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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성숙] 53살후 1;3-9 환난가운데 자랑하는 이유

53살후 1;3-9 환난가운데 자랑하는 이유

2010.3.5. 금요철야, 5은혜

누군가에게 축하할만한 일이 생겼을 때 그를 위하여 감사하는 경우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환난과 핍박이 있는 사람을 위하여 감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럴 때 감사는 커녕 원망이나 미움이 생길 수 있고 설사 그런 마음이 없다 하더라도 기쁨과 감사는 현실과는 거리가 먼 감정인 것 같습니다. 상황이 좋을 때 마음이 좋은 것이고 상황이 안좋을 때에는 마음도 안좋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여기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오히려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받은 자들을 향해서 더욱 감사하고 대견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이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도바울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해서 감사했던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외적인 상황인 환난과 핍박 가운데에서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인내하고 믿음을 더욱 굳게 지켜서 도리어 믿음이 성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성장을 단순히 인내와 믿음생활만으로 보여준 것이 아니라 각기 서로 사랑하였고 그 사랑의 풍성함은 다른 교회에게까지 알려졌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그들에게 감사하였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정말로 그들의 이러한 환난 가운데서의 변화와 성장은 다른 모든 교회들에게는 놀라움이었고 사도바울에게는 큰 감사였습니다. 왜냐하면 그와같은 환난가운데에서의 성장은 그 속에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인가는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그 환난 가운데에서의 성장을 그들을 이루어내었습니다. 그토록 사도바울이 바라고 기대하며 기도하였던 하나님과의 동행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마침내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환난과 핍박가운데서 오히려 더 믿음은 성장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분명 무슨 비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데살로니가교회에서는 일어났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의아해할 것입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인내하는 모습은 세상의 이치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도대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와 사도 바울은 그 놀라운 열매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그들이 승리한 비결이 바로 오늘 성경 말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살후1:5 5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사도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자신들의 환난과 핍박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그들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견디어 승리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환난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였고 그들이 받은 핍박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공의로운 심판의 표란 무엇일까요? 그들이 환난을 받은 것이 어떻게 공의로운 심판의 표가 된다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뒤이어서 그 공의로운 심판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살후1;6,7 6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사도 바울이 설명하는 하나님의 공의는 이런 것입니다.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은 성도들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이고 악을 행한 자들에게는 처벌을 선을 행한 자들에게는 상급을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복음을 인하여 환난받고 핍박받은 것은 하나님이 행하실 공의의 표가 되었습니다. 마치 표를 가지고 있으면 극장에 들어가고 기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는 것처럼 그 공의의 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상급을 받는 것입니다. 그 상급을 인하여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7:21-23 21나더러 주여 ! 주여 !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더라도 그것이 불법을 행하는 것이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며 불법을 행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7:13-15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희생과 헌신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넓은 길로 가는 것은 유익과 편안을 보장해주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은 유익과 편안을 미끼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멸망으로 인도하게 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길은 희생과 헌신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님 자신이 바로 그러한 길을 가셨기 때문에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도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삶을 상담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5은혜]를 따르는 삶은 [6결심]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에서 오히려 견디어 이렇게 결심을 이루게 한 능력은 하나님의 ‘동행’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고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연히 비록 환난과 핍박이 [4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능히 견딜수 있는 환경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삶은  새로운 결심인‘인내’와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게 되었다는 하나님의 공의의 표가 이러한 결심을 더욱 굳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게 되었다는 것만이 그들을 환난과 핍박에서 견디게 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데 그것은 악한 자들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악인을 벌하시는 것에 대해서 기뻐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악한 자들을 벌하시는 것에 대해서 마음내켜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이 어떻든지간에 하나님은 이들을 심판하십니다. 이는 마치 재판관이 살인자에 대해서 판결을 내릴 때에 우리가 그 살인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상관없이 재판관은 범죄자의 죄의 형질과 경중에 따라 형벌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에 대해서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감정에 따른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결은 판결대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판결이 이루어지는 것은 재판관의 재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이와같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이러한 능력으로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볼 때 다시 한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살후 1:7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예수님께서는 그 능력으로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강림하십니다. 그것을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강림하신 예수님은 단순히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만 보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강림이 지엽적이고 국소적이며 제한적이지 않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서 나타납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음에 복종하지 않은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 세계의 왕이시고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그분의 영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영역에 살면서도 왕을 모르는 자들과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십니다. 그들 자신이 악을 행함으로 받는 무수히 많은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므로 죄가 사함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죄를 온전히 감당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형벌받은 그들은 주님의 얼굴과 그 힘의 영광을 떠납니다. 지금까지는 주님의 얼굴과 그 영광의 빛 가운데 살아왔지만 그때에는 완전한 흑암과 고통과 괴로움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저주 아래에서 그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그 형벌을 받는 자들은 불특정 다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는 자를 알고 계시는 것처럼 구원받지 못하는 자들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잘 아시는 것처럼 가룟 유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들이 행한 모든 일들과 그들의 저지른 모든 악행들은 주님은 잊지 않으십니다. 그 속에 성도들이 받은 환난과 핍박이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지은 잘못들 가운데 주님의 성도들이 흘려야 했던 눈물이 있고 그들이 흘린 피가 있습니다. 그에 대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심판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입니다. 한도 없고 끝도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들은 영원한 형벌, 언제나 현재로 나타나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결코 과거가 되지 않고 절대로 미래로 늦추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형벌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자원해서 그 형벌을 함께 받겠다고 용감하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형벌받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형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의인이었지만 스스로 죄인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악명높은 죄인이었고 더 많은 사람들을 죄악으로 선동하며 이끌어가기 위해서 호기를 부리는 것 뿐입니다. 스스로 들어가든 혹은 끌려 들어가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 뿐입니다. 그 호기의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금방 사라져서 영원한 형벌 속에 묻혀버립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능력을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고백해야 합니다. 의인을 높이시며 악인을 낮추실 수 있는 주님의 능력과 영광에 대해서 우리는 부끄러워하거나 숨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가게 하신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을 따르던 애굽의 군사들을 물속에 수장시키십니다. 이러한 짝이 있기 때문에 홍해가 원래는 얇은 바다였다는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묵살하게 만들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이해하면서 그것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적용하면서 발전합니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 자라났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동행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기 때문에 그 어려움 속에서도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도바울과 온 교회와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 오히려 성장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장해야만 합니다. 그 순간은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은 하나님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은 하나님의 ‘동행’과 ‘능력’을 간절히 붙드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욱 주님을 의지하여 성장하고 발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우리를 아는 사람들의 신앙의 모범이 되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될 것입니다. 이일을 향해 우리가 나아갈 수 있게 더욱 도와달라고 우리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목차 
1.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는 그들이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2. 그들의 성장은 오히려 핍박과 환난 중에서 나타났고 하나님의 공의의 표가 되었다.
3. 공의의 표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다는 의미였다. 
4. 하나님의 능력은 상급과 형벌을 결정하시는 것이다.
5. 우리도 이러한 동행과 능력을 의지하여 어려움 속에서 성장하는 자들이 되자.


*기도제목

1. 우리도 환난가운데서 더욱 성장함으로 하나님의 자랑이 되게 하옵소서
2.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워주셔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3. 주일사역을 지켜주셔서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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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느 5; 14-19 백성을 위하여 한 일을 기억하심 [83성숙]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9-10 1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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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느 5; 1-10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82연합]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9-03 2 1740
1154 담대함
16느 4; 19-23 하나님이 위해서 싸워 주시는 자들 [71충성]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08-27 0 1908