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이 직장을 선택할까, 저 직장을 선택할까를 고민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이 학교를 선택할까, 저 학교를 선택할까를 갈등할 때에도 역시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이보다 좀더 작은 문제들을 결정할 때에도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학교에서 이 과목을 들을까, 저 과목을 들을까를 고민합니다. 친구들과 만나는 모임에 갈까 말까를 고민합니다. 어떤 진로를 선택할까를 고민합니다. 하지만 더 사소한 선택 속에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양말을 신을까, 어떤 옷을 입을까, 어떤 음식을 먹을까와 같은 고민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구하지 않아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대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고자 할 때의 문제들은 다 중요하거나 쉽사리 결정내리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고자 하는 이유는 여기에는 궁극적인 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나중에는 분명하게 나타나는 은혜가 있습니다.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를 위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고자 합니다. 그럴 때 비록 우리 자신의 희생이 따른다 하더라도 우리 자신에게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모든 것을 견딥니다. 그리고 인내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고자 합니다. 그러면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얻습니다. 여기에는 궁극적인 축복이 있습니다. 결론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결코 헛되지 않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앙의 원리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인도하심을 잘 받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축복으로 인도된다는 것입니다. 지뢰밭 사이를 무사히 통과하는 것처럼 우리는 아무런 해를 받지 않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도하심을 받기만 한다면 너무나 좋은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 것 같은데도 별로 어려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가 올바르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다면 뭔가 그 결과가 있어야 될 것 같은데 막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다보면 어려움이 따릅니다. 고통도 생깁니다. 지뢰를 밟지는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생치기가 납니다. 뭔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정말 제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 것일까요?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며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루 이틀 만에 가나안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한 두달이 걸린 것도 아닙니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무려 40년만에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 앞에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40년이 지난 뒤에는 그 기둥들은 지겨운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가나안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길을 잃은 것이 아닐까요?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하나님은 어디론가 가버리신 것이 아닐까요? 그 기둥들만 남겨놓고서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원래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이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 있는 계획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17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전쟁을 만나게 되고 그럴 때 후회하여 돌이킬까 염려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계획에는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과거를 아십니다. 그래서 그 성품의 연약함도 아십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숨고 싶고 피하고 싶은 것을 주님은 너무도 잘 아십니다. 좋은 음식과 편한 안식처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압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노예로 살았고 비굴하게 살았던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불편하더라도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18:“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또한 하나님은 그들의 미래를 아십니다. 가나안은 아름다운 곳이지만 그곳에는 땅만 있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민족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해야 합니다. 끔찍하고 잔인하며 고통스러운 전쟁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때를 잘 예비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만 했습니다. 농사짓고 정착하는 삶이 아니라 진의 형태로 자리를 잡고 다시 이동을 위해서 일사분란하게 자리를 접고 움직이는 기동성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 뜻가운데 그들은 장막을 쳤습니다. 20:“그들이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치니” 그리고 이렇게 장막을 치고 걷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처럼 가나안 민족과 치루게 될 일대격전의 생존의 전쟁을 절대로 뒤로 물러나지 않고 수행하기 위해서 광야생활 40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현재를 아십니다. 지금 있어야 하는 것은 하루 빨리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님을 아십니다. 가장 중요한 유익은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가야만 했습니다. 백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절감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앞에서 행하시고 그들을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비취시는 은혜를 누리고 경험하며 그것을 체득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것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21:“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사람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했다고 섣불리 생각하는 이유는 내심 바라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선택을 통해서 평안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성공하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했습니다. 자신이 예상했던 과정과 자신이 꿈꿔왔던 결과가 나타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힘들고 여전히 괴로우며 여전히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당황하는 것입니다. 절망하기도 합니다.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한번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원함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함을 따르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욕구를 위해 인도하심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위해서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닥치는 어려움과 겪어야만 하는 불이익을 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을 때 생겨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목적과 의미와 계획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바람과 풍랑을 견디어 목적을 이룬다는 것이지 그런 것이 없는 항해를 한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어려움의 과정을 통해 변화되면서 마침내 진정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놀라운 열매를 얻게 됩니다.
