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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43요16; 28-33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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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16; 28-33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_6

  

2017. 12. 31. 주. 송구영신예배

  

 

  

*개요:  동행하시는 하나님

  

[요]16: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요]16: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요]16: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요]16: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요]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때 우리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일년 동안 정신없이 살았지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나는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에게는 가족의 따뜻함과 든든함이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외로움과 적적함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모님이나 배우자나 자녀들이 응원해주고 격려해줘도 사라지지 않는 부담감과 책임감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고 있다는 방향은 하나의 위로가 됩니다. 그것은 우리자신의 미래의 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래의 일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현재의 일이 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만 주면서 희망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기쁨과 희락이 있습니다. 그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결코 외롭거나 적적하지 않고 가장 충만하며 평안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하시는 것이 우리가 읽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제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지금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있습니다.

  

 

  

2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16: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시기적으로 이 때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 유월절 마지막 만찬을 하신 후에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죽으시고 하나님께로 나아갈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앞으로 펼쳐질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 말씀은 비유로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것도 아버지에게서 나오신 것이었고 또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해서 생기는 일은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에게로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비유가 아니라 일어날 일에 관한 것임을 제자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6: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16: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제자들이 깨달은 것은 단순히 이 말씀이 비유가 아니라 구체적인 일들에 관한 것이라는 것 만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어떤 인간의 물음에 따라서 대답하심으로 일을 이루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모르고 있던 일들과 사람이 생각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님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것과 또한 이 세상을 떠나시는 모든 일들이 전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예수님께만 해당되는 하나님의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말씀하십니다.

  

“[요]16: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요]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일어날 일을 이야기하십니다. 그것은 그들이 각각 다 자신의 피할 곳으로 흩어지고 예수님을 혼자 두게 될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면 일어날 대제사장의 종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오는 것을 예수님은 전부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미 그 이후에 실제로 일어난 일들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어서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간 제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은 어쩌면 잘 이해되지 않는 말일 수도 있었습니다. 오직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고 앞으로 일어날 구체적인 일들에 대한 내용이라는 것을 믿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이 사실이고 그 일들이 구체적으로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면 그 다음의 말씀도 믿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그런데 여기서 제자들이 흩어지고 예수님을 혼자 두게 된다는 것은 믿을 수 있었지만 예수님이 혼자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제자들이 흩어진다는 것이나 예수님이 혼자된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구체적인 일들에 대한 설명이었지만 아버지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두 가지 말씀이 다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제자들은 흩어지고 예수님은 혼자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밤에 대제사장의 종들에게 잡혔고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되셨습니다. 또한 그와 함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든 십자가의 고통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대속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앞으로 일어날 어떤 일로 설명하시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각기 제 곳으로 흩어질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혼자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과 함께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지금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소망과 위로는 먼 미래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소망과 위로는 바로 지금 그 순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 진정한 예수님의 소망과 위로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외롭고 힘들고 책임감과 의무감에 버거울 때에 우리는 혼자인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무도 도움이 안되고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시는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함께 하실 것이 아니라 지금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지금의 모든 시간 시간을 다 받으신다는 것이고 모든 외로움과 괴로움을 다 지켜보신다는 것이며 그리고 그 모든 애씀과 노력이 결코 헛되게 되지 않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혼자 되심이 헛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함께 하셔서 그 모든 것을 다 감당하게 하심과 같이 말입니다.

  

겉으로는 가장 힘들고 가장 외로우며 가장 혼자되었지만 사실 그때 하나님이 가장 붙드시며 가장 역사하시며 가장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중요한 믿음의 내용입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전부가 아니라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함께 하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길을 걸어갈 때에 CCTV가 우리를 살피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안좋은 일을 할 때에는 그 CCTV가 부담스럽겠지만 좋은 일을 할 때에는 혹은 어떤 범죄의 가능성을 걱정할 때에는 우리를 살펴보는 CCTV는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줍니다. 계속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어떤 조치를 취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커다란 성벽이 되십니다. 또한 방패가 되십니다. 피할 길이 되시며 든든한 도움이 되십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느부갓네살의 신상이 세워졌을 때 그 신상에 절하지 않았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알고 그들에게 위협하며 절하게 하였을 때 그들은 거부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러자 느부갓네살왕은 분노하며 그들을 풀무불에 넣게 했습니다.  

  

“[단]3: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단]3: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그 불이 얼마나 강렬한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풀무불에 넣는 군인들이 불에 타죽었습니다. 그러니 그 다니엘의 세 친구들이 풀무불에 어떻게 되었을 지는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놀랍게도 그들은 불에 타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불 속에서 거닐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느부갓네살왕이 보았습니다.

  

“[단]3: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단]3: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느부갓네살왕이 본 신들의 아들과 같은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다니엘의 세 친구와 함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불에 타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세 친구들이 그 불 속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는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 안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 속에서 막아주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불 속에서 타버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안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밖에서는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의 손에 잡히기는 하시지만 놀라운 구원의 길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홀로 영광의 길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이루십니다. 그 함께 하심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함께 하셨기 때문에 바로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수는 있으나 그 어려움을 이겨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분명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부하셨습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어떻게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가를 보면서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평안의 이유가 됩니다. 세상에서 이런 저런 일로 환난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 일들로 인해서 넘어지거나 실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이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세상을 이기는가를 보여주십니다. 바로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핫팩을 가지고 있으면 따뜻합니다. 그로 인해서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넘쳐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핫팩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있어도 사용하지 않으면 따뜻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평안을 누리고 담대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그 함께 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면 평안이나 담대함은 없겠지만 함께 하심을 정말 믿는다면 자연히 평안과 담대함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예수님처럼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서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을 이기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비록 흩어지고 혼자 될 때도 있었으나 마침내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처럼 앞으로의 삶 속에서 이런 저런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경험할 때도 있으나 오직 예수님과 함께 함으로 이겨낼 수 있음을 깨닫고 더욱 예수님 안에서 평안하고 담대해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로운 한해에도 여전히 주안에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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