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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43요 3: 1-12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알아야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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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요 3;1-12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알아야 하는 것_2



2011.1.23. 주일오후, 평성교회 교사헌신예배


오늘 저는 이곳에서 설교를 하게 되어서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노목사님을 만나고  유서깊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게 되어서 또한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여기에 오기전 교사헌신예배라는 말씀을 듣고 왔는데 특별히 전해야 하는 메세지가 있는가 여쭤보았을 때 그냥 원하시는 대로 전하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알아야만 하는 상황이 있었다면 좀더 자세히 그부분에 대해서 다룰 수 있었겠지만 마음대로 전하라고 하셔서 교사들을 위한 메시지와 그리고 저의 전문적인 분야인 성경적 상담학의 내용을 통해서 잠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오늘 이자리에 우리가 함께 나누는 말씀을 통해 바로 하나님께서 이곳에 주시고자 하시는 은혜가 나타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이스라엘 선생으로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 10절에 좀더 강렬하게 나타나있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점잖게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이러한 일을 알아야 한다’ 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더욱 강렬하게 더욱 강조하여서 주님은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너는 평성교회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이것이 바로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에게도 이 말씀은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선생들이 꼭 알아야 하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점을 주님은 우리에게 일깨우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님께 니고데모에게 말씀하고자 하셨던 그 알아야만 하는 일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거슬러 올라가서 3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바로 알아야만 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어쩌면 그 당시에 이 진리는 너무나 생소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제사를 지냄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구약의 구원개념에 익숙했던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내용은 정말 생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내용입니다. 노래도 있지 않습니까? ‘돈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그 가사를 아시나요? 함께 불러볼까요?
“1.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후렴-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그 이후에 벼슬로도 못가고 지식으로도 못가고 어여뻐도 못가고 맘착해도 못간다는 내용이 이어지는 이 노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 나라에는 거듭나야 갈 수 있다는 위대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진리를 너무나 순수하고 정겹고 쉽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간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럼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믿음으로 간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요? 무엇을 믿어야 믿는 것인가요? 어떻게 믿어야 믿는 것인가요? 대체적으로는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대답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대답이 궁색할 때 우리는 혼란에 빠집니다.

니고데모도 역시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늙었는데 어떻게 다시 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는 것이냐는 황당한 질문도 했습니다.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해서 교사들이 겪을 수 있는 여러가지 오해가 있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교회를 빠짐없이 다니는 것인가요? 교회에서 성가대나 성경공부나 기타 다른 봉사를 하게 된다는 것인가요? 믿는다는 것은 너희들 예수님을 믿니? 하면 네라고 대답하는 것인가요? 믿기로 결심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하면 손을 들고 발을 들어보세요 하면 발을 들고 앞으로 나와보세요 하면 나오고 뒤로 들어가세요 하면 들어가고 앉았다 일어났다 누웠다 물구나무섰다 그런 행동을 따라하는 것이 그것이 믿는 것일까요? 그것이 거듭난 것일까요?

조금 과장해서 설명했는데 이러한 거듭남에 대한 오해가 구원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불러 일으킵니다.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사탄은 이단을 통해서 잘못된 구원관을 심어줍니다. 이 모든 것은 거듭남을 행동으로 표면적으로 외면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시도에서 비롯된 오해인 것입니다. 이런 오해를 더욱 과장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 세상적인 교육관입니다. 오늘날 교회교육은 세상교육의 가치관과 세계관에 더욱 많은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일반 교육관의 목표는 인격완성, 자주적 생활능력, 국민으로서의 자질, 국가에의 봉사, 이상실현에의 기여 등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덕목들이 일반 교육에서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전혀 다른 목표인 거듭난다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거듭나게 되는 것은 그저 명목상의 표현일 뿐이고 실제적인 구성은 전부 세상교육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오해가 지속이 되고 이런 저런 잘못된 방법론에 치이다 보면 그 궁극적인 목표도 상실하게 됩니다.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입니까? 왜 거듭나려는 것일까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게 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라는 목표는 상실해버리고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더 성공한 사람이 될까에 좀더 촛점을 두게 되어버립니다.

