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 42눅 1; 45-55 큰 일을 인간에게 행하심2Loading the player... Loading the player... *
42눅 1; 45-55 큰 일을 인간에게 행하심2_2b
2018. 12. 16. 주. 주일오후
*개요: 성경비전, [눅]1: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눅]1:46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눅]1:47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눅]1: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눅]1: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눅]1: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눅]1: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눅]1: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눅]1: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눅]1: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눅]1: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그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따라가지 않으면 만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다음에는 단순히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따라감’과 ‘그리스도와 만남’과 ‘그리스도의 뜻을 행함’이 순서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다만 ‘따라감’과 ‘행함’이 합쳐지게 되기 때문에 섞여있어서 두드러지지 않는 것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단순히 따라가는 자들과 그리스도를 만나고 뜻을 행하는 자들이 함께 섞여 있지만 본질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과 온전히 연합할 때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먼저 그가 그리스도를 따른 장면을 보겠습니다. 엘리사벳을 만났을 때 자신의 삶에 대한 예언을 들었습니다. “[눅]1: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였고 친족이었던 엘리사벳을 문안하기 위해서 방문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잉태 이후에 요셉과 무사히 결혼을 하였고 혼전임신이 크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일이 무난히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단순히 임신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분명 그 일을 순종함으로 따라가기로 한 것은 중요한 결정이었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만났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그 임신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에 용기를 내어 순종하는 것은 간혹 있는 일이지만 그 순종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마리아가 그 어려운 순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게 분명히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인지를 깨달으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눅]1:48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그녀는 자신을 비천하게 여기며 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위치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하나님은 자신을 긍휼히 여기며 복을 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 하나님을 그녀는 온전히 만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있었습니다. “[눅]1:49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마리아는 하나님을 따랐고 하나님을 만났으며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그분이 능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신지를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온전한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큰 일이었고 영광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일을 행하는 것에 함께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순히 주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귀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어떠한 분으로 믿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온전히 알게 되었기에 그 역사하심에 동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구체적으로 행하였습니다. “[눅]1: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눅]1:55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마리아는 하나님은 정말 우리를 도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기억하는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녀의 행함이었습니다. 또한 그분은 말씀하신 것을 그 백성에게 온전히 이루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소망 속에서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따라가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리스도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주님을 세 번 부인하였다가 다시 돌아온 베드로에게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역시 온전히 주님을 믿었을 때에 다시 돌아와서 주님의 일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요]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베드로에게 있어서 그렇게 주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었기에 비로소 주님께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돌아왔을 때 주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과 믿는 마음이 주님의 뜻을 행하게 하는 것이지 주님을 믿지 않는다면 주님의 일이나 뜻을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주님을 따르는 과정을 거치면서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가고 믿으면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리아가 그런 두려움이 있었다면 예수님을 잉태하거나 출산하기를 거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었고 그 믿음으로 결국 예수님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그 믿음을 붙들고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는 자들이 됩시다. 그러면 처음에는 어려워도 나중에는 그렇게 인내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놀랍고 귀한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성탄을 통해 예수님을 모두 마음과 삶 속에 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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