여러분에게 있어서 가나안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이루고자 하는 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 꿈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평안함과 기대했던 대로 명예와 생각했던 대로 영광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더 큰 것을 보십니다. 더 큰 유익을 보십니다. 더 궁극적이고 본질적인 열매를 거두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그와 같은 우리의 더 큰 결실을 바라고 계심을 잊지 맙시다. 그리고 그 놀라운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심을 기억합시다. 이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뜻대로 되어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아시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그것이 빨리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하고 원해도 때가 되지 않았다면 절대로 해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실 놀라운 결실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음을 믿고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그 변화의 유익은 반드시 우리에게 임하여질 것입니다. 이일을 생각할 때에 하나님이 어디계신지를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가나안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니라 40년 광야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그분의 동행함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광야는 바로 주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광야의 장소가 어디입니까? 광야의 시간은 언제입니까? 그 때는 간절히 가나안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고 동행하는 시간입니다. 그 유익을 깨닫는다면 그 시간의 귀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슈렉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인공 슈렉은 당나귀와 함께 머나먼 왕국의 왕의 초대를 받고 역시 머나먼 길을 떠납니다. 근데 얼마 가지 않아서 당나귀가 슈렉에게 말합니다. ‘이제 다왔어요?” 슈렉은 말합니다. “아니” 조금 후에 다시 당나귀가 말합니다. “이제 다왔어요?”슈렉이 말합니다. “아니”그 다음부터는 머나먼 왕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제다 왔어요/아니/이제다 왔어요/아니’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물론 웃자고 만든 상황이지만 때로 우리 자신이 이렇게 하나님께 물을 때가 있습니다. ‘이제 다 되었나요/아니다/이제 다 되었나요/아니다’그 시간에 도착하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겠지만 오직 얻고자 하는 것만을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다면 그 시간의 의미를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중요하며 얼마나 변화되어야 하는 시간인지도 알지 못하고 그저 아무 것도 안하고 기다리기만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는 길에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그들 앞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기하게도 광야생활 중에는 만나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구름 기둥, 불 기둥, 만나 이 모든 것들은 단지 가나안으로만 가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면 전혀 감사한 것이 아니겠지만 언젠가 가나안에 도착해서 구름 기둥도 사라지고 불 기둥도 사라지고 만나도 사라지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립기도 할 것입니다. 그 때가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그 후에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그 귀함을 느껴야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이 주시는 구름 기둥, 불 기둥, 만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아직도 가나안은 보이지 않는데 정말 올바른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것이 맞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는다면 올바르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는 한 결코 길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고 정진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감사함으로 받아서 주저하지 않고 담대히 주님과 동행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한 자매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상대를 구하지 못해 오랫동안 결혼을 못했습니다. 계속 선을 보면서 상대를 찾다가 한 4년만에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서 거의 결혼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그런데 패물 문제로 다투면서 서로의 안좋은 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결혼을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결혼할까 아니면 파혼을 할까. 그 고민의 순간에 그 자매는 저와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위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를 알려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은 그 자매의 마음에 평안함을 주셨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던 자매는 용감하게 파혼을 하였습니다. 과연 그 결정은 옳은 것이었을까요? 일은 쉽게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마음에 맞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5년간이나 더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5년동안 저는 바늘방석 속에서 살았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좋은 것일까를 심각히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말 그 순간 받은 인도하심이 진짜였다면 반드시 하나님이 그의 삶을 이끌어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5년만에 너무나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증권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는데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었고 놀랍게도 그 사람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의 오빠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시댁과의 관계가 좋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귀한 아들을 낳아서 기르며 잘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마침내 그 열매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열매는 단순하게 결혼해서 잘 살았다가 아닙니다. 결혼이라는 문제 속에서 이 자매가 변화된 것입니다. 물론 완벽히 변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을 때 더욱 하나님을 의지했고 더욱 하나님을 붙들었으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갈구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고 인내가 커졌으며 사람이 그래도 좀 겸손해졌습니다. 주님의 뜻은 바로 이러한 삶의 변화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저 결혼을 못하던 노처녀가 시집을 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문제로 고민하던 한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붙들다가 마침내 변화되었고 결국 가장 좋은 인도하심을 얻게 되었다는 믿음의 간증입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단지 기다리지만 말고 그 응답을 위해 변화되십시오. 그 응답을 얻을 수 있도록 준비되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참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온전한 인도하심을 굳게 붙드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지금도 주고 계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바라보며 감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으며 더욱 도달하게 될 가나안 땅에 합당하게 준비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