이제 이런 혼란에 우리가 빠져있다면 그래서 도대체 교회에서의 교육을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면, 매해 교육의 목표가 바뀌고 주제가 바뀌고 방법이 바뀌어서 어떤 것도 꾸준히 1년이상 지속해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면, 주일학교의 학생들이 다음 학년으로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자꾸만 중도에 탈락하고 탈락해서 마지막 청년부로는 매우 적은 수의 학생들이 남게 되는 안타까움이 반복되고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학생들에 대한 열정이 사라지고 그런 상황을 이제는 수수방관하는 상태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면,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들어야합니다. 멀리 일반 교육학 책을 뒤적일필요 없이, 멀리 외부로 나아가서 새로운 교육학을 공부할 필요없이, 우리는 조금만 더 성경을 읽어보면 됩니다. 예수님은 그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시기 때문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앞절의 구성과 동일한 패턴으로 주님은 다시 말씀해주십니다. 거듭난다는 것이 바로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으로 새롭게 해석되었습니다. 여기서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을 영어성경과 헬라어성경으로 연구를 해보면 물로부터, 그리고 성령으로부터 태어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모태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물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사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들어간다는 것은 단지 행동적인 면으로 걸어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누리는 것, 즐기는 것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해석하자면, 물로부터 태어난 자들은 그리고 성령으로 태어난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즐기는 것입니다.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행동의 변화를 말씀하셨나요? 예수님이 절차의 필수성을 말씀하셨나요? 예수님이 고백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나요? 예수님이 교회에 얼마나 안빠지고 나왔는가, 혹은 학습이나 세례를 받았는가, 혹은 교육프로그램을 완수했는가, 혹은 찬양을 부를 때 눈물을 흘리는가, 혹은 방언을 받았는가, 교회 봉사에 얼마나 참석하는가를 말씀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전히 계속해서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잣대로 교회교육을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동의 변화와 표면의 변화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마음의 변화입니다. 온전한 마음의 변화, 그래서 그것은 천국을 즐기게 될 수 있는 상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상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면서 그 나라를 실현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저는 모든 표면적인 의식이나 과정이나 행동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성경공부가 필요없고 학습,세례 의식이 필요없고, 교육프로그램이 필요없고, 성경학교와 수련회와 기타 여러가지 특별행사들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스라엘의 선생은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숫자가 아니고 그것은 행동이 아니고 그것은 과정이 아니고 그것은 행사를 끝내는 것이 아니고, 정말 중요한 그것은 마음입니다. 마음으로부터 여러분의 학생들이 ‘물’이라는 과정을 기뻐하며, ‘성령’이라는 인격적이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부심이 있고 자랑이 있으며 보람을 느끼고 긍지를 가져서 자신들의 이 험한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 때가 유치부일 때도 있고 그 때가 유초등부 일 때도 있고, 그 때가 중고등부 일때도 있고, 그 때가 대학부 일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학생은 그가 비로소 더 이상 학생이 아니게 되었을 때에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새로운 교사로 말입니다. 자신이 가진 자부심과 자랑과 보람과 긍지를 가지고 새로운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말이지요. 현재 교사로 섬기는 여러분들은 바로 그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이것을 알고 계십니까? 

