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는 작년 송구영신예배때 우리의 기도제목을 적고 소원을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그래서 그 소원이 올 한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또한 올 한해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노력하며 준비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서 이제 우리는 다시 2012년 송구영신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는 다시한번 기도제목을 드리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새로운 소원을 갖고자 하는 우리에게 오늘 주님은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21절입니다.
21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너무나 당연한 질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대답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2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우리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알아야만 하나요? 아무렇게나 원하고
구하면 안되나요?
얼마전 우연히 본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한해를 마치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을 출연자에게 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들은 다음, 하루에 그일을 다 하게 만들었습니다. 출연자들은 괜한 일을 원했다고 괴로워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정말 원하는 것이 안좋게 되기도 합니다.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는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님께 긴히 말씀을 드리기 위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아들들을 위해서 이렇게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21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어머니로서 그녀는 자기 아들들의 입신양명을 원했습니다. 그당시
구름떼와 같은 군중을 몰고 다니며 놀라운 기적을 행하시던 예수님은 로마의 압제하에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할 진정한 메시야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예수님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면 그 나라에서 예수님이 왕이 되고 자기 아들들은 그 옆의 양팔이 되는 높은 신하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특히 자기 아들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던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를 제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앉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하게 예수님께 나아와서 이러한 소원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말하십니다.
“22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은 정말 자신들이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어이없는 답을 했습니다. “할 수 있나이다” 늘 그 잔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답도 그렇게 간단합니다. 정말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원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이 요구하는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 잔과 그 고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늘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나서 늘 그 비용과 희생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그것을 요청하고 간구합니다. 그것을 몰랐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요구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불행을 기사로 접하면서 우리는 복권에 당첨되기를 원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낙마와 불명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높은 자리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들의
심적 스트레스를 접하면서도 그렇게 많은 연봉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영원히 그 잔과 그 잔의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지 모릅니다.
그리고 설사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더라도 또는 정말로 그 잔을 마실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것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잔을 마시기로
예정된 사람들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세배대의 아들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23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잔을 마실 수 있다고 해서 좌우편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정해진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좌우편에 앉게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희생과 고생을 감수할 수 있다고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을 요구하는 마음 그 자체입니다. 좌우편에 앉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왜 문제일까요? 인생에서 높은 곳에 서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왜 문제가 될까요?
세간에 유행하는 자기 개발서들이 있습니다. 일전에도 제가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베스트셀러 상위를 랭크하는 도서들은 대개 축복과 발전, 자기성장과 관계된 것들입니다. 이런 서적들은 불량식품과 같습니다. 많이 팔리고
많이 읽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영혼은 파괴되고 피폐해지는 그런 것들입니다. 오늘날 술과 담배회사가 많은 돈을 벌고 그것들은 많이 팔리고 있지만
그것이 얼마나 건강을 해치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마찬가지로 신앙도서의 영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얼마나 해로운가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이와 반대로 세상에서 불량식품같은 신앙서적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더욱 높은 자리에
앉아야 하고 우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왕이 되어야 한다.”
정확히 반대되는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주님은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라고
가르치시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높은 자리를 얻고자 하고 으뜸이 되려고 합니다.
어디에서든지 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님의 가시는 방향을 보여주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소원을 묻는 순간에 주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과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주님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주님의 방향은 이것입니다.
“28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방향으로 우리의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런 방향으로 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과 계속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들으신 여러분, 이제 다시 주님은 여러분께 묻습니다.
2008년도 새해의 계획을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주님께 나아온 우리에게 주님은 물으십니다.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이제 우리의 소망은 바뀌었을까요? 어쩌면 우리의 소망은 변치 않았을
지 모릅니다. 여전히 우리는 가정을 원하고 직장을 원하며 학교를 원하고 교회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다시금 주님의 질문을 받게 됩니다.
“너희는 너희의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이 말은 다시 어렵게 들리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간단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은 이것입니다.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부디 이 질문에 우리 모두가 이러한 소원을 갖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결코 크고자 하기 위함이나
으뜸이 되기 위함이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것을 원하는 이유가 더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더 종이 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랑스럽게 예수님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만이 우리도 예수님처럼 섬기고 희생하기 위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