탄의 무리들에게 잡히시고 그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일로 인해서 정말로 괴로워하고 낙담하는 자는 바로 사탄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예정대로 약속대로 계획대로 구원계획을 이루시는 것이고 그 계획에 따라서 사탄은 심판받고 멸망받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주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도망가게 되기를 바랬지 이렇게 당당하게 십자가로 나아오게 되기를 바라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사탄은 주님만 그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고 제자들은 따라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불안함에 무서움에 떨면서 십자가로부터 멀리 멀리 도망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은 사탄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해주어서는 안됩니다. 사탄이 싫어하는 일을 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을 따라서 십자가로 나아가는 일을 해보십시오. 당당하게 담대하게 따라가자고 하실 때 힘차게 따라나가는 자들이 되어보십시오. 그럴 때 사탄은 그 권세를 잃고 나약해지며 마지막 날에는 주님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주님을 따라 고난을 받지만 주님을 따라 영광도 받을 것입니다.

이 고난주간에 다시 그 십자가의 길을 가기로 다짐합시다. 마음과 몸이 새로워지면 담대하게 새로운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놀라운 길을 다시 잘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자들이 되기해달라고 우리의 원을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원을 이루는 자들 되게 해달라고 간구합시다. 하나님은 새힘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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