이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학생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 언제가 될 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순간은 전혀 예상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마음 속에 미움과 분노가 혹은 절망이나 두려움이 임했을 때에 그 순간이 찾아옵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와 싸웠습니다. 둘 다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이었지만 그날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투기 시작하더니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그들을 말렸습니다. 간신히 뜯어 말린 선생님은 이 아이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습니다. 각각은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전부 상대방 잘못이라고 남탓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선생님은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이렇게 남탓만 하고 자기 잘못은 인정하지도 않고 교회에 와서 이렇게 싸우게 된 것은 너희들이 자기 화나는 것을 견디지 못해서 그래, 만약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너희들을 도와주실 거야.’너희 마음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나님이 너희들과 함께 하실 거야. 그런데 너희들은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니?’ 그러자 아이들은 기세가 꺾이고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지금 하나님을 다시 믿어보지 않을래? 하나님이 너희들을 도와주실거야.’ 아이들은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하나님을 다시 믿게해달라고 믿음을 달라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이 풀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친구와의 갈등이 일어났을 때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쩌면 여러분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어쩌면 여러분 자신이 경험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유야 어찌됐건 감정이 북받쳤을 때 혹은 감정이 자극되었을 때 그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게 될 때에 그 때는 새로운 탄생이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알에서 막 태어난 새끼들이 어머니를 보게 될 때에 각인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가 바로 물에서 태어나는 자며, 그가 바로 성령으로 태어나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일을 하는 자가 바로 교사입니다. 그것이 즐겁고 보람되고 행복한 것입니다. 교사가 학생과의 경험 속에서 기쁨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사와의 관계속에서 기쁨을 찾고 혹은 교사로서의 위치와 유익과 명성 때문에 기뻐한다면 정말 알아야 할 것을 잘 모르게 될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이나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에 관심이 없다면 학생들이 정말 새로 태어나게 되는 순간들을 다 놓쳐버리고 학생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놓쳐버리고 어쩌면 그 자신도 교사의 일을 놓쳐버리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기억하십시오. 이렇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을 상담적인 용어로 말하면 ‘문제인식’이라고 합니다. 저는 교회를 개척해서 사역하고 있지만 동시에 성경적 상담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입니다. 상담대학원에서, 일반 교회 상담세미나에서 성경적 상담학을 가르치면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 ‘문제인식’입니다. 상담은 전체적으로 네 가지 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첫 번째가 ‘문제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원인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네번째가 ‘변화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자신의 문제 속에서나 혹은 다른 사람의 문제속에서 이런 상담의 과정을 잘 몰라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어려워하는데 이 네 가지 단계를 잘 지키고 그 단계만 잘 따르면 좋은 해결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제대로 된 문제인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1단계인 문제인식이 이루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원인이해가 되겠으며 어떻게 효과적인 방법을 적용하겠으며 어떻게 온전한 변화가 형성될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엔 어떤 가정상담세미나를 잠깐 본 적이 있는데 그 가정상담세미나는 매우 기독교적인 것이라고 알려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하나님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정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빼고 나면 무엇이 남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주신 방법은 나옵니다. 그러나 그것은 믿으라, 소망하라, 사랑하라, 등으로 방법론적으로만 받아들인다면 결국에는 하나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정상담을 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문제인식’은 하나님을 제외하고 살았던 것이 문제임을 깨닫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날 교회가 그런 전문적이라고 생각되는 분야에서 하나님을 잊어가는 것을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욱 가중시키고 더욱 악화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자리에서 교사헌신예배를 드리시는 교사성도님들, 정말 알아야 하는 중요한 것은 거듭나고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행사와 프로그램과 교육과정 속에서 학생들을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하는 일이 즐거울 것입니다. 여러분도 함께 하나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를 드리시는 성도님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거듭나고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식입니다. 이일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정을 주시고 교회를 주셨습니다. 교회생활 속에서 온전히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를 보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가지 퀴즈를 내겠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설교를 잘 들으셨다면 잘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퀴즈내용은 이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하셨을까요? 니고데모가 질문한 것은 아닌데 그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습니까라고 물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셨을까요? 해답을 오늘 읽은 말씀 속에서 찾아보십시오.

정답은 이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알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하나님께로서 오신 분으로 받아들이고 그 권위를 인정하고 주님을 믿고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께로서 오신 자로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 세상에는 많은 전문가가 있지만 어떤 전문가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은 선생도 있습니다. 오히려 여러분들을 엉뚱한 길로 인도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그런 권위를 인정하지 말고 세상의 명성이나 세상의 소문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시는 여러분 되십시오. 이 세상에서 신학적으로는 자유주의의 영향을, 교육학에서는 심리학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위험성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특히 교사들은 이런 세미나 저런 세미나가 많이 있어서 이런 저런 정보를 많이 들을 텐데 그 모든 것이 전부 좋은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시고 잘 분별하셔서 오직 믿음에 굳게 서서 믿음을 갖게 하는 이일에 더욱 매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우리 모두가 잘 받아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그 가르침대로 행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개요 
1.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2. 예수님은 놀라는 니고데모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3. 교사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자들입니다.
4. 이를 위해 교사는 문제를 인식하고 원인을 이해하여 방법을 적용하고 변화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5. 여러분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이심을 잊지 말고 